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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주인장 이야기/Sports Science Society

이승엽 파동을 보고 - 시스템을 받치는 인프라의 중요성

바이오매니아 2003. 12. 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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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톤 vs 양키스 이야기에 이은 두 번째 야구 이야기입니다. 올 겨울 스토브 리그의 최대 관심사인 이승엽 선수가 일본 퍼시픽리그로 진출한다는군요. 메이저리그를 향해 달려가 봤지만 올 시즌 홈런 56개로 아시아 신기록(?)까지 세운 선수에 대한 대접이 영 시원찮나 봅니다. 본인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도 자존심 팍팍 상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게 자존심 상할 일일까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그 전에 한가지! 저는 이승엽 선수에 대한 평가나 예측을 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야구가 아무리 데이터의 게임이라고 해도 예측이라는 것은 점치는 것과 같아서 틀리기 일쑤입니다. 뒤돌아보면 누군가 맞춘 이가 있기는 해도 말입니다. 한 예로 이찌로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무렵 NHK에서 이찌로에 대한 특별 프로그램을 방송한 적이 있습니다. 그 프로그램의 마지막 순서는 이찌로가 MLB에 가서 어느 정도 실력발휘를 할 수 있을지 야구평론가, 현역 야구 감독(요꼬하마의 곤도 감독), 연예인들이 예측을 하는 것이었는데 야구 전문가들은 대부분 2할 8푼 내지는 잘해야 3할 정도 할 것이라고 한 반면 연예인 중 하나는 3할 3푼이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해 이찌로는 3할 5푼으로 MLB 사상 두 번째 신인왕과 시즌 MVP를 동시에 수상합니다. 어처구니없게 연예인의 예측이 실제 결과에 가장 근접했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승엽 선수에 대한 평가나 예측이 아닌 그 이면을 좀 보자는 겁니다.

왜 미국넘들이 우리 야구를 인정 안해 줄까요. 그건 인정할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재 MLB에서 일본 야구는 상당히 인정하는 분위기입니다. 일본의 야구 스타들이 MLB에 와서 예상을 뛰어넘는 호성적을 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한국의 야구 스타에 대한 평가는 박합니다. 성공사례가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재목을 데려가 키워서 쓰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한다고 봅니다. 야구에 있어선 대한민국 최강 학번이라는 막강 92학번 (임선동, 조성민, 손경수, 정민철, 박재홍, 차명주, 안희봉 등등) 대열에서 결코 선두라고는 할 수 없었던 박찬호의 성공을 필두로 김병현, 최희섭, 서재응, 봉중근을 비롯하여 모두 유망주들을 일찍 데려다가 키워내는 쪽이 나았습니다.

게다가 한국 야구 선수들, 고교 때부터 혹사당해서 선수생명이 짧습니다. (이건 일본도 만만치 않습니다. 마쯔자카는 200구를 우습게 던지더군요). 일전에 말했지만 로켓맨 로저 클레멘스는 선동렬보다 한 살 위입니다. 올해 MLB MVP를 3년 연속 수상한 배리 본즈는 장종훈보다 4살이 많습니다(약물 복용의 혐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니까 우리 프로리그에서 9년 뛰고 난 다음에 MLB를 가겠다고 하는 것은 사실 가지 말라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게다가 이승엽은 파워히터인데 마쯔이 히데끼의 전례(한 시즌 홈런 16개)로 보아 동양 선수의 파워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려웠을 겁니다.

이런 것은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 즉 일본 야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모습을 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도 야구에 관심 있는 분들은 대부분 아시는 것입니다만 말입니다.

한 때 온 나라를 농구의 열풍에 빠지게 만들었던 만화가 있습니다. 이노우에 다케히꼬의 <슬램덩크>입니다. 강백호, 서태웅, 채치수, 정대만, 송태섭, 윤대협… 이젠 전설이 되어버린 이 만화의 주인공들입니다. 이 미워할 수 없는 독특한 캐릭터들의 향연과 숨막히는 승부 이면에는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숨어있습니다.

<슬램덩크>는 1990년부터 1996년까지 연재된 만화입니다. 중간에 쉰 기간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무려 6년 동안 연재된 이 만화의 내용상의 기간은 겨우 3개월 남짓입니다. 강백호의 고등학교 입학, 도내 예선, 도내 결선, 전국대회 출전 후 3차전 탈락! 이것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채치수는 대학 간다고 농구를 그만둡니다.

