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는 것> by 동물원

사랑이라 말하며 모든 것을 이해하는 듯
뜻 모를 아름다운 이야기로 속삭이던 우리
황금빛 물결 속에 부드러운 미풍을 타고서
손에 잡힐 것만 같던 내일을 향해 항해했었지
눈부신 햇살 아래 이름 모를 풀잎들처럼
서로의 투명하던 눈길 속에 만족하던 우리
시간은 흘러가고 꿈은 소리 없이 깨어져
서로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멀어져 갔지
우 그리움으로 잊혀 지지 않던 모습
우 이제는 기억 속에 사라져 가고
사랑의 아픔도 시간 속에 잊혀져
긴 침묵으로 잠들어 가지

사랑이라 말하며 더욱 깊은 상처를 남기고
길 잃은 아이처럼 울먹이며 돌아서던 우리
차가운 눈길 속에 홀로서는 것을 배우며
마지막 안녕 이란 말도 없이 떠나갔었지
숨가쁜 생활 속에 태엽이 감긴 장난감처럼
무감한 발걸음에 만족하며 살아가던 우리
시간은 흘러가고 빛바랜 사진만 남아
이제는 소식마저 알 수 없는 타인이 됐지
우 그리움으로 잊혀 지지 않던 모습
우 이제는 기억 속에 사라져가고
사랑의 아픔도 시간 속에 잊혀져
긴 침묵으로 잠들어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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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이 많은 영화의 장점은 뭘까. 영화를 보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리라. <8월의 크리스마스>가 그랬듯이 <봄날은 간다>도 여백이 많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동물원의 <잊혀지는 것> 생각이 났다. 내 대학교 1학년 시절. 드럼의 한박자 인트로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이 영화와 많이 닮았다. 감독이 변해가는 것을 담고 싶었다고 했던가? 아마 그건 잊혀지는 것과 동의어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성공한 셈이다.

여백이 많은 영화의 단점은 뭘까. 아마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 아니면 제 관중을 만나지 못하면, 재미가 없다느니, 이야기에 몰입하지 못한다느니 하는 불평이 터져나오고 만다는 것이리라. 아니나 다를까. 어떤이는 재미없다고 '절대' 보지 말라고 했다하고, 어떤이는 '다시는 한국영화 안본다'고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품평만 믿고 영화를 놓친다면 당신은 보기 드문 한국영화 수작 한 편을 놓치는 우를 범한 것이다. 하지만 나의 권유를 받아들였다가 당신은 두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과 한끼 밥값이 넘는 칠천원을 한꺼번에 버렸다고 나를 타박할지도 모른다.

자, 그럼 어떻게 기준을 만들까? 내가 제시하는 기준은 이렇다. 당신은 <8월의 크리스마스>를 좋게 보았던가? 그렇다면 빨리 극장으로 향하길(아니라면 <조폭마누라>를 권하는 바이다). 이 영화는 비디오로 볼 영화가 아니다. 가능하면 좋은 극장에 가길 바란다. 특히 음향시설이 좋은 곳으로 가길 바란다. 거기서 들려오는 대숲의 흔들림, 산사에 내리는 눈, 시냇물 흐르는 소리... 그것만 듣고 나와도 본전은 했다고 느낄 것이다.

게다가 미적감각이 거의 없는 내 눈으로 보아도 이 영화는 아름답다. 유영길 촬영감독의 유작인 <8월의 크리스마스>와 많이 닮았다. 뭐가 닮았냐고? 아름다운 것이 닮았다. 더 이상 자세히는 묻지 마시길. 학창시절 미술이라면 나는 학을 떼었던 인물이다.(물론 전문가들은 다르다고 한다. <비트>, <아름다운 시절>의 현 촬영감독 김형구의 작품세계는 또 다른 맛이 있단다).

