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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머니 이야기

우리 가족이 그래도 이만큼 살아온 것은 순전히 어머니 덕이다. 맘 좋은 아버지는 내가 국민학교 5학년 시절 당신 동생에게 전재산(장난 아니게 큰 돈이었다)을 날리셨다. 그리고 또 나중에 형님에게도 상당한 액수의 돈을 빌려드렸는데 큰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것도 없는 돈이 되어 버렸다. 아무튼 이렇게 저렇게 날린 돈만 갖고 있었다면 좀 더 넉넉히 사실 수 있을 텐데... 그 와중에 우리 어머니는 악착같이 사는 길이 정말로 사는(생존하는)길이라는 것을 배우시고 이런 저런 일을 하시기 시작하셨다. 형제들은 의사에다 교수에다 다 잘나가는데 혼자만 약대에 진학했다가 등록도 포기하고, 6.25때 혼자되신 외할머니를 도와, 위로 형제 둘을 의대 공부시키고, 아래로 동생 둘을 대학 공부시킨 우리 어머니의 그..

봄날은 간다

by 동물원 사랑이라 말하며 모든 것을 이해하는 듯 뜻 모를 아름다운 이야기로 속삭이던 우리 황금빛 물결 속에 부드러운 미풍을 타고서 손에 잡힐 것만 같던 내일을 향해 항해했었지 눈부신 햇살 아래 이름 모를 풀잎들처럼 서로의 투명하던 눈길 속에 만족하던 우리 시간은 흘러가고 꿈은 소리 없이 깨어져 서로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멀어져 갔지 우 그리움으로 잊혀 지지 않던 모습 우 이제는 기억 속에 사라져 가고 사랑의 아픔도 시간 속에 잊혀져 긴 침묵으로 잠들어 가지 사랑이라 말하며 더욱 깊은 상처를 남기고 길 잃은 아이처럼 울먹이며 돌아서던 우리 차가운 눈길 속에 홀로서는 것을 배우며 마지막 안녕 이란 말도 없이 떠나갔었지 숨가쁜 생활 속에 태엽이 감긴 장난감처럼 무감한 발걸음에 만족하며 살아가던 우리 시간은 ..

짧은 로마 여행기 (2001-05-11) ; 카타콤베와 성베드로성당

이태리를 다녀 온 것도 벌써 4개월이 넘었다. 난생 처음 이태리를 가서 느낀 점을 간단하게 나마 정리해 보고 싶었다. 로마를 1박 2일 동안 둘러보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카타콤베라고 하는 초기 기독교 지하교회 무덤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이다. 카타콤베와 성베드로성당은 정확히 대칭되는 점이 있다. 전자가 공인 받기전 초기 기독교의 모습이라면, 후자는 기독교 공인 후 소위 기독교 시대의 절정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박해의 상징인 카타콤베는 지리적인 위치도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서 한 참을 걸어가야 했지만, 베드로성당은 로마 카톨릭의 본산인 바티칸의 한 가운데 위치한다. 먼저 아침에 카타콤베에 다녀왔다. 유일하게 로마를 돌아다니며 내게 도전을 준 곳이 바로 카타콤베였다..

나는 인터넷이 좋다.

“참, 너희들은 좋겠다.” 어제 어머니가 하신 말이다. 어머니께서 뭔가 알아보고 싶으실 때 내가 인터넷으로 간단하게 거기에 대한 정보를 찾아드리면 놀라실 때가 많다. 궁금해도 어디 신문이나 책을 뒤져봐도 알기 어려운 정보를 인터넷을 통하면 빠르고 쉽게 찾아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이런 이유 때문에 내가 인터넷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속도, 정보, 이런 것은 솔직히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지만 (실은 그렇지도 않다. 하나가 편해지고 다른 몇가지에서 속박이 생기는 것일 뿐…) “평안”하게 만들지 않는다. 때로는 모르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고 알아봐야 쓸데 없는 것도 많다. 최근 인터넷에 대한 비판을 최소한 세 명 이상에게서 들었다. 사회가 각박해지고 인터넷 때문에 사람들이 공격적이 되어가고, 뭐..

선동렬님, 님의 자리가 어색합니다.

선동렬님, 안녕하신지요. 오늘 아침 어느 신문보도를 보니 모 구단에서 지도자수업을 하신다고 하더군요. 이제 그라운드에서 다시 님을 볼 수 있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런데 어쩌면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올 해 야구 안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요. 지난 30일 신문을 보면서 저는 정말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님께 펜을 들었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님이 작년에 귀국하셨을 적에 제가 님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아마 통신상에 올린 글을 [팬들의 선물] 집행부 여러분들이 전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뭐, 그건 기억하지 못하셔도 상관 없습니다만... 지난 30일 한겨레신문의 스포츠면의 헤드라인은 바로 체육인 290명 “선수협 지지”라는 기사였습니다. 그 기사를 보..

