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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009년 10대 뉴스

바이오매니아 2010. 1. 1. 12:41

매년 연말이면 아내와 하는 것인데 올해는 결혼 후 12년만에 처음으로 아내 없이 새해를 맞게 되어서 혼자 2009년 10대 뉴스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아내가 공부했다.

 

남편 때문에 막 시작했던 박사과정을 휴학하고 들어왔던 아내가 다시 공부를 하기 위해 5월에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나중에 제가 좀 편하게 살아보려고 바람을 많이 불어넣었는데 아이들 놔두고 혼자 공부하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연말에 들어와 종합검진을 받았는데 위장병에 백혈구 수치 저하현상까지 나타났더군요. 이공계는 상대적으로 어학에 대한 부담이 적은데 인문사회계는 유학에 가장 걸림돌이 어학인가 봅니다. 내년에는 좀 더 유창한 방언의 은사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2. 캥거루 아빠에서 기러기 아빠로

 

2009년 절반은 아이들이 엄마 없이 아빠와 할머니, 할아버지랑 지내야 했습니다. 이렇게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아빠를 캥거루 아빠라고 하더군요. 이를 통해 아빠로서 엄마가 없는 빈자리를 메꾼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자괴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아이들의 정서에도 여러 가지 안 좋은 영향이 있지 않았나 싶구요. 달리 생각해보면 딸들하고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였는데 아빠가 바쁘다는 이유로 많이 놀아주고 이야기해주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합니다.

 

결국 아이들은 연말에 엄마를 따라 미국으로 갔습니다. 이제 당분간 혼자 지내는 기러기 아빠가 되어버렸는데, 그 동안 평소에 못한 연구나 실컷 해보려고 합니다.  

 

 

3. 매주 부담가는 숙제, 라디오 방송

 

올 한 해 매주 화요일(가을 개편 이후로는 수요일) 아침마다 부산 MBC 간판프로그램인 FM모닝쇼에 출연을 했습니다. 생활 속의 과학관련 이야기를 하다가 가을부터는 먹거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데 매주 막중한 부담입니다. 그래도 1년이 넘었다고 요령이 좀 생겨서 원고쓰는데 예전처럼 며칠씩 걸리지는 않지만 여전히 아이템 선정하는데 일주일 내내 짱구를 굴리고 있습니다. 재미와 교양, 이 두가지를 음악 프로그램에서 한다는 것, 여전히 어렵고 저와는 좀 안 어울리는 느낌입니다. 

 

 

4. 막걸리 전문가가 되다?

 

얼떨결에 우리 학교의 막걸리연구소 간사를 완전 타천으로 맡게 되어서 올 후반기는 완전히 막걸리만 생각하다가 보냈습니다. 전공이 미생물공학이지만 식품 발효랑은 좀 거리가 있는데, 게다가 술도 잘 안 마시는데 막걸리라니, 좀 어처구니가 없지만 요즘 트렌드가 그쪽이다 보니 제대로 코가 꿴 것이죠. 덕분에 뉴스, 신문, 방송, 심지어 LA Times에도 이름이 나갔는데 이건 사실 온전히 부담입니다. 주변에선 좀 더 홍보도 하고 광고도 하고 다니라는 조언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체질에 잘 안맞나 봅니다. 

 

 

5. 노대통령 서거

 

올 한 해 가장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사건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였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 말수가 확실히 줄었고 위선적인 한국 사회의 개혁은 과연 가능 할 수 있을지, 더 이상 정치에 희망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 생깁니다. 단순한 정치적 사건으로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큰 역사의 흐름이 역류하는 사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왜 그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을까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를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과제를 남긴 사건이지 않나 싶습니다.   

 

 

6. 레 미제라블과 가난한 사람들

 

올 한 해의 시작을 용산참사와 함께 해서 그런지 가난한 사람들(레 미제라블)에 대해서 깊게 생각했던 한 해였습니다. 희대의 해프닝으로 끝난 비정규직 대란 (사기) 사건과 같은 사회적인 뉴스들 뿐만 아니라 우리 학생들을 보면서 더욱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도 서울의 달동네에 살면서 잘산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별로 없었지만 어려운 우리 학생들을 보면서 부모의 학력, 재력이 어떻게 후대에 이어지는지를 계속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취업전선에 나서는 학생들에 대한 대우만 봐도 서울과 지방(그것도 제2의 도시라는 부산)의 격차를 절감하게 되었구요.

