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의 영화, 어쩌면 내 인생의 영화!
지난 18일, 대선 바로 전날 "레미제라블"이 전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했습니다. 원래는 19일 개봉 예정이었는데 (미국은 크리스마스!) 하루 앞당겨 졌더군요. 아무튼 온 가족이 극장으로 달려가 영화를 보고서 이렇게 20자 평을 적었더랬습니다. "올해의 영화, 어쩌면 내 인생의 영화!" 그리고 그 다음 날 저녁, 대선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 결과를 보고 나니 "레미제라블"이 제 인생의 영화가 되진 못할 것 같습니다. ㅠㅠ
예전에 뮤지컬 <레미제라블>에 관련된 포스팅(뮤지컬 <레 미제라블> 10주년 기념 콘서트 실황 모음)을 두 달 가까이 썼던 적다가 날린 적이 있습니다. 처음엔 그냥 몇몇 음악이 좋아서 이 뮤지컬을 좋아했었는데 점점 그 이야기에 빠지게 되었고 나중에는 그 가사 하나 하나가 여러가지 생각거리를 던지게 하더군요. 그래서,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올 한 해 동안 제가 가장 기다려온 영화가 바로 이 <레미제라블>입니다. 200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멋진 노래와 춤을 선보인 휴 잭맨과 앤 해서웨이, <맘마미아>의 아만다 사이프리드, 그리고 러셀 크로우의 캐스팅에 감독은 <킹스 스피치>의 톰 후퍼! 이정도 라인업이면 기대하지 않을 수 없지요.
2009년 아카데미 시상식 오프닝 -노래는 1분 30초부터 시작합니다.
사실 이 영화는 영화지만 영화가 아닌 영화라고나 할까, 뮤지컬인지 영화인지 정체가 모호한 영화입니다. 그걸 모르고 극장에 오셨다가 처음에 당황하시거나 중간에 나가시는 분들도 계신 것 같더군요. 뮤지컬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오신 분들이 계셔도 처음부터 끝까지 대사는 거의 없이 노래로만 진행되는 소위 sung-through musical 이라는 것을 모르고 오신 분들은 무슨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나 <사운드 오브 뮤직> 같은 영화를 기대하셨다가 당황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일단, 이 영화를 소개하기에 앞서 이 영화의 제작자 중 하나이자 원본 뮤지컬의 제작자인 카메론 매킨토시 경(Sir)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군요. 이름 앞에 Sir가 붙는 이유는 뮤지컬계에 미친 영향을 인정받아 1996년에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기 때문이죠. 그가 제작한 뮤지컬들이 여러 편이지만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레 미제라블","캣츠", "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 등이 있죠. 아마 다 한 번씩은 들어보셨을, 소위 세계 4대 뮤지컬이라고 불리는 유명한 작품들이죠.(물론 세계 4대 뮤지컬이니 하는 구분은 의미가 없고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에서 크게 흥행한 The Big Four를 잘못 번역한 것이라는 듀나님의 의견도 있습니다.) 이 원제작자 카메론 매킨토시가 이 영화의 제작자로도 참여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뮤지컬을 그대로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1985년 런던에서 초연되어서 엄청난 사랑을 받았고 1995년에 10주년 기념 공연, 2010년에 25주년 기념공연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올해 정성화씨 주연의 뮤지컬로 만들어져 초연에 들어갔죠. 10주년 기념 공연과 25주년 기념공연 영상은 유투브에 대부분 공개되어 있고 25주년 기념 공연은 2시간 50분짜리 작품이 아예 통으로 올라와 있기도 합니다.(조만간 짤릴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3시간 가까이 되는 영상이지만 관심있으신 분들은 한 번 보셔도 좋습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 25주년 기념 공연 (한글자막) 영상
뮤지컬 <레미제라블>에는 워낙 유명한 곡이 많지만 국내에 가장 많이 알려진 곡은 역시 팡틴의 주제가인 I dreamed a dream 이겠죠. 그런데 이 곡은 뮤지컬로도 알려졌지만 몇 년 전 영국의 브리튼즈 갓 탤런트에 출연한 수전 보일이라는 아주머니가 전세계적으로 대 히트를 시켰습니다. 영국 시골의 한 아주머니가 팡틴이 절망하면서 옛 꿈을 회상하며 불렀던 그 곡으로 세계적 스타가 된다는 정말 꿈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죠. 엘레인 페이지와 같은 뮤지컬 가수가 되고 싶다던 이 아주머니는 오히려 엘레인 페이지를 유명하게 만들어줬죠.
