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번 원고를 써달라고 해서 넉넉할 줄 알았는데 시간은 살같이 흘러가더군요. 경향 사이언스 톡톡에 올린 두번째 글입니다. 언제나 바빴지만 솔직히 요즘 이런 저런 일들과 생각할 것이 많아서 쓰다 말다 다시 쓴 글입니다. 작년과 올해 발표된 타임지 올해의 발명에 대한 글인데 관심있으신 분들은 일독을 권합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매년 11월 올해의 발명 50가지를 발표한다. 그 중에는 황당하고 쓸모없어 보이는 발명품도 있다. 하지만 매년 관심 갖고 그 목록을 보다 보면 앞으로의 세상이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2006년에 선정된 자궁경부암 백신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이 백신은 우리나라 병원에서 성황리에(?) 접종되고 있으며 TV에서 공익광고로 홍보하고 있을 정도다.
다른 분야는 차치하고 바이오텍 분야의 주요 발명품을 보면 2009년 발명품부터 약간 독특한 경향이 보인다. 2009년 발명품 목록에는 수조 양식 참치(Tank-Bred Tuna)와 시험관 고기(Meat Farms), 식물 공장(Vertical Farming) 등이 선정되었고 2010년에는 합성 세포(Synthetic Cell), 복제 폐(Lab-Grown Lungs), 고속성장 연어(Faster-Growing Salmon) 등이 선정되었는데 바이오텍의 전통적 강세 분야인 의약품이나 의료기기보다 우리 실생활에 더 가까워진 발명품들이다.
1. 수조 양식 참치(Tank-Bred Tuna)
횟집 수조에서 찾지는 마세요 - Clean seas tuna(http://www.cleanseas.com.au/fish/tuna.html)
남방참다랑어(참치) 양식은 가끔 보도가 되어 왔지만 실제로 완전양식도 아니고 모두 해상 양식이었다. 하지만 오스트레일리아 Clean Seas사의 연구진은 교배부터 전 양식과정을 육상 수조에서 할 수 있는 신기술을 개발했다. 1950년대와 비교하여 개체수가 90% 정도 감소했다며 참치 보호의 목소리가 커지는 요즘에 더욱 주목받는 기술이다. 냉동시켰던 참치는 맛이 없다는 무식한 이야기(원양어선에서 잡아오는 참치는 전부 냉동해서 들여온다)가 무식하지 않은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2. 시험관 고기(Meat Farms)
성공하면 삼겹살 회식이다! - 출처: 타임지 홈페이지
좁은 우리에 가둬 대량 밀집 사육당하는 동물들과 그 고기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져가는 시대에 나온 이 신기술은 더욱 놀랍다. 아예 고기를 실험실에서 만들겠다는 이 황당한 이야기는 수년 전부터 신문의 외신란에 보이더니 결국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네덜란드의 과학자들이 줄기세포 복제를 이용해서 돼지고기(근육) 배양에 성공한 것이다. 아직은 겨우 주사위만한 크기이고 본인들도 아직 맛은 보지 않았다고 하니 당장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지만 고기도 배양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3. 식물 공장 (Vertical Farming, 수직경작법)
아파트식 식물재배, 아파트 생활하시는 분께 권합니다 - 발센트사(http://www.valcent.net/s/Home.asp)
땅이 좁아서 농작물 수확량이 적다는 말은 앞으로 핑계가 될지도 모른다. 텍사스의 발센트 (VALCENT PRODUCTS Inc)라는 회사에서는 수직으로 회전식 받침대를 층층이 쌓아 식물을 재배하는 수경재배시스템(VERTICROPTM)을 개발하였다. 이와 별도로 과학계에선 LED를 이용한 식물 공장에 대한 연구도 핫 이슈다. 정말 앞으로 텃밭이 없어도 자기가 먹을 채소 정도는 얼마든지 집에서 키워서 먹을 수 있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점점 아파트로 가득해져가는 우리나라에선 더욱 관심가질 만한 기술이 아닐 수 없다.
