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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사건 단상

바이오매니아 2009. 1. 10.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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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6년 5월 포스트모더니즘 관련 저널 “Social Text”에 한 논문이 실렸다. 논문의 제목은 “Transgressing the Boundaries: Toward a Transformative Hermeneutics of Quantum Gravity(경계를 넘어서: 양자 중력의 변형적 해석학을 향하여)”. 저자는 포스트모더니즘과는 상관이 없어 보이는 미국 뉴욕 대학교의 물리학과 교수인 앨런 소칼 (Allan Sokal)이었다. 그리고 위의 논문이 발표된 그날 앨런 소칼은 한 잡지에 다른 글을 하나 더 발표했다. 그 제목은 “A Physicist Experiments With Cultural Studies (문화 연구에 대한 물리학자의 실험)". 그리고 전세계 지식계는 발칵 뒤집혔다.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 (Fashionable Nonsense, 불어판 원제는 Impostures Intellectuelles)> (민음사에서 번역되어 출간되었음)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소칼 교수는 무슨 실험을 했을까. 위키의 힘을 빌어 간단히 정리하면 소칼 교수는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이란 철학자 자신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용어를 남발하는 공허한 말장난이라고 생각해 왔다. 자신의 이런 생각을 입증하기 위하여 아무 의미도 없는 가짜 논문을 만들어서 유명한 포스트모더니즘 계열 학술지에 제출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즉 이 실험은 “포스트모더니즘 학술지가 ‘그럴듯하게 들리고 편집자의 이데올로기적 선입견에 비위를 맞춰주기만 하면 넌센스로 범벅이 된 논문을 출판해 주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었고 실제로 저널에 실리게 된 것이다.  소칼은 자신의 엉터리 논문에 대해 ‘좌파들의 전문 용어, 비위를 맞춰주는 참고 문헌, 장황한 인용, 명백한 넌센스들을 자신이 찾을 수 있는 한 가장 멍청한 수학과 과학에 대한 인용문을 중심으로 섞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물론 그 저널을 출판한 “남부의 하버드” 듀크대학 측이 곤혹스런 입장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전세계 포스트모더니즘 연구자들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참고로 소칼도 좌파임)


2. 
가장 극적인 대선이었던 2002년 12월 대선. 하지만 2003년 새해 벽두부터 대선에서 승리한 새천년민주당이 발칵 뒤집혔다. 세밑에 인터넷에 오른 “민주당 살생부” 때문이었다. 당시 급속도로 퍼지던 살생부에는 민주당 의원을 6등급으로 분류하였다. 특1등 공신부터 3등 공신까지 공신이 네등급, 그리고 역적, 역적 중의 역적, 이렇게 역적이 두등급이었다. 민주당의 재집권에 배아픈 조선, 동아를 필두로 언론들이 대서특필하기 시작했고 (참고 기사) 급기야 역적으로 분류된 민주당 의원들이 살생부의 작성자를 찾기 시작했다. “민주당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친노 인사가 작성”했다는 “썰”이 돌았고 “전문가가 아니면 도저히 알기 어려운 정보들이므로” 정치 전문가가 작성했다는 설도 있었다. 민주당에서는 "이미 지도부는 누가 작성했는지 알고 있다. 내부인사가 작성한 것이 확실하다" 고 단언했으며 많은 정치평론가들이 여기에 동의했다.

하지만 범인(?)은 쉽게 잡혔다. ID “피투성이”, 그는 민주당 내부인사도 정치 전문가도 아닌 고졸의 철공소 직원이었다. 당시 민주당의 윤리위원장은 “철공소 직원이 혼자 살생부를 작성했다는 소리에 의원들이 다 웃고 있다"고 말했으나 네티즌들은 그 윤리위원장을 비웃었다. 그리고 그 살생부에서 역적 중의 역적으로 지목되었던 박머시기와 정머시기가 두고 두고 노무현 대통령을 괴롭히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다. 


3. 
헤겔의 법철학 서문에 나온다는 지혜의 로마 여신 미네르바가, 그리스의 아고라도 아닌 다음의 아고라(광장)에 강림했다. 그는 대한민국과 세계의 경제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고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예언(예견)했으며 그것이 현실이 되자 신화의 자리에서 현실로 주목 받았다. 불과 1년 전에 압도적으로 뽑은 멀쩡한(?) 경제대통령을 놔두고 그가 경제대통령 소리를 들었다. 세상은 그의 말씀을 갈구했고 그가 누구냐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80대 노인, 외국에서 공부한 학자, 외환 딜러, 등등 갖가지 추측이 난무했으나 그의 글이 틀렸다고 주장을 할지언정 (전여옥 의원을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 누구도 그가 전문가 (관련 전공자)가 아니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승천과 강림을 반복하던 그가 갑작스레 외환 관리에 관한 “공문”에 대한 글을 올리고 나서 그는 더 이상 온라인의 인물이 아니라 우리 앞에 피의자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의 정체는 “30대 전문대졸 백수”가 되었다. 그는 곧 구속되었고 그의 죄목은 “공익을 해할 목적의 허위사실” 유포였다. 물론 검찰에서 “허위사실”로 적시한 부분에 대해서는 반론이 더 타당해 보인다. (참고 기사)


4. 
이 세가지 사건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놀아났다는 사실이다. 혹자는 소칼 사건은 대학교수에 의해 저질러졌고 나머지 둘은 저학력 하층민(?)에 의해 벌어졌다는 점에서 위 사건들의 차이점을 찾으려고 들지 모르지만 사실 이들은 모두 그 분야의 “비전문가”이기에 학력은 차이점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앞의 소칼 사건과 뒤의 피투성이, 미네르바 사건은 큰 차이가 있으니 다름 아닌 “사건 그 다음”이다. 

소칼 사건은 뒤 이은 책 <지적 사기>의 출판과 포스트 모더니즘, 상대주의 토론 등으로 많은 긍정적인 발전들이 이루어졌다. (인터넷에서 양신규-홍성욱 토론 꼭 읽어보시길) 하지만 피투성이 사건과 마찬가지로 미네르바 사건은 그야 말로 하나의 “형사 사건”으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왜 그럴까? 아마 그 이유는 미네르바는 이미 “30대 전문대졸 백수”로 정의 내려졌기 때문이다. “30대 전문대졸 백수”의 말이 옳고 그른 것에 대해서 논의할 사람은 유감스럽게도 우리 사회에 많지 않다. 게다가 대체 왜 초야의 한 인물이 외신에까지 소개되는 인물이 되었는지에 대한 복기와 반성을 지금의 높으신 양반들에게 기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역사라면 진절머리를 치시는 어른들 아닌가 말이다. 

그러므로 미네르바 사건은 하나의 형사사건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그게 제일 안타깝다. 사실은 미네르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미네르바 사건 그 다음이 중요한 것인데 말이다. 과연 이 사건이 우리 사회의 어떤 급소를 건드렸는지, 지식인 또는 전문가는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이 사건이 어떤 영향으로 나타날지를 잘 생각해보고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하긴 이렇게 조심스럽게 글을 쓰고 있는 것만으로도 벌써 그들의 작전은 성공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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