오타와 대학 김우재 교수님의 <플라이룸>을 매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김우재라는 이름을 기억하신다면 당신은 온라인 세계에서 구력이 좀 되시는 분일 겁니다. 아니면 과학과 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일 수도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양신규, 홍성욱, 장대익, 우종학, 전중환, 박상욱 이런 이름들이 오래 전부터 저의 사고를 넓혀준 이름들입니다. 


하지만 저 이름들 중에 김우재라는 이름은 조금 특별합니다. 김우재 교수님은 저와 비슷한 분야(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 이런식으로 나누자면)의 소위 '실험계'에서 일하고 있는 연구자입니다. 그런 면에서 특별한 동질감을 느끼기에 그의 책이 더 반가웠습니다. 솔직히 실험계와 비실험계는 삶이 다르거든요. 야전에서 일한 군인과 육본에서 군사행정만 전담하는 군인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둘 다 필요하지만 말이죠. 


초파리를 통해서 본 과학 <플라이룸>


소속과 직책이 아니라 언제나 '초파리 유전학자'라는 아이덴티티를 내세우는 그가 낸 책은 역시 초파리에 대한 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초파리만 이야기하는 책은 아닙니다. 어쩌면 3권으로 나눠 써야 할 것을 한 권에 다 담은 느낌입니다. 1부는 초파리를 연구하며 느낀 과학과 사회에 대한 그의 생각을 담았고, 2부는 초파리 유전학에 대한 그의 연구 내용을 담았고, 3부는 초파리 연구로 본 생물학의 역사를 다룹니다. 


제가 가장 관심 갖고 읽은 부분은 3부였습니다. 김우재 교수님의 글을 읽은지는 10년이 넘었지만 그의 '두 과학'에 대한 생각에 특별히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두 과학'을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것은 아마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 전화 인터뷰인가로 나왔을 때 라고 생각하는데(그런데 찾아보니 못찾겠는데 과학하고 앉아있네 였나???), 아무튼 그 무렵 저도 약간 비슷한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미생물 유전자를 연구하는 사람이라 아주 마이크로한 과학을 하는 사람입니다. 저희 분야는 아주 작은 생물을 갖고 분자적인 수준에서 실험적으로 증명하고 매우 엄격한 추론을 하는 것에 익숙한데, 매크로한 과학(예를 들면 동물행동학이나 진화학)을 하시는 분들은 증거가 충분해 보이지도 않는데 너무 쉽게 결론을 내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생물학도 그렇지만 식품도 그런 연구 분야죠. 이런 걸 먹으면 건강에 좋을 것이다, 아닐 것이다, 뭐 이런 결론을 함부로 내리는 경향이 있지요. 아무튼 김우재 교수는 그걸 생물학의 두 전통, 자연사(진화생물학)적 전통과 생리학(분자생물학)적 전통의 두가지 트랙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책을 읽으며 계속 아, 그렇게 볼 수 있구나, 를 되뇌었습니다.  


그리고 2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솔직히 학회에서 초파리 연구하는 사람들의 발표를 들을 때가 있지만 그렇다고 그 역사적 배경까지 다 이해하고 듣는 경우는 없습니다. 특히 학자들은 짧은 인트로덕션과 데이터에만 집중하죠. 세세한 방법론이나 해석 방식은 랩미팅에서나 이야기하지 그걸 공개적인 장소에서 시시콜콜 이야기하진 않으니까요. 그래서 2부에 나오는 초파리 연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더욱 흥미로웠던 것 같습니다. 진핵생물을 싫어하는 제가 말입니다. ㅎㅎ


하지만 아마도 많은 사람들, 특히 현장에 있는 과학자들은 <플라이룸>의 1부를 읽으며 한국에서 과학한다는 것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볼 것 같습니다. 연구비, 논문, 랩 운영, 인건비, 그리고 수업 등등 과학자가 할 일은 많은데, 거기에 행정과 학회 일, 학교 일, 각종 위원회, 심사, 과제 기획, 심지어는 로비까지. 이러면서 과학자는 조로(早老)하고 연구는 뒤쳐지고 정체성은 흐려집니다. 기초과학이 중요하다는 인식은 과거에 비해 10배는 높아진 것 같지만, 그 연구의 환경은 2배 정도는 좋아졌는지, 외국의 좋은 연구소나 시스템을 베껴 들여오긴 잘 하지만 한국의 제3 섹터의 과학은 가능할런지, 아니 돈 안되는 과학은 가능할런지 등등 생각이 복잡해질 겁니다. 어쩌면 저자는 이런 시스템에 뭔가 균열을 내고 싶어서 이런 글을 썼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 책은 초파리에 매우 편향적인 책입니다. <플라이룸>은 주류 생물학에서 살짝 벗어난 아웃사이더 느낌이 있지만 초파리는 그래도 주류 생물학의 대표 모델 생물이죠. 저희처럼 아무도 모르는 극한미생물 연구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말입니다. 그런데 살짝 묘한 동질감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그건 아마 김우재 교수님이 지금까지 보여준 마이너리티 감성이 살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자가 이야기한대로 이 책은 그렇게 친절하지 않습니다. 생물학적 배경이 부족한 사람이 읽고 이해할 수 있을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때로는 본문보다 길기까지 한 각주에서 명령하는 '읽을 것!'을 다 찾아 읽는다면 시간은 엄청 오래 걸릴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위 대중과학서보다는 학술서에 더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대중과학서에 길들여진 독자에게 도전해보라고 권하는 책입니다. 저도 여러분께 도전을 권해보고 싶습니다. 쉽진 않겠지만, 쉬운 길을 뭐하러 갑니까? 개나 소나 다 다니며 막히기만 할텐데.


[사족] 김우재 '교수'라는 직함은 이제 곧 다른 것으로 바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학 밖에서 실험생물학자로 살겠다는 결심이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합니다. 쉽지 않을 것 같은 그 분의 길을 묵묵히 응원합니다.

 

Posted by 바이오매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