하지만 영화가 그게 다가 아닌 것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이미 가르쳐주었다. 수려한 우리네 강산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던 그 영화는 보기 좋은 미술 작품 이상의 감흥을 내게 주진 못했다. 물론 일인 전역의 슈퍼맨 감독의 존재는 놀라운 것이었지만, 그것은 동행했던 친구의 눈꺼풀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그럼 무엇이 이 영화를 좋게 만든 것일까. 내게 있어서는 무엇보다 감독의 시각이다. 명쾌한 악인이 없다는 것은 일본 '아니메'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미야자끼 하야오의 만화가 대개 그러하듯, 이 영화가 따스한 느낌을 주는 것은 그런 연유일 것이다. 감독이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이래 봐야 군대시절 슬리퍼신고 나갔다가 두들겨 맞았던 한 사람 뿐이라니, 이쯤되면 영화 감독으로는 어울리지 않게 살아온 것은 아닌지 좀 생각해봐야 할 수준이다.

게다가 배우의 연기도 좋다. 키만 크고 멀쑥한 느낌의 유지태는 그야말로 상우이고, 예쁜척한다고 질시의 대상이 되기 일쑤인 이영애는 그야말로 은수다. 이야기도 좋다. 영화를 보면서 악역(?)을 맡은 이영애 욕많이 먹겠군, 생각했지만 영화가 끝난 후엔 오히려 연민이 생긴다. 영화를 보며 은수가 헤어지자는 말을 할 때 모두가 "왜?"라고 질문하지만 사실 그 질문은 입밖으로 내 놓는 순간 너무 유치한 질문이 된다. 물론 해답도 없다. 다만 풍부한 여백을 통해 누구나 한 줌의 이유를 맘속에 가지고 나온다. 게다가 영화에 잔재미를 주는, 그렇지만 영화를 이끌어가는 힘이기도 한 소위 '잔가지'(서양 오랑캐말로 디테일)들도 반짝 반짝 빛난다. 그건 각자 찾아보기로 하고....

이 영화 <봄날은 간다>는 여러 가지로 이율배반적이다. 두 사람은 사랑한다. 그러나 헤어진다. 이 영화는 멜로다. 하지만 그냥 멜로가 아니다(어떤 의미에서 다 커버린 어른들의 '성장영화'라고나 할까). 두 주인공의 캐스팅은 너무나 상업적이다(소위 스타시스템의 절정이지 않은가? 유지태! 이영애!). 그러나 이 영화는 돈벌이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돈 벌려면 이렇게 만들면 안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또 다시 이 영화는 존재의의가 있다. 한국 영화 극장 점유율 50%를 바라보는 이 때, 이런 영화가 장기 흥행을 한다면 아마 그건 한국 영화의 수준뿐만 아니라 관객의 수준까지 향상되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덧붙임] 참고할 것은 작년 아내 임신하고서 JSA를 온가족이 극장에서 본 이후 첫 번째 극장 나들이였다는 점, 따라서 극장 한 번 가는 것이 소원이었으나 애기 땜에 꼼짝 못하던 사람의 흥분이 이 영화를 보는데 알게 모르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또덧붙임]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추석 연휴기간 동안 <조폭마누라>가 <봄날은 간다>를 눌렀더군. 음... 역시 대단한 한국인...

Posted by 바이오매니아

이태리를 다녀 온 것도 벌써 4개월이 넘었다. 난생 처음 이태리를 가서 느낀 점을 간단하게 나마 정리해 보고 싶었다. 로마를 1박 2일 동안 둘러보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카타콤베라고 하는 초기 기독교 지하교회 무덤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이다.

카타콤베와 성베드로성당은 정확히 대칭되는 점이 있다. 전자가 공인 받기전 초기 기독교의 모습이라면, 후자는 기독교 공인 후 소위 기독교 시대의 절정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박해의 상징인 카타콤베는 지리적인 위치도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서 한 참을 걸어가야 했지만, 베드로성당은 로마 카톨릭의 본산인 바티칸의 한 가운데 위치한다.

먼저 아침에 카타콤베에 다녀왔다. 유일하게 로마를 돌아다니며 내게 도전을 준 곳이 바로 카타콤베였다. 그 옛날 믿음을 지키기 위해 어느 부자가 자기 재산을 교회에 내어놓아 지하에 만들었다는 이 지하 동굴은 너무 길이 복잡해서 전문 안내원들이 몇군데만 골라서 보여준다.