수전 보일의 브리튼즈 갓 탤런트 I dreamed a dream
하지만 수전 보일의 노래보다 이 영화 속에서 앤 해서웨이가 부른 I dreamed a dream은 정말 압권입니다. 직접 라이브로 부르는 장면을 클로즈업으로 잡아서 보여주기 때문에 일단 뮤지컬에서 볼 수 없는 배우들의 감정이 그대로 살아 있죠(물론 클로즈업이 갑갑하다는 분들도 계십니다만). 게다가 영화 속 비주얼이 주는 감흥은 뮤지컬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줍니다. 물론 팡틴의 I dreamed 외에도 자베르의 stars, 장발잔의 who am I와 bring him home, 에포닌의 on my own, 마리우스의 empty chairs empty tables 등의 노래들을 듣는 것 만으로도 시간이 지루하지 않습니다.(물론 이것은 제가 이 음악을 수없이 들었고 좋아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사실 제게 매우 인상적인 장면은 one day more를 부르는 장면이었습니다. 아마 관람일이 대선 하루 전 날이어서 더 그랬을 겁니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모든 등장 인물들이 교차하면서 합창을 하는 장면이지요. 극중에선 바로 다음 날이 혁명의 날, 즉 하루만 더(one day more) 지나면 민중에게는 혁명과 해방의 날이지만 자베르에게는 반역자를 때려잡는 날이고, 떼나르디에 부부에겐 한 몫 잡는 날이고, 코제트에게는 이별의 날이고, 장발잔에게는 딸의 남자를 구해야 하는 날이죠. 그래서 모두 제 각각의 노래를 부르다가 맨 마지막에 합창하는 가사가 "Tomorrow we'll discover what our God in heave has in store"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동상이몽을 잘 표현했다고 할까요.
레미제라블 25주년 기념 공연의 one day more (1분 20초부터)
하지만 이 영화의 압권은 역시 마지막 장면이죠. 격동의 프랑스 역사를 거치면서 죽은 les miserables, the miserable (비참한 사람들)이 거대한 바리케이드 위에서 함께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을 합창하는 장면입니다. 가사 하나 하나가 정말 가슴을 때리죠.
"They will live again in freedom In the garden of the Lord.
They will walk behind the plough-share.
They will put away the sword.
The chain will be broken and all men will have their reward!"
영화 <레미제라블>의 마지막 장면 (예고편 캡쳐)
아마 이 영화를 보시면서, 특히 대선 시즌에 낙담하신 분들은 위의 장면을 보시면서 많이 눈물을 흘리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선거 끝나고 이틀 후에 이 영화를 한 번 더 보러갔는데 맨 마지막에 "Tomorrow comes!"라는 가사를 들을 때 가슴이 정말 먹먹하더군요. 하지만 그 먹먹함을 달래주는 그 어떤 것이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만든이들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2012년 겨울 가슴에 멍든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좋은 치유의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강추하는 올해의 영화입니다!
10주년 기념 공연의 피날레 (7분부터 do you hear the people sing 시작)
Epilogue (Finale) 중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의 가사
Do you hear the people sing
Lost in the valley of the night
It is the music of a people
Who are climbing to the light
For the wretched of the earth
There is a flame that never dies
Even the darkest night will end
And the sun will rise.
They will live again in freedom
In the garden of the Lord
They will walk behind the plough-share
They will put away the sword
The chain will be broken
And all men will have their reward!
Will you join in our crusade?
Who will be strong and stand with me?
Somewhere beyond the barricade
Is there a world you long to see?
Do you hear the people sing
Say, do you hear the distant drums?
It is the future that they bring
When tomorrow comes!
Will you join in our crusade?
Who will be strong and stand with me?
Somewhere beyond the barricade
Is there a world you long to see?
Do you hear the people sing
Say, do you hear the distant drums?
It is the future that they bring
When tomorrow comes!
Tomorrow comes!
(가사 출처: http://lyrics.wikia.com/Les_Miserables:Epilogue_(Finale))
영화보러 가기 전 주의 사항 몇가지
1.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sung-through 뮤지컬이라는 것은 알고 가셔야 합니다.
2. 먹을 것은 다 먹고 들어가세요. 그리고 주변에 뭘 먹는 사람이 있으면 피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 영화는 하나의 콘서트인 셈인데 팝콘이나 비닐 봉지 소리가 매우 거슬립니다.
3. 유명한 곡들은 알고 가시는 것이 더 좋습니다. 몇가지 유명한 멜로디들은 여러번 반복되서 나오니까요.
4. 번역이 대체적으로 무난하지만 영어 가사를 알고 가시면 그 의미들이 훨씬 더 선명합니다. 특히 마지막 피날레에서 will you join our crusade?를 사랑의 전사가 되자?인가로 번역한 것은 조금 아니다 싶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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