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명실공히 미국의 상징 도시입니다. 오죽하면 알카에다의 공격 목표이겠습니까. 경제와 금융의 도시이며 행정수도는 워싱턴 DC이지만 실질적인 미국의 수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맨하탄, 브로드웨이… 뭐 더 이상 설명은 무의미 할 정도로 잘 알려진 곳입니다.
보스톤. 메이플라워호와 함께 미국 역사가 시작한 뉴 잉글랜드(메인, 뉴햄프셔, 매사추세츠, 로드아일랜드, 버몬트, 코네티컷주)의 대표적 도시입니다. 미국의 역사가 시작했다는 자부심이 무척 강하고 MIT, 하버드, 예일(예일은 코네티컷이지만) 등 소위 미국에서 가장 들어가기 어렵다는 대학들이 모여있는 미국 교육의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뉴욕 양키스. 자타가 공인하는월드시리즈 우승 26회 경력의 미국 최고의 프로야구팀입니다. 어딜가나 팬이 많지만 안티 팬들도 많습니다. 일본의 요미우리처럼 돈으로 야구를 한다는 비난이 있지만 미국인을 양키라고 하듯이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팀입니다.
보스톤 레드삭스. 양키스와 같은 지구에 속에 언제나 2등의 수모를 당했던 비운의 팀입니다. 베이브 루스를 양키스에 팔아먹었다가 1918년을 마지막으로 한 번도 우승을 못한 ‘밤비노의 저주’가 유명합니다. 때문에 양키스에 대한 깊은 경쟁심을 갖고 있습니다.
로저 클레멘스. 1984년 보스톤 레드삭스에서 데뷔해서 보스톤에서 뛴 13년 동안 3회 사이영상을 수상한 에이스 중의 에이스였습니다. 토론토를 거쳐 99년 보스톤의 숙적 양키스에 입단하였고 97, 98년 토론토에서 두 번, 2001년에 양키스에서 다시 사이영상을 수상, 생애 6번 사이영상의 영예를 안은 일명 로켓맨입니다. 명예의 전당에 오를 때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오르겠다고 보스톤의 염장을 지른 당대 최고 투수입니다. 참고로 1962년 생으로 선동렬보다 1살 많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17승이나 올렸습니다(선동렬 선수의 실제나이는 호적과 다르다는 설이 있지만 어쨋든 부럽습니다.)
페드로 마르티네즈. 로켓맨의 뒤를 이어 보스톤의 최고 에이스로 떠오른 일명 외계인입니다. 박찬호보다 2년 먼저 LA 다저스에서 데뷔했고 몬트리올을 거쳐 보스톤 레드삭스에 입성했습니다. 1999년, 2000년 연속 2회 사이영상 수상자이고 보스톤 마운드의 정신적 지주입니다. 이상하게 올해는 페드로만 나오면 방망이가 침묵해서 14승 밖에 못했지만 방어율 1위로 자기 할 몫은 하고도 남았습니다. 일부 팬 및 언론과 사이가 엄청 나쁘고 인터뷰도 안하는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올 시즌을 끝으로 보스톤을 떠난다고 합니다.
자, 이정도 설명을 드렸으면 어제 MLB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쉽 7차전이 얼마나 야구팬들에게 흥미를 끌었던 경기인지 좀 이해가 되셨으리라 믿습니다. 이거 그다지 흔히 찾아오는 기회가 아닙니다. 우리야 김병현이 나오느니 안나오느니 이런게 관심이지만 얘네들 사실 그런 거 신경도 안쓰는 분위깁니다. 물론 좀 지나면 이야기가 나오겠지요. 결국 어제 경기를 진 것도 일정부분 보스톤 불펜의 탓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오랜 야구팬으로서 저는 어제 경기에서 너무나 인상 깊었던 것을 쓰지 않을 수 없어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제가 실업야구 한국화장품의 김재박이 7관왕 하던 시절부터 한국, 일본, 미국 야구를 모두 골고루 꽤 많이 본 사람이지만 어제와 같은 경험을 한 것은 처음이 아닌가 합니다.
첫번째는 로저 클레멘스가 4회 아웃카운트도 하나 못잡고 마운드를 내려오는 순간이었습니다. 4회초에 4대 0이면, 그것도 상대투수는 당대 최고라는 페드로, 누구라도 이 순간에는 ‘졌다!’는 느낌을 갖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뉴욕의 팬들 전원이 기립해서 4점이나 주고 노아웃에 1, 3루에 주자를 둔 채 마운드를 내려가는 마흔 한 살의 노장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아, 그 광경을 제 글발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모골이 송연하다는 표현을 그 때 쓰는 것이던가요.