사진출처: http://blog.cbkmc.com/blog/index.php?article_id=1350&blog_code=sunghwa


카타콤베 지하동굴의 묘지들



거기에 시신을 두었던 엄청나게 많은 관 모양을 보면서 참 이 사람들은 그 옛날 무엇 때문에 목숨을 걸고 여기에 피해 들어와 살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엇이 로마라는 당시 최고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것을 다 포기하게 만들었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곳을 떠나 오후엔 성베드로 성당에 가 보았다.  

성베드로 성당 앞에서


저 멀리서도 우뚝 솟아 보이는 성베드로성당



위 사진은 성베드로 성당의 외관이다. 그 앞에 줄서있는 사람들의 크기를 보면 알겠지만 정말 크다. 그 위용에 나는 한마디로 질려버렸다. 그 안에 들어가보면 우리가 말로만 듣던 유명 예술가들의 미술품들이 있는데, 이렇게 높고 큰 건물을 어떻게 지었는지가 궁금해진다.

그러나... 결코 기분이 좋지는 못하다. 게다가 성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해 면죄부를 팔았고 결국은 그것이 개신교와 천주교의 분열(종교개혁)을 가져왔다는 역사를 읽으면 더욱 그렇다. 그 옛날 기독교국가의 모습의 타락을 보면서 나는 대한민국 또는 세계를 기독교 국가화 하려는 시도들에 대해 회의하게 되었다. 그것이 종교가 하나의 제도로만 이루어졌을 때의 위험을 경고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도 길이 남을 역사적 교회를 짓자며 역삼동에 엄청난 교회를 지었다. 그런데 과연 그 교회를 후손들이 와서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20세기 후반 후반 한국 기독교의 부흥이 멈추고 외적인 물량주의가 판치던 시기, 서울에서 가장 땅값 비싼 곳 노른자위 땅에, 보통 국민학교 운동장보다 큰 주차장을 지하에 완비한, 대통령을 배출한 교회가 서울에 있었단다. 당시 기독교의 모습을 대표하는 것이란다. 뭐 이런 소리를 하지는 않을까? 난 그게 두렵다. 그 멋진 성 베드로 성당을 보고서 우울했던 까닭이다.

[덧붙임]

1. 카타콤베가 로마시대 부자의 개인 묘지라는 설도 있다고 한다.

2. 이 글은 천주교를 음해(?)하고자 쓴 것이 아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만큼은 천주교가 더 사회적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여겨지고 있고, 나도 일정 정도 동의하는 바다. 무종교인들에게 질문했을 때 가장 좋아하는 종교도 천주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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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디렉토리를 만들고나서 7년전에 유럽키틴학회에 갔다가 썼던 글을 리바이벌해 봤습니다.  
앞으로 예전 여행 경험들을 정리해보려구요.^^

Posted by 바이오매니아
“참, 너희들은 좋겠다.”

어제 어머니가 하신 말이다. 어머니께서 뭔가 알아보고 싶으실 때 내가 인터넷으로 간단하게 거기에 대한 정보를 찾아드리면 놀라실 때가 많다. 궁금해도 어디 신문이나 책을 뒤져봐도 알기 어려운 정보를 인터넷을 통하면 빠르고 쉽게 찾아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이런 이유 때문에 내가 인터넷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속도, 정보, 이런 것은 솔직히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지만 (실은 그렇지도 않다. 하나가 편해지고 다른 몇가지에서 속박이 생기는 것일 뿐…) “평안”하게 만들지 않는다. 때로는 모르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고 알아봐야 쓸데 없는 것도 많다.

