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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과학오디세이] 환갑맞은 DNA의 미래

바이오매니아 2013. 3. 22.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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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져보니 경향신문 과학오디세이 칼럼을 쓰기 시작한 것인 2011년 8월 25일부터네요. 19개월 동안 딱 스무편의 글을 썼습니다. (경향 과학 블로그 사이언스 톡톡에 처음 쓴 것은 2010년 11월이니 2년 반이 되어 가죠.) 스무번째 글의 주제는 그 유명한 "DNA"입니다. 원래 DNA 구조 발견 60주년이 4월 말이기 때문에 다음 달에 쓰려고 했다가 이번 글이 마지막 글이 된다는 것을 알고 나중에 쓰려고 모아두었던 주제들을 다 땡겨서 썼습니다. 원래는 DNA 구조 발견 60 주년에 관한 것이랑, <청진기가 사라진다>와 <생명의 언어>에서 다루는 유전학과 의학에 대한 것이랑, DNA를 정보처리 기술로 응용하는 것이랑, 다 따로 따로 쓰려고 했지만 다음이 없기 때문에 그냥 짧게 다 써버렸네요.^^ 경향신문 과학칼럼은 다음 달 부터 새로운 필진들을 모시고 시즌 2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이 책들과 관련해서 글을 한 번 쓰려고 했는데 아쉽네요.


예전에 정치 이야기 같은 잡글 쓸 때는 그냥 내 생각만 적으면 되었지만 과학 이야기는 자료를 찾거나 확인하는 시간이 참 오래 걸렸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바쁜 와중에 원고를 써야 할 때가 종종 있어서 힘들기도 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힘들었기 때문에 좋은 시간으로 기억될 듯합니다. 공부도 많이 되었구요.


솔직히 신문에 쓰는 글은 인터넷에 쓰는 글보다 반응도 별로 없고, 원고지 12장으로 압축해서 써야 했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 저것 따지지 않고 압축해서 쓰는 것이 재미있어 지더군요. 사실 이런 저런 반론 들어올 것까지 다 감안하며 글을 쓰다 보면 글이 너무 길어지고 중구난방이 되거든요. 


아무튼 나중에 쓰려고 했던 몇가지 주제들(예를 들면 음식 궁합은 없다, 같은 것들!)이 남아서 좀 아쉽지만 이제 마지막 숙제를 마쳤으니 앞으로 새로운 뭔가를 좀 구상해봐야겠습니다. 인터넷 공간을 좀 떠나 지내려던 계획을 실행에 옮겨보는 것도 좋을 듯하구요.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아무튼 마지막 칼럼, 관심 있으신 분들은 즐감하세요!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경향신문 과학 오디세이] 환갑을 맞은 DNA의 미래 (전문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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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오디세이]환갑 맞은 DNA의 미래

2013년은 DNA의 이중 나선 구조가 밝혀진 지 60주년이 되는 해다. 가끔 DNA 발견 60주년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지만 DNA의 첫 발견은 훨씬 이전인 1869년이다. 처음 발견되었을 당시 DNA는 유전 물질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 후 수십 년이 지나서야 DNA가 유전 물질일 가능성이 있다는 결과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이 독특한 물질이 대체 어떻게 생겨 먹었느냐를 알기 위해 여러 연구진이 달려들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53년 4월25일, 과학잡지 네이처에 한 페이지 분량의 짧은 논문이 게재된다. 저자는 단 두 사람,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 제목은 ‘핵산의 분자 구조: 데옥시리보핵산(DNA)의 한 구조’. 그리고 이 논문은 전설이 되었다.

