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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주인장 이야기/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아버지 이야기

by 바이오매니아 2014. 1. 10.

블로그가 한동안 뜸했었죠? 실은 지난 크리스마스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날까지도 설마 하며 예상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한마디로 경황이 없는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담도암 진단받으시고 닷새 후에 수술하시고 수술 후 일주일 만에 소천하셨으니 참 급히도 가셨네요. 


아버지 돌아가신 날 병원 로비에 있었던 크리스마스 장식.


십여년 전에 "나의 어머니 이야기"라는 글을 쓴 적이 있지요. 거기에 묘사했던 제 아버지는 이랬습니다. "맘 좋은 아버지는 내가 국민학교 5학년 시절 당신 동생에게 전재산(장난 아니게 큰 돈이었다)을 날리셨다. 그리고 또 나중에 형님에게도 상당한 액수의 돈을 빌려드렸는데 큰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것도 없는 돈이 되어 버렸다." 한마디로 형제들 때문에 언제나 어렵게 사셨던 분이셨죠. 하지만 저는 아버지께서 형제들을 원망하시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냥 잘 거절하지 못하고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어려운 사람은 도와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계셨던 분이셨죠. 


오히려 아버지는 형제 우애를 유난히 강조하셨습니다. 저와 제 동생은 아버지께 평생 딱 한 번 매를 맞았는데 바로 둘이 싸웠던 때입니다. 집에서는 한없이 유하셔도 밖에 나가면 매우 무서운 분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아버지가 저희에게 그렇게 화를 내는 모습을 다시는 보지 못했습니다. 


어릴 적 큰아버지께서 가끔 아버지 고등학교 때 싸움했던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는데 그건 거의 활극 수준이었지요. 주워 들은 이야기라 실제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성인이 될 때까지도 아버지가 제 팔목을 잡고 가뿐하게 팔씨름을 해서 이기실 정도였으니까 힘은 정말 세셨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아버지는 좀 외로운 분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왕가의 자손답게 제 할머니가 여러분인데 때문에 어려서부터 당신 아버지의 사랑을 거의 받지 못했고, 그나마 한국전쟁 때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라 공부도 제대로 못했고, 일가 친척들에게 도움도 받지 못하고 형제들과도 저렇게 돈 때문에 얽힌 삶이었으니까요. 그래서일까 아니면 직업 때문일까, 아무튼 아버지는 술을 참 많이 드셨습니다. 건축 관련 일을 하셨기에 일감이 있는 봄부터 가을까지는 거의 맨정신의 아버지를 본 기억이 없을 정도였죠. 어릴 때부터 그걸 보고 자란 저는 술을 무척 싫어했고 지금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론 사람들 사이에 이야기를 나누며 친교의 의미로 가볍게 즐기는 외국의 술 문화를 보면서 조금 생각이 바뀌기는 했지요. 


아버지는 7년 전에 위암이 발견되어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다행히 위암 초기였기에 수술 후 건강을 회복하셨죠. 당시 저는 미국에 연구원으로 있었고 아내는 막 유학 생활을 시작한 때였는데 제가 귀국을 결심하게 된 이유 중 하나도 아버지 건강이었습니다. 위암 수술 이후에 아버지는 술 담배를 다 끊으셨다가 몇 년이 지난 후부터 막걸리를 다시 한두 잔 드시기 시작하셨지요. 사실 저는 그것이 좀 못마땅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게 막걸리를 좋아하셨던 아버지께 술 그만 드시라고 잔소리만 한 것 같아 죄송스럽네요. 아버지께서는 제게 뭘 해라, 하지 마라, 평생 한 번도 명령하지 않으셨는데 말이죠. 


그래도 한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지난 추석에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홍대 앞 <월향>을 다녀왔다는 것입니다. 그날 따라 왜였는지 모르겠지만, 아버지께서 막걸리를 좋아하시니 제가 유명한 곳에 한 번 모시고 가겠다고 해서 홍대 앞까지 찾아가게 되었죠. 월향의 현미막걸리, 송명섭 막걸리, 이화주 등을 드시면서 즐거워하셨던 모습을 뵈었던 것이 지금 돌이켜보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아버지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갔던 막걸리집 <월향>


요즘 모 웹사이트 대문에 "고아가 되기 전에는 어른이 된 것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써 있더군요. 그렇다면 이제 저는 반쯤 어른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온갖 집안 일과 번거로운 일이 생기면 아버지께 해달라고 부탁을 드렸었는데 이젠 제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커다란 빈자리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아픔과 고통이 없는 곳에서 영원한 평안을 누리며 사시는 것이 여기 계신 것보다 더 좋으셔서 일찍 가신 것이겠지요. 언젠가는 저희도 다 그 뒤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 때 뵐께요. 아버지. 감사했고 사랑합니다. 



댓글7

  • Favicon of http://brickice.blog.me BlogIcon 각얼음 2014.01.10 17:38

    어른 되기 참 힘들데이....그자...

    어여 어머니 모시고 오시게....
    답글

  • Favicon of http://blog.daum.net/ishade/ BlogIcon 섬그늘 2014.01.10 22:13

    천붕, 하늘이 무너진다지요.
    그 글 기억합니다. 잘 모셔드리고 오셨는지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제 아버지는 25년전 폐결핵, 향년 56세. 효도한 기억 없으니 조만간 글로라도 만들어야겠습니다.
    답글

  • 이여영 2014.01.11 14:51

    아 아버님께서 돌아가셨군요.... ㅠㅠ
    분명히 좋은 곳에서 지켜보고 계실거라 믿습니다.
    마지막 자리를 저희 매장에서 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영광입니다.
    새해에 좋은 일 많으시길 바랍니다.
    저도 그간 소원했던 저희 부모님 모시고 막걸리 한잔 해야겠습니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피섞은건 축복이라고.
    답글

    • 저희에게 소중한 추억 만들어주셔서 제가 감사드려요.
      서울 가면 다시 한 번 그 때의 그 자리에 찾아가고 싶네요.
      월향을 창업하실 때의 그 마음 변치않고 계속 발전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