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몫을 훔쳐 먹는 위스키 곰팡이 Baudoinia compniacensis
유명한 미국 위스키(버번) 회사 잭다니엘의 숙성 창고 건축 계획이 소송에 휘말렸다는 BBC 보도가 최근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소위 "위스키 곰팡이(Whiskey fungus)" 때문인데요. 위스키 숙성 창고에 공기 필터를 설치하라는 것입니다. 양조장이나 베이커리 주변에서 많이 발생하는 곰팡이가 건물 벽에 얼룩을 만들거나 식물에 달라붙어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주로 보두애니아 (Baudoinia) 속 곰팡이들에 의해 일어납니다. Baudoinia라는 이름은 앙토낭 보두앵 (Antonin Baudoin)이라는 19세기 프랑스 꼬냑 지방의 한 약사이자 꼬냑 농업산업화학연구소 소장의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무려 1872년에 꼬냑 증류소 주변 건물의 검은 얼룩에서 곰팡이를 처음 보고한 사람이지요. 하지만 그 보고 이후 균 이름을 Torula compniacensis (꼬냑에서 유래한 잡동사니 곰팡이) 라고 명명했었는데 최근에 학자들이 Baudoinia compniacensis 로 바꾼 것입니다. 여기에 관한 이야기는 <프루프 술의 과학> (아담 로저스 지금, 강석기 번역)에 잘 나와 있습니다.
이 보두애니아 균은 일반적인 배지에서는 잘 자라지 않는데, 배지에 위스키 한 잔을 넣어서 키웠더니 잘 자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위스키 곰팡이가 보두애니아 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렇게 위스키 곰팡이 때문에 생기는 검은 얼룩을 "warehouse staining (창고 얼룩?)" 또는 "Whisky Black" 이라고 부릅니다.
이 Baudoinia 속 곰팡이들은 전세계적으로 퍼져있는데 처음 보고된 지역에 따라 대표적인 5종이 알려져 있습니다. 카리브해 인근의 Baudoinia antilliensis, 스코틀랜드의 B. caledoniensis, 프랑스의 B. compniacensis, 한국의 B. orientalis, 북아메리카의 B. panamericana 종입니다. 흥미로운 건 한국에서 처음 발견된 B. orientalis 는 2005년 인천의 진로 공장 (Jinro Distillery, 소주회사가 아니라 주정만드는 회사일 듯?)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ㅎㅎ
그럼 왜 양조장 주변에서 이런 곰팡이가 자라느냐, 그건 바로 "천사의 몫 (Angels' share)" 때문입니다. 위스키에 대해 관심 있으신 분들은 누구나 아는 앤젤스 셰어는 위스키를 숙성시키는 과정에서 증발되어 날아가는 알코올을 뜻하는 단어죠. 위스키 증류액은 수년에서 수십년까지 숙성을 시키다 보니 휘발성이 높은 알코올이 날아가게 되는데 그걸 "천사의 몫"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심지어 켄 로치 감독님의 <앤젤스 셰어 : 천사를 위한 위스키>라는 영화도 있습니다.) 스카치 위스키의 경우 매년 날아가는 알코올의 양은 2% 정도인데 Baudoinia 속 곰팡이들은 바로 이렇게 증기로 날아가는 알코올(에탄올)을 먹고 자라는 독특한 곰팡이입니다.
그렇다면 Baudoinia 속 곰팡이들은 어떤 점이 달라서 매우 적은 양의 알코올 증기에서 잘 자라는 것일까요? 신기하게도 빵효모나 맥주 효모 (Saccharomyces cerevisiae)보다 Baudoinia 속 곰팡이들은 에탄올에 대한 내성이 훨씬 약한데 말이죠. Baudoinia 속 곰팡이들은 5% 정도의 에탄올도 견디지 못하거든요. 거기에는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첫번째는 낮은 농도의 알코올은 Baudoinia의 균사 생장과 발아(germination)를 유도합니다. 즉 Baudoinia 의 생육촉진제 역할을 한다는 것이죠. 게다가 열에 강한 특징(내열성)을 갖는데도 도움을 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건물 벽이나 지붕에서 자라기 위해서는 내열성이 필요하니까요. 두번째는 에탄올 자체를 탄소원으로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에탄올이 아세트알데히드로 바뀐 후에 다른 곰팡이들은 아세트알데히드를 TCA 회로를 통해 대사하지만 Baudoinia는 아세트알데히드를 초산(acetate)로 전환해서 glyoxylate 경로로 대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이런 위스키 곰팡이로 인한 소송이 미국 뿐만 아니고 스카치 위스키의 고장 스코틀랜드나 캐나다에서도 있다고 하는데, 다른 나라보다 4계철 기온차가 심해서 앤젤스 셰어가 훨씬 크다는 우리나라에선 어떤지 궁금하네요. 미생물 하시는 분들이 양조장 주변에 샘플링 하러 가보시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