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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哭聲) - 인식의 한계와 믿음 또는 의심

바이오매니아 2016. 5. 24.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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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곡성(哭聲)을 봤습니다. 영화를 보고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게 만드는 영화가 정말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0가지 관점으로 200가지 평이 나올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개봉하고 스토리를 피하기 위해서 SNS마저 조심해서 했는데 아무 정보 없이 보길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내용을 알고 한 번 더 보면 아마 숨은 퍼즐 찾기하는 재미가 있겠지요. 칸 영화제 경쟁부문 갔으면 상받을 확률 99% 였을 듯한데, 아쉽네요. 


(이하는 스포일러 만땅일테니 영화를 보신 분이나 안보실 분만 읽어주세요.^^)


"곡성"은 다양한 측면에서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처음에 이 영화를 볼 때는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미스테리 형사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무당이 나오고 굿을 하면서 엑소시스트 같은 호러물인가 싶었고, 좀 더 지나자 죽었다 살아난 좀비들이 등장하길래 어라, 좀비영화네? 생각했는데 영화가 마칠 때는 아, 이건 종교 영화였구나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홍진 감독의 인터뷰를 봐도 종교 영화에 큰 의미를 둔 것 같습니다. 물론 앞서 말한대로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장르대로 보겠지요. 사실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어떤 장르의 영화로 보느냐에 따라서도 많이 엇갈릴 듯합니다.


물론 종교 영화라는 것은 특정 종교의 프로파간다를 위해 만들어졌거나 특정 종교 교리에 대한 문제 제기 목적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뜻이 아닙니다. 제가 곡성이 종교 영화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믿음(신앙)의 본질을 탐구하는 영화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본질이 "교리에 대한 믿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믿음은 "불확실한 것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 영화는, 비록 엄청 다양한 비유와 상징이 어지러히 널려 있지만, 본질적으로 바로 그 불확실에 대한 믿음과 의심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메인 카피도 그렇죠. "절대 현혹되지 마라." 

"곡성(哭聲)" - 절대 현혹되지 마라

믿음 또는 의심 1. 과학적 해석 또는 그 이상의 어떤 것


한 시골 동네(곡성)에 끔찍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뭔가 피부병(성병?) 증상을 보이던 사람들이 미쳐버려서 사람을 죽입니다. 그 이유는 독버섯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귀신이나 영적인 세계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사건은 이것 뿐입니다. 피부병에 걸려서 버섯을 먹은 것인지 그 반대인지는 모르지만 해법은 피부병을 고치거나 버섯을 못먹게 하는 것일 것입니다. 실제로 환각 증상을 일으키는 버섯들이 있으니 뭐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겠죠. 영화 속의 의사, 한의사, 심지어 신부님도 이 정도의 (지극히 타당한) 해법을 제시합니다. 객관적으로 문제를 볼 수 있는 타자들, 또는 영성 또는 종교성을 잃어가는 현대인에게 이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이런 단순한 의미일 것입니다. 이런 해석만 믿는다면 마지막에 효진이가 온 가족을 죽이는 것은 일광이 굿을 해서나, 악마인 외지인이 저주를 해서, 또는 천사와 같은 무명의 힘이 딸려서가 아니라 제대로 의학적 치료를 받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주인공의 딸이 그 병(?)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원래 경찰인 종구는 사건을 가장 객관적으로 봐야 하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사건의 초기엔 그냥 남일처럼 여깁니다. 그래서 새벽에 전화가 와도 아침밥까지 다 먹고 가는 것이었겠죠. 하지만 자기 딸이 그 병에 걸렸다면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긴 힘들어집니다. 이제 주인공은 그 아픔의 이유와 의미를 찾게 됩니다. 그리고 과학이나 의학으로 설명되는 표면적인 의미 이상의 것을 갈구하게 되죠. 도대체 왜 나와 우리 가족에게 이런 고통이 주어지는 것인지 알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에게 쉽게 답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사건'은 명확해도 대부분의 '의미'는 불확실한 것이 이 세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게 되죠. 


믿음 또는 의심 2. 외지인과 소문


의심스런 사람이 있습니다. 외지인이고 그가 나타난 다음부터 이 마을에 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소문도 좋지 않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몰라도 목격담도 있으니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 까닭이 없다고 믿을만 합니다. 그 사람의 집에 가보니 여러 수상한 사진과 물건들이 잔뜩 있습니다. 아무래도 나쁜놈 같습니다. 


원래 인간은 타자를 의심하기 좋아합니다. 게다가 그는 일본인. 그러니까 더욱 의심하기 좋습니다. 그리고 일단 의심이 마음 속에 들어오면 예전엔 평범하게 보이던 것조차 의심스럽게 보입니다. 원래 우리는 보고 싶은 것을 보는 법이니까요. 사실 이런 의심은 자연적인 것이고 영화의 맨 처음에 부활하신 예수를 의심하는 도마에 대한 성경 구절을 통해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로 주어집니다.


