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크게 보면 식품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지만 제가 일부(라고 쓰고 상당수라고 읽음) 식품학자님들(사실 의사, 한의사님들도 있지만)에게 (때론 약간) 못마땅해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 때문입니다.   

비가 오면 파전을 먹을 수 밖에 없는 과학적인 이유
한의학의 설명이 그다지 과학적이 아니라고 반문하시는 분들을 위하여 영양학적인 분석에 의한 근거를 추가해 보면 밀가루에는 사람의 감정을 조절하는 세로토닌 이라는 성분을 구성하는 단백질, 아미노산, 비타민B등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비오는 날에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우울한 기분은 물론 우수나 감상에 젖어 기분이 처지는 것을 막아주게 된다고 한다.
일단 한의학적인 근거에 대해서는 제가 모르는 분야이므로 넘어가고 영양학적 관점만 한 번 보도록 하죠. 위의 포스팅의 인용 부분은 인터넷에 널리 퍼져있는 이야기인데 아마 아래의 메디컬투데이 기사

트립토판에서 세로토닌이 만들어지는 과정 (wiki)

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에 퍼져있는 글들은 아래 기사를 잘못 이해한 것 같습니다. 아래 기사에는 "밀가루와 해물파전"에 들어있는 단백질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그런데 밀가루에는 글루텐 단백질이 10-15% 정도 들어있지만 사실 다른 육류나 이런 것에 비해서 많이 들어있는 것은 아닙니다.  

비가 오면 막걸리와 해물파전이 당기는 이유는? (메디컬 투데이)
영양학적으로도 밀가루 음식과 막걸리 등이 비오는 날 우선순위로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유가 있다. 막걸리와 해물파전 등에 함유된 단백질과 비타민B는 비 오는 날 드는 우울한 기분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준다. 단백질의 주성분인 아미노산과 비타민B는 특히 사람들의 감정을 조절하는 세로토닌을 구성하는 중요한 물질이기 때문이다.

일단 세로토닌은 트립토판이라는 아미노산으로부터 유래합니다. 세로토닌에서 멜라토닌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오른쪽의 그림에서 보시듯이 두개의 효소 반응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물질이죠. 그러므로 비가 오면 파전을 찾는 이유의 근거는 파전 속의 밀가루, 밀가루 속의 단백질인 글루텐, 글루텐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인 트립토판, 트립토판으로부터 만들어지는 세로토닌의 논리적 연결입니다. 물론 저는 비가 오면 우울하다, 고로 세로토닌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것부터 사실 잘 이해가 안됩니다만, 그건 그렇다고 치고!

밀가루 단백질인 글루텐 속에는 트립토판이 많이 들어 있을까요? 그래서 세로토닌을 많이 만들 수 있을까요? 사실은 글쎄요, 가 정답입니다. 트립토판은 밀가루 단백질인 글루텐에 별로 들어있지 않습니다. 글루텐에 많이 들어있는 아미노산은 글루타민과 프롤린입니다. 

그럼 글루텐 단백질에 대해서 한 번 알아봅시다. 글루텐 단백질은 일단 두가지로 나뉩니다. 수용성 알코올에 녹는 글리아딘과 녹지 않는 글루테닌입니다. 

글리아딘은 알파, 베타, 감마, 오메가 타입으로 나누어지는데 대부분 단량체(monomer)이고 분자량이 약 28-55 kDa입니다.  

글루테닌은 disulfide dond로 결합되어 분자량이 50만에서 1천만에 이를 정도로 큰데 disulfide dond를 제거하면 고분자량 subunit (HMW 67-88 kDa)과 저분자량 subunit (LMW 32-35 kDa)로 나누어 집니다. 

그런데 이 글루텐을 구성하는 단백질들 속의 아미노산 조성을 보면 (아래 Table 1) 글루타민과 프롤린이 전체의 50% 내외를 차지하고 페닐알라닌과 글라이신 등이 주요아미노산입니다. 트립토판은? 아미노산이 20종류인데 아래의 아미노산이 주 성분이면 나머지 15-16개 아미노산이 골고루 분포한다고 해도 얼마 안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출처: Chemistry of gluten proteins, Food Microbiology 24 (2007) 115–119


USDA National Nutrient Database에서 10% 단백질을 함유한 밀가루의 아미노산 조성을 보면 위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아래의 표를 보시면 트립토판은 아미노산 중에 가장 적은 함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0% 단백질이 포함된 100g 밀가루이므로 10g 밀가루 안데 트립토판은 약 0.113g 밖에 들어있지 않은 것이지요. 20가지 아미노산 중에서 최저입니다. (표에서는 실제로 18가지인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혹시 우리 학생들 중에 이걸 맞추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해지는군요.^^) 이것은 막걸리 속에 트립토판이 많아서 건강에 좋다는 것은 별로 근거가 없다는 예전 포스팅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아무튼 트립토판은 밀가루의 글루텐에 제일 적게 들어있는 아미노산입니다. 그리고 먹는 트립토판이 전부 세로토닌으로 전환되는 것도 아닙니다. (Wiki에 따르면 세로토닌의 양은 트립토판이 많은 음식을 먹는다고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식품속 트립토판과 페닐알라닌, 류신의 비율이라고 합니다.)

 

빵단백질 속의 아미노산 함량(source: USDA National Nutrient Database)


자, 그러면 트립토판이 상대적으로 많이 들어있는 식품은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콩입니다. 그리고 고기류에 더 많습니다. 아래표를 보시면 식품 중 트립토판의 함량을 알 수 있습니다. 

식품 속 트립토판의 함량 (source : wikipedia)


게다가 고기류는 밀가루보다 섭취량이 더 많습니다. 밀가루는 수분이 거의 없어서 부풀면 양이 많아지지만 고기류는 오히려 조리하면서 수분이 날아가죠. 그러므로 정말 비오는 날에 파전이 땡기는 과학적 이유가 트립토판 섭취로 인한 세로토닌 때문이라면 비오는 날에는 파전보다 두부, 돼지고기 등이 땡겨야 할 것입니다. 물론 저는 돼지고기가 언제나 땡깁니다만...

무슨 무슨 식품이 어디에 좋다고 할 때 트립토판이 많아서 좋다고 하는 것은 아주 상습적인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바나나 다이어트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물론 다른 과일보다 바나나에 상대적으로 트립토판이 (쬐에에금) 많이 들어있다고는 하나 그 양은 다른 식품들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적습니다. 작년에 바나나 다이어트라는 책을 돈 주고 샀다가 돈 아깝고 어이 없어서 정리하다가 만 트립토판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지요. 그런데 비오는 날 파전이 땡기는 과학적 이유가 왜 필요한 것일까요???

Posted by 바이오매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