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의 토토로>를 수차례 보다.

이 아니메는 우리 부부의 일본어 공부용 교재이자 아침 저녁 밥상의 반찬이자, 왜냐하면 밥먹을 때 틀어놓으니까, 미야자끼 하야오 감독 작품 중에서 내가 제일 즐기는 작품이다.

재작년인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라는 이란 감독의 영화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평론가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용어가  <착한 영화>라는 말이었다. <내 남자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보여준 그의 영화는 한마디로 "달랐다." 기존에 우리 입맛에 맞았던 영화,  우리가 보아온 영화하고는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 영화적 기법만이 아니라 내용 자체가 자본의 침입으로  삭막해져버린  도회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충격이었던 것 같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재미 (라는 용어를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있는 영화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참 동안 인구에 회자되었던 것은 그런 연유가 아닐까 싶다.

미야자끼 감독. 일본어 공부를 핑계삼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극장판 영화 <천공의 성 라퓨타>, <모노노케 희메>,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이웃집 토토로>, <붉은 돼지>, <마녀의 택급편>, <루팡3세-카리오스트로 성>을 모두 보았다(이는 전적으로  내 충실한 후배 양기영군의 덕이다). 위에 언급한 그의 영화 중 단 두편만이 소위 일본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바로 <이웃의 토토로>와 <모
노노케 희메>.

엄마가 병원에 있어서 병원 근처의 시골로 이사온 두 자매.  11살 짜리 언니는 엄마의 노릇을 하고 동생은 아직 어리지만 떼를 쓰거나 말썽을 부리지 않는다. 오히려 겁없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아이의 모습. 그리고 그 가운데 있는 아빠. 절대 야단치지 않고, 전직 유치원교사 출신인 우리 아내의 말에 빌리자면 아이들을 시켜먹을 줄 아는 아빠. 새로 이사온 사람들의 집 정리를 도와주는 이웃들. 괜히 시큰둥하게 굴어도 비올때 우산을 빌려줄 줄 아는 옆집 남자아이. 수업시간에 불쑥 찾아온  동생과 같이 수업을  받게 해주는 선생님과 반 친구들. 동생이 없어지자 다 같이 발 벗고 나서는 이웃들... 감히 이런 세상을 천국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주변이 허전하고 관계가 단절된채 우리가 고립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 동안 국적 불명의 아니메만을 만들어와서  일본인들에게  빚을 갚는 심정으로 일본의 50년대를 배경으로 하여 만들었다는 이 1시간 30분짜리 만화영화는 정말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경림이의 표현). 하지만 보면 볼 수록 이상한 것은 토토로가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니메라는데  도대체 일본 사회는  토토로의 배경과 전혀 닮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어쩌다가 30년  정도의 세월에 사회가 이렇게 황폐해 질 수 있었을까.  다시 <모노노케 희메>로 회귀해 생각해 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토토로>와 <모노노케 희메>는 짝 영화 (conjugated movie;  내가 만든 용어. 함부로 사용하지 말 것)이다.  왜냐하면 극과 극은 통하는 법이니까. <토토로>는 즐겁고 <모노노케 희메>는 우울하다. <토토로>는 현대고 <모노노케 희메>는 원시다. <토토로>에서 숲의 원령은 인간이 도움을 요청하는 존재고 <모노노케 희메>에서 원령은 인간의 사냥감이다. 하지만 두 영화 모두, 절대 악인은 없으며 인간과 문명의 문제를 '원령'이라는 가장 일본적이면서  반문명적인 대상을 중심으로 풀어나간다. 토토로나 시시가미는  말을 하지 않는다. 대사가 하나도 없다. 그들은 대상이다. 문제를  일으키고 줄거리를 만들어 가는 것은 인간이다. 따라서 얼핏보면  샤머니즘이나 토테미즘 등의 단어가 연상되지만 그 속에는 무엇보다도 "휴머니즘"이 가득 들어차 있는 것이다. 이 영화들의 매력은  이러한 이중 구조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계속되는 노파심 때문이지만 이런 영화들을 그냥 정령숭배 사상등으로 묶어서 비판해버려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JMS 때문에 조금 시끄러웠던 것 같다.  예전에 91년인가 92년도였던가. 서기연 친구들이 정말 목숨걸다시피하고 싸웠을 때, 그때도 "JMS 걔 들이 그렇게 친절하고 따뜻하게 사람들을 대할 때,  우리는 무얼 했는가"라는 자기비판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리운 사람들이 있다. 그 이유를 <토토로>를 보면서 알게 된다. 수 없이 반복해서 보아도 계속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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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시네마>(유미리 지음, 고려원)를 읽다.

