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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Thirst, 박찬욱, 2009) ★★★

바이오매니아 2009. 5. 22. 22:22
곽재용 영화의 예술영화 버전?  ★★★ 


말도 많고 논란도 많은 박찬욱 감독의 <박쥐>를 봤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핏물 분수와 바다, 뼈가 꺾이고 튀어나오는 좀비스러움은 약간 고역이더군요. 뭐 좀비영화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그게 재미일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흡혈귀 영화도 거의 안보는 사람이라서요. 

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것은 비주얼이나 쟝르야 어떻든 그 영화 속에 담긴 주제들을 직접 보고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성과 속, 죄와 구원, 욕망과 죄의식 등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궁금해서 말이죠. 

그런데 영화를 딱 보고 나와서 든 생각은 엉뚱하게도 머리가 유난히 컸던 한 후배 녀석이었습니다. 그 후배는 엄청난 두뇌 용량을 자랑하며 고등학교 까지의 교과서를 줄줄줄 외우는 "엉뚱한 천재(?)"형의 녀석이었지요. 문제는 그 녀석과는 제대로 대화하기가 너무 힘들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 녀석은 사람들과 한마디 한마디 대화를 할 때마다 계속 다른 새로운 이야기로 주제를 돌려놓는 재주(?)가 있었거든요. 예를 들어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켕>이야기를 한다고 하면 에밀 졸라는 있는데 애빌 졸라는 없나? 이러다가 에밀 졸라에서 드레퓌스 사건으로, 드레퓌스 사건에서 유시민의 <거꾸로 본 세계사>로, 유시민에서 유시춘으로 등등 이런 식으로 내용을 shift 시키는 식입니다. 

그런데 왠지 위의 제 후배녀석과 비슷할 것 같은, 자칭 B급 영화 매니아인 박찬욱은 <박쥐>를 그렇게 뒤범벅으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지요. <박쥐>의 별점이 "도 아니면 모" 라고 하는데 이 뒤범벅을 이동진 기자처럼 "매혹적인 불균질함"으로 보면 "모"이고 뭐야, 장난하나? 라고 본다면 "도"가 되는 것이겠지요. 유감스럽게도 저는 그 뒤범범이 그렇게 매혹적이라고 느껴지지는 않더군요. 감독이 의도했건 안했던 영화는 너무 산만합니다. (듀나의 전언에 따르면 "박감독 말이 자기도 처음엔 심각한 영화를 만들려고 했는데 자꾸 장난기가 돌아서 에라 모르겠다...라고 그렇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 주의!!!)

예를 들면 상현의 농담은 거의 대부분 별로입니다. 처음 시작하자 마자 내뱉는 "당근이죠."도 그렇고 나중에 오아시스 멤버들을 살육하면서 태주가 피를 빠는데 어려움을 느끼자 상현이 피를 빼려면 매달아 놓고 중력이 어쩌고 하는 농담도 그 이전, 이후의 분위기와 영 어울리지 않습니다. 인터넷 자살까페 운운하는 것이나 락앤락은 말할 필요도 없구요. 그냥 풋, 하고 웃음이 나오기는 하지만 별로 공감이 가서 웃는 것이 아니라 "역시, 박찬욱이군. 이쯤에서 웃어달라는 거지?" 하는 정도의 웃음이죠. 

게다가 저는 장르 영화, 장르 공식 이야기하는 것을 전혀 좋아하지 않지만 이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처음엔 괴 바이러스가 나오는 SF물, 다음엔 에로틱 치정물, 뱀파이어 공포물, 범죄 심리극, 코미디에 좀비물까지... 심합니다. 게다가 원초적인 욕망을 이야기하면서 자의식 과잉이라니요. 이게 대체 무슨 영화냐,는 비명과 함께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로 네티즌 평가 최저점의 영광을 이룬 곽재용 감독이 억울해 할 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저는 예전에 비행기에서 이번에 개봉하는 <사이보그, 그녀>를 보았는데 이 역시 정체가 모호한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박쥐>가 혹평을 받아야 하는 영화냐? 그렇지는 않죠. 그래도 이 영화는 모든 좋은 영화들이 그런 것처럼 영화를 보고나면 할 이야기가 많아지는 영화입니다. 제목부터 <박쥐>아닙니까. 이건 새도 아니고 쥐도 아니여, 라고 말하고 싶은, 그 어중간한 동물인 박쥐. 그러므로 저 모든 장르의 눈으로 어느쪽에서 바라보나 어중간한 것은 당연한 것이겠죠. 

