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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그 고통의 질문들

바이오매니아 2007. 12. 13. 10:59


대략 두 번 정도 있었던 것 같다. 미치도록 영화가 보고 싶을 때가 말이다. 그 첫 번째는 <웰컴 투 동막골>이었던 것 같고 두 번째는 <밀양>이었다. 올 여름에 인터뷰하러 한 열흘 귀국했을 때, 밀양을 놓친 것이 얼마나 아쉽던지.

영화가 공개되자 멜로영화인줄 알았는데 반기독교 영화라는 (헛)소문이 났고 영화를 본 양식있는 기독교인들은 오히려 기독교영화라고 입을 모으기도 했던 밀양.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아래의 씨네21 별점평을 보라.

남다은 판타지 없이도, 구원의 가능성 없이도,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것 ★★★★
황진미 멜로영화->유괴영화->기독교영화->메디컬영화. 전도연 연기 작렬! ★★★☆
유지나 외롭고 상처받은 영혼에게 보내는 선물 ★★★★
이동진 영화라는 매체가 도달할 수 있는 깊이 ★★★★★
박평식 “내 울부짖은들, 뉘라 천사의 열에서 들으리오” 밀양 엘레지! ★★★★
김혜리 죽고 싶은 명백한 이유, 살아야 하는 은밀한 이유 ★★★★
김지미 응달까지 파고드는 햇살 같은, 미약하지만 끈질긴 구원의 가능성 ★★★★☆
김봉석 인간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까? ★★★★

세상의 어떤 영화가 이렇게 평론가들에게 구원, 영혼, 상처, 천사 등 기독교의 핵심적 단어들을 늘어놓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게다가 주인공의 이름을 보자. “믿음과 사랑” 또는 “신의 사랑”의 이름을 갖고 있는 “신애 (信愛/神愛)”, “따르며 찬양하는” 종찬 (從讚)이 주인공인 영화. 실제로 출연하고 설교대본까지 참여한 목사님 등등, 여러가지로 범상치 않다. 기독교인을 그린 영화는 <투캅스>에서부터 <그놈 목소리>까지 여러 번 있었지만 정면으로 기독교인의 모습을 (기독교의 모습이 아니고), 그것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풍자적이지도 않게 보여준 영화는 <밀양>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밀양을 미치도록 보고 싶게 만들었던 것은 기독교를 다루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창동 vs 김혜리 인터뷰를 읽고 나서였다. 이창동이 정의한 밀양은 “고통에 대한 영화”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는 감독이, 80년 광주를 은유한 이청준의 소설 <벌레 이야기>를 각색한 영화라니.

그렇게 바라고 그리다가 본 밀양, 역시 밀양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창동 영화가 언제나 그렇듯 다시 보기 고통스럽지만 통과해야만 하는 영화, 인간 군상들의 삶을 통해 통찰을 주는 영화, 일상에서 흔하지는 않을지라도 영화적(드라마틱)이지도 않은 삶을 그린 영화…

우리는 흔히 하나님에 대한 불타는 또는 은은한 사랑을 그리는 영화를 기독교(적) 영화라고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밀양은 인간의 삶을 제대로 그려서 기독교 영화라고 부를 만 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우리가 물리적으로 영과 혼과 육을 분리해낼 수 없듯이, 우리의 신앙과 삶, 허위와 진실 이런 것은 우리 삶 속에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래서 영혼만 이야기하면 언제나 그 다음이 공허하다. 왜냐면 우리는 그 다음 날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삶으로 받쳐주지 못하는 신앙은 위선의 길로 인도하기 때문에.

의외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화 속의 약국 부부는 나쁜(사려깊지 못한? 부족한?) 사람, 신애는 불쌍한 사람, 그나마 종찬이 가장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의 표상, 이런 도식으로 영화를 읽는 것 같은데, 나는 솔직히 별로 공감이 안간다. 오히려 밀양이 빛나는 지점은 그런 도식을 벗어난 삶의 풍부함에 있다고 본다. 약국부부도 한국 영화가 그려온 기독교인의 전형성에 비추어 보면 너무나 있을 법한 우리 중의 한 사람일 뿐이다. 게다가 그 고통 속의 신애 조차도, 또 그 신애로 표상되는 신앙인들, 원수를 사랑하겠다고 다짐하는 신앙인들 조차도 (이창동 감독이 특별히 신앙인만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어떤 허위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창동의 위대함이 발휘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그는 전혀 신애를 동정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합리화하지도 않으면서 오히려 그녀를 더욱 깊숙히 깊숙히, 바닥으로 바닥으로 몰고간다. 심지어 정신병원에서 나온 바로 그 날, 다시 살인자의 딸을 만나야 하는 운명으로 말이다. 그리고 한 줄기 햇살을 툭 던지고 영화는 끝이다. 그야말로 비밀스런 햇살이다. 자, 이제 신애가 어떤 삶을 살 것인지는 각자 한 번 그려보라는 듯이 말이다.

프리티 우먼의 줄리아 로버츠는 과연 리무진타고 다시 찾아온 리처드 기어와 행복하게 살았을까? 우리는 이런 드라마의 다음을 그려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건 하나의 판타지로 끝이다. 하지만 밀양의 전도연은 과연 앞으로 어떤 삶을 살까? 그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녀는 다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 한 때 교회를 열심히 섬기다가 떠난 친구들은 과연 하나님을 버린 것일까, 아니면 그들은 진정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것일까? 한 때 기독교의 희망이었다가 지금은 절망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무엇에 홀린 것일까? 아니면 인생이 그냥 원래 그런 것일까? 혹시 내가 그런 사람일까? 밀양은 수 없는 질문들을 만들어낸다. 이런 근본적이고 끝없는 질문을 던지게 만들다니 밀양은 대단한 영화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오늘 CS 루이스의 <고통의 문제>를 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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