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개학을 앞두고 큰 따님이 방학 숙제로 뭔가 비교 실험을 해야 한다더군요. 뭘 해야 좋을지 함께 고민하다가 몇 주 전 막걸리 관련 강연을 했을 때 생각이 났습니다. 밀막걸리 이야기가 나왔는데 수입밀가루가 농약 범벅이라서 밀막거리는 나쁘다고 이야기 하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그 근거가 개미나 벌레가 밀가루에서 살지 못한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갑자기 예전에 인터넷에서 보았던 아래 실험이 생각났습니다. 수입밀가루 속에서 개미는 다 죽고 우리밀로 만든 밀가루에선 다 살았다는 이야기죠.
밀가루 속 개미 실험 1 : 수입밀로 만든 밀가루 vs 콩가루
밀가루 속 개미 실험 2 : 수입밀로 만든 밀가루 vs 우리밀로 만든 밀가루
실험2에서의 국산밀과 수입밀의 비교 실험 동영상
하지만 저 실험들의 디자인은 많이 아쉽죠. 실험 1에서는 밀가루와 콩가루를 비교했고 실험 2에서는 밀가루의 양이 동일해 보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두 밀가루 모두 어떤 제품인지도 알기 어렵죠. 그래서 좀 더 정교하게(하지만 중학생 수준으로) 실험을 해보자고 했습니다. 일단 아래의 다섯가지 샘플을 준비했습니다. 수입밀강력분(백설), 국산밀강력분(해표), 수입밀중력분(백설), 국산밀중력분(백설), 그리고 미숫가루(청오)입니다. 미숫가루는 무농약 제품이고 모두 같은 날 구입한 새 제품을 동시에 개봉해서 사용했습니다.
실험에 사용한 밀가루와 미숫가루들 (모두 같은 날 구입한 새 제품)
강력분과 중력분으로 나눈 이유는 혹시나 성분에 따른 차이가 있나 보려는 의도였지만, 국산밀로 만든 밀가루나 수입밀로 만든 밀가루의 성분이 동일하지는 않았습니다. 강력분의 경우엔 국산밀 강력분의 단백질과 지방 함량이 수입밀 강력분의 경우보다 모두 조금 높았지만, 중력분의 경우엔 국산밀 중력분이 단백질 함량은 높고 지방의 함량은 꽤 낮았습니다. 이건 아마 품종의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수입밀로 만든 강력분(좌)과 우리밀로 만든 강력분(우)의 성분표 (단백질과 지방 모두 우리밀 강력분이 조금 더 많네요)
수입밀 중력분(좌측), 우리밀 중력분(우상), 미숫가루 (우하)의 성분표
그리고 무농약 미숫가루의 경우는 모든 재료가 국산이고 무농약 아니면 유기농 제품이었기에 대조군으로 사용해봤습니다. 물론 아예 아무 것도 넣지 않은 것도 네거티브 컨트롤로 했어야 했는데 개미 잡는데 너무 힘을 빼서 포기...ㅠㅠ
위 5가지 제품들을 동시에 개봉해서 어린이 물약 계량컵으로 모두 동량의 밀가루를 취해서(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커피용 플라스틱 컵에 부었습니다. 그리고 뚜껑의 구멍에는 약국에서 사 온 거즈를 대고 테이프로 고정을 시켰습니다. 아예 뚜껑을 테이프로 막으면 공기가 통하지 않아서 문제가 생길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개미를 한 샘플에 4-7마리 정도 투입했습니다. 모두 동일한 수의 개미를 투여하지 못한 것은... 개미를 잡아서 넣기가 너무 어려워서였습니다.ㅠㅠ (이게 약간 문제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건 뒤에 다시...)
다섯 개의 샘플들 (좌측부터 수입강력분, 국산강력분, 수입중력분, 국산중력분, 미숫가루)
개미를 투입하자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났는데 대부분의 개미들이 30분 정도 만에 현저하게 움직임이 둔해지고 한 쪽에 몰려서 허우적 거리는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물론 개중에는 활발하게 움직이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대다수 녀석들은 (심지어 유기농 미숫가루의 녀석들도) 꼼지락 거리기는 하는데 잘 돌아다니지도 않고 허우적대는 모습을 보이더군요. 물론 컵을 조금 건드려주면 대부분 개미들이 움직이고 돌아다니기는 하더군요.
개미 투입 후 30분 정도 지난 후 동영상
그리고 시간에 따라 개미들의 움직임을 체크했는데 한 두 시간 지나니까 샘플에 상관없이 개미들의 움직임이 점점 둔해집니다. 세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움직이지 않는 녀석들이 나오고, 6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거의 대부분 움직이지 않고 간혹 그 자리에서 꼼지락 거리는 녀석들만 조금 있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 한 두 마리(특히 수입밀중력분의 한 마리와 국산밀 강력분의 한 마리)는 여전히 열심히 돌아다니기도 하더군요. 그런데 전체적으로 국산과 수입의 차이는? 없었습니다. 심지어 무농약 미숫가루의 녀석들이 제일 움직임이 둔합니다.
개미 투입 여섯시간 후 동영상
그리고 10시간이 지나자 모든 개미들이 사망하셨습니다. (미안하다, 개미야...ㅠㅠ) 역시 국산밀이든 수입밀이든 상관이 없었고 무농약 유기농 미숫가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것으로 미루어보아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개미들은 고운 분말에 놓이면 죽는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혹시 기문호흡 때문이 아닌가 추측해볼 수는 있겠습니다. (옛 글, 밀가루 속의 개미와 바퀴벌레는 왜 죽었을까??? 참조)
(추가! 아래 Crete 님의 댓글에 나와 있는 위키하우에 따르면 개미가 죽는 이유는 밀을 소화시키지 못해서 위에서 팽창하여 죽는다고 하는군요. 그런데 개미가 밀이나 쌀을 분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조금 의아하네요. 아무튼 밀이든 쌀이든 가루 음식으로 개미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듯합니다.)
물론 이 실험에는 몇가지 문제가 있는데, 가장 큰 문제는 모든 개미들의 상태가 동일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같은 아파트 숲에서 잡아왔지만 크기가 조금씩 다르고 게다가 개미를 잡는 와중에 일부는 약간 상처가 있었을 수도 있었겠지요. 그래서 같은 샘플 내에서도 개체별로 움직임이나 생존 시간의 차이가 크게 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체적으로 샘플에 상관없이 큰 개미가 오래 살았습니다.)게다가 각 샘플별로 동일한 갯수의 개미를 넣지 않았다는 것도 아쉬운 점입니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개미가 고운 분말에서 살기 어렵다는 결론은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농약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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