먼저 딴소리 조금... 요즘 경기가 안좋아 지면서 출판사들도 예외 없이 흔들흔들 거리는 바람에 나같이 책을 사서보는 사람들은 적잖이 땡 잡았은게 사실이다. 그런데 요즘엔 듣도보도 못한 출판사뿐만 아니라 문학과 지성사나 창비같은 출판사의 책들도 할인판매를 해대고 있으니 이젠 좋아만 할 일은 아닌가 싶다. 어쨌든 고려원의 왠만한 책은 3천원이면 살 수 있는데, 그래도 아직 3천원짜리 리스트에 없는 것들도 있나 보다. 내가 열심히 찾는 몇몇 책은 아직도 정가대로 판다는 걸 보니...

어쩌면 올 가을부터 1년간 일본에서 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일본에 대해 아는 건 정말 없다. 일본어? 완전 깡통이다. 그저 내가 아는건 일본사람들은 영어를 못한다는 것(정말 일본 교수들은 유학을 다녀온 사람이라도 영어를 정말 못한다). 그리고 일본 소설 몇 개 읽은 것 밖에는 없다. 그런데 그것들도 다 신통치 않다. 내가 보기엔 확 후려쳐서 모두 <상실의 시대>(조금 아는 척하면 <노르웨이의 숲> 이라고 해야겠지)와 비슷비슷하다. 유미리는 어떨까 하는 것이 내 관심사였다. 그는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니니까...

느낌을 말하자면 역시 비슷하다는 것. 어두운 골목길에서 빈 캔맥주를 다 빨아마셔버린 여자(또는 남자)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다만 그의 불행했던(?) 가족사 때문인지 가족의 해체에 대한 노력이 엿보인다고나 할까. '가족'이란 무얼까. 어떤이에겐 '가족'이 '보수주의'와 동의어일테고 어떤이에게 가족이란 '축복'일 수도 있다. 가족은 이기주의의 근원이기도하며 가족이란 이타주의의 표본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작년부터 '가족'이란 화두는 전세계적으로 다시 유행인 듯하다. <페이스 오프>의 성공으로 영화에서 가족애를 크게 다루는 경향이 보이더니, 점점 동성애라는 화두도 가부장제라는 또다른 가족으로 옮아간다. 이제 한국에서 한번 광풍이 몰아치려나. 그러고 보면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비록 외국것 베껴먹은 것일지라도 성적 담론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보구나...

그래서 그런지 유미리를 통해 읽은 세상이 전혀 유쾌하지 않다. 한국의 신세대 작가(?)들에 대한 논의가 요즘 세간에 화제라는데 어쩌면 그런 경향을 일본과 함께 논의해봐야할 필요는 없을까? 빨리 '오에 겐자부로'를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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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래도 현대는 과학기술의 시대다.

 작가들은 컴퓨터를 이용해 글을 쓴다. 비디오를 이용한 미술 작품이 나오는가 하면 하나의 전자악기가 오케스트라를 능가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각 종 통신 수단 광고가 과잉현상을 보이고 있다. 운동과 스포츠는 과학만능주의를 선언한 지 오래다. 예술 문화 부분만 그러한가. 인류의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주던 인문학도 인문'과학'으로 과학에 스스로 흡수통합되어 버렸다. 사회과학, 교육과학, 생활과학 등등, 이제 '과학'은 모든 학문에 붙는 공통적인 접미사가 되어버린 셈이다.