김병현이 가운데 손가락 쳐들었던 상황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물론 야유를 하건 응원을 하건 그건 모두 팬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전 관중이 하나되어, 객관적으로는 승리가 가물가물하던 그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않고, 마운드를 내려오는 쓸쓸한 노장 선수에게 기립박수를 보내는 그 양키스 팬들에게 존경심을 표하고 싶습니다. 비록 제가 양키스를 좋아하지도 응원하지도 않았지만 말입니다.
아무래도 보스톤의 팬들하고 비교를 안할 수가 없습니다. 일부이지만 극성스런 팬들, 걸핏하면 죽인다 살린다 하고, 언론은 그걸 확대 재생산하고 불을 지피는 환경 속에서 누가 신나서 플레이를 할 수 있겠습니까. 꼭 우리나라 정치상황하고 비슷하지요. 어제 끝내기 홈런으로 양키스의 승리가 결정되고 온 선수들과 관중이 환호하는 장면을, 동료 선수들이 다 떠난 덕아웃에 혼자 앉아 뚫어지게 쳐다보는 페드로의 얼굴에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이 겹쳐 보였던 이유가 그것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나라 찌라시들 보스톤 언론을 맨날 깝니다. 널뛰기하는 보스톤 언론, 김병현 죽이기, 어쩌고 하지만 사실 그게 자기 동료기자들 모습인지는 전혀 모르는 것 같습니다.
두번째 인상 깊었던 얘기는 바로 그 언론이야기입니다. 어제 피말리는 연장 11회말, 대주자로 나왔다가 타석에 들어선 애론 분이 끝내기 홈런을 칩니다. 기뻐하는 선수들, 환호하는 관중, 마운드에 철퍼덕 쓰러져 우는 마리아노 리베라… 저는 그 장면을 너무 생생하게 듣고 보았습니다. 어떻게 보았냐구요? 올해 포스트시즌을 단독 중계하는 폭스 TV의 아나운서와 해설자가 무려 5분 정도 아무말도 하지 않고 화면만 내보냈기 때문입니다. 방송에서 3초 이상 말이 안나가면 방송사고라지요? 그런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무려 5분 가까이 그들은 아무말도 않고 화면과 현장의 소리만 내보내더군요.
왜 그들이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너무나 생생한 현장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관중들과 선수들이 만들어내는 환호성과 울음소리는 그 어떤 멘트보다 더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것이 진짜 현장의 목소리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비록 제가 응원하던 팀이 너무 안타깝게 지고 말았지만 그 속에서도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제 컴퓨터에는 2002년 월드컵 8강, 4강 결정 당시의 장면을 담은 동영상 화일이 있는데, 방송 3사 모두 아나운서, 해설자가 서로 한마디라도 더하려고 자기들끼리 떠들던 모습과 사못 대조적입니다. 아, 그 송재익, 신문선 콤비의 시끄러움! 뭔가 비장한 문구를 잔뜩 써와서 읽어 내려가며 차범근에게 조용히 하라고 손짓하던 임주환 캐스터의 모습이라니!
언론이란 뭘까요. 미디어라는 것이 매개체 아닌가요? 그런데 우린 언론은 자꾸 자기 목소리를 여론에 실어 보내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국민들은 오히려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는데 말입니다.
물론 절대적인 중립은 없고 언론이 자기 목소리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언론을 언론이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부단한 자기 점검이 있고 자기 혁신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언론이 정치적 입장을 가질 수 있지만 그 방식은 우리처럼 정치판의 주인공으로 뛰어드는 식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언제쯤 우리가 그런 언론 환경 속에 살 날이 올까요.
보스톤이 리드하고 있어도 제가 불안했던 이유는 밤비노의 저주 때문이 아니라, 경기 내내 화면에 비춰주는, 두 손을 꼭 잡고 기도하는 팬, 모자를 눌러쓰고 차마 경기장을 응시하지 못하는 팬, 간절함이 얼굴에 가득한 그러면서도 야구를 즐기는 팬들의 모습을 보고서 입니다. 그들의 염원이 하늘을 움직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승리는 그들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승리의 기쁨을 누릴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감히 여기에 노무현을 사랑하는, 또는 지지하는 사람들(노사모이건 아니건)의 모습을 비춰봅니다. 우리도 저런 환경, 저런 여건 속에서 싸운다면 넉넉히 이기고도 남을 텐데, 그러면 좀 더 나은 세상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을 텐데, 하는 자괴감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편들어 달라는 것이 아니라 공정하게만 해준다면, 솔직하게 현장의 소리만 들려준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경기가 접전일 수록 승리의 기쁨도 큰 법! 그럴 수록 다시 힘내서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했다는 것으로 졸필의 끝을 맺겠습니다.
