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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의 산화취 또는 소독약 냄새에 대하여

바이오매니아 2014. 9. 1.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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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났더니 카톡이 하나 와 있더군요. 인터넷에 있는 글을 하나 읽어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글의 제목은 "식약처는 소독약 냄새의 원인을 모른다." ㅁㅈ라는 맥주 관련 사이트에 올라온 글인 듯합니다. 일전에 맥주에서 소독약 냄새가 난다는 이야기를 트위터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아마 거기에 대한 내용인가 싶었습니다. 처음엔 자고 일어났기에 그냥 대충 읽고 "내가 소독약 냄새를 어떻게 안다고 이걸 보라는 거냐?" 생각을 했었는데 그날 트위터에서도 자꾸 이 글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한 번 자세히 읽어보았습니다. 덕분에 한 달 넘게 잠자던 블로그에 뭐 하나 올릴 수 있게 되었네요.


"식약처는 소독약 냄새의 원인을 모른다."


지난 25일, 식약처에서는 오비맥주에서 나는 이취는 인체에 무해한 산화취라고 밝혔습니다. 산화취를 내는 물질인 T2N(trans-2-noneal)이 기준치인 100ppt를 초과한 134ppt가 검출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식약처가 밝힌 산화취는 소독약 냄새와는 전혀 다릅니다. 오히려 식약처는 소독약 냄새의 원인을 모르는 것으로 보입니다. (중략)


홈브루잉 서적으로 잘 알려진 John Palmer의 ‘How To Brew’에서는 산화취를 젖은 종이, 스페인의 주정강화 와인인 셰리와 유사한 맛을 낸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다른 자료에서도 역시 종이, 특히 마분지와 셰리 외에도 기저귀, 가죽, ‘썩은 맛’을 낸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식약처가 원인물질로 지목한 T2N역시 종이, 마분지 맛을 내는 물질입니다.(중략)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산화취가 많은 사람들이 느낀 소독약 냄새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번 소독약 냄새 논란이 나왔을 때 경험있는 홈브루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물질이 있습니다. 바로 페놀입니다. 맥주에서 페놀은 정향, 반창고, 플라스틱, 화학약품과 같은 맛을 냅니다. 이 특징들이 쉽게 연상이 안 가시는 분들은 치과에서 발라주는 소독약 냄새를 떠올리면 쉽습니다. 이런 페놀은 맥주 스타일에 따라서는 이취가 아니기도 합니다.


1. 윗 글을 처음 읽고 들었던 느낌


솔직히 가장 먼제 제 눈에 들어왔던 것은 "ppt" 였습니다. ppb도 아니고 ppt? 야, 이젠 ppt 수준의 검출도 가능하다는 것인가. 이런 놀라움 말이죠. ppt는 10조분의 1을 뜻하는데 보통 예전에 많이 사용했던 ppm (백만분의 1)의 100만분의 1을 뜻합니다. 1ppm은 1kg 속의 1mg, 1ppb는 1톤 속의 1mg, 1ppt는 1톤 속의 1마이크로그램 (또는 1천톤 속의 1mg)을 뜻하죠. 1밀리그램은 아마 설탕 알갱이 하나 내지는 몇 개 정도 되지 않을까 싶은 정도의 양입니다. 아무튼 분석 기술의 발달은 정말 놀랍네요.(물론 100ppt는 0.1ppb이므로 ppb 수준에서 조금 더 나은 수준이기도 합니다.)


2. 페놀??? 혹시 페놀류(?)


두 번째로 이 글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페놀'이 주는 공포감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전 대구의 맥주 공장에서 페놀 방류 사건이 있었으니까 더욱 그렇겠죠. 페놀이라면 뭐 대단한 독극물이죠. 저희 실험실에서도 매우 주의해서 써야 하는 물질입니다. 하지만 윗 글을 쓰신 분은 페놀(phenol)과 페놀류(phenolic compounds, phenols)를 구별해서 말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맥주에 페놀이 냄새날만큼 들었다면 정말 큰 문제지만 페놀류는 다양하게 들어있을 가능성이 높죠. 하지만 페놀이 들어 있는 것과 페놀류가 들어 있는 것은 그야말로 천양지차죠. 



페놀(좌상단)과 천연 페놀류 물질들(출처:chemistry.tutorvista.com)


윗 그림에서 보시듯이 원래 식물에는 소위 플라보노이드, 폴리페놀 등의 페놀류 물질이 들어 있고 발효 과정 중에 남아 있을 가능성도 높죠. 폴리페놀이 몸에 좋다고 하는 것은 다 아시죠? 물론 그렇다고 그게 맥주에 너무 많으면 안되겠지만요. 하지만 윗 글에서도 "이런 페놀은 맥주 스타일에 따라서는 이취가 아니기도 합니다. 파울라너, 바이엔슈테판과 같은 밀맥주에서는 특유의 바나나 향기와 함께 이 페놀의 정향 맛이 느껴지며, 슐렌케를라와 같이 훈연 몰트를 사용하는 스타일, 몇 벨지안 스타일에서도 페놀의 맛이 느껴집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페놀류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무튼 이건 간단히 성분검사해보면 나올 문제니까 정 궁금하면 분석을 해보면 되겠지요.(하지만 아마 돌아올 답은, '야, 페놀류가 얼마나 다양한데 그걸 다 검사하라는 거냐?'일 듯.ㅎㅎ)  


3. 페일라거에서는 이러한 페놀이 생겨서는 안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 몸에 유해할 수도 있다?


