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식품공학과(현 생명공학과) 故 오두환 교수님 (1950-1997) 


지금까지 제게 좋은 선생님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그런 분들이 계시지 않았으면 지금의 제가 있지 않겠죠. 하지만 졸업 후에 스승님들을 찾아뵙거나 연락을 드리거나 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여러가지 집안 사정으로 학교 생활이 행복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다시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냥 고등학교 때까지의 시간을 되돌아보는 것 자체가 싫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와서는, 스승이라고 부를 분들이 다 이 세상에 계시지 않아서 찾아뵐 수가 없습니다. 


제 인생에 가장 기억나는 스승님은 오두환 교수님이십니다. 신장이식 수술을 마치고 퇴원하시기로 한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죠. 당시 박사과정 5학기 올라갈 때였는데 그 때 받은 느낌은 '고아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몇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께 죄송하지만, 아버지의 죽음보다도 제겐 더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단언컨대 교수님이 그렇게 갑자기 가시지 않았으면 제 인생도 많이 바뀌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졸업도 그렇게 서둘러 하진 않았을 것 같고, 그렇다면 일본에 가지도 못했을 것 같고, 그랬으면 제 인생은 지금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교수님은 우리 학과 1기 선배님이셨고 그래서 그런지 학과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 강하셨습니다. 그래서 학과를 위해서 일을 하시느라 자기 몸을 잘 돌보지 못하셨고, 2년이나 매주 토요일 병원에서 투석을 받으셨는데 그것도 모두 학교와 학과의 일을 하시느라 미루셨던 것이었습니다. 신장이식 수술도 실은 우리 학과의 연구소 3년차 평가를 마치고서야 받으셨을 정도였습니다. 그 3년차 평가 때 저희 대학원생들도 거의 1주일 내내 학교에서 밤을 새워 작업을 하곤 했는데, '조금만 더 참자!'며 저희를 다독거리시던 생각이 납니다. 지금도 자신의 공동체를 위한 희생이 체득된 분이셨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교수님을 처음 뵌 것은 2학년 1학기 생화학 수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때 생화학에 재미를 붙여서 지금까지 생화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1년 뒤에 교수님 실험방에 들어가서 배운 것들을 아직도 써먹으며 살고 있으니 청년 이후 제 인생의 대부분을 교수님께 빚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교수님 강의가 엄청 화려하거니 재미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 제게 "이선생, 왜 난 강의를 재미있게 못할까?"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는데, 교수님 강의는 곁가지 하나 없이 똑 바로 가는 열차와 같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소에 말수가 많지 않으신데다가 아무래도 교수님은 어려운 분이기 때문에 둘이 있으면 어색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언젠가 저 혼자 학교에서 밤을 새웠는데 새벽기도를 마치시고 일찍 출근하신 교수님께서 "아침이나 먹지." 라고 하시고는 둘이 어색하게 설렁탕인가 우거지 해장국인가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둘이서 한 열마디나 했을라나요? 이상하게 저한테는 석사 때부터 가끔 "이 선생"이라고 부르셔서 그 호칭이 참 어색했던 생각도 납니다. 


오두환 교수님은 학문적인 것 뿐만 아니라 신앙적으로도 참 좋은 선배님이셨습니다. 당시 영락교회 청년부장으로 섬기고 계셨고 알게 모르게 학생들의 신앙활동에 관심이 많으셨죠. 연세기독학생연합이 만들어지고 제가 초대 회장으로 섬길 때 예상치 않게 첫 개강예배에 오셔서 살짝 당황했던 기억도 납니다. 돌아가신 후에 교수님 유고집을 만들 때 둘째를 낳고 겪으셨던 어려움을 통해 신앙을 새롭게 얻으셨다는 간증문을 보고 울었던 생각도 나네요. 


지금 생각해보니 교수님께서 돌아가신 나이가 지금 제 나이입니다. 참, 너무 일찍 가신 것이죠. 그렇지만 그 나이에 교내외의 각종 일과 한국산업미생물학회(현 한국미생물생명공학회) 총무간사까지 하셨으니 참 불꽃처럼 살다가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운 것은 교수님께서 그렇게 가시고 제 박사학위 논문의 균주 이름을 교수님 성함을 따서 두화니엘라(Doohwaniella)로 지었는데 허겁지겁 졸업하자마자 외국으로 나가는 바람에 균주 동정 논문화가 늦어졌고 이후에 다른 유사한 미생물의 이름이 등록되는 바람에 그 이름을 그대로 쓰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과학계에 오두환 교수님의 이름을 하나 정도 남기고 싶었는데 말이죠. 어쩌면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과학계는 몰라도 인터넷에 교수님을 추모하는 페이지가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죠.


이제 저는 스승의 날에 스승님들을 찾아뵙기 보다는 찾아오는 학생들이나 졸업생들을 주로 만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매일 새벽기도 끝나고 바로 출근하신 그 부지런함, 심지어 자기 몸 돌보는데도 소홀하셨던 그 책임감, 언제나 학과의 발전을 생각하셨던 희생정신, 깨끗하고 꼿꼿하면서도 속으로 제자들을 생각해주신 깊은 정을 생각하면 지금의 제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제 논문 감사의 글 마지막이 "열심히 살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라는, 교수님께 드리는 제 약속이었는데 과연 그렇게 살아왔는지 반성이 되기도 합니다. 이 스승의 날에 앞으로 교수님의 제자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도록 다시 한 번 다짐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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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이오매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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