평안을 기원하며
보스톤. 메이플라워호와 함께 미국 역사가 시작한 뉴 잉글랜드(메인, 뉴햄프셔, 매사추세츠, 로드아일랜드, 버몬트, 코네티컷주)의 대표적 도시입니다. 미국의 역사가 시작했다는 자부심이 무척 강하고 MIT, 하버드, 예일(예일은 코네티컷이지만) 등 소위 미국에서 가장 들어가기 어렵다는 대학들이 모여있는 미국 교육의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뉴욕 양키스. 자타가 공인하는월드시리즈 우승 26회 경력의 미국 최고의 프로야구팀입니다. 어딜가나 팬이 많지만 안티 팬들도 많습니다. 일본의 요미우리처럼 돈으로 야구를 한다는 비난이 있지만 미국인을 양키라고 하듯이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팀입니다.
보스톤 레드삭스. 양키스와 같은 지구에 속에 언제나 2등의 수모를 당했던 비운의 팀입니다. 베이브 루스를 양키스에 팔아먹었다가 1918년을 마지막으로 한 번도 우승을 못한 ‘밤비노의 저주’가 유명합니다. 때문에 양키스에 대한 깊은 경쟁심을 갖고 있습니다.
로저 클레멘스. 1984년 보스톤 레드삭스에서 데뷔해서 보스톤에서 뛴 13년 동안 3회 사이영상을 수상한 에이스 중의 에이스였습니다. 토론토를 거쳐 99년 보스톤의 숙적 양키스에 입단하였고 97, 98년 토론토에서 두 번, 2001년에 양키스에서 다시 사이영상을 수상, 생애 6번 사이영상의 영예를 안은 일명 로켓맨입니다. 명예의 전당에 오를 때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오르겠다고 보스톤의 염장을 지른 당대 최고 투수입니다. 참고로 1962년 생으로 선동렬보다 1살 많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17승이나 올렸습니다(선동렬 선수의 실제나이는 호적과 다르다는 설이 있지만 어쨋든 부럽습니다.)
페드로 마르티네즈. 로켓맨의 뒤를 이어 보스톤의 최고 에이스로 떠오른 일명 외계인입니다. 박찬호보다 2년 먼저 LA 다저스에서 데뷔했고 몬트리올을 거쳐 보스톤 레드삭스에 입성했습니다. 1999년, 2000년 연속 2회 사이영상 수상자이고 보스톤 마운드의 정신적 지주입니다. 이상하게 올해는 페드로만 나오면 방망이가 침묵해서 14승 밖에 못했지만 방어율 1위로 자기 할 몫은 하고도 남았습니다. 일부 팬 및 언론과 사이가 엄청 나쁘고 인터뷰도 안하는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올 시즌을 끝으로 보스톤을 떠난다고 합니다.
자, 이정도 설명을 드렸으면 어제 MLB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쉽 7차전이 얼마나 야구팬들에게 흥미를 끌었던 경기인지 좀 이해가 되셨으리라 믿습니다. 이거 그다지 흔히 찾아오는 기회가 아닙니다. 우리야 김병현이 나오느니 안나오느니 이런게 관심이지만 얘네들 사실 그런 거 신경도 안쓰는 분위깁니다. 물론 좀 지나면 이야기가 나오겠지요. 결국 어제 경기를 진 것도 일정부분 보스톤 불펜의 탓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오랜 야구팬으로서 저는 어제 경기에서 너무나 인상 깊었던 것을 쓰지 않을 수 없어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제가 실업야구 한국화장품의 김재박이 7관왕 하던 시절부터 한국, 일본, 미국 야구를 모두 골고루 꽤 많이 본 사람이지만 어제와 같은 경험을 한 것은 처음이 아닌가 합니다.
첫번째는 로저 클레멘스가 4회 아웃카운트도 하나 못잡고 마운드를 내려오는 순간이었습니다. 4회초에 4대 0이면, 그것도 상대투수는 당대 최고라는 페드로, 누구라도 이 순간에는 ‘졌다!’는 느낌을 갖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뉴욕의 팬들 전원이 기립해서 4점이나 주고 노아웃에 1, 3루에 주자를 둔 채 마운드를 내려가는 마흔 한 살의 노장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아, 그 광경을 제 글발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모골이 송연하다는 표현을 그 때 쓰는 것이던가요.
