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초가 되면 어김없이 다가오는 경향 사이언스 톡톡의 마감. 이번에는 가장 힘들게 마감시간을 지켰네요. 요즘 글을 쓸 여유도 없고 쓰기가 싫어지고 있습니다. 예전엔 바쁠 때면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샘솟아 고민이었는데...
아무튼 이번 글은 요즘 제가 빠져있는 "나는 가수다"를 빗대어 쓴 글인데 원래 제목은 "나가수처럼 과학도 평가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예전부터 SCI에 대한 글을 한 번 쓰려고 했었는데 하필이면 이번 처럼 바쁠 때 쓰는 바람에 글의 의도가 약간 모호해진 듯 하네요. 참고로 SCI에 관련한 내용의 일부는 지금 블로그를 닫고 쉬고 계신 Cliomedia님의 블로그에서 본 내용입니다.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가 인기다. 덕분에 나도 TV 예능을 돈 내고 보기 시작했다. 평소에 TV를 보지 않던 몇몇 지인들도 나가수는 챙겨본다고 한다. 같은 시간대의 정통 라이브 음악프로인 <열린 음악회>가 못 누린 호사를 나가수가 누리는 이유는 뭘까?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의 말대로 나가수는 좋은 음악을 감상하게할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을 심판이자 평가자로 만든다. 그리고 자신의 평가를 남과 나누고 싶어지게 한다.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때론 나가수가 조금 피곤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느낌과 감정을 점수화하는 '나는 가수다'
나가수도 매번 경연의 순위를 가지고 왈가왈부가 있다. 순번은 뒤가 좋고, 고음을 좀 질러줘야 하고, 이런 장르는 안좋고, 조용한 편곡은 안되고 등등 나가수에서 살아남기 위한 법칙들도 나온다. 어찌 보면 살아남기 위해서는 평가 항목에 자신의 스타일을 맞추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과도한 경쟁은 제도의 허점을 찾게 만드는 법이니까.
평가는 힘들다. 공정한 평가는 더욱 힘들다. 교수들이 가장 많이 받는 요청은 각종 평가에 와달라는 것이다. 이유는 전문성 때문이지만 사실 교수들도 자기 옆방 교수가 무엇을 얼마나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아무튼 형식적 민주주의가 정착하면서 모든 것을 점수화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때문에 모두가 심사받고 심사하는 것은 일상이 되어버렸고 경쟁을 통해 비교당하는 일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그래서 주말 예능에서까지 각종 오디션/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난무하는 것이 한편으론 씁쓸하다.
철밥통이라고 놀림당하던 교수들도 이젠 승진과 재임용을 위한 점수를 따야 살아남는다. 강의 평가 점수, 주당 4일 이상 강의 여부, 학생 상담 점수, 영어강의 점수, 사이버/온라인 강의 점수, 학과 평가 점수, 교수 연수 참석 점수, 교수 학습법 참여 점수 등등 그 항목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기억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다. 그래, 이런 것은 나태한 교수들 정신 차리라고 만든 장치라고 치자. (그렇다고 나태한 교수들이 정신 차리는 것을 보긴 힘들고 대다수 교수들을 쓸데없는 일에 약삭빠르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연구 업적도 공정한 평가를 위해 점수화를 한다. 그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소위 SCI(Science citation index)의 피인용 지수(Impact Factor)다. 논문도 "SCI 급 저널(SCI 등재지)"에 냈느냐 아니냐가 중요하다. “좋은 저널 = 피인용 지수가 높은 저널“이라는 등식이 굳어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분야 불문하고 몇 점짜리 저널인가가 중요하다. ”그 논문”의 질은 그 논문이 실린 “그 저널”이 보증한다.
콜럼비아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다 실험실 폭발사고 후 전공을 바꿔 계량서지학(Bibliometrics)을 창시했다는 유진 가필드(Eugene Garfield)가 "Citation Indexes for Science“라는 제목으로 과학 저널 Science에 논문을 낸 것이 1955년이다. 그 후 그는 ISI(Institute for Scientific Information)라는 무슨 연구소와 혼동하기 쉬운 이름의 ”사설 회사“를 설립하였고 지금의 톰슨 로이터 (Thompson Reuters)로 이어지고 있다. 이 영리 회사에서 매년 발행하는 것이 JCR(Journal Citation Report)이고 거기에 각 저널의 점수(피인용 지수)가 공개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매년 그 점수에 관심을 갖는다. 심지어 교수 임용시에 자기가 낸 논문이 실린 저널의 점수를 적도록 하고 그것을 정량 평가하는 곳도 있다.
2009년 SCI impact factor Top 20 저널
분야에 따라서 피인용 지수는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평가에서는 그런 세부적인 것을 다 감안하기가 힘들다. 어느 회의에서 한 교수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우리 분야 최고 SCI 저널의 피인용 지수는 0.7입니다.” 하지만 다른 회의에서 다른 교수님의 말씀은 이렇다. “피인용 지수가 5도 안되는 저널의 논문은 다 배제시켜야 합니다.” 물론 위의 두 분의 세부 전공 분야는 다르다. 하지만 같은 대학에서 업적 평가는 같은 자연계열 방식으로 받는다.
요즘 대부분의 대학에선 연구 업적 평가에 피인용 지수를 곱해서 점수를 매기고 인센티브를 지급한다. 심지어 CNS 저널에 논문을 내면 수억을 주는 곳도 생겼다고 한다. CNS라고 해서 Central nervous system(중추신경계)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소위 임팩트 팩터가 제일 높다는 Cell, Nature, Science 저널을 말한단다. (물론 피인용지수가 더 높은 리뷰나 의학저널들도 있다) 그런데 Cell은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Nature나 Science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저널이다. 바이오 분야에서도 세포생물학 하는 사람만 낼 수 있는 저널인데 단지 임팩트 팩터가 높다는 이유로 Nature나 Science와 나란히 세워 놓다니 이건 뭔가 어색하다.
과학 저널의 Central nervous system(중추신경계)라는 Cell, Nature, Science
물론 과학계에서 평가를 피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평가에 SCI 점수가 유용한 한 방법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나친 계량화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좀 더 다양한 방식과 비인기 분야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나가수가 목청 큰 사람만살아남지 말아야 하듯이 말이다. 특히 우리 사회처럼 지나칠 정도로 비교와 경쟁을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고 있는 경우엔 더욱 그렇다.
필자 이한승 교수는
1969년 서울 출생. 1989년 연세대 식품공학과에 입학하여 계속 같은 과에서 공부하면서 학과가 식품생물공학과를 거쳐 생명공학과로 바뀌는 것을 경험하였고 1998년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동경대학, (주)제노포커스, 미국 죠지아대학 등을 떠돌며 포닥으로 세계일주를 계획했으나 2007년 여름부터 부산의 신라대학교 바이오식품소재학과에 임용되어 재직중이다. 유전자 분석(BLAST) 때문에 남들보다 일찍 인터넷 세계에 입문하여 15년 가까이 홈페이지와 블로그(http://www.leehanseung.com)로 세상과 소통해 왔으며 극한미생물에 관심이 많아 극한미생물연구회를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