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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나는 영화, 내 깡패같은 애인 (김광식, 2010)

바이오매니아 2010. 8. 17. 10:10
88만원 세대물이 코믹 로맨스로 위장 취업하다 ★★★★


90년대에 '박중훈표 코미디'라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인정사정 볼것없다> 이후 박중훈은 그 방식의 코미디를 벗었다. 모두들 웃기는 <황산벌>에서 박중훈은 유일하게 진지했다. 2000년대 이후 그가 가장 웃겼던 영화는 <해운대>였을 것이다. (물론 <천군>이라는 괴작이 하나 있긴 하다.) 그런데 무려 2010년 박중훈이 다시 로맨틱 코미디, 그것도 한국영화에서 흔하디 흔한 노쇠한 깡패로 돌아온다고 했다. 저런 영화를 누구 보라고 만드는 건지, 이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원제가 <무릎꿇지 마>였다는 이 영화 <내 깡패같은 애인>은 결코 "애인"이나 "깡패"에 방점이 찍힐 영화가 아니었다. 지방대를 나와 팍팍한 서울의 반지하로 추락하고 있는 한 젊은이와 고등학교도 못나온 깡패의 "연대"(연애가 아니다)에 관한 이야기다. 이 플롯을 가지고 지극히 사실적이고 먹먹한 드라마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고 그래도 희망은 있다, 식의 감동 드라마를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이창동 감독의 <오아이스>의 조감독 출신이라는 신인 김광식 감독은 그 중간지대를 택했다. 하지만 중간지대란 어중간하고 어정쩡할 수 있는 자리다. 그러나 감독의 영민함은 이 영화를 만듦새 좋은 대중영화로 뽑아 냈다. 이런 대사를 넣어가며 말이다. 

"그리스나 프랑스같은 데선 젊은애들이 정부한테 일자리 마련하라고 데모하고 불지르고 난린데 우리나라애들은 취업 안되는게 다 지들 잘못인줄 알아요.."

영화 제목이 주는 인상은 "취업준비생과 3류 깡패의 로맨스" 분위기지만 내용은 로맨스가 아니다. 제목을 바꾼 것이 흥행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원제 <무릎꿇지 마>가 주는 느낌을 다 없애 버린 것이 아쉽기도 하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을 것 같아서 접습니다.) 

<나의 결혼 원정기>가 농촌 국제 결혼과 다문화 가정 문제의 시의적절한 반영이었다고 한다면 이 영화는 점점 더 심해질 것이 분명한 "88만원 세대" 문제에 대한 시의적절한 반영이다. 밥이 종교요, 취직이 인생목표라고 강요받는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의 퍽퍽한 삶은 영화를 보는 내내 내 눈을 아프고 따갑게 만들었다. 영화에서 자꾸 추접스럽게 내리는 빗물처럼 말이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그날 저녁 이직을 고민하는 20대 후반의 비정규직 젊은이들과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영화 속 먹먹함이 현실이 되어 들려오니 가슴은 더 답답하다. 이게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내가 가르치고 길러내는 학생들의 문제고 내 후배들의 문제고 내 자녀들의 문제가 될 것이라 생각하니 더욱 그렇다. 열심히 사는 것만으로 살 수 없는 시대는 뭔가 잘못된 시대가 아닐까. 그 시대를 이겨나갈 처방이 고작 "개인적으로 살 길을 찾아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라면 더욱 말이다. 언젠가 김제동 트위터에 올라왔다는 글을 다시 생각해 본다. 

'모두가 약자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맙시다.' - 김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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