그런데 감독은 모두가 의심하는 순간에 갑자기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 버립니다. 일광(황정민)과 외지인이 굿 하는 장면을 동시에 보여주는데 이게 죽은 사람을 살리려는 또는 그 영혼을 구하려는 의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거죠. 이렇게 외지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의심만 하도록 만드는 존재입니다. 사실 맨 마지막에 부제와의 동굴속 대화 장면이 없다면 외지인은 좋은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믿음 또는 의심 3.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가


반대로 나를 도와주러 온 사람이 있습니다. 일광(황정민)이라는 용한 무당입니다. 그는 집에 들어오자 마자 항아리 속의 죽은 까마귀를 발견하는 신통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돈은 좀 많이 줘야 하지만 아픈 딸을 위해 굿판을 벌여준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버섯 잘못 먹어 그런 것 같지는 않고 귀신이 들린 것 같으니 그 용한 무당을 믿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상한 여자(무명)도 있습니다. 외지인이 나쁜 짓 하는 것을 봤다는 유일한 목격자인데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이상한 여자입니다. 어찌보면 그냥 동네의 정신나간 바보 같기도 합니다. 선인지 악인지 판단이 서질 않습니다.


주인공 종구는 이 세사람 중 가장 의심스런 외지인을 죽입니다. 물론 관객의 눈에는 무명이 외지인을 죽여서 종구의 차에 던져버린 것 같습니다. 아무튼 종구와 그 친구들은 외지인을 죽여서 던져버렸지만 딸의 병세는 호전되는 듯 하다가 다시 이상해집니다. 딸 효진이가 온 가족을 살해하고 있을 것 같은 순간, 일광은 가족을 살리려면 빨리 집으로 가라고 하는데 무명이 나타나 닭이 세 번 울기 전에 가면 너도 죽는다고 합니다. 종구는 누구를 믿어야 할까요?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일까요?


물론 전지적 시점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누가 선이고 악인지 영화의 결말을 통해 다 알게 됩니다. 일광은 외지인과 한 패인 악이고 무명은 선입니다. 하지만 그 절체절명의 순간 속에 있는 종구는 그걸 알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종구는 누구를 믿어야 할까요? 나를 도와주러 온 일광일까요, 아니면 불쑥 불쑥 나타나서 힌트만 주고 사라지는 무명일까요? 내 딸이 병에 걸린 것이 그냥 우연(미끼를 물어 분 것)이라는 일광일까요, 이유가 분명하다(종구가 의심을 했고 사람을 죽였기 때문)는 무명일까요? 그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믿고 선택해야 할까요? 저는 이 질문이 가장 중요한 질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그 답을 알지 못하고 그래서 때로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나중에야 그 의미를 알게되죠. 즉 감독은 절대 현혹되지 말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내가 현혹되고 있는 건지 조차도 잘 모르고 산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를 불경한 종교 영화라고 한다면 바로 이 지점에서 네가 믿고 있는 것도 어쩌면 허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반대로 신성한(?) 종교 영화라고 한다면 때로는 침묵하는 것처럼 보여도 삶의 문제의 의미를 알려주고 우리 주변에서 바른 선택을 하도록 계속 돕는 선한 존재(신)가 있고 때때로 잘못 판단하더라도 그 선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역설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겠죠. 물론 리차드 도킨스 같은 사람들은 The mushroom delusion 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ㅎㅎ  


아무튼 제게 영화 "곡성"은, 때로는 확신 과잉처럼 보이는 이 시대에 인간의 인식과 그 한계,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이 선택하는 믿음과 의심에 대해 생각해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물론 좀비물이나 호러물은 무서워서 잘 보지 않기 때문에 엄청 좋아하긴 힘든 영화지만, 이렇게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었다는 측면에서 볼 가치가 충분히 있는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 


[뱀발들]


1. 김환희양의 연기는 아동 학대 연기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엄청납니다. 여우조연상으로 천우희씨와 다툴지도... 그런데 이 영화를 봤을까요? (김환희양의 부모님과 본인이 독실한 기독교인이라 매 촬영마다 기도하면서 했다고 합니다. 전체 줄거리도 모르고 장면 장면을 어머님께 설명받고 찍었다고...^^)

2. 일본의 신화까지 뒤져가며 숨겨 놓은 미끼를 찾는 해석이 여기저기 판을 치는데 사실 나홍진 감독은 별 의미 없이 던져 놓은 것들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미놀타 카메라를 쓴다며 일본 어쩌구 하는데 정작 감독이 사용하고 싶었던 카메라는 독일제 라이카였다는데 비싸서 미놀타를 썼다고.ㅎㅎ 

3. 황정민은 1시간이 지나야 등장하고 천우희는 몇 씬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포스 작렬! 영화엔 없어도 천우희는 계속 외지인과 싸우고 일광과 싸우고 있었던 것일 겁니다.ㅎㅎ

4. 영화가 어둡고 피칠갑에 피부병 분장이 많아서 누가 누군지 잘 보이지 않습니다. 

5. 15세 관람가를 받아낸 능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뭐 좀비영화라고 본다면 15세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만...게다가 400만이 넘게 보다니...ㅎㅎ

6.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후로 이렇게 자연이 아름답게 기억나는 영화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달마는...>은 자연만 기억난다는 것이 흠. 

7. 까딱하면 잘못 보고 잘못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영화입니다. 감독이 낚시질 했다고 많이들 그러는데 제가 보기엔 나홍진 감독이 헷갈리게 만들어 놓았지만 의도하는 바는 분명하게 표현했다는 생각입니다.  

8. 이 영화를 보고 계속 생각난 것은, 의외로 세월호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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