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 <노아>를 뒤늦게 봤습니다. 올 봄 개봉 후 일부(?) 기독교인들 중심으로 반기독교 영화라는 소리를 들었던 바로 그 영화죠. 제겐 제작 당시부터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영화 평이 좀 별로여서 잘 뽑혀 나오지 않았나보다, 생각하고 뒤로 미루어 두었던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기대를 확 줄여서 그런지 생각보다 좋았습니다.(이하 약간 스포일러 주의하세요!) 


2. 분명 <노아>는 기독교인들에게 불편한 부분이 있는 영화입니다. 성경의 내용을 따르지 않고 판타지화 한 부분도 그렇고, 후반부로 갈수록 노아를 손녀를 죽이려는 반미치광이처럼 그린 부분도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비기독교인들에게는 더 불편한 영화일 수도 있습니다. 요즘같은 세대에 신(영화에선 '조물주'로 계속 이야기하지만)에 대한 이야기 그 자체만으로 짜증을 내는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그러니까 영화 <노아>는 기본적으로 양측에게 환영받지 못할 영화일 수 밖에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마 그래서 평도 어중간했던 듯합니다. 물론 평점 테러도 있었지만요.


3. 저는 <노아>가 <십계>나 <천지창조>와 같은 세련된 종교영화가 되리라고는 애당초부터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시대가 노아의 이야기에 호의적일 까닭이 없지만 그것보다 감독이 <더 레슬러>와 <블랙 스완>의 감독 대런 애로노프스키(Darren Aronofsky)였으니까요. 그의 전작들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는 극단에 몰린 사람의 이야기를 더 극단으로 몰고가는 힘이 있는 감독입니다. 영화만 그런게 아니라 심지어 영화 외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다 망가진 미키 루크를 <더 레슬러>에 출연시키고, 최고의 여배우에서 좀도둑으로 추락한 위노나 라이더를 <블랙 스완>에서 퇴물 댄서로 캐스팅한 것만 봐도 그렇죠.(하지만 캐스팅은 감독의 권한이 아니었을 수도..ㅎㅎ) 그러니까 아무리 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이 유대인이라고 해도 <노아>를 <십계>나 <천지창조>처럼 만들지 않을 것은 불 보듯 뻔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같은 것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제 예상은 반만 맞았습니다. <노아>는 신의 대리자의 심리극이었습니다.  


백조와 흑조의 섬뜩한 심리극 <블랙 스완>퇴물 레슬러의 인생을 그린 <더 레슬러>


4. 하지만 성경 속 이야기를 변형해서 판타지를 만들었기에 <노아>가 주는 메세지는 더 강해졌습니다. 사실 모든 영화 또는 예술은 그 시대와 상황에 던지는 메세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 <노아>는 2014년의 관객에게 무슨 메세지를 던진 것일까요? 그 첫번째 단서는 영화 초반  노아의 대사에서 나옵니다. 야생 동물을 잡아먹으려는 사람들과 노아가 싸우다가 마지막으로 노아에게 죽는 사람이 묻습니다. "네가 원하는 게 뭐냐?" 그 때 노아의 대답은 이겁니다. 


"정의(Justice)!"


<노아>는 정의에 대한 영화입니다. 노아의 홍수는 불의한 사람을 심판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다시 만들려는 하나님의 이야기이니까요. 하지만 그 유명한 책 제목처럼 정의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영화 <노아>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포스터


5. 노아는 정의로운 사람입니다. 세상의 죄악을 보며 고뇌할 줄 알고 하나님이 죄인들을 심판하시겠다는 대의에 순종합니다. 게다가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가족들도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자각할 정도로 죄에 대한 민감성도 있으며 그래서 가족의 희생까지 감내하려고 합니다. 어찌보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의롭고 흠 없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영화 속 노아는 그 '정의'에 빠져 점점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립니다. 거룩과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두가지 속성 가운데 하나를 무시하게 되는 것이죠. 바로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처럼 말입니다. 저는 애로노프스키 감독이 노아를 저런 식으로 그린 까닭은 이 세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투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옳다면 힘으로 제압하고 쳐부셔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이게 외부에서 보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실제로 이 영화 관련 사이트에 달린 그 사람들의 저주를 보면 더욱 그렇죠.ㅠㅠ)


6. 노아의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은 영화 속 적인 '두발가인'이라기 보다는 엠마 왓슨이 연기한 '일라'입니다. 어려서 죽을 고비에서 구원을 받고 은혜를 입은 일라는 사랑이 풍부한 사람입니다. 남편인 셈뿐만 아니라 노아의 온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심지어 함이 방주를 떠날 때 함을 쫓아가며 만류하는 사람도 바로 일라입니다. 아버지인 노아도 사랑하고 아이들도 사랑하는... 결국은 그 사랑이 딸들과 노아와 온 가족을 구원합니다. 영화의 마지막이 망가진 노아와 일라의 대화로 마무리되는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하지만 솔직히 자유의지를 설명하는 장면은 좀 사족처럼 느껴집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 일라


7. 흥미로운 것은 영화 속 노아도 그가 이야기하는 '조물주'의 뜻을 정확하게 분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방식으로 방주를 만들라는 확신을 가지데 되었지만 여전히 그는 혼돈 속에 있습니다. 사실 성경 속의 인물 대부분은 바로 이런 노아와 비슷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분별하고 순종하며 평생 살았던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누군가 정의를 독점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심지어 신의 뜻을 대행하는 자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이게 이 영화가 주는 메세지고 제가 이 영화를 의미있게 본 이유입니다. 


8. 올해 연말에는 모세와 파라오, 그리고 출애굽을 다룬 <엑소더스:신들과 왕들>(원제 Exodus: Gods and Kings)가 개봉을 한다고 합니다. 감독이 무려 리들리 스콧에다 <다크 나이트> 시리즈의 배트맨이 모세로 나온다는데 과연 어떤 이야기와 메세지를 던질지 벌써부터 궁금하네요. <글래디에이터>의 감독이니만큼 <노아>보다는 더 스펙터클한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같은 궁전에서 형제처럼 지냈던 모세와 람세스의 이야기... 기대해도 될까요? 게다가 제가 지난 5년 동안 계속 묵상하고 있는 출애굽기 이야긴데 말입니다.^^


영화 <엑소더스:신들과 왕들>(원제 Exodus Gods and Kings) 공식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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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이오매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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