다시 농구에서 야구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어렸을 적 독고탁이 나오는 이상무 화백의 만화에서 보았던 갑자원 대회라는 것이 있습니다. 일본발음으로 고시엔이라고 불리는 이 대회는 약 4,000개 이상의 팀으로부터 예선을 통해 32개 팀을 선발하여 벌이는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입니다. 흔히 꿈의 대회라고 불리는 이 대회에 한번이라도 참가하기 위해 4,000여개 팀의 선수들이 땀을 흘립니다(일본의 고교 야구대회는 봄여름의 두 대회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네들이 밥만 먹고 야구만 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전국의 거의 모든 학교에 다양한 종목의 운동부들이 있고, 누구나 하고 싶은 운동을 하고, 그 중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소위 그 종목의 명문고로 진학을 하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계속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다가 각자 적성과 형편에 맞게 사회에 나가는 방식입니다. 한 학년에 10명씩의 선수가 있다고만 해도 1년에 5만명 이상의 야구선수 출신들이 사회로 쏟아져 나옵니다. 그 중에서 대학이나 프로에 진학하는 것은 아주 소수에 지나지 않지만 그 나머지들이 계속 야구를 보고 즐기고 받쳐주는 버팀목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국에서 열린 2002 한일월드컵기간에도 야구가 축구보다 더 인기 있는 나라, 일본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일본 야구 인프라의 한 단면입니다.

인프라(하드웨어)가 있어야 시스템(소프트웨어)이 제대로 작동합니다. 인프라가 없이 시스템만을 가져오는 것은 마치 486컴에다가 윈도즈XP 프로페셔널을 돌리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날 뿐입니다. 여기저기서 이런 제도, 저런 제도, 좋다는 것은 무조건 수입해다가 시도해 보는데도 다 문제투성이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시스템이 돌아가는 환경을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강점은 시스템보다는 인프라에 있습니다. 알고 보면 일본의 시스템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랑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네들도 변화를 상당히 싫어합니다. 바로 이런, 변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변하지 못하는 모습 때문에 지금 일본이 장기불황에 허덕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모습을 아주 잘 풍자한 영화가 <춤추는 대수사선2>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일본의 시스템을 잘 풍자했지만 일본의 한계를 또한 잘 보여줍니다.

1999년 일본의 경제평론가라는 오마에 겐이치가 IMF 탈출을 위해 진력을 다하는 우리 정부에 직격탄을 날립니다. 제목은 <김대중 대통령이 이끄는 한국이 경제적으로 다시 설 수 없는 이유>. 요지는 이런 겁니다. 한국은 일본의 하청업체다, 따라서 한국은 일본의 시스템과 유사하다(재벌체제 이런 것), 미국과 일본의 경제 시스템은 다르다, 한국은 일본에 붙어라, 미국에 붙으면 황새 흉내낸 뱁새 마냥 가랑이 찢어지는 수가 있다. 이 센세이셔널한 글 하나로 우리나라 조폭언론들과 한나라당에서 얼마나 파상적인 공격을 퍼부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나올 뿐입니다.

이 오마에 겐이치라는 인간으로 말하자면 망언제조기 동경도지사 이시하로 신따로나 <전쟁론>의 고바야시 요시노리와 비슷한 부류의 인간입니다. 그가 쓴 글이 실린 잡지 <사피오>는 일본 (극)우파의 정론지, 말하자면 일종의 <월간조선>이죠. 아무튼 자기네 시스템을 따르라던 일본은 지금 10년이 넘는 장기 불황, 이 모양 이 꼴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일본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은 상대인데 그 이유는 과거 그네들의 금력으로 쌓아올린 인프라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차범근 감독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그가 독일에서 오자마자 한 일이 유소년 축구라는 것, 어린아이들이 축구 하는 구석에서 망치 들고 얼음을 깨고 있는 그 한 장의 사진을 보신 분이면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미국과 일본에 진출했던 또는 진출한 많은 야구 선수와 코치들을 봐 왔지만 이런 부분에 대한 심각한 자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아니 자각은 하겠죠.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고치기 위해 나서지 않는 듯합니다. 드러나는 일도 아니고 돈도 안되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으니까요. 하지만 누구도 그 일을 하지 않고 외면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희망도 없습니다.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더럽다고 욕하기는 쉬워도 그걸 청소해 나가기는 어렵습니다. 청소하고 새로운 구조,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기는 더욱 더 어렵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때로는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고 참여도 해야 합니다. 물론 비판도 해야 합니다. 하지만 비판이 참여는 아닙니다. 참여해서 공고한 기초를 놓아야 합니다. 차떼기 하는 도둑놈들, 국민들을 우습게 보는 저 정치모리배들, 땅따먹기 정치하는 인간들이 발붙이지 못할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스타일 좀 구겨지더라도 말입니다.

[추신] 이승엽 선수가 일본으로 진로를 돌렸다니 (일시적일지 몰라도) 일본에 가서 꼭 성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열심히 운동을 해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과 함께 좋은 안목도 길러오시기 바랍니다. 미래를 배워 오십시오. 그게 당신을 떠나보내는 국내 야구팬에 대한 당신의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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