김병현이 가운데 손가락 쳐들었던 상황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물론 야유를 하건 응원을 하건 그건 모두 팬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전 관중이 하나되어, 객관적으로는 승리가 가물가물하던 그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않고, 마운드를 내려오는 쓸쓸한 노장 선수에게 기립박수를 보내는 그 양키스 팬들에게 존경심을 표하고 싶습니다. 비록 제가 양키스를 좋아하지도 응원하지도 않았지만 말입니다.
아무래도 보스톤의 팬들하고 비교를 안할 수가 없습니다. 일부이지만 극성스런 팬들, 걸핏하면 죽인다 살린다 하고, 언론은 그걸 확대 재생산하고 불을 지피는 환경 속에서 누가 신나서 플레이를 할 수 있겠습니까. 꼭 우리나라 정치상황하고 비슷하지요. 어제 끝내기 홈런으로 양키스의 승리가 결정되고 온 선수들과 관중이 환호하는 장면을, 동료 선수들이 다 떠난 덕아웃에 혼자 앉아 뚫어지게 쳐다보는 페드로의 얼굴에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이 겹쳐 보였던 이유가 그것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나라 찌라시들 보스톤 언론을 맨날 깝니다. 널뛰기하는 보스톤 언론, 김병현 죽이기, 어쩌고 하지만 사실 그게 자기 동료기자들 모습인지는 전혀 모르는 것 같습니다.
두번째 인상 깊었던 얘기는 바로 그 언론이야기입니다. 어제 피말리는 연장 11회말, 대주자로 나왔다가 타석에 들어선 애론 분이 끝내기 홈런을 칩니다. 기뻐하는 선수들, 환호하는 관중, 마운드에 철퍼덕 쓰러져 우는 마리아노 리베라… 저는 그 장면을 너무 생생하게 듣고 보았습니다. 어떻게 보았냐구요? 올해 포스트시즌을 단독 중계하는 폭스 TV의 아나운서와 해설자가 무려 5분 정도 아무말도 하지 않고 화면만 내보냈기 때문입니다. 방송에서 3초 이상 말이 안나가면 방송사고라지요? 그런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무려 5분 가까이 그들은 아무말도 않고 화면과 현장의 소리만 내보내더군요.
왜 그들이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너무나 생생한 현장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관중들과 선수들이 만들어내는 환호성과 울음소리는 그 어떤 멘트보다 더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것이 진짜 현장의 목소리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비록 제가 응원하던 팀이 너무 안타깝게 지고 말았지만 그 속에서도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제 컴퓨터에는 2002년 월드컵 8강, 4강 결정 당시의 장면을 담은 동영상 화일이 있는데, 방송 3사 모두 아나운서, 해설자가 서로 한마디라도 더하려고 자기들끼리 떠들던 모습과 사못 대조적입니다. 아, 그 송재익, 신문선 콤비의 시끄러움! 뭔가 비장한 문구를 잔뜩 써와서 읽어 내려가며 차범근에게 조용히 하라고 손짓하던 임주환 캐스터의 모습이라니!
언론이란 뭘까요. 미디어라는 것이 매개체 아닌가요? 그런데 우린 언론은 자꾸 자기 목소리를 여론에 실어 보내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국민들은 오히려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는데 말입니다.
물론 절대적인 중립은 없고 언론이 자기 목소리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언론을 언론이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부단한 자기 점검이 있고 자기 혁신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언론이 정치적 입장을 가질 수 있지만 그 방식은 우리처럼 정치판의 주인공으로 뛰어드는 식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언제쯤 우리가 그런 언론 환경 속에 살 날이 올까요.
보스톤이 리드하고 있어도 제가 불안했던 이유는 밤비노의 저주 때문이 아니라, 경기 내내 화면에 비춰주는, 두 손을 꼭 잡고 기도하는 팬, 모자를 눌러쓰고 차마 경기장을 응시하지 못하는 팬, 간절함이 얼굴에 가득한 그러면서도 야구를 즐기는 팬들의 모습을 보고서 입니다. 그들의 염원이 하늘을 움직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승리는 그들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승리의 기쁨을 누릴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감히 여기에 노무현을 사랑하는, 또는 지지하는 사람들(노사모이건 아니건)의 모습을 비춰봅니다. 우리도 저런 환경, 저런 여건 속에서 싸운다면 넉넉히 이기고도 남을 텐데, 그러면 좀 더 나은 세상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을 텐데, 하는 자괴감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편들어 달라는 것이 아니라 공정하게만 해준다면, 솔직하게 현장의 소리만 들려준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경기가 접전일 수록 승리의 기쁨도 큰 법! 그럴 수록 다시 힘내서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했다는 것으로 졸필의 끝을 맺겠습니다.
평안을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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