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년 가서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파티에 갔습니다. 거기서 우연히 맥주 한 잔을 받아서 마시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포스팅은 거기서부터 시작입니다. 


평소에 술을 거의 마시지 않기 때문에 저는 맥주 맛을 알 까닭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날 마신 맥주는 정말, 한마디로 쓰고 고약한 맛이었습니다. '뭐야, 이거!!!'라는 소리가 터져 나올뻔 했죠. 그래서 그 맥주병을 유심히 봤더니 이렇게 써 있더군요. India Pale Ale. 그래서 이건 인도 맥주인가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파티 음식이 남았다고 해서 다들 남은 음식을 나누어 집어 가길래 저는 남은 맥주 한 병을 집으로 들고 왔습니다. 대체 이 맥주의 정체는 무엇인가, 알아보기 위해서였죠.


내 생애 첫 IPA (라벨에 영국에서 인도까지의 항로가 그려져 있습니다.ㅎㅎ)


그런데 알고 보니 IPA는 재미있는 구석이 많은 맥주였던 겁니다. 인도 맥주는 당연히 아니고 영국에서 처음 개발된 맥주이지만 지금은 영국보다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맥주라고 하더군요. 영국에서 인도까지 배를 타고 가던 시절엔 적도를 두 번이나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더워서 맥주가 자주 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발효할 때 홉(Hop)을 왕창 때려 넣은 맥주는 잘 상하지 않는 것을 알고 홉을 왕창 넣은 맥주를 만들었는데 그래서 이름이 India Pale Ale(IPA)가 되었다는 것이죠. 홉은 원래 방부 효과가 있고 쌉싸름한 맛과 다양한 풍미를 주는 원료인데 홉을 왕창 넣다보니 보통 맥주보다 쓴 맛이 강하게 나는 것이 IPA의 특징입니다. 하지만 쓴맛 뿐만 아니라 다양한 홉에서 다양한 향이 함께 나는데 처음엔 그걸 알 턱이 없었던 것이죠.


그 이후로 학회나 모임 등등에 가면 IPA를 유심히 보는 버릇이 생겼는데 정말 대부분의 파티에서는 밀러, 버드와이저, 쿠어스 같은 대중적 맥주보다 이 IPA가 많이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도대체 미국인들은 왜 이 쓴 IPA를 마시는지 궁금해서 한 모금씩 마셔보다가 결국엔 동네 마트에서 한 병씩 사가지고 와서 사진을 찍고 분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래가 그 결과입니다. ㅎㅎ 

 

1년 동안 동네 마트에서 구입한 IPA 22 종류 (붉은 색은 최고점 수준의 평가)


위의 표에서 오른쪽 4개의 칼럼은 맥주를 rating하는 대표적인 두 사이트, Ratebeer.comBeeradvocate.com에서 저 IPA 맥주들의 점수입니다. 100에 가까울 수록 좋은 것인데 참고로 국내 맥주인 카스 라이트의 Ratebeer overall은 4점, 맥스의 BA score는 61점입니다.ㅠㅠ 보통 IPA들은 알코올 도수가 일반 라거형 맥주보다 높습니다. 그래서 칼로리도 좀 더 나가구요. 


알코올 도수와 IBU 모두 최고이면서 평가도 높게 받는 도그피쉬의 90 minute IPA와 60 minute IPA


IBU는 International Bittering Unit의 약자인데 쉽게 말하자면 맥주의 쌉싸름한 맛의 척도라고 할 수 있겠지요. IBU 값은 홉을 많이 넣을 수록 높아집니다. 보통 버드와이저나 밀러 같은 맥주들의 IBU는 10에서 20사이인데 홉을 많이 넣어 발효하는 IPA는 보통 40이 넘고 90이 되는 것도 있습니다. (세계 최고 IBU 맥주는 2천이 넘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IPA들이 꼭 쓰기만 하냐 하면 그렇진 않습니다. 물론 처음에 마실 때 이게 무슨 사약이냐, 이럴 수 있지만 사실 다른 여러가지 향이 납니다. 특히 전체적으로 감귤향(시트러스향)강하게 나는 편입니다.


보스톤 지역의 크래프트 맥주에서 전국적 브랜드가 된 샘 아담스의 IPA 세트


미국내에서 판매되는 IPA는 워낙 많기 때문에 그걸 다 구입하기도 어렵고 마셔볼 수도 없지만 그래도 조지아 동네 마트에서 살 수 있는 것이라면 나름 전국적인 판매가 이루어지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중 대중적이면서도 맥주 평가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IPA는 아래의 두 종류, Sierra Nevada의 Torpedo와 Ballast Point의 Sculpin이 아닌가 싶습니다. 듣자하니 이 맥주들은 한국에서도 팔고 있다고 하더군요.


시에라 네바다의 톨피도와 밸라스트 포인트의 스컬핀


뭐 미국엔 동네마다 마이크로 양조장들이 많이 있지만 특별히 제가 사는 동네에는 Terappin 이라는 맥주 회사가 있는데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진 않지만 꽤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여기 공장 견학도 무료로 시켜준다는데 아직 가보질 못했네요.ㅠㅠ


우리 동네 맥주회사 테라핀의 Hopsecutioner


아무튼 맥주 맛도 모르지만 발효와 미생물 가르친다는 이유로 IPA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어 여기까지 왔네요. 솔직히 어느게 좋고 나쁘다는 말은 하지 못하겠습니다만 다 나름대로의 맛과 멋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위의 평가 사이트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알코올 도수가 높고 호피(hoppy)한 맛이 강할 수록 평가는 좋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국 맥주 맛이 없다고들 하는 것일까요?

 

나머지 IPA 맥주들 사진.


요즘엔 한국도 법이 바뀌어 크래프트 비어를 팔 수 있다고 하던데 맥주에서도 다양성을 맛볼 수 있는 날이 오려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우리 한국인들은 다양성을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식당에 가도 웬만하면 다 통일하자고 하잖아요.^^


(참고로 외국 전문가들이 뽑은 Top 10 IPA들죽기 전에 먹어봐야 하는 30종류의 IPA도 있으니까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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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이오매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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