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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유토피아, 감상 후 단상

바이오매니아 2023. 8. 15.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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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콘크리트 유토피아> 봤습니다. 생각할 것이 참 많은 영화였습니다. 그 내용을 흘려보내기 아쉬워서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간단히 적어봅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포스터

 

 

1. 재난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왔고, 아파트 하나만 빼고 다 무너지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해서 의문을 품으면 재미있게 볼 수 없는 영화일지 모릅니다. 기본 설정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냐에 따라 영화가 많이 다르게 보일 것 같습니다.

 

--------- 여기부터 스포일러 주의 -------------

 

2. <기생충> 생각이 납니다. 빈부와 공간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것, 남의 집에 들어가는 사람, 비극적 결말 등등 이야기 뿐만 아니라 영화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는 것도 비슷합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이병헌이 아파트 노래를 부르기 전과 후로 크게 나뉜다고 생각하는데, 앞부분은 약간 코미디적이고 후반부에는 웃음기 싹 뺀 결말로 가는 것도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3. 이병헌 최고의 연기라는 말이 많은데, 당연히 이병헌 배우가 훌륭하게 연기를 잘했지만 최고인지는 살짝 의아합니다(저에게 최고는 <광해>).오히려 이병헌 캐릭터가 좀 일관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앞부분에서는 뭔가 모자라고 멍청한 것 같은데(모히또에서 몰디브 한 잔에 이은 수신제국 태평천하?), 그의 전사가 플래시백으로 나올 때 (진짜 김영탁을 죽일 때) 보면 그렇게 모자라고 멍청한 캐릭터는 아닌 것 같거든요. 물론 캐릭터는 배우의 문제는 아니지만요. 

 

4. 최근 한국영화에서 기독교가 가장 긍정적으로 나온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른 아파트 이웃을 숨겨주는 사람들 중에 기독교인들이 있었으니까요. 마치 피난처처럼 박서준-박보영 부부가 숨어서 밤을 보낸 곳도 교회나 성당인 것 같구요.  

 

5. 재난 영화라고 하기에도,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라고 하기에도, 사회 영화라고 하기에도 다 애매한데, 의외로 그 줄타기를 잘 했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최근 몇 년 부동산 광풍이 휘몰아친 직후에 개봉해서 더 그런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2023년 대한민국을 잘 보여준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6. 제 옆자리의 젊은 관객은 영화가 끝나고 나가면서 "세상이 너무 약육강식이야. 그래서 힘이 있어야 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저와 아내가 크게 놀랐습니다. 

 

7. 최고의 대사는 역시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었어요."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이런 이야기 하지 않더라도 전부 평범한 사람들, 심지어 피해자(김영탁의 사기피해자인 모범택시 기사 모세범=이병헌)도 악인이 되어 가죠.  심지어 이름이 모세범인 것은 세금 잘 내는 모범시민인 것 같은 이미지를 줍니다. 

 

8. 주민잔치에서 맛있게 먹은 고기는 분명 개고기였을텐데, 암시만 주고 넘긴 것도 영리했다고 봅니다.

 

9. 엄태화 감독의 동생 엄태구가 두 번 등장하는데, 처음엔 여럿이 같이 나오고, 나중엔 혼자 나오는데 뭔가 뼈다귀를 뜯고 있습니다. 이것도 사실은 인육일 것으로 추정되죠.

 

10. 영화에서 가장 불만스러운 부분은 소위 "톤 앤 매너"가 맞지 않는 것 같은 앞부분의 쓸데 없는 유머들(주민수칙, 배변처리 방법, 주민 춤잔치 등등)인데, 그건 이병헌이 아파트를 부르게 하기 위해서 넣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주민잔치 같은 건 뭔가 어울리질 않죠.

 

11. 하지만 이 영화 최고의 교훈은 이거죠. (학교에 있었다면 앞으로 10년은 강의실에서 써먹었을 겁니다.)

"다시는 가공식품을 무시하지 말라!!!"

12. 감독이(아니라 어쩌면 투자자나 제작자가) 울어라, 울어라 아주 아주 공들인 장면이 나오지만, 그 장면에서는 그냥 데면데면했고, 박보영에게 주먹밥 주는 엉뚱한 장면에서 눈물을 펑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13. 저는 개인주의자보다 공동체주의자인데, 한국 사회라는 공동체가 무너지고 각자도생의 사회가 되어가는 모습을 섬뜩하면서도 현실적으로 그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갭투기가  갭투자가 되고 부동산 투기가 부동산 투자가 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고통 주고 고통 받는 현실에 최근 반년간 너무 고통스러웠는데, 이런 영화가 나와줘서 고맙다는 생각까지 들었네요. (하지만 누군가는 똘똘한 한 채가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요즘엔 누가 이런 말을 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14. 엄태화 감독의 <잉투기>를 제대로 다시 봤는데, 10년 전에 많은 평론가에게 상찬 받았던 재기발랄함이 지금은 다 범죄로 보이는 세상이 되었더군요. 세상은 변합니다.

 

엄태화 감독의 <잉투기> 포스터

 

15. 저는 박보영 배우의 연기가 참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소리 지를 때, 그 깨끗하게 쩌렁쩌렁한 느낌! 

 

16. <즐거운 나의 집>과 <아파트>를 편곡한 음악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17. 엄태화 감독이 박찬욱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라서 GV도 같이 하셨더군요. 박찬욱 감독님이 극 중 인물을 실제 인물 두 사람과 비교하시고 한 명의 배우를 칭찬하십니다. 칭찬하는 배우는 주인영 배우님이신데 박지후 배우 타박하는 주민 아주머니 역을 맡으신 분입니다. <헤어질 결심>에선 간병인 알선 업체 실장님으로 나오셨는데 박찬욱 감독님이 좋아하는 배우시라고 하더군요. (실제 인물 두 사람은 누군지 안가르쳐 드립니다.ㅎㅎ)

 

 

18. 마지막에 자막으로 두 명의 고인을 언급하는데, 한 명은 나철 배우입니다. 극중 국회의원 보좌관 역으로 나왔습니다. 

 

19. 절반쯤 읽다가 만 <착취도시 서울>, <골목의 약탈자들> 같은 책을 마저 읽어야 겠습니다. 그리고 박해천 교수님이 지은 <콘크리트 유토피아> (자음과 모음)도 읽어보려고 합니다. (후기: 도서는 절판이고 중고책 가격이 후덜덜... 자음과 모음 출판사 뭐 하세요. 물 들어올 때 노 저으셔야죠.ㅎㅎ)

 

<콘크리트 유토피아> 중고책 가격

 

20. 그래도 영화가 비극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한다는 희망을 준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요즘 세상엔 희망이 필요하잖아요. 

 

21. 흥행 성공을 빕니다. 큰 이변 없으면 500만은 넘을 것 같은데...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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