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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매니아 in 언론/과학오디세이(경향신문)

[경향신문 과학오디세이] 라면의 시대

바이오매니아 2011. 12. 19.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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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요즘 약간 의도적인 칩거에 들어갔지만 고정 칼럼 마감은 피할 수가 없네요. 올해 마지막 경향신문 과학칼럼입니다. 봄부터 시작된 신라면 블랙, 꼬꼬면, 나가사끼 짬뽕 등 올해는 정말 라면과 관련된 뉴스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뭔가 시장에 새로운 트렌드가 움트는 것도 같지만 반대로 라면이 많이 팔리는 이유 중 하나는 나빠진 경제 상황과 사람들의 소비 심리 위축이 함께 맞물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장 싼 가격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라면, 솔직히 껌도 한 통에 천원 넘는데 천원도 안되는 라면값 100원 올리는 것이 뉴스가 되는 것은 이런 부분 때문이 아닌가 싶더군요. 

추운 겨울이 왔네요. 올 해 연말은 모두에게 좀 더 따뜻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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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오디세이] 라면의 시대

2011년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뉴스가 되었던 식품 중 하나는 라면이 아닐까 싶다. 값비싼 라면의 화려한 등장과 갑작스러운 퇴장, 라면 시장을 강타한 하얀 국물 라면의 폭발적 인기와 품귀 현상, 그리고 연말 물가 급등과 더불어 단행된 라면 가격 인상 등 끊이지 않고 라면 관련 뉴스들이 화제가 되었다. 라면은 언제부터 우리의 일상과 이렇게 밀접해진 것일까?

라면의 기원은 중국으로 보기도 하지만 누가 뭐래도 라면의 본고장은 일본이다. 일본 열도 북단의 삿포로 라면부터 남쪽 규슈 지방의 하카다 라면까지 지역마다 유명한 라면이 있고 각 동네의 유명한 라면집에는 줄을 길게 서야 한다. 하지만 일본 식당에서 파는 라면은 우리가 아는 라면과는 상당히 다르다. 

한국인이 말하는 라면은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라면인데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나이를 따져보면 그 유명한 ‘58년 개띠’와 동갑이다. 일본의 닛신식품 설립자인 대만 출신 귀화 일본인 안도 모모후쿠가 처음 만들었고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963년으로 채 50년이 되지 않았다.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대부분의 라면은 반죽한 면을 기름에 튀긴 소위 유탕면이다. 면을 기름에 튀기는 이유는 수분의 함량을 줄이는 건조의 효과가 있어서 유통기한이 길어지기 때문이었다. 또한 일본 식당의 생라면 국물처럼 기름이 동동 뜨게 만들어 영양 섭취가 부족하던 시절 탄수화물과 함께 지방을 섭취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래서 인스턴트 라면이 일본에 처음 등장했을 때의 가격은 우동값의 6배에 이르렀고 과거엔 ‘영양가가 뛰어난 국수’로까지 일컬어졌다. 

하지만 우리나라 식품 위해 사건 역사상 가장 어처구니없는 사건인 소위 ‘공업용 우지’ 파동으로 라면의 기름이 나쁘다는 소문이 확산되었고 영양 부족의 시대에서 영양 과다의 시대로 들어오면서 라면의 기름은 빼고 먹는 것이 더 좋다는 인식이 급속하게 퍼져 나갔다. 

라면업계에선 소비자들의 인식변화에 발맞추어 면을 기름에 튀기지 않고 건조한 “호화건면”을 시장에 내놓았다. 최근에는 유통기한은 짧은 대신 건조하지 않은 면으로 만든 “생라면”까지 출시되어 다양한 라면의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아직도 유탕면의 기세를 꺾기는 힘들어 보인다.

지나친 라면 애호는 튀김 기름보다는 과다한 나트륨을 섭취하는 게 더 문제다. 보통 라면 한 봉지 속의 나트륨 함량은 성인의 하루 권장량의 90%를 훌쩍 뛰어넘는다. 게다가 라면과 궁합이 잘 맞는다는 김치도 소금에 절인 식품이기 때문에 나트륨 함량이 높은 식품이다. 사람이건 음식이건 너무 궁합을 믿는 것은 좋지 않다. 

라면 스프의 양을 조절하면 나트륨 섭취를 조금 줄일 수 있지만 그러면 맛이 없을뿐더러 스프에만 나트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 라면의 면에도 스프 속 나트륨양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상당량의 나트륨이 들어 있다. 이렇게 라면의 면에 나트륨이 들어 있는 이유는 대부분의 밀가루 반죽에 소금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밀가루 속에는 글리아딘과 글루테닌이라는 단백질이 있는데 반죽을 하면 이 두 단백질이 서로 결합하여 글루텐을 형성하면서 면발이 쫄깃하게 변한다, 소금은 글루텐의 형성을 도와주기 때문에 거의 모든 밀가루 반죽에 사용되며, 따라서 라면만 나트륨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면류들도 다 나트륨 함량이 높다.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칼국수 속의 나트륨 함량이 가장 높고 우동도 라면과 나트륨 함량이 비슷하다. 

아무튼 몸에 좋건 나쁘건 이제 라면의 나라는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다. 통계에 따르면 라면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는 중국이지만 인구 1인당으로 계산하면 한국이 중국의 두 배 가까이 높아 세계 1위다. 우리 국민 1인당 1년에 소비하는 라면은 69봉지로 40봉지인 일본도 눌렀다. 계산을 해보면 전 국민이 5일에 한 번꼴로 라면을 먹는 셈이라고 한다. 

중년 이후 세대들은 1986년 아시안게임에서 임춘애 선수가 라면만 먹고 뛰어 금메달을 땄다는 괴담(?)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당시 육상부에 후원 들어온 라면을 간식으로 먹었다는 인터뷰가 와전된 것이긴 하지만 아무튼 라면은 최고의 구호품이며 세끼 식사로는 배가 차지 않는 성장기의 학생들에겐 최고의 간식이었다. 또한 적은 돈으로 한 끼를 때워야 하는 사람들에겐 여전히 가장 좋은 친구다. 

하지만 라면 소비가 늘고 수요를 못 따라간다는 이면에 혹시 경기 불황과 물가 상승으로 라면을 먹는 사람이 늘어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좋은 라면이 많이 나오고 라면이 맛있어서 많이 팔린다면 좋은 일이지만 행여 라면을 먹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많아졌다거나 사람들의 씀씀이가 위축되어 라면 판매량이 늘어났다면 슬픈 일이다. 추워지는 겨울에 다시 한번 주변을 돌아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한승|신라대 교수·바이오식품소재학 ysbioma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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