놀라운 전설의 두 주인공들은 곧 유명해졌다. 논문 발표 당시 새파랗게 젊은 스물다섯 살짜리 박사였던 제임스 왓슨과 왓슨보다 열두 살이나 많았지만 박사학위조차 없었던 프랜시스 크릭은 9년 뒤인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멋진 전설에 성공 이야기만 있으면 재미가 없는 법. 이들의 논문은 당시 DNA 구조 연구 분야에서 가장 앞섰던 로살린드 프랭클린의 데이터를 몰래 참고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으며 왓슨은 자신의 여동생을 미인계의 도구로 이용하려고 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두 사람에 대한 일화는 많다. 고국인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 임용되지 못해서 말년에 미국에서 주로 연구를 했던 크릭은 생명체의 외계유입설을 주장했다가 번복하기도 했다. 크릭은 2004년 세상을 떠났지만, 분자생물학계의 성난 황소라고 불린 왓슨은 아직도 가끔 언론에 오르내린다. 물론 여든이 넘은 나이에 논문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왓슨은 하버드 종신 재직권을 놓쳤을 때 총장에게 욕을 하고, 닉슨 행정부의 암과의 전쟁선포에 대해 “미친 소리”라고 일갈했을 정도로 직설적인 인물이었다. 그가 주창했던 인간 게놈 프로젝트(HGP)의 연구비를 끌어오기 위해 정치가들을 만날 때는 “미친 듯 사랑스러운” 과학자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풀어헤치고 신발 끈을 풀 정도였다고 한다. 왓슨은 HGP의 총책임자가 된 지 2년 만에 인간 유전자의 특허 등록에 반대하다가 사임을 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흑인의 지능이 백인에 비해 떨어진다는 주장을 펴다가 본인이 설립하고 재직 중인 연구소에서 정직처분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일화와 상관없이 이들의 업적은 유전학의 숨통을 틔웠고 분자생물학을 탄생시켰다. 20세기 가장 중요한 과학 발견의 하나로 흔히 일컬어지고 있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막강하여 유전공학, 생명공학 시대를 개척하였고, DNA를 이용한 다양한 기술들이 끊임없이 개발되어 우리 삶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극미량의 혈흔으로 범죄자를 찾아내거나 친자 확인을 위한 유전자 검사 등은 범죄 수사 드라마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다.

에릭 토폴의 흥미로운 책 <청진기가 사라진다>에는 유전학과 전자 정보 기술이 융합하여 의학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예측하고 있다. 휴대용 진단 기기부터 원격 진료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의학이 도래하고 인류를 분자생물학적으로 디지털화하는 시대가 눈앞에 와 있다는 것이다. 이미 유전체 분석의 가격은 10년 전에 비해 만분의 일 이하로 하락했고 몇몇 선도적 회사들이 유전자 분석을 통한 질병 예측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중도 사퇴한 왓슨에 이어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수장 역할을 했던 프란시스 콜린스는 그의 책 <생명의 언어>에서 흥미로운 일화를 소개했다. 세 군데 유전자 분석 회사에 자신의 침과 구강상피세포를 보내서 질병의 위험도를 분석한 결과 상당부분 일치하는 결과를 얻었다는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유전자 분석 기술 발전의 속도는 분명 엄청나게 빨라지고 있다. 물론 이로 인한 윤리적 문제들이 심각하게 야기될 수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DNA는 생명공학이나 의약학 분야에만 한정되지 않고 그 사용 영역을 계속 확장하고 있다. 심지어 DNA를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대체할 저장 매체로 이용하려는 연구가 최근 큰 주목을 받았다. 이른바 DNA 저장장치 기술이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사람 세포의 핵 속에는 무려 2m에 이르는 DNA가 높은 밀도로 저장되어 있는데 이런 집적 기술을 이용하면 이론적으로 1g의 DNA에 46만장이 넘는 DVD를 저장할 수 있다고 한다. 

작년 8월 미국 하버드대학 조지 처치 교수팀은 자신의 책 한 권을 DNA에 담는 데 성공했고 올해 1월 영국의 연구진은 더 향상된 집적 기술을 과학저널 네이처에 보고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엄청난 비용이라는 벽을 넘어야 하지만 기술의 진보가 어디까지 가능할지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그 기술의 진보가 인류를 행복하게 해 줄지 가늠하기도 마찬가지로 쉽지 않다.

<이한승 | 신라대 바이오식품소재학과 교수>

입력 : 2013-03-24 21:04:11수정 : 2013-03-24 21: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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