근조(謹弔) ˝오늘의 책˝!

먼저 대학 신입생들에게 주었던 한겨레신문의 철지난 옛 기사 하나를 읽어 보자. 제목은 "[책과 사람] 서점 대표들의 한마디." 내용은 몇몇 대학교 앞의 소위 "사회과학 책방" 주인들이 대학 신입생들에게 하는 이야기이다. 그 중에서 서울대 앞 [그날이 오면]의 김동윤 대표의 이야기를 잠깐 인용하고 싶다. "[그날이 오면]에서 지난 시기 가장 많이 읽힌 책으로 단연 을 꼽을 수 있습니다. 선배들이 선물로 사주거나 새내기 배움터에서 단체선물로 구입한 적도 여러 번입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눈에 띄게 그런 현상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다른 책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죠. 80년대 밤새 눈물로 책장을 적시게 했던 이 책이 벌써 자신의 생명을 다한 걸까요?" 그렇다. 이 기사를 쓰고 있는 2000..

축구 '한일전'에 대한 단상

24일 오후11시에 있었던 2000 아시안컵 축구대회 일본과 이라크의 준준결승은 축구를 보는 재미를 한껏 느끼게 만들어준 한판이었다. 경기는 일본의 4-1 대승으로 끝났다. 결국 일본과 중국, 한국과 사우디의 4강 대결로 압축이 되었다. 중동팀의 부진과 극동팀의 약진이 두드러진 대회라고는 하지만 역시 이번 대회의 가장 큰 화제는 일본 축구의 약진일 것이다. 지난 달 시드니 올림픽 축구 8강전에서 일본은 미국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후반 종료 직전 어설픈 페널티킥으로 동점, 그리고 승부차기에서 일본 축구의 영웅 나카타 히데토시 (23, AS.로마)의 실축으로 4강행이 좌절 된 것이다. 그러나 그 대회를 통해 일본 축구는 그 가능성을 충분히 인정받았다. 단 한차례 월드컵 출전에 3전 전패, 승점 0, 득..

오래된 정원 (창비, 황석영)

올해 최고의 문제작 하면 바로 이 책일 것이다. . 책 선전을 겸해서 있었던 5.18 즈음의 조선일보와의 인터뷰, 그리고 동인문학상 후보작 선정 거부로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바로 이 책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동인문학상 종신 심사위원 중의 한 사람이자 까뮈의 대부(?) 김화영 선생은, 황석영 선생의 선정 거부 선언 후에도 줄기차게 이 책을 추천했다. 그러고 보면 그럴 것도 같다. 예전 김화영 선생의 글에서 드러나는 그 화려하면서도 실제적인 묘사를 닮아보였으니까 말이다. 황석영 선생의 책을 읽은 것이 얼마나 되는지... , 정도가 아닐까? 사실 황석영식 글쓰기가 어땠는지 잘 기억 나진 않지만, 이 책 은 상당히 독특한 느낌이다. 소위 '황구라' 답지 않다고 느낀 것은 왜일까. 조정래의 을 보면 지리산..

삼양동 정육점

이라는 영화의 제목을 보고 '삼양동(三陽洞)'에 대해 생각하다. 나는, 라는 저예산 영화의 희망이라고도 하고, 쓸데없이 벗는 준포르노라고도 하는 영화나 그 제작사에도 관심이 없고,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유명했고 내가 조금 큰 다음에는 북한에서 탈출을 했다든지 아니면 북한에서 사기치고 도망을 왔다든지 소문이 돌았던 신상옥 감독의 아들에게도 관심이 없으며, 이 영화가 개봉해서 흥행을 할지 아니면 적어도 정말 저예산 영화의 한줄기 햇빛이 되어줄 지에도 별로 관심이 없다. 아울러 이 영화의 스토리나 연극 배우출신의 무명연기자들에게도 미안하지만 큰 관심이 없다. 게다가 식탐이 있을 정도로 '고기'라면 사족을 못쓰는 나지만 결코 '정육점'에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나는 오직 "삼양동"이라는 제목을 보고 몰래 도둑..

홍세화의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1999. 11. 16. 홍세화의 를 읽다. 위 책은 '문화비평에세이'라고 되어있다. 대체적인 내용은 '프랑스와 한국의 문화 비교 에세이'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같다.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먼 타국의 망명지에서 말걸기로 시도한 이 책의 출판기념으로 20년 만에 고국을 찾았다가 돌아갈 때 그는 "마음이 살쪘더구만, 필요 이상으로…”라고 짧게 말했다고 한다. 어쩌면 그는, 그가 당시의 한국 사회랑 타협하지 않고 싸울 때의 그 청년, 그 젊은이들을 기대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20년이라는 시간과 공백을 그는 메꿀 수 없었던게 아닐까... 프랑스라는 나라. 단 한번도 그 나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자존심이 세다든지, 영화가 재미없다든지, 핵실험을 강행했다든지, 그 들 역시 제국주의 ..