최근 인터넷에 대한 비판을 최소한 세 명 이상에게서 들었다. 사회가 각박해지고 인터넷 때문에 사람들이 공격적이 되어가고, 뭐 이런 이런 이야기들이다. 맞는 말이다. 소위 포탈이든지 아님 사람 많이 모이는 사이트, 신문사의 의견란 등등 어디든 들어가면 참 가관이다. 서로 죽이네 살리네는 고전적인 것이고 다양한 욕설과 저주, 거기에 선정적인 광고가 판친다. 그런데 말이다. 나는 그래서 인터넷이 좋다. 하지만 분명히 하자. 욕설과 저주가 좋다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나한테 “바른생활 사나이”라는 딱지를 붙여준 적이 있는데 뭐 욕하고 싸우고 이런 거랑 내가 거리 먼 인간인 것으로 많이들 생각할지 모르겠다. 겉으로 본다면 어느 정도는 맞다. 하지만 그게 사실 나는 아니다. 내 안에 내가 너무나 많아, 이런 노래 가사처럼 언제나 나도, 그리고 내 생각에 따르면 어느 누구나, 이런 갈등(?)은 존재한다고 본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실 우리가 사회화 또는 교육이라는 갑옷을 입고 자기를 절제하고 살지만 얼마나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유익만을 구하고 자기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고 자기와 다르면 미워하고 질투하고 사는지 이런 모습이 온라인에서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적나라하게 들어나지 않으면 문제가 뭔지 잘 모른다. 이렇게 드러나야 그 가운데 뭔가 해결을 위한 노력이 출발할 수 있다. 해결되고 안되고의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도 겉으로는 다들 은혜스러운 척 해도 깊이 들어가면 그 안에는 작아 보이지만 작은게 아니라 다른 모습의 여전한 갈등들이 상존해 있다. 내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못마땅한 것들 중 하나는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그것을 잘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드러낸다는 것이 상처주기나 욕, 저주의 형태로 나타나서는 안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말이다. 안점식 선생님이 우리 사회를 약점 은폐형 사회라고 말한 것은 정확한 진단이라고 본다. 그것이 교회에 마저 널리 퍼져 있다.

사람들이 큰 교회를 점점 선호하는 이유도 밑바탕에 이런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큰 교회를 헌신적으로 섬기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말은 아니다. 최근에 내가 자주가던 게시판들이 거의 모두 썰렁해지고 블로그니 싸이질이니 이런 쪽으로 발길을 다 돌리는 이유도 이런데 있지 않나 한다.

하지만 그래도 그리스도인들에게 희망을 보는 이유는 그런 것들을 꺼내어 보일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한 또는 부여받은 자들이라는 점이다. 회개란 죄를 자백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드러나는 모습이고 그 속의 뜻은 결국 그것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얼마나 부족하고 어리석고 못난 자인가를 깨닫고 그것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공개하는, 그럼으로서 결국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단 인터넷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인터넷의 그 혼란과 막되먹음을 보면서 나는 오늘도 생각한다. 이게 우리 인간의 모습이라고. 자위의 차원이 아니라 구원의 차원에서 말이다.
내가 인터넷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Posted by 바이오매니아
선동렬님, 안녕하신지요. 오늘 아침 어느 신문보도를 보니 모 구단에서 지도자수업을 하신다고 하더군요. 이제 그라운드에서 다시 님을 볼 수 있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런데 어쩌면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올 해 야구 안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요.    


지난 30일 신문을 보면서 저는 정말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님께 펜을 들었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님이 작년에 귀국하셨을 적에 제가 님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아마 통신상에 올린 글을 [팬들의 선물] 집행부 여러분들이 전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뭐, 그건 기억하지 못하셔도 상관 없습니다만...  


지난 30일 한겨레신문의 스포츠면의 헤드라인은 바로 체육인 290명 “선수협 지지”라는 기사였습니다. 그 기사를 보면서 이제 드디어 선수, 팬, 사회단체에 이어 체육인들까지 나섰구나 하는 안도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현재의 야구판과 직접적인 이해관계는 없는(또는 적은), 분들의 이름이 대부분이더군요.


그 분들의 지지성명을 결코 폄하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야구판에 몸담은 많은 야구인들은 구단의 눈치만 보고 있다는 아쉬움이 생기더란 말입니다.  


그 곳에 님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같은 날 조선일보의 스포츠면(선수협 지지성명 기사는 물론 없었지만)의 한 귀퉁이에 실린 님의 기사([스포츠 단신]선동열 KBO위원 군부대 위문)를 보고는 꼭 한 말씀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추위에 고생하는 군 장병들을 위문하신 일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KBO 사무총장과 나란히 위문품을 놓고 악수하고 기념촬영을 하는 장면보다는, 같은 날 있었던 선수협 지지성명서에서 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것은 저만의 욕심일까요.    