가장 중요한 주제는 아무래도 "욕망"인 것 같습니다. 신부라는 금욕적 존재와 욕망은 다양한 예술의 주제지요. 괴 바이러스를 자기 몸에 직접 주입할 정도로 자기 희생적이었던 신부조차도 점점 욕망의 노예가 되어 갑니다. 처음에는 살인하지 않고 피를 섭취해야 한다는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흡혈 방법을 개발하던 그가 나중에는 위악적인 노출을 감행하면서까지 말입니다. 반대편에서 욕망을 억압당한 채 살아오던 태주 역시 욕망의 폭주를 하기 시작하는데, 결국은 이 폭주가 둘을 파국으로 이끌죠. 그래도 신부의 정체성은 남아 있었던 것인지, 어둠의 자식인 뱀파이어는 핏빛 바다를 바라보며 빛 가운데 동반 자살합니다. 원래 어두음은 빛을 이기지 못하는 법이죠.^^

이러한 욕망은 <박쥐> 속에서 가장 기괴했던 장면들(물에 젖은 강우, 신하균이 등장하는 장면들)이 상징하는 죄의식과 연관되는데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캉>과 연결되는 지점이 여기입니다. <테레즈 라캉>을 읽지는 않았지만 그 많은 영화평에서 나온 내용들을 종합하면 <테레즈 라캉>의 이야기와 가장 비슷한 부분이 강우의 죽음부터 그 장면들까지라고 하더군요. 박찬욱 감독은 욕망의 폭주에는 결국 살인이라는 죄의식이 작동한다고 해석한 것이겠죠. 물론 에밀 졸라는 소설의 서문에서 "죄의식은 느낄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설파[각주:1]"했다지만 말입니다. 

<박쥐>의 인물들은 필리핀인 이블린만 제외하고 모두들 두얼굴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단순한 사람은 없습니다. 주인공 상현이나 태주, 정체가 알쏭달쏭한 강우와 라여사는 말할 필요도 없고, 뱀파이어라도 되어 앞을 보고 싶은 주임 신부, 심지어 필리핀인 아내 이블린를 무척 사랑하는 듯 보이나 태주와 관계를 갖는 오달수까지도 단순하지 않습니다. 가장 인텔리 냄새를 많이 피우는 감독의 영화답죠.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니까요. 

결론적으로 박찬욱 감독과 코드가 맞는 영화광들이라면 이야기할 거리가 무궁무진한 영화겠지만 그렇지 않고 공동경비구역 JSA, 좀 더 봐줘서 <올드 보이> 정도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불평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박찬욱 감독은 본인의 취향에 대해서 좀 더 고민을 해 봐야 할 것 같고 홍상수 감독을 벤치마킹 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네요.  


영화와 상관없는 Trivia 

1. 분류학상 박쥐는 조류가 아니라 포유류입니다. 조류와 같은 부리도 없고 깃털도 없고 알을 낳지도 않지요. 

2. 봉준호의 <괴물>, 박찬욱의 <박쥐>에서 바이러스를 다루는 방식은 모두 너무 어설픕니다. 물론 두 영화 모두 바이러스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들이지만 말입니다. 게다가 <박쥐>에서와 같은 실험은 헬싱키 선언 위반입니다. (물론 그런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3. 왜 피의 응고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냥 피를 락앤락이나 물통에 받으면 조금 지나서 응고가 되는데 말입니다. 항응고제가 들어있는 헌혈팩에 받아서 마셨다면 이해가 됩니다만.

4. 살인을 하지 않겠다고 의식없는 환자의 수액주사를 통해 피를 빨아 먹다가 다시 수액을 연결하는데 그렇게 하면 입 속에 사는 균들이 혈관에 침투해 패혈증으로 죽게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되죠. 


  1. 4인의 평론가,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선 영화 `박쥐`를 말하다. [매일경제] 2009년 05월 04일(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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