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경향신문 과학오디세이의 주제는 "이름"입니다. 사실 이름에 대해서는 몇가지 쓰려고 했던 주제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개념을 헷갈리게 만드는 잘못 붙여진 이름들이었고, 새로운 균주의 동정이나 유전자 이름을 붙이는 것처럼 과학자들이 작명가 노릇하는 것도 있었고, 요즘 정부조직개편 하면서 과학기술 관련 부서의 이름을 짓는 이야기도 있었죠. 하지만 도저히 다 칼럼 하나에 담을 수는 없고 글이 너무 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번엔 첫번째 주제로만 썼습니다.
칼럼 앞부분에 나오는 라디오의 이름 이야기는 신해철씨가 진행하는 프로였던 것 같습니다. 인터넷에서 봤던 기억을 되짚어 찾아보니 아래 동영상으로 남아 있네요. 사실 웃기지만 웃으면서 미안한 내용입니다. 이 외에 "버려진 아이"를 "발견된 아이"로 부르자는 것은 작년에 읽었던 책,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물론 저는 저 칼럼에 예를 든 "환경호르몬", "전자레인지", "슈퍼박테리아"라는 말을 쓰면 안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대중들이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주는 것도 과학자나 언론의 책임 중 하나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그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그 개념에 좀 더 명확해질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지 않기위해서 말이죠. 가끔 서로 다른 개념을 정의해놓고 열띤 논쟁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백날 해봐야 답이 안 나오죠.
최근에 트위터에서 '막걸리 근본주의'라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실 '막걸리'를 모두가 동의할 수 있도록 정의하기는 쉽지 않지요. 우리나라 각 가정마다 다르게 빚던 술이 막걸리였으니까요. 게다가 음식 문화는 시대가 지나면서 계속 바뀌었을 것이기에 이제 전통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전통에 부합되는지도 미지수이구요. 그래도 막걸리는 이런 술이라는 개념 정의는 필요하고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나 합의할 수 있는 공통 개념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경향신문 과학 오디세이] 이름과 개념, 그리고 오해 (전문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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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신문에 칼럼 쓴지 1년 반 만에 처음으로 "정정 요청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이메일을 보낸 곳은 "한국주방생활용품진흥협회", 이유는 제 글 속에 "플라스틱 용기 등에서 가끔 검출되는 비스페놀A와 같은 물질들 때문에 더욱 그렇다."라는 부분이 있는데 비스페놀A(BPA)가 함유된 플라스틱 소재는 폴리카보네이트(PC)소재에 국한된 것이고 현재 생산되고 있는 플라스틱 제품의 대부분은 인체에 무해한 폴리프로필렌(PP) 제품이므로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윗 부분의 내용을 "일부 PC(폴리카보네이트)소재 플라스틱 등에서 가끔 검출되는 비스페놀A와 같은 물질들 때문에 더욱 그렇다"로 바꿔달라고 하더군요. 사실 원고지 12장 안에 모든 내용을 쑤셔 넣다보면 내용을 축약하거나 간결하게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고 제 생각에 저 표현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관련 업계 쪽에서는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모양이네요. 그래도 좀 더 정확한 정보는 중요한 것이니까 온라인판이라도 수정해 달라고 부탁을 했으니 수정이 될 것 같습니다. 솔직히 신문에 글을 쓰는 것, 누가 읽나 싶을 때가 있었는데 읽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약간 위안이네요.^^
[과학 오디세이]이름과 개념, 그리고 오해
어느 입양아의 대모께서는 ‘버려진 아이’라는 말 대신 ‘발견된 아이’라는 말을 쓰자고 하셨다. 아이의 입장을 생각해 본다면 타당한 지적인 듯하다. ‘명품’을 ‘사치품’으로 바꾸자는 의견도 있다. 이름을 어떻게 붙이느냐에 따라 성격 규정이 달라진다.
그런데 환경 호르몬이라는 이름이 유명해지면서 사람들은 환경 호르몬이 꼭 산업 환경에서 검출되는 물질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고엽제 성분으로 가장 유명한 다이옥신이나 일부 PC(폴리카보네이트) 소재 플라스틱 등에서 가끔 검출되는 물질들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생물체 내에도 다양한 내분비계 교란 물질들이 존재하며 심지어 우리가 먹는 식품 중에도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콩 속의 이소플라본이다.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해서 식물성 에스트로겐(phytoestrogen)이라고도 불리는 이 물질들은 건강기능식품 원료로 인정까지 받은 물질이다. 하지만 여성 호르몬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영아들에게는 조심시키는 것이 좋다는 의견도 있다. 논란 중인 내용이지만 콩을 많이 섭취한 남성의 정자 수가 적다고 하는데 역시 이소플라본 때문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다.
좀 더 엉뚱한 이름의 한 예는 ‘전자레인지’다. 이것도 일본식 조어인데 전자제품 할 때의 ‘전자(電子)’와 범위라는 뜻의 ‘range’의 합성어이다.
이 황당한 이름은 초창기 일본의 전차에 달려있던 조리 기구를 일본 국철 직원이 대충 이름 붙인 것이 그 시초라고 한다.
전자레인지를 영어로는 마이크로웨이브 오븐(microwave oven)이라고 하는데 이는 “마이크로파로 가열하는 장치”라는 뜻이다. 마이크로파는 가시광선, 적외선, 원적외선보다 파장이 길기 때문에 특별히 몸에 해로울 이유는 없다. 대체로 파장은 짧을수록 몸에 해롭다.
마이크로파 가열법은 특정 주파수의 전자파를 쬐어 식품 속의 물 분자를 진동시켜서 가열하는 방법인데 엉뚱하게 이름이 ‘전자’레인지이다 보니 ‘전자’파가 많이 나오는 것으로 오인되어 여러 가지 헛소문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전자파의 전자(電磁)와 전자레인지의 전자(電子)는 전혀 다른 한자어이다. 전자레인지라는 이름은 전 세계에서 일본과 한국, 그리고 의외로 북한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만 특히 이런 오해 사기 쉬운 이름을 붙이는 것은 아니다. 서양에도 그런 사례는 있다. 대표적인 것인 ‘슈퍼박테리아’이다. 지구를 거꾸로 돌릴 수 있는 괴력의 슈퍼맨을 연상시키는 이 세균은 두 가지 이상의 항생제에 죽지 않는 ‘다제내성(multiple drug resistance) 세균’을 의미한다.
몇 년 전 일본의 병원에서 슈퍼박테리아 집단 감염 사태가 발생하자 일본 여행을 가도 되느냐는 문의가 많았던 적이 있는데 사실 슈퍼박테리아는 슈퍼맨보다 훨씬 힘이 약하다. 그리고 일상 환경보다는 주로 병원이나 집단 시설의 2차 감염이 문제다. 때문에 당시 정부에서는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해 슈퍼박테리아로 부르지 말고 다제내성균으로 불러달라고 언론에 당부하기까지 했다.
이 외에도 독감, 활성 산소 등 찾아보면 이런 예는 많다. 아무튼 이름을 잘 짓는 것은 중요하지만 언제나 어려운 것은 ‘잘’이라는 단어다. 이해하기 쉬우면서 오해의 소지가 없는 이름을 붙이기 어렵다면 그런 이름들을 볼 때 마다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과학에서는 정확한 개념 정의가 첫째다.
<이한승 | 신라대 바이오식품소재학과 교수 ysbiomat@gmail.com>
입력 : 2013-01-27 21:25:21ㅣ수정 : 2013-01-28 11:3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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