 게다가 국가에 경제위기가 닥쳐오니 모두가 과학기술에 희망을 걸고 있다. 어려운 경제위기를 풀기위해서는 외화의 획득이 필요하고 결국 외화획득에는 신기술에 의한 수출 증대가 가장 바람직하다는 결론이 내려졌기 때문이리라. 때문에 벤처기업 1만개를 육성하고 2년간 세무조사를 면제한다는 '특혜'까지 주어가며 과학기술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이라는 낱말은 일반인에게 그다지 익숙하지 않다. 사람들은 그 낱말을 머리로 생각하거나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과학기술이 그만큼 대중들과 가깝다는 말인 동시에, 역설적으로 그만큼 사람들의 의식과 동떨어져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1997년을 요약해서 인류 역사책에 한 줄로 적는다면 아마 복제양 '돌리'가 그 주인공이 될 것이다. 언감생심 조그만 양 한 마리가 사람의 역사에 주인공이 된것도 모자라, 이제는 새끼까지 낳았다는 소식이 얼마 전에 우리귀에 들렸다. 하지만 '돌리'가 어느날 갑자기 우리 곁에 왔던가. 그렇지 않다. 이미 인류는 생식 세포를 이용한 수정란 분할 방법으로 복제 개구리(1952년), 복제 생쥐(1983년), 복제 송아지(1990년)를 만들어낸 전력이 있다. 다만 우리가 알지 못했을 뿐이다. 왜 우리는 그러한 복제 기술의 발달에 대해 알지 못하였던가. 그리고 어느 날 나타난 어린 양 '돌리'에게 경악하고 또한 박수를 보내는가. 위에서 언급했듯이 과학기술이 일반 대중의 의식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다시 말하자면 과학기술문화의 부재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무엇이 사람의 의식과 과학기술을 연결시켜 주는가. 바로 그것이 글자 그대로 매체(媒體, media)다. 매체를 통해서 우리는 의미를 부여하고 그 실상을 파악하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1997년 2월 27일자 <네이처(Nature)>지를 사지도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돌리'는 전세계인들의 인구에 회자되는 양이 되었을까? 그것이 바로 대중 매체의 힘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각 종 대중 매체의 발전을 급속하게 촉진시켰다는 데에는 아무도 이견을 달 수 없을 것이다. 고대시대의 책에서 언론과 방송으로, 그리고 작금에 이르러서는 통신과 인터넷으로 이어지는 각종 대중 매체의 발달은, 금속활자가 위대한 발명품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각종 인쇄기구, 통신 장비등의 발달에 크게 힘입었다. 그러나 대중 매체가 이렇게 과학기술에 빚만 지고 사는 것은 아니다. 더불어서 과학기술도 대중 매체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대개의 전문가들은 자신의 분야에 대한 지식을 학술지를 통해 인정받고 공급받는다. 그러나 이런 학술지에 쓰이는 언어는 일반 대중이 쓰는 언어와 다름없지만 그렇다고 일반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아니다. 때문에 해석이 필요해졌다. 대중 매체가 바로 여기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대중 매체에 의한 과학기술의 보도가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대중 매체에서 과학기술을 다루는데 있어서 가장 큰 오류는 정확한 사실 보도의 부재와 전망의 확대해석으로 인한 일종의 선정주의(sensationalism)이다. 사실보도를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외국 언론의 무분별한 인용보도와 전문학술지를 읽어내는 능력의 부족을 들 수 있겠다. 지금은 잊혀졌지만 1년 전만 해도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었던 DHEA(dihydroepiandrosteron)의 경우가 그렇다. 96년 말 <뉴스위크>의 보도를 계기로 갑자기 불어온 DHEA는 남성에서는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으로,여성에서는 에스트로젠(esterogen)으로 바뀌는 전구물질(precursor)로서 몸안을 순환하는 가장 흔한 스테로이드 물질인데, 당시 한동안 정력제에서부터 항노화제, 항암제,심지어 만병통치약으로 취급받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미 1995년 1월 7일 프랑스 유력 시사주간지인 '르 포엥'에서 프랑스국립보건연구소 에티엔느 에밀 볼리외 교수팀에 의해 DHEA의 효능이 밝혀졌음을 커버 스토리로 다룬바 있다. 결국 한 때의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우리 과학기술 보도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 예가 되고 말았다.