러브 레터 (라브 레따)

(일본 발음으론 '라브 레타')를 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라는 소설이 있(단)다. "의식의 흐름" 어쩌고 하는, 그 책 설명 다음엔 대부분 제임스 죠이스의 "내 젊은 날의 초상"인가하는 소설이 나오는, 11 권인가 하는 긴 소설. 제임스 죠이스의 그 제목만 멋있는 소설을 읽고 내가 무엇을 읽었는지 모르겠다는 자괴감에 소설을 팽개친 기억이 난다. 어쨌든 를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뭐라 말하기 곤란하지만 일단 그 제목에서 풍기는 느낌은 있다. "시간"이란 뭔가의 문제는 몇년 전에 한 번 우리 곁을 휩쓸고간 유령이다. 라는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무크지인가에서 사람 헷갈리게 만들었던, 과학자의 시간, 역사학자의 시간, 현실의 시간, 타임 머신, 내가 사용하는 시간과 남이 사용하는 시간, 그리고 같이 보내는 ..

이웃의 토토로

를 수차례 보다. 이 아니메는 우리 부부의 일본어 공부용 교재이자 아침 저녁 밥상의 반찬이자, 왜냐하면 밥먹을 때 틀어놓으니까, 미야자끼 하야오 감독 작품 중에서 내가 제일 즐기는 작품이다. 재작년인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라는 이란 감독의 영화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평론가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용어가 라는 말이었다. 에서 보여준 그의 영화는 한마디로 "달랐다." 기존에 우리 입맛에 맞았던 영화, 우리가 보아온 영화하고는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 영화적 기법만이 아니라 내용 자체가 자본의 침입으로 삭막해져버린 도회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충격이었던 것 같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재미 (라는 용어를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있는 영화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참 동안 인구에 회자되었던 것은 그런 연유가 아닐까 싶다..

가족 시네마 (유미리 지음, 고려원)

(유미리 지음, 고려원)를 읽다. 먼저 딴소리 조금... 요즘 경기가 안좋아 지면서 출판사들도 예외 없이 흔들흔들 거리는 바람에 나같이 책을 사서보는 사람들은 적잖이 땡 잡았은게 사실이다. 그런데 요즘엔 듣도보도 못한 출판사뿐만 아니라 문학과 지성사나 창비같은 출판사의 책들도 할인판매를 해대고 있으니 이젠 좋아만 할 일은 아닌가 싶다. 어쨌든 고려원의 왠만한 책은 3천원이면 살 수 있는데, 그래도 아직 3천원짜리 리스트에 없는 것들도 있나 보다. 내가 열심히 찾는 몇몇 책은 아직도 정가대로 판다는 걸 보니... 어쩌면 올 가을부터 1년간 일본에서 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일본에 대해 아는 건 정말 없다. 일본어? 완전 깡통이다. 그저 내가 아는건 일본사람들은 영어를 못한다는 것(정말 일본 교수들은 유..

과학기술문화와 대중 매체

누가 뭐래도 현대는 과학기술의 시대다. 작가들은 컴퓨터를 이용해 글을 쓴다. 비디오를 이용한 미술 작품이 나오는가 하면 하나의 전자악기가 오케스트라를 능가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각 종 통신 수단 광고가 과잉현상을 보이고 있다. 운동과 스포츠는 과학만능주의를 선언한 지 오래다. 예술 문화 부분만 그러한가. 인류의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주던 인문학도 인문'과학'으로 과학에 스스로 흡수통합되어 버렸다. 사회과학, 교육과학, 생활과학 등등, 이제 '과학'은 모든 학문에 붙는 공통적인 접미사가 되어버린 셈이다. 게다가 국가에 경제위기가 닥쳐오니 모두가 과학기술에 희망을 걸고 있다. 어려운 경제위기를 풀기위해서는 외화의 획득이 필요하고 결국 외화획득에는 신기술에 의한 수출 증대가 가장 바람직하다는 결론이 내려졌..

지하철 1호선

록 뮤지컬 을 보다. 김민기를 아는가. 그는 내 청소년기의 우상이었으며 내 삶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다. 중학교 2학년 음악시간에 내 친구가 그의 노래 를 부르다 선생님께 한쪽다리를 들고 의자들고 앞으로 나란히하는 高難易度의 벌을 받은 후 부터 그는 나에게 알려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음악평론가인 김창남 선생이 엮은, 한울에서 나온 라는 책을 보고 그의 노래를 거의 다 마스터해 버렸던 시절도 있었다. 특히 미대생이었던 그가 해질녁 어촌의 고깃배를 보고 아름답다고 하자 그 옆에 있던 여공 하나가 "모두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라고 소아 붙이자 스스로 '아직 멀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일화는 아직도 내 가슴 속 깊이 남아있다. 그러나 김민기의 위대함은 오히려 다른 데 있다. 적어도 김민기는 70년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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