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사이드 (The Blind Side, 2009), 착한 부자의 영화같은 실화 ★★★★
바이오매니아2010. 4. 24. 15:29
동화같은 영화, 영화같은 실화 ★★★★
벼르고 벼르던 <블라인드 사이드>를 봤습니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언제 개봉하는지 손꼽아 기다려온 영화입니다. 일단 그리스도인, 가정, 입양, 스포츠, 대학 풋볼, 남부 백인 등등 제겐 하나 하나가 다 관심있는 주제입니다. 게다가 산드라 불록이 이 영화로 아카데미를 수상하면서 더욱 기대를 하도록 만들었죠.
영화는, 생각보다 좋았습니다. 보통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인데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솔직히 영화관에 가면서 울 준비를 하고 갔는데 일부러 눈물나게 하는 장면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배우들도 거의 한 번도 울지 않습니다. (그래도 극장에선 울음소리가...ㅠ ㅠ) 영화는 계속 밝습니다. 오히려 너무 밝아서 '에이, 저런게 어딨어' 싶지만 어떡하겠습니까, 실화라는데...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 남부 테네시주에 있는 한 기독교계 사립학교에 덩치큰 사내아이(마이클 오어)가 전학을 옵니다. 운동부 코치가 운동을 하면 잘 할 것으로 생각해서 받아들이지만 성적이 안좋아 운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미국에선 성적이 안되면 운동을 할 수 없습니다.) 얹혀살던 집에서 나와 학교 체육관에서 살던 마이클은 부유한 투오히 가족과 우연히 만나게 되고 리앤(산드라 불록)의 권유로 투오히 가족과 함께 살게 됩니다. 서서히 마이클은 한 가족이 되어가고 온 가족의 도움으로 풋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결국 여러 대학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대학에 장학생으로 가려면 성적을 올려야 하기 때문에 가정교사 수(캐시 베이츠)의 도움으로 간신히 미시시피 대학으로 진학을 하게 됩니다. 영화는 여기서 끝나고 마지막에 2009년 NFL draft에서 볼티모어 레이븐스에 마이클 오어가 1st pick으로 프로 선수가 되는 자료화면이 나오면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갑니다.
줄거리를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영화에선 별다른 갈등이 없습니다. 중간에 마이클이 하루 가출해서 싸움을 하지만 그게 전부입니다. 어린 청소년 딸과 사내아이를 가진 남부 백인가정이 거대한 흑인을 집에 들이는데 별다른 갈등도 없습니다. 오히려 사사건건 그를 돕고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정말 이상적인 가족인거죠.
마이클을 위해 친구들과 떨어져 자리를 옮겨앉은 딸 콜린스 (실제로 필 콜린스 딸이랍니다 ^^)
아마 이 영화가 실화가 아니었으면 흑인들도 백인들도 모두 비판을 했을 지도 모릅니다. 신데렐라 이야기와 다를 것이 없죠. 그래서 영화는 계속 유쾌하고 행복한데 보는 사람의 마음은 왠지 조마조마하고 불편하기도 합니다. 착한 부자라는 안어울리는 조합, 어쩌면 이제 이 세상은 이런 착한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어려워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속 투오히 가족 사진
실제 투오히 가족 사진
물론 영화의 이야기가 100% 실화는 아닙니다. Youtube의 영상을 보면 마이클과 콜린스는 동급생이고 입양되기 전부터 아는 사이였다고 하고 실제로는 마이클 오어가 풋볼을 꽤 잘하는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입양되기 전부터 이미 전 미국 오펜시브 라인맨 랭킹 5위까지 했다고 하죠. 영화 속에서 가장 유쾌한 장면인 마이클이 풋볼을 배워가는 과정들은 사실 픽션인거죠. 그래서 영화에서도 마이클을 스카웃하기 위해 투오히 부부가 일부러 입양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저 가족이 영화에서 보는 것과 같지는 않겠죠. 나름 갈등이 왜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실화이건 픽션이건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은 한 소년이 세상을 향해 말을 건다는 것입니다. 마이클이 결국 NFL 플레이어로 성공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햄버거 가게 점원이 된다고 해도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었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 과정에 미국 남부 백인 그리스도인 가정이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그들의 선행이 이 영화의 주제는 아니죠. 오히려 그들에게 마이클이 선물이었던 것이죠.
