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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석대 그 후, 희망은 있는가?

바이오매니아 2006. 12. 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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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문열의 소설이 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문학전문기자 최재봉의 글을 빌려서 내용을 요약해본다.

철저한 독재자인 반장 엄석대의 배후에는 그의 `효율적인 통치'에서 득을 보는 담임선생님이 있다. 그러나 주인공들이 5학년에서 6학년으로 진급하면서 새로 담임을 맡게 된 교사는 엄석대 식의 강압적인 반 운영을 비판하고 구성원들의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참여를 요구한다. 결국 전교 1등의 성적까지 조작하는 엄석대의 음모를 발각해낸 교사에게 매를 맞고 엄석대는 학교를 떠난다. “너희들은 당연한 너희들의 몫을 빼앗기고도 분한 줄 몰랐고, 불의한 힘 앞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엄석대와 그의 공모자들에게 매를 때리면서 교사가 한 말이다.

여기 유사한 줄거리의 또 하나의 소설이 있다. 황석영. 이문열과 대척점에 서있는 사람이다. 1972년에 나온 이 소설의 제목은 <아우를 위하여>. 역시 최재봉의 요약이다.

열한 살짜리 주인공 수남의 반에 열다섯 살짜리 영래가 새로 들어오면서 힘으로 반장 자리까지 차지하게 된다. 가르치는 데에는 뜻이 없고 부업 때문에 밖으로만 나도는 담임선생님은 은근히 영래가 반을 휘어잡는 것을 달가워한다. 그러나 영래의 횡포가 우심해지고, 처음에는 그를 따르던 아이들조차 점차 그에게서 멀어질 무렵, 사범학교 졸업반인 교생 선생님이 부임해 온다. “한 사람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면 여럿이서 고쳐줘야 해요. 그냥 모른 체하면 모두 다 함께 나쁜 사람들입니다”라는 그의 말에 수남이와 반 아이들은 힘을 합해 폭군 영래를 몰아내기에 이른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두 소설의 얼개가 상당히 비슷하면서도 결론이 정반대임을 알아챘을 것이다. 마지막 최재봉의 결론이다.

엄석대와 그의 공모자들에게 매를 때리면서 교사가 한 말에서는 앞서 인용한 수남이네 교생 선생님의 말이 겹쳐 들린다. 차이가 있다면 <아우를 위하여>에서는 교생 선생님의 격려를 받은 아이들이 스스로 폭군을 몰아낸 반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는 교사가 직접 행동에 나섰다는 점뿐이다. 두 작품 모두 정치적 알레고리로서의 색채가 뚜렷한데, <아우를 위하여>가 폭군에 맞서는 민중 쪽의 대의에 초점을 맞춘 반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는 석대가 몰락한 뒤 반 아이들이 보인 행태를 통해 그들의 우중(愚衆)적 면모를 표 나게 드러내고 있다.

(최재봉의 컬럼, “우리들의 진짜 영웅은?” 중에서)

황석영과 이문열. 어느 것이 더 진짜 현실에 가까울까? 난 이문열의 소설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든 힘센자에게 맞서기 보다는 순응하는 것을 훨씬 보기 쉬운 세상이다. 더욱이 진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허상이었다고 여겨지는 요즘에 말이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세상은? 황석영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쉽게 느끼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그렇다. 정점에 몰렸던 권력은 점점 그 영향력이 퍼져가고 있고 민중 또는 대중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어른들이 위아래도 없는 이놈의 세상이 망할 것 같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말이다. 물론 한 때 젊은이들이 꿈꾸었던 꿈, 자유와 희망이 넘쳐흐를 대동 새세상에는 충분히 못 미치지만 말이다.

하지만 돌이켜 보시라. 인류의 역사까지 갈 것 없이, 우리의 역사에서 지금처럼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된 적이 얼마나 있었는가를. 이걸로 만족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언제나 싸움은 이문열(현실)이 이기는 것 같은데 역사의 수레바퀴는 황석영(꿈)쪽으로 굴러오는 것은 사실이다. 희망은 현실이 아닌 현실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희망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 영화 쇼생크 탈출을 한 번 더 보시라고 권해주고 싶다. 자유에 대한 희망을 가진 앤디 (팀 로빈스), 감옥의 익숙함에 동화되어 자유를 포기하고 자살한 브룩스, 그 둘 사이에서 앤디의 희망을 선택한 레드 (모건 프리먼)가 앤디와 그 푸른 바다와 하얀 백사장의 “지후아타네호 (Zihuatanejo)”에서 만나는 장면을 말이다.


희망은 우리가 품느냐 버리느냐의 문제이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품는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분명한 것은 지금 “현실”에 동화되어 있는 사람에게 희망이란 어색한 단어라는 점이다.

바로 그 현실, 이문열이 소설 속에서 현실감 있게 그린 그대로, 엄석대가 사라진 지금 우리의 모습은 완전히 지리멸렬이다. 나눠가진 권력으로 서로 물고 뜯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여와 야가 싸우고, 법원과 검찰이 싸우고, 정치권력과 언론이 싸우고, 친북과 반북이 싸우고, 민중과 우중이 싸운다. 싸움에 진절머리 치는 당신,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것이 현실인 것을. 진정 희망을 잡으려면 그 현실을 넘어서야 하는 것을, 여기서 멈추어선 정말 희망이 없는 것을, 쉬었다 가더라도 때론 좀 돌아가더라도 진도는 나가야 하는 것을, 말이다.

나에겐 아직도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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