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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봉준호, 2017), 그리고 자본주의와 생명공학

바이오매니아 2017. 7. 7.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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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를 봤습니다. 개봉 훨씬 전부터 기대가 컸었기에 아예 SNS에 '옥자'라는 단어를 뮤트해 놓았더랬습니다. 그래서 스포일러는 피할 수 있었지만, 대신 관련 뉴스를 볼 기회도 잃어버렸고 소위 3개 멀티플렉스가 옥자의 개봉을 거부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좀 불편하기는 했지만 작은 개봉관(부평 대한극장)을 찾아서 옥자를 봤습니다. 옛날 극장 냄새를 맡으며 잠깐 추억에 빠져들었던 것은 <옥자>가 준 또 다른 기쁨이었습니다.


이하 스포일러가 있으니 영화가 궁금한 분들은 피하시기 바랍니다.


<옥자>가 칸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을 때 육식과 채식에 대한 기사가 났었습니다. 알고보니 이 영화가 생명공학과 공장식 축산을 다루고 있더군요. 그러고보면 이상하게도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제 수업의 단골 소재였습니다. 제가 처음 봉준호 감독의 매력에 푹 빠졌던 데뷔작 <프란다스의 개>는 개고기, <살인의 추억>은 유전자 검사와 PCR, <괴물>은 돌연변이, <설국열차>는 식용 곤충의 예를 들 때 매우 유용했었죠. 그런데 이번 영화는 아예 대놓고 GM 동물과 육식, 공장식 축산을 다룬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조건 개봉하자마자 보기로 마음을 먹었죠. 하지만 영화를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보지 않기 때문에 몇 관 되지 않는 극장을 수소문해서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일단, 영화는 기대보다는 평이했습니다. 솔직히 기대가 컸기 때문에 살짝 실망스럽기도 했습니다. 뭐 그렇다고 영화가 나쁘다는 건 결코 아닙니다. 한국과 미국을 잇는 이야기가 약간 이질적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악역을 맡은 생명공학 기업 미란도는 전형적이면서 평면적이었고 주인공들도 크게 매력적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도 좀 덜컹거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옥자를 데려와서 바로 그렇게 죽일 거면 뭐하러 뉴욕까지 데려와서 교미까지 시켰나 싶기도 했구요. 이게 교미인지 아니면 그냥 성적 학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어쩌면 너무 주제가 직선적이라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래도 봉준호 감독의 영화답습니다. 특히 <괴물>의 향기가 살짝 났습니다. 착한 괴물(?)이라고나 할까. 사람을 납치하는 괴물에서 사람이 납치하는 괴물, 괴물을 죽이기 위한 사투에서 괴물을 살리기 위한 사투, 화학물질 투기로 원치 않게 만들어진 괴물과 인간이 의도를 갖고 만든 괴몰, 뭐 이런 식으로 보면 대조적으로 비슷해보이는 면이 꽤 있는 듯합니다. 미자가 옥자의 입에서 나오는 장면도 괴물을 연상시켰구요. 


하지만 가장 봉준호스럽다고 느낀 부분은 역시 맨 마지막의 거래 장면이었습니다. 금돼지와 옥자를 맞바꾼 장면이요. 사실 그 금돼지로 옥자를 데려온 것이니까 금돼지를 받고 옥자를 놔 주는 것은 미란도 입장에선 손해를 보는 것이겠지만, 오히려 너무나 자본가답게 까짓거 하면서 시혜를 베푸는 장면은 어쩌면 정말 무서운 자본주의 비판이지 않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옥자를 데려가면서 미자가 본 수 많은 '옥자'들의 울부짖음과 그러면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새끼 돼지 하나 몰래 빼오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무력감. 그게 가장 섬뜩하면서도 현실적인 느낌을 주더군요. 


영화를 보고 채식을 결심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 같다고들 했는데, 저는 별로 그런 생각이 들진 않았습니다. 그게 꼭 제가 고기를 좋아해서인 것 같지는 않고 뭔가 그냥 답이 없는 답답함이 남았기 때문인 듯합니다. 공장식 축산과 공장식 도축 과정이 문제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렇다고 육식을 막을 방법도 없고, 육식을 하지 말자고 하기도 그렇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채식을 한다고 세상이 바뀔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죠. 영화도 결국은 옥자 하나와 새끼 돼지 한마리만 살렸지 여전히 미란도는 성업하고 있을 것 같구요. 마치 가난으로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 뜻 맞는 사람들끼리 사유재산을 포기하고 삽시다, 뭐 이런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물론 마지막 쿠키 영상을 통해 ALF의 새 얼굴이 등장하고 세력을 키워 언젠가는 이 부조리를 끝낼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방식의 운동이 과연 성공적으로 끝날 것으로는 생각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옥자>는 생각하고 이야기할 것이 많은 영화이고, 그래서 다시 보고 싶습니다. 그러면 아마 몰랐던 새로운 면이 보일지도 모르죠. 사실 내용이 잘 이해 안되는 부분이 많았거든요. 특히 미란도 패밀리 스토리는 정확하게 정리가 잘 안되더군요. 다시 보면 가족 이야기로 보일 수도, 아니면 정말 순수한 러브 스토리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래는 그냥 스쳐지나가듯 생각났던 것들입니다.   


* 정말 슈퍼돼지를 만들려면 10년이나 키워야 하는 건 아니겠죠. 영화적인 설정이겠지만 돼지는 6개월 정도 키우고 도살되는데 10년이나 키우면 손해죠.


* ALF가 전통을 중시하는 것은 흥미로운 설정이라는 생각입니다. 별 생각없이 보면 진보적인 단체인 듯 하지만 어쩌면 저런 단체가 정말 (기술적인 부분에선) 보수적인 단체일 수도 있으니까요.  


* 안서현 양의 역할은 어디까지가 대역일지 궁금했습니다. 뛰고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장면이 매우 많아서요. 


* 옥자의 배 위에서 미자가 자는 장면은 분명히 토토로의 오마주겠죠?


* 저도 제일 신났던 장면은 역시 명동지하상가(?)를 옥자가 다 때려부수면서 달리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옥자>와 생명공학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일단 봉감독은 생명공학에 대해 꽤 부정적인 생각이 있는 듯합니다. GM 연어에 대해 언급한 인터뷰도 있던데 GMO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진보적인 감독이 보수적인 입장을 갖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물론 GMO를 찬성하는 것이 꼭 진보는 아니겠습니다만 저는 이것이야말로 일종의 클리쉐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생명공학이 두 얼굴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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