선동렬님. 님은 정말 우리의 국보였습니다. '선동렬 방어율 학점'이라는 말 아시죠? 그 한 마디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국의 분단 사실도 모르는 어느 일본인이 님의 이름만은 알고 있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죠. 그만큼 님은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님이 한국 야구의 희생자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누구보다 님께서 구단과 KBO의 횡포를 잘 아시리라고 믿습니다. 님이 주니치에 갈 때, 얼마나 방해가 심했습니까. 아예 처음에는 님을 주저앉혔습니다. 구단과 KBO는 한국 야구 금방 망할 것처럼 굴었었죠. 두 번재 님이 일본진출을 선언했을 때, 팬들만은 아낌없이 님의 해외진출을 팍팍 밀어드렸답니다. 결국은 팬들에게 구단이 졌지요. 하지만 한국 야구 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구단은 임대라는 희한한 방식으로 돈 빼먹고 권리 행사하는 짓을 서슴지 않고 자행했고 결국은 님을 은퇴시키고 말았습니다.  


일본 최고의 소방수 다이마진 사사끼가 시애틀에 가서 작년에 신인상을 탔습니다. 만약 님께서 같은 나이였다면 사사끼 정도는 쉽게 제칠 수 있다고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니, 실례가 될 지 모르지만 박찬호 선수보다도 나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제 님의 후배들이 그 부당함을 조금이나마 고치고, 야구 한번 신바람나게 해보려고 일어섰습니다. 그들이 돈 많이 받으려고 그런다구요? 이미 그들은 충분히 받고 있고 선수협 안하고 못이기는 척 회유에 넘어가 주었다면 훨씬 더 많은 돈을 받을 선수들입니다. 그들의 배후에 불순세력이 있다구요? 아마 평균 93%의 지지를 보내는 국민들이 모두 불순세력인가 봅니다. 선수협을 인정하면 프로야구 망한다구요? 구단들은 셈을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적자가 날 수 밖에 없죠. 그리고 이건 거의 협박입니다. 너무 궁색한 변명들 아닙니까.  


님께서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제가 현역 때 선수협이 생겼으면 분명히 말하지만 저도 선수협에 가입했을 겁니다."라고 하셨더군요.그런데 그 날 님은 KBO 사무국장과 군부대 위문을 가셔야 했습니까? KBO 홍보대사라는 직함 때문입니까? 그 직함이 님의 30년 야구인생보다 중요합니까?


우리 팬들은 마운드에서 뿐만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지 당당한 님의 모습을 보기를 원합니다. 님은 바로 우리의 '국보'였기 때문입니다.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라는 말로 그 답을 피하시렵니까. 아니면 우리의 국보 선동렬마저도 KBO와 구단에게 찍히면 지도자 한 번 못해보고 야구계를 떠나야하기 때문입니까.  


지난 99년 주니치 드래곤스의 우승 장면을 기억하십니까. 저는 그 해 타국생활의 외로움을 우리 '주니치 3총사' 덕분에 쉽게 이겨냈습니다. 메이지진구 구장에서 당시 홈련왕 페타지니를 2루수 뜬공으로 잡고 환호하는 님의 모습은 비디오로 잘 간직되어 있고 또한 앞으로도 잘 간직할 생각입니다. 선동렬님, 그렇게 언제나 자랑스럽게 우리의 곁에 남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어색한 기념촬영 사진으로서가 아니라 당당한 자리에서 님을 다시 만나길 바랍니다. 그리고 훗날 녹색의 그라운드에서 만나면 더욱 좋겠습니다.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Posted by 바이오매니아
먼저 대학 신입생들에게 주었던 한겨레신문의 철지난 옛 기사 하나를 읽어 보자. 제목은 "[책과 사람] 서점 대표들의 한마디." 내용은 몇몇 대학교 앞의 소위 "사회과학 책방" 주인들이 대학 신입생들에게 하는 이야기이다.

그 중에서 서울대 앞 [그날이 오면]의 김동윤 대표의 이야기를 잠깐 인용하고 싶다. "[그날이 오면]에서 지난 시기 가장 많이 읽힌 책으로 단연 <전태일 평전>을 꼽을 수 있습니다. 선배들이 선물로 사주거나 새내기 배움터에서 단체선물로 구입한 적도 여러 번입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눈에 띄게 그런 현상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다른 책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죠. 80년대 밤새 눈물로 책장을 적시게 했던 이 책이 벌써 자신의 생명을 다한 걸까요?"