번역이 잘못되었는데 "어떻게 넌 그 아이의 인생을 바꿨니?"가 아니라 "Honey, 네가 그 아이의 인생을 바꾸고 있잖아!"입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께서도 저 가정과 같이 두 아이를 공개 입양해서 자녀가 넷입니다. 얼마전엔 또 다른 한 가정이 입양을 했지요. 보통 입양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김길태 사건 때문에 입양포기자가 많아서 갑자기 결정이 되었다더군요. 그 가정에 온 새 아이를 교우들이 축하하는 시간에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도 바로 저것이었습니다. 입양된 이 아이가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이 아이 때문에 그 가정이 더 많은 것을 누리게 된다는 이야기죠. 그런데 우리는 입양도 돈이 있어야 하지, 이런 생각들을 합니다.
이 영화를 썩 좋지 않게 보시는 분들은 마이클의 이야기가 아니라 투오히 가족의 이야기라는 불평을 하곤 합니다만 저는 투오히 가족의 이야기가 맞다고 봅니다. 영화 제목이 <블라인드 사이드>이듯이 마이클을 통해 안보이는 사각지대의 삶을 볼 수 있게된 가족의 이야기가 더 타당하지 않나 싶습니다. 은연 중에 미국의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블라인드 사이드를 좀 보라는 의미도 있겠구요.
주제를 바꿔서 이 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는 바로 아래의 사람들을 영화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NCAA college football SEC(동남부 컨퍼런스)의 쟁쟁한 코치들을 한 영화에서 보는 것은 또다른 즐거움입니다. 물론 미국 대학 미식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분들은 저게 대체 누군가 싶으시겠지만 말입니다.
Lou Holtz (전 사우스 캐롤라이나 코치)
Phillip Fulmer (테네시코치)
Nick Saban (전 LSU 코치)
Houston Nutt (전 아칸소 코치)
Tommy Tuberville (오번 코치)
Ed Orgeron (전 Ole Miss 코치)
예전에 역시 비슷한 풋볼 영화 <리멤버 타이탄>에 대해서 다른 블로그에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 때 받았던 질문의 하나가 "그깟 고등학교 풋볼로 흑백갈등이 치유되는가?"하는 것이었죠. 그런데 미국 고등학교 풋볼, 대학 풋볼, 프로 풋볼(NFL)의 인기는 우리의 상상 이상입니다. 특히 9월부터 12월까지 NCAA college football 시즌이 시작되면 매주 토요일은 그야말로 풋볼의 날입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닉 세이번 (Nick Saban)이나 필 풀머 (Phillip Fulmer) 등은 전국적인 스타이고 루 홀츠(Lou Holtz)는 현재 ESPN 해설자입니다. (죠지아의 마크 리히트가 안나와서 약간 서운...)
특히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테네시와 미시시피 등은 가장 경쟁이 심하다는 SEC (southeastern conference)의 학교들이고 공교롭게도 마이클 오어가 대학을 다닌 기간은 제가 미국에 있었던 기간과 겹칩니다. 물론 당시에 미시시피(Ole Miss라고 부릅니다)는 그렇게 강팀은 아니었지만 말이죠. 그래서 아래와 같은 광경을 보면서 저 혼자 많이 웃었습니다. SEC 팀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 중에 진짜 코치는 필 풀머 밖에 없습니다만...
아무튼 이 영화, 지나치게 감동을 쥐어짜지도 않고 오히려 덤덤하게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해주는 좋은 영화였습니다. 오스카를 거머쥔 산드라 불록의 연기에 대해서는 더 덧붙일 필요가 없겠죠. 완벽한 금발의 백인 마나님 이더군요. 패션도 그렇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