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는 넓고 얕은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좋게 얘기하면 지적 호기심이 많은 거고 나쁘게 얘기하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오지랍이 넓은 것이죠. 하지만 전혀 문외한인 분야가 있으니 그게 미술입니다. 고등학교 때도 미술은 제일 못하는 과목이었고 좋아하지도 않았습니다. 미술은 아름다움을 이야기해야 할텐데 저는 미와 추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극도로 싫어하기도 합니다. 미추의 기준에 대한 반감도 많습니다. 그런 면에선 일종의 유심론자인 셈이죠. 


2. 김수정 선생님의 <그림은 마음에 남아>를 읽었습니다. 전에 미술과 관련된 책을 읽어본 적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것을 보니 아마 미술 관련한 책은 처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책꽂이를 쓱 훑어봐도 보이질 않습니다. 이 책은 결어를 제외하고 40개의 꼭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략 그림이 60 작품 내외(한 꼭지에 한두 작품)가 소개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중에 아는 그림이라고는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과 <선한 사마리아 사람, 들라크루아 모작>, 그리고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정도뿐입니다. 아예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작가들이 수두룩합니다. 솔직히 페르메이르도 모르는 작가입니다. 그냥 저 그림을 본 기억이 있을 뿐. 


아마도 내 생애 첫번째 미술 관련 도서 <그림은 마음에 남아> (김수정, 아트북스)

3. 제가 신입생들 첫 수업시간에 꼭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 대학은 전공이나 취업 관련 지식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그 앎을 넓혀가는 시기라는 겁니다. 그런데 아는 바가 없으면 보이질 않습니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갔을 때도,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죠. 그냥 어디서 주워들은 이름의 작가 작품이면, 와 피카소네, 모네네, 드가네, 고흐네, 뭐 이러면서 그 작가의 이름표만 보지 그 작품을 감상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니 재미가 있을리 없었죠. 그러고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는 생각보다 크기가 작네, 뭐 이딴 소리나 하구요.    


생각보다 그림이 작아서 놀랐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4. 가장 훌륭한 선생은 교과서의 내용을 잘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 내용을 배우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그림은 마음에 남아>는 매우 훌륭한 책입니다. 적어도 저처럼 미술 문외한에게 그림을 보고 싶고, 알고 싶게 만들어 주었으니까요. 아내님이 매우감명 깊게 읽었다는 <그림에, 마음을 놓다>도 한 번 읽어볼 생각입니다. 원래 꽃과 그림이 눈에 들어오면 늙은 거다, 라는 편견도 좀 버리고 말입니다.^^


5. 그런데 이 책의 미술 작품 해설도 좋지만 나의 삶과 연결해서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솔직히 미술 작품과 내 삶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별로 해본 적이 없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그런면에서 김수정 선생님의 일상과 작품을 글로 풀어내시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읽다 보면 가끔 쓸쓸한 느낌이 들어서, 작가님께서 좀 더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6. 끝으로 <그림은 마음에 남아>를 읽고 엉뚱하게 내 집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혼하고 약수동 1년 4개월, 오사카대학 기숙사 2개월, 동경 1년 4개월, 삼양동 9개월, 대전 2년 3개월, 미국 아파트 2년 2개월, 미국 하우스 2년, 부산 와서 2년마다 전세 메뚜기로 11년 등등 남의 집에서 살아오면서 집에 뭔가를 걸어 놓을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남의 집에 못 밖는 것 싫어서 시계도 제대로 걸지 않고 살아 왔으니까요. 그런데 이 책의 마지막 문단에 이런 글이 있는 겁니다.


제 방에 어울리는 그림은 뭘까요?


그러고 보니 전공인 생명공학보다 디자인에 더 뛰어난 후배 따라 갔던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고흐의 그림 포스터를 샀는데, 그 액자가 TV 스탠드 옆 바닥에 1년 반 동안 비스듬히 벽에 기대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번 주말엔 그 그림부터 어딘가에 걸어 볼 생각입니다.  



Posted by 바이오매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