 대부분의 학술 논문은 자신의 가설과 그것을 입증하는 결과들(results)로 나타난다. 때문에 이 결과들을 통해 연구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 충분히 입증되었는지를 가려내는 것이 논문을 읽어내는 방법이다. 대부분의 비전공자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가 여기에 있다. 논문의 전체적인 줄거리를 생략한채 몇몇 단어를 직역하다보면 엉뚱한 내용으로 둔갑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여지껏 수도 없이 개발되었다는 항암제에 대한 보도의 대부분은 이 경우에 해당된다. 그 실험이 생체(in vivo) 실험인지 체외(in vitro) 실험인지, 사람 대상인지 쥐나 토끼의 대상실험인지, 전임상단계의 결과인지 임상 몇 상의 결과인지 등등, 오히려 연구자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정보들은 다 생략되거나 간단하게 압축하고 '획기적 치료제 개발' 따위의 제목을 붙이는 등의 행태는 일종의 선정주의(sensationalism)라고 볼 수밖에 없다. 때문에 과학기술의 보도에 있어서는 정확한 사실의 보도와 조심스런 전망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끝으로 '대중에게 꼭 과학기술을 알려야 하는가' 라는 문제가 남는다. 적어도 우리나라에는 아직 본격적인 '기술관료(technocrat)'의 시대가 도래하진 않았다. 그러나 이미 과학기술이 수많은 사람들의 생활에 직, 간접적인 영행을 주고 있는 판국에, 사실상 대중들은 아무런 발언권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과학기술분야는 다른 분야와 달리 전문가만이 다룰 수 있는 분야로 인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과학기술의 비민주성은 '전문가주의'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런 과학기술의 비민주성을 극복하는 방안이 바로 '대중화'를 통한 과학기술문화의 확립이다. 배타적인 전문가 집단에서 열린 전문가 집단으로, 소수를 위한 과학기술에서 다수를 위한 과학기술로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그리고 긍정적인 과학기술의 발전을 가져오는 지름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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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보다.

김민기를 아는가. 그는 내 청소년기의 우상이었으며 내 삶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다. 중학교 2학년 음악시간에 내 친구가 그의 노래 <친구>를 부르다 선생님께 한쪽다리를 들고 의자들고 앞으로 나란히하는 高難易度의 벌을 받은 후 부터 그는 나에게 알려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음악평론가인 김창남 선생이 엮은, 한울에서 나온 <김민기>라는 책을 보고 그의 노래를 거의 다 마스터해 버렸던 시절도 있었다. 특히 미대생이었던 그가 해질녁 어촌의 고깃배를 보고 아름답다고 하자 그 옆에 있던 여공 하나가 "모두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라고 소아 붙이자 스스로 '아직 멀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일화는 아직도 내 가슴 속 깊이 남아있다.

그러나 김민기의 위대함은 오히려 다른 데 있다. 적어도 김민기는 70년대의 우상이며 신화였다. 하지만 모든 우상은 깨어지게 마련. 우리는 얼마나 많은 예를 보아 왔던가. 한 때 운동권이었던 사람들의 화려한(?) 변신과 변절(뭐, 꼭 그렇게 보는 시각이 항상 옳지는 않지만), 그런 것들 말이다. 89년, 그러니까 군사정권에서 민간정부로의 이양기(6공 시절)에 모든 노래들이 해금되기 시작했고 그의 노래들이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했다. 길에서 파는 나쁜 음질의 <금지곡>테이프가 아니라 라디오에서 듣는 김민기 특유의 낮은 음성. 아, 그것은 전율이었다.

그는 충분히 영웅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는 숨어버렸다. 공명심이 없는 사람일까. 아니면 신화가 깨어지는 두려움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비참한 시대가 한 평범한사람을 위대하게 만들어 버렸던 것일까. 그러나 그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학전이라는 소극장을 만들었고 <개똥이>, <지하철 1호선>등, 조금 다른(사실은 그렇지 않지만) 분야에서 나름대로의 충실한 삶을살고 있었다. <지하철 1호선>을 보고 가장 기뻤던 사실은 그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었다.

<지하철 1호선>은 참 좋은, 그리고 여운이 남는 뮤지컬이었다. 10명의 배우가 돌아가며 수 십명의 역할을 하면서도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극의 흐름을 무리없이 끌고 갔다. 게다가 원작이 독일의 것임에도 마치 우리극인 것처럼 각색해낸 능력도 높이 살 일이다. 지하철에 얽힌 온갖 인간들의 모습속에서 현대를 사는 우리의 모습을 보았다. 너무 비관적이지도, 그렇다고 전혀 희망적이지도 않다. 그냥 우리의 모습이다. 보통 뮤지컬하면 <아가씨와 건달들>이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등을 떠올리고 요즘에는 탈렌트들이 나오는 <넌센스>등이 인기를 끌지만 이런 공연이 몇 년간이나 장기 공연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자랑스럽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김지하 작시의 <금관의 예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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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이오매니아
다음은 내가 이번 서부지구 겨울 수양회 선택강좌를 위해 참고했던 책들이다. 항상 강의라는 것은 나를 성장하게 만들고 내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는 특히 주제가 "캠퍼스 리더십"이라는,내가 학생들과 함께 이야기해 보고 싶었던 것이었기 때문에 더 열심이 생겼었다. 그러나 사실 여러 책을 대하면서 적잖이 실망한 경우도 많았음을 고백해야 겠다.  

