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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순 사건과 같이 읽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바이오매니아 2009. 10. 5. 23:32
저는 아픈 아이가 나오는 프로그램은 못봅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더 그렇게 되었어요. 스포츠와 뉴스빼고 그나마 좀 보는 것이 시사프로그램인데 아동학대나 유괴, 이런 프로그램도 못보겠습니다. (나영양) 조두순 사건이 크게 화제가 되었지만 차마 그 뉴스를 클릭하지 못하겠더군요. 그러고보니 한 번도 자세한 내용을 읽어보지 않은 듯합니다. TV 뉴스에서 피상적으로 본 것 빼고는 말입니다.   

이번 설에 처가에 가는데 책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출발하는 날 아침이었습니다. 무료한 열차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자거나 책을 읽는 일인데, 뭘 볼까 생각을 하다가 집의 책장에서 별 생각없이 책을 하나 집어들었습니다. 누가 산 책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책이 바로 <우행시>, 즉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이 대략 어떤 내용인지는 전에 나온 영화를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영화 주인공도 (이)나영이군요.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평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살고 싶은데 죽어야 하는 사형수와 죽고 싶은데 살아야 하는 사람의 사랑이야기 뭐 그런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딱 펼쳐 들고 보니 이건 아주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게) 노골적인 사형제 반대에 관한, 일종의 목적소설이더군요. 공지영씨가 근자에 천주교쪽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은 듣고 있었는데 이 소설은 더욱 그런 느낌이 강합니다. 

소설의 내용은 뭐 평이합니다. 세상에서 받은 사랑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가족과 세상과 불화를 일삼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형수와, 부족한 것 하나 없이 잘나가는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라서 대학가요제로 가수로 유명세도 누리다가 외국 유학까지 다녀온,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세번이나 자살 시도를 했던 젊은 여교수.  이 두사람이 상대방을 통해서 서로를 이해하고 인생에 대해서 눈을 뜬다는, 어쩌면 신파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KTX 안에서 계속 눈물을 훔쳐야 할 만큼 좋은 구성과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느껴졌습니다. 특히 사형수 윤수의 블루노트는 읽는 내내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때부터 공지영씨는 호불호가 많이 엇갈리는 작가이지만 제가 읽은 공지영 작가의 작품들의 느낌은 다른 소설가들과 달리 평이한 듯 하면서도 뭔가 독특한 매력이 느껴집니다. 

아무튼 책을 읽는 도중에 KTX 천정에 달린 화면에서는 (나영양) 조두순 사건에 대한 뉴스가 자막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 시간 인터넷에는 분노에 찬 사람들이 그런 흉악범들을 찢여죽이는 101가지 방법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겠지요. 솔직히 저 역시 그런 범죄자들을 중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특히 어린이 대상 범죄는 더욱 중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사형제도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니 머릿속이 복잡해 지더군요. 게다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중요한 모티브가 바로 성폭행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형수 윤수는 사형제 폐지론의 적합한 예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윤수는 주범으로 둔갑된 종범이니까요. 물론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 중 하나가 잘못된(?) 판결이기도 하지만 사형제 존치론자들의 주장은 좀 더 나쁘고 좀 더 악랄한 범죄자들이니 말입니다. 

아무튼 개인적으로 우리 작가의 장편소설을 읽은 것이 얼마만인가 싶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밀양> 생각이 났는데, <우행시> 영화도 한 번 챙겨봐야겠습니다. 소설을 읽고 영화를 봐서 실망하지 않은 경우가 드문데 과연 어떨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다시 한 번 이 책이 던진 화두를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가 싶습니다. 



참고로 이 소설에도 "삼양동"이 등장하더군요. 역시 가난한 동네로 나옵니다. 이제는 정식 행정구역으로 부활했지만 제가 살았던 달동네 "삼양동"만 나오면 저는 이유없이 그 책이 좋아집니다. 지금까지 제가 본 책 중에 삼양동이 등장한 6번째 책이 되겠습니다. 삼양동이 등장하는 문학작품은,

황석영의 <어둠의 자식들> 
이동철의 <꼬방동네 사람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이청준의 <낮은데로 임하소서> 
신경림의 시집 <길> 중의 시 "산동네-삼양동에서"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그러고 보니 "삼양동 정육점"이라는 글을 썼던 것이 벌써 10년이 되어가고 있네요. 저를 소개할 때면 읽어보라고 권유하는 글이지만 지금 다시 보면 좀 유치한데, 그래도 저의 정체성을 가장 잘 말해주는 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제 10년이 되어가니 2편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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