페놀이 아니라 페놀류라고 한다면 페일 라거라고 페놀류가 있으면 안된다는 것은 좀 어폐가 있습니다. 페놀류는 맥주 발효 원료 식물에 다 조금씩은 있을 것이고 특히 홉에는 상당량이 있을테니까요. 게다가 원칙적으로 발효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거나 분해하는 물질을 전부 모니터링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페일 라거의 경우 페놀류의 함량이 적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페놀류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할 수는 없겠죠. 게다가 그게 우리 몸에 유해하다고 보기도 어렵구요. 물론 페놀류가 아니라 페놀이라면 다른 이야기지만 말입니다. 


4. 소독약 냄새와 산화취


저 글을 쓰신 분은 산화취가 종이, 마분지, 기저귀, 가죽 썪은 맛을 내고 페놀은 반창고, 플라스틱, 화학약품과 같은 맛을 낸다고 했는데(정확하게 말하자면 맛이 아니라 향이겠죠) 이런 분류는 사실 큰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어떤 물질이든 농도에 따라서 느껴지는 향이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적당량 들어가면 향기나는 향료도 농축된 것의 향은 그야말로 토나오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산화취는 소독약 냄새와 거리가 멀다"는 것은 단정지어 말하기가 힘듭니다. 소비자가 느낀 향이라는 것은 뭔가 이상하다, 는 것이지 그게 꼭 소독약의 향은 아니겠지요. 게다가 소독약도 에탄올, 과산화수소, 요오드 등등 다 냄새가 다른데 말입니다. 그리고 본문에 나온 이취 감지하는 키트의 경우도 기껏해야 대표적인 물질 24가지 정도가 들어 있고 그 대부분도 잘 알려진 물질들인 듯합니다. 하지만 저런 훈련으로 소독약 냄새나 산화취 등을 정확하게 감별하기는 좀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솔직히 저는 인간의 감각을 잘 믿지 않습니다.) 다만 두가지를 다 맡아본 사람이 두가지 향을 구별할 수는 있겠지요. 혹시 윗글 쓰신 분이 두가지 냄새를 다 맡고 훈련하신 분이라면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결국 얼마나 이취 물질이 있는지는 실험적으로 밝혀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제대로 문제제기를 하려면 식약처에 그 외에 어떤 향기 물질들을 검사했고 각각의 검사 결과값이 얼마였는지를 물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5. 식약처에 하나만 더 물어본다면?


일단 이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산화취 원인물질이라는 T2N과 일광취 원인물질인 MBT를 찍어서(특정해서) 실험했는지, 아니면 향기 성분을 전체적으로 분석해서 그 중에 T2N이 좀 많았다는 것을 밝혀내고 이걸 원인 물질이라고 판단했는지 말입니다. 원래 향기 물질이라는 것은 극미량의 휘발성 물질이라 분석이 매우 까다롭습니다. 아니, ppt 수준도 한다면서 왜 그게 어렵냐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기존에 아는 물질의 양을 구하는 것은 ppt 수준으로 가능할 지 몰라도 뭐가 뭔지 모르면 그건 좀 다른 이야기가 되지요. 맥주의 향에 영향을 주는 물질이 500 종이 넘는다는데 그걸 다 따져 보기가 쉽지 않죠. 그래서 T2N만 찍어 놓고 봤다면 다른 물질(예를 들어 페놀류?)의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지만 여러 물질을 비교 분석해 보았더니 T2N의 함량이 높았다고 한다면 T2N이 원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원론적으로 이건 실험을 해보지 않고서는 판단하기가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결론

1. 페놀은 아닐 것 같다.

2. 향은 감각으로 맞추기 어렵다.

3. 원인 물질은 실험을 (잘) 해봐야 한다.

4. 맥주 생산과 유통에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하지만 소비자가 진정 원하는 것은 맛! ㅎㅎ) 


최근 국내 소비자들의 우리 맥주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매우 심합니다. 아마 이번 논란도 그러한 불신이 가져온 결과일수도 있지 않나 싶네요. 뭐 아무튼 산화취든 소독약 냄새든 소비자가 마시는 맥주에서 이취와 이미가 느껴져서는 안되는 것이겠죠. 이번 논란을 보고 예전 유산균 맥주 사건(?) 생각이 나던데(그 때도 해롭진 않다고 했었죠), 아무튼 맥주를 만들고 유통하시는 분들은 여기에 더욱 신경을 써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더운 여름엔 말입니다. (실은 맥주뿐만 아니라 모든 식품이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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