* 1.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스티븐 코비 지음, 김영사
* 2. 차범근식 리더십을 배우자, 김광열 지음, 보성출판사
* 3. 예수의 오메가 리더십, 로리 벤스 죤스 지음, 한언
* 4. 열매맺는 지도자, 죤 맥스웰 지음, 두란노
* 5. 비전있는 지도자 비전있는 사역, 죠지 바나 지음, 죠이선교회
 6. 불가능은 없다, 로버트 슐러 지음, 지성문화사
* 7. 오늘을 위한 성경적 리더십, 추아 위 히안 지음, IVP
 8. 탁월한 지도력, 존 화이트 지음, IVP
 9. 청년 신앙 조국, 김진홍 지음, 두레시대
10.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 프랑스와 까르뗄 지음, 한국장로교출판사
11. 이스라엘 역사, 정승호 지음, 대한기독교서회
12. 제자도, 데이빗 왓슨, 두란노
13. 한국기독청년학생운동사, 김영철 지음, IVP
14. 바닥에서 살아도 하늘을 본다, 김진홍 지음, 두레시대
15. 그리스도인의 비전, 리처드 미들톤 & 브라이언 왈쉬 지음, IVP
16. 복음전도 구원 사회정의, 로널드 사이더 & 르네 빠리야 지음, IVP
17. 예수운동과 밥상공동체, 박재순, 천지
18. 소그룹운동과 교회성장, 론 니콜라스 외 함께 지음, IVP  
*19. 리더와 보스, 홍사중 지음, 사계절
20. 신사고이론 20, 이면우 지음, 삶과 꿈
21. W이론을 만들자, 이면우 지음, 삶과 꿈
*22. 리더십은 예술이다, 맥스 드프리 지음, 한세

내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일반적인 리더십의 핵심은 'Vision'과 '인간관계'와 '적극적 사고'이다. 이런 리더십의 덕목들은 훌륭한 지도자에게 필수적이고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지만 지나치게 "성공"이라는 측면에 초점지워져 있다. 성경이 증거하는 리더십은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헌신과 인간의 중심에 있다. 리더십은 결코 테크닉이 아니라 삶의 자세이다. 그리스도인의 사역은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다. 개개인의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되면서도 하나의 비전에 합하여지는 '창조적인 공동체'를 만드는 일은 최고의 사역이며 헌신이다. 그러나 공동체는 혼자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더욱 창조적인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다."  

책 이야기를 좀 하자면, 리더십에 관련된 책 중 60% 가까이는 기독교 서적이다. 그런데 존경받는 기독교 지도자가 적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 다음은 소위 경영, 처세에 관한 것이다(그렇다면 기독교는 자본주의적이라는 말과 통하는 것일까?). 이 20권 중에서 새로 사서 읽은 책은 모두 8권(번호 앞에 *표시 된 것들). 그 중에서 가장 좋았던 책은 역시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었다. 왜 몇 년 동안 그렇게 이 책이 소위 젊은 청년 기독인들에 권하여 졌는지 알 수 있었다. 테크닉이 아닌 품성을 가르쳐주는 글이다. 최악은 <차범근식 리더십을 배우자>. 이 책은 다른 책들의 100% 표절이며 짜집기다(으~ 짜증). 재미있기로는 홍사중 선생의 <리더와 보스>. 갖가지 예화가 상식을 넓혀 주면서도 신문 사설가 답게 글이 쉽다. 전에 CLT에서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고 내가 참고문헌을 많이 다는 이유는 이렇다. 첫째는 내가 하는 말에 대한 근거를 대고 싶기 때문이고, 둘째는 다양한 시각을 수용하고 싶기 때문이고, 셋째는 더 깊은 공부를 원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 때문이고 마지막으로는 '공돌이'라는 한계 때문에 생긴 내 지식의 욕구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강의는 오히려 내 경험이 많이 도움이 된 것 같다. 물론 시간을 잘 못 맞춰서 할 말을 다 못하고 쓸데 없이 내 경험 사례의 인용을 남발한 것에 대해두고두고 후회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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