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린 누군가를 원하며 산다. Anybody!
화제의 영화 <그래비티>를 봤습니다. 너무 많은 호평과 거기에 대한 반감에서인지 혹평도 만만치 않은 영화, 그런 영화는 기대치를 일단 좀 낮추고 봐야하죠. 게다가 유감스럽게도 부산의 IMAX 영화관에서는 <그래비티>를 다 내려서 4DX로 봤습니다. 차라리 그냥 2D나 IMAX를 찾아 볼 걸 그랬다는 생각입니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으므로 주의 바랍니다!)
어떤 극장에서 볼 것인가, 뭐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바로 '우주' 때문이겠죠. 광활한 우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거대한 지구도 하나의 점에 지나지 않을 정도인 그 우주를 감상하려면 화면이 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의 스크린으로 보라는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광활한 우주보다는 지구 표면에서 고작 600km 떨어진 지구 근처의 공간만을 그리고 있습니다.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이 빛의 속도로 4년 넘게 가야 한다는데 지구 표면에서 600km면 이건 그냥 지구죠. 아무튼 제게 이 영화는 광대한 우주보다는 사람의 이야기였습니다.
대다수 재난(또는 조난?) 영화가 그렇듯이 이 영화는 극단의 재난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찾는 한 인간의 이야기입니다. 남편도 없고, 죽어도 기도해 줄 사람도 없고, 게다가 사랑하던 아이를 갑작스럽게 잃은 라이언 스톤 박사(산드라 불록)가 바로 그 사람이죠. 그녀가 지구를 떠나 우주에 나와서 좋아하는 것은 "the silence"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대수롭지 않다고 여겼던 모든 관계로부터 단절된 순간, 공포가 시작됩니다. 그리고는 이야기하죠. "Anybody... please copy!"
적막한 공간에 혼자 남겨진 그녀는 계속 누군가를 찾습니다. 결국 그녀가 간신히 만난 것은 "아닌강"이라는 이누이트 족이죠.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모르고 말도 통하지 않지만 개짖는 소리와 아기 울음 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소통'합니다. 그리고 자기 아이가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하는데 떠벌이 맷 코왈스키(죠지 클루니)가 (환상으로) 나타나서 삶의 힌트를 주죠. 거기에 용기를 내서 결국 지구로 귀환 성공! 한다는 이야기가 이 영화의 줄거리입니다.
<그래비티>를 보고 생각난 엉뚱한 문장이 하나 있는데 "끈 떨어지면 죽는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영화 속의 공포는 광고 카피에 나오듯, 외계인도, 엄청난 무기도, 악당도 아니라 그냥 "끈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계속 뭔가를 붙잡으려고 하죠. 붙잡아야 살 수 있으니까요. 복잡하고 바쁜 일상 속에서 현대인들은 뭔가 내려 놓고 어딘가 고립된 곳을 찾아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낭만적으로 생각하지만 실상 우리들 깊은 곳에는, 그래도 누군가와 엮여지내지 않으면 안되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끈 떨어지면 죽는다...
<로빈슨 크루소>나 <캐스트 어웨이> 등 어떤 환경에 고립된 인간을 통해 우리 삶을 반추해 본 이야기들이 많이 있지만 <그래비티>만큼 극단의 경험을 이렇게 생생한 화면을 통해 보여준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거기엔 러브 라인이나 과거 회상 등의 장면을 넣으라는 제작사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우직하게 오로지 우주 속 1인극의 형식을 밀어붙인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역량이 큰 몫을 했겠지요.
대체 어떻게 촬영한 것인지 궁금한 장면이 많지만 특히 우주복 헬멧을 뚫고 들어가 스톤 박사의 시점을 보여주는 장면은 신기하기 그지 없더군요. 관객으로 하여금 숨 막히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 듯합니다. 다만 우주 공간의 적막함을 가끔 음악이 깨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그게 조금 아쉬웠습니다. 조금 더 숨소리와 적막함이 있었더라면... 영화보다 숨 넘어가는 사람이 있었으려나요?
샌드라 불록은 이제 완전히 "배우"가 된 느낌입니다. 아카데미 수상자에게 무슨 소리냐고 할 수 있지만 점점 그녀가 훌륭한 배우로 변신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즐겁습니다. 원래 안젤리나 졸리가 스톤 박사 역을 할 뻔 했다던데, 그랬으면 그냥 우주 활극처럼 보였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샌드라 불록이였기에 스톤 박사의 이야기가 더 절절하게 다가온 느낌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IMAX든 아니든 한 번 더 극장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엔 맷 코왈스키의 농담이나 우주왕복선, 우주정거장 등의 비주얼에 좀 더 집중해서 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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