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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렬님, 님의 자리가 어색합니다.

바이오매니아 2001. 1. 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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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렬님, 안녕하신지요. 오늘 아침 어느 신문보도를 보니 모 구단에서 지도자수업을 하신다고 하더군요. 이제 그라운드에서 다시 님을 볼 수 있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런데 어쩌면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올 해 야구 안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요.    


지난 30일 신문을 보면서 저는 정말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님께 펜을 들었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님이 작년에 귀국하셨을 적에 제가 님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아마 통신상에 올린 글을 [팬들의 선물] 집행부 여러분들이 전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뭐, 그건 기억하지 못하셔도 상관 없습니다만...  


지난 30일 한겨레신문의 스포츠면의 헤드라인은 바로 체육인 290명 “선수협 지지”라는 기사였습니다. 그 기사를 보면서 이제 드디어 선수, 팬, 사회단체에 이어 체육인들까지 나섰구나 하는 안도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현재의 야구판과 직접적인 이해관계는 없는(또는 적은), 분들의 이름이 대부분이더군요.


그 분들의 지지성명을 결코 폄하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야구판에 몸담은 많은 야구인들은 구단의 눈치만 보고 있다는 아쉬움이 생기더란 말입니다.  


그 곳에 님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같은 날 조선일보의 스포츠면(선수협 지지성명 기사는 물론 없었지만)의 한 귀퉁이에 실린 님의 기사([스포츠 단신]선동열 KBO위원 군부대 위문)를 보고는 꼭 한 말씀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추위에 고생하는 군 장병들을 위문하신 일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KBO 사무총장과 나란히 위문품을 놓고 악수하고 기념촬영을 하는 장면보다는, 같은 날 있었던 선수협 지지성명서에서 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것은 저만의 욕심일까요.    


선동렬님. 님은 정말 우리의 국보였습니다. '선동렬 방어율 학점'이라는 말 아시죠? 그 한 마디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국의 분단 사실도 모르는 어느 일본인이 님의 이름만은 알고 있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죠. 그만큼 님은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님이 한국 야구의 희생자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누구보다 님께서 구단과 KBO의 횡포를 잘 아시리라고 믿습니다. 님이 주니치에 갈 때, 얼마나 방해가 심했습니까. 아예 처음에는 님을 주저앉혔습니다. 구단과 KBO는 한국 야구 금방 망할 것처럼 굴었었죠. 두 번재 님이 일본진출을 선언했을 때, 팬들만은 아낌없이 님의 해외진출을 팍팍 밀어드렸답니다. 결국은 팬들에게 구단이 졌지요. 하지만 한국 야구 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구단은 임대라는 희한한 방식으로 돈 빼먹고 권리 행사하는 짓을 서슴지 않고 자행했고 결국은 님을 은퇴시키고 말았습니다.  


일본 최고의 소방수 다이마진 사사끼가 시애틀에 가서 작년에 신인상을 탔습니다. 만약 님께서 같은 나이였다면 사사끼 정도는 쉽게 제칠 수 있다고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니, 실례가 될 지 모르지만 박찬호 선수보다도 나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제 님의 후배들이 그 부당함을 조금이나마 고치고, 야구 한번 신바람나게 해보려고 일어섰습니다. 그들이 돈 많이 받으려고 그런다구요? 이미 그들은 충분히 받고 있고 선수협 안하고 못이기는 척 회유에 넘어가 주었다면 훨씬 더 많은 돈을 받을 선수들입니다. 그들의 배후에 불순세력이 있다구요? 아마 평균 93%의 지지를 보내는 국민들이 모두 불순세력인가 봅니다. 선수협을 인정하면 프로야구 망한다구요? 구단들은 셈을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적자가 날 수 밖에 없죠. 그리고 이건 거의 협박입니다. 너무 궁색한 변명들 아닙니까.  


님께서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제가 현역 때 선수협이 생겼으면 분명히 말하지만 저도 선수협에 가입했을 겁니다."라고 하셨더군요.그런데 그 날 님은 KBO 사무국장과 군부대 위문을 가셔야 했습니까? KBO 홍보대사라는 직함 때문입니까? 그 직함이 님의 30년 야구인생보다 중요합니까?


우리 팬들은 마운드에서 뿐만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지 당당한 님의 모습을 보기를 원합니다. 님은 바로 우리의 '국보'였기 때문입니다.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라는 말로 그 답을 피하시렵니까. 아니면 우리의 국보 선동렬마저도 KBO와 구단에게 찍히면 지도자 한 번 못해보고 야구계를 떠나야하기 때문입니까.  


지난 99년 주니치 드래곤스의 우승 장면을 기억하십니까. 저는 그 해 타국생활의 외로움을 우리 '주니치 3총사' 덕분에 쉽게 이겨냈습니다. 메이지진구 구장에서 당시 홈련왕 페타지니를 2루수 뜬공으로 잡고 환호하는 님의 모습은 비디오로 잘 간직되어 있고 또한 앞으로도 잘 간직할 생각입니다. 선동렬님, 그렇게 언제나 자랑스럽게 우리의 곁에 남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어색한 기념촬영 사진으로서가 아니라 당당한 자리에서 님을 다시 만나길 바랍니다. 그리고 훗날 녹색의 그라운드에서 만나면 더욱 좋겠습니다.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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