4. 합성 세포(Synthetic Cell)
생명의 신비에 한발짝? - 출처: 타임지 홈페이지
과학계의 이단아 크레익 벤터 박사가 인공 생명체를 합성했다는 뉴스는 지난 5월 그의 논문이 사이언스에 발표되었을 때부터 이미 여러 번 보도 되었다. 물론 생명체의 합성이라고 하는 것은 과장이고 100만쌍의 DNA 염기서열로 구성된 마이코플라즈마 마이코이데스(Mycoplasma mycoides) 게놈을 합성해서 그것을 마이코플라즈마 카프리콜럼(M. capricolum)의 DNA와 바꿔치기 한 것이다. 하지만 단일 유전자 또는 몇 개의 유전자를 재조합하는 수준이 아니라 통째로 갈아 끼울 수 있다면 그 파급력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동안 인공 장기를 개발하려는 시도는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그 중에서도 장기를 복제하려는 노력은 재생 의학의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여러 가지 장기 중에서 폐는 구조적 특징 때문에 특히 복제가 어려운 장기로 꼽혔으나 올해 예일대학 연구진이 쥐의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하여 폐세포를 배양하여 폐를 실험실에서 길러내는데 성공하였다. 물론 아직 쥐 실험에 불과하고 사람에게 적용하려면 20년은 더 걸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지만 장기를 배양하는 시대의 초입에 들어선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6. 고속성장연어(Faster-Growing Salmon)
형님들, 저 먼저 쑥쑥 커서 강을 거슬러 올라가야겠어요. - 출처: 타임지 홈페이지
연어는 대표적인 양식어종인데 식용으로 출하하기까지 3년(쇠고기도 2년 정도인데)가까이 걸리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미국의 AquaBounty Technology사에서 유전자 조작을 통해 더 빠르고 더 크게 자라는 연어(AquAdvantage® salmon)을 개발해 FDA에 심사 의뢰하였고 조만간 허가가 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까지 식품에 이용되는 유전자변형생물(GMO)은 모두 식물이었는데 최초의 동물성 유전자변형식품(GM-food)으로 허가를 받을 수 있을지 큰 주목을 받음과 동시에 논쟁이 촉발되고 있다.
위의 발명품들을 보다 보면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분명한 것은 과거 상상 속에 있었던 것들이 우리 실생활, 심지어 식탁에까지 훨씬 가깝게 다가왔다는 것이다. 여전히 천연과 자연이 좋다는 믿음은 강하다. 또한 아직까지 유전자변형식품이나 양식어류 등에 대한 반감도 심하다. 과학자들이 잘못된 반감과 우려들은 불식시켜 나가고는 있지만 아직까진 역부족이다. 게다가 이런 반감과 우려가 다 잘못된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
문제는 지금까지의 논쟁도 결론이나 타협을 만들어내지 못했는데 이미 기술은 저만큼 앞서가고 있다는 것이다. 파도를 막을 방파제를 어디다 만들까 고민하는 사이에 해안이 매립되어 버렸다고 할까? 바이오텍을 연구하는 연구자 입장에서도 혼란스런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1969년 서울 출생. 1989년 연세대 식품공학과에 입학하여 계속 같은 과에서 공부하면서 학과가 식품생물공학과를 거쳐 생명공학과로 바뀌는 것을 경험하였고 1998년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동경대학, (주)제노포커스, 미국 죠지아대학 등을 떠돌며 포닥으로 세계일주를 계획했으나 2007년 여름부터 부산의 신라대학교 바이오식품소재학과에 임용되어 재직중이다. 유전자 분석(BLAST) 때문에 남들보다 일찍 인터넷 세계에 입문하여 15년 가까이 홈페이지와 블로그(http://www.leehanseung.com)로 세상과 소통해 왔으며 극한미생물에 관심이 많아 극한미생물연구회를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