 

수전 보일의 “I dreamed a dream"의 덕에 한 해 동안 뮤지컬 <레 미제라블>을 계속 들었고 연말에 나온 루시드 폴의 <레 미제라블> 앨범은 구원과 같은 음악이었습니다. ”조금만 더 살고 싶어 올라갔던 길/이제 나의 이름은 사라지지만/난 어차피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으니“라는 가사는 소름이 끼칩니다.  

 

 

7. 쿠오 바디스, 한국 교회.

 

2009년은 한국 교회에 대해서 절망에 가까운 한 해였습니다. 하긴 되돌아보면 대학 다닐 때부터 한국 교회에 대해 희망을 가졌던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교회가 희망이 아니라 예수가 희망이다, 이렇게 배웠죠.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는 작은 희망이라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10억짜리 파이프 오르간을 들여놓겠다는 장로에게 자기네 교인들 데려가서 도끼로 찍어버리겠다고 협박했던 김진홍 목사님도 있었고, 다른 대형교회와는 다르다는 사랑의 교회, 남서울교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그냥 기성교회, 그냥 기성목회자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퇴보하는 느낌입니다. 그 정점은 사랑의 교회 건축 결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뭔가 더 이상 우리의 버팀막이 없다는 느낌, 뭔가 세상과는 다른 기독교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느낌이 외로움마저 줍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상황이 이러한데 그 뒤를 이어줄 차세대 주자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002년 대선 당시 한국 교회의 행태에 대해서 어느 목사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당장은 몰라도 10년 뒤가 문제라고 했습니다. 그 때 한 형제의 말처럼 한국 교회는 우리 사회에서 게토화 되어가고 있다고 봅니다. 어디로 가시나이까, 한국 교회여!  

 

 

8. 블로그와 소통

 

10년이 넘게 꾸려오던 홈페이지를 블로그로 바꾼 것이 2년 전인데 올 해 말수가 줄면서 블로그에 좀 더 집중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 사회적인 이야기는 확 줄였고 일면식 없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전공 분야에 관련된 내용만을 다루는 블로그라서 재미는 좀 없지만 의외로 공들여 작업한 내용들이 여러 가지 수업에 유익한 자료들로 채워지는 경험이었습니다. 오랜 동안 온라인에서는 사람사귀지 않는다는 주의였는데 몇몇 좋은 분들을 온라인으로나마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되었구요.

 

 

9. 학과장

 

개인적으로 2009년이 정신없었던 한 해로 기억될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 학과장직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듣던 대로 교수에게 수업이란 전체 업무의 30%도 채 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해 주었죠. 매주 몇차례씩 이어지는 회의와 각종 서류 작업, 입시, 학생지도, 취업에 이르기까지 슈퍼맨이 되지 않으면 안되는 자리였습니다. 게다가 학과를 위해서 언성을 높이기도 해야만 하는 고역이 많았죠. 1년만 더 잘 버티고 다음 분에게 넘길 날을 고대합니다. 

 

 

10. 슬럼프

 

위의 9가지 일들을 보면 올 한 해는 크게 기쁘거나 감사한 일이 별로 기억나지 않는 한 해였습니다. 한마디로 슬럼프였죠. QT도 얼마나 빼먹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슬럼프의 가장 큰 이유는 여러 가지 바쁜 일들 때문이 아니라, 교수라는 자리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 왜 저를 여기에 보내신 것인가요, 이 질문을 계속 할 수밖에 없었죠. 특히 학생들을 보면 참 답답하고 저 친구들이 과연 무슨 생각으로 사는 것인지, 그리고 그들에게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저에 대한 자괴감에 빠지곤 했습니다. 괴로워서 아내에게 학생들에 대해 심한 말까지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나서는 또 얼마나 후회가 되던지...

 

다행이 연말에 QT를 하면서 예수님과 그 제자에 대해 묵상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직전 제자들 모습을 보면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깊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오랜 만에 아침에 QT를 하면서 눈물 흘려가며 회개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슬럼프를 벗어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답답한 것은 많고 주변은 복잡합니다. 다만 바닥은 친 것이 아닌가, 이제 일어날 기운을 낼 차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2009년은 좀 더 밝게 살고 싶습니다. 혼자서 궁상떠는 것처럼 보기 싫은 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모두들 더 나은 새해, 감사가 충만한 한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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