그렇다. 이 기사를 쓰고 있는 2000년 11월 13일은, 바로 그 책의 주인공 전태일의 30주기 기념일이다. 그러나 그 뜻깊은 날에 나는 또 하나의 슬픈 소식을 전하려고 한다. 바로 새 천년의 11월을 끝으로 신촌의 사회과학 책방 [오늘의 책]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다.

[오늘의 책]이 그저 하나의 작은 책방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이미 대학과 대학가는 변화하는 시대와 자본의 침식으로 충분히 상업화되었고, 또 더욱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어 갈 것임이 분명한 지금, 경쟁력없는 일개 작은 책방의 폐점은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른다. 더욱이 최근 인터넷 서점들과 시중 서점들과의 첨예한 대결(?)의 양상을 보이는 시대에 말이다.

그러나 주변에 종합대학만 5개가 있는, 그러나 하루 유동인구 33만에, 여관 1백32곳, 카페 2백82곳, 유흥시설 4백8곳인(그나마 이것도 92년 통계이니 지금은 더 많을 것이다) 신촌에, 몇 개 되지도 않는 서점 중의 하나가 [오늘의 책]이었다. 이미 예전에 사라져버린 [알 서점]에 이어 이제 [오늘의 책] 마저 생존을 포기하는 현실이 안타까운 것은, 단지 과거에 대한 감상이나 신파적인 그리움 때문만은 아니다.

본디 [오늘의 책]이 있던 자리는 신촌 전철역과 연세대학을 잇는 연세로의 한가운데였으나 지난 96년 임대료 인상 문제로 문을 닫을 위기를 맞았었다. 그러자 주변 대학인들 및 동문들, 그리고 뜻있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오늘의 책 살리기 운동'을 시작했고 거기에 호응한 많은 사람들의 정성으로 현재의 건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그 이후 책방을 조합형태로 운영하고 지하의 '열린 공간'을 대학생들이나 작은 소모임들에게 모임 장소로 빌려주는 등, '문화공간'으로서의 새로운 모습을 갖춰 오늘까지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오래 전부터 대학가는 젊은이 놀이터와 크게 다르지 않음이 밝혀진 터. 영구불멸할 듯이 보이던 단골 당구장들마저 PC방, 게임방으로 바뀌는 디지털 혁명 속에 일개 작은 서점, 그것도 '골치아픈' 책이나 파는 사회과학 서점들이 살아 남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 아니었을까.

현재 [오늘의 책] 총무인 윤진희씨는 "내년 건물 재계약을 앞두고 경영 악화로 인해 지난 10월 28일 조합원 총회에서 폐점이 결정되었다"고 폐점의 경위를 설명하고, "다른 대학교 앞의 사회과학 서점들도 모두들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태지만 버티고 있는 실정일 것"이라고 현재의 실정을 말한다.

'책의 죽음'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그 시조라는 마샬 맥루한이 <미디어의 이해>에서 '구텐베르크여 안녕'이라고 일갈한 것이 36년 전이라니까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까지 인쇄 매체는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결코 그 세력을 지켜 왔다. 그러므로 일단은 맥루한의 이야기가 틀렸고, '책의 불멸'을 이야기한 움베르토 에코의 손을 들어줘야만 할 것 같다. 그러나 이제 맥루한에 이은 새로운 도전자가 나왔으니 그는 <디지털이다>의 저자 네그로폰테이다. 그는 2020년이면 종이로 만든 책은 없어진다고 주장한다. 아직도 생존 경쟁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아무튼 책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데도 불구하고, 책방들은 이제 점점 더 사라져가고 있다. 많은 선배들의 손때와 발길이 닿았던, 약속도 없고 할 일도 없는 몇 시간 정도는 쉽게 책임져 주었던, 수많은 친구들 또는 연인들의 만남의 장소였던, 때로는 구하기 어려운 금서들의 보급 통로였던, 또한 온갖 '현장'들의 소식지를 통해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와 소통시켜 주었던, 그 책방들이 말이다. 이제 나는 진한 아쉬움으로, '님은 나를 떠났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다'는 진부한 싯귀를 지난 시대에 바치며 이 기사를 맺고자 한다. 잘 가라, [오늘의 책], 내 십이년지기 친구야...


Posted by 바이오매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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