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어찌 하다보니 계속 하게 된, 1년 동안 본 영화 정리하는 날입니다. 이게 하다 보니까 7년째가 되었네요.ㅠㅠ 올해는 52편의 영화를 봤는데 지난 2년 동안 40편대에 머물렀다가 간신히 50편을 넘겼습니다. 하지만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그렇게 인상적인 영화가 많지는 않았던 한 해였습니다. 물론 제가 다 챙겨보지 못했기 때문일수도 있죠. 


2017년 제게 최고 영화는 12월 31일 아침까지도 <덩케르크>였습니다. 하지만 한해의 마지막날인 12월 31일에 <1987>을 보고 고민을 거듭하다 올해의 영화로 <1987>을 뽑을 수 밖에 없었네요. 아무래도 2017년이 촛불혁명과 탄핵, 그리고 새대통령 선출이 있었던 한 해였으니까요. 호사가들은 386 세대가 뽕 맞는 영화라고 하던데, 저는 오히려 흔한 후일담 영화처럼 보이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그 영화의 주요 배역에서 386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이한열 열사 말고는 거의 없고, 학생들의 투쟁만을 그린 영화도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당시엔 역사의 한 꼭지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지금 어떻게 변절(?)했는지 생각해보게 만들어주지요. 저는 이 부분이 오히려 좋았습니다. 역사의 진보는 순수한 선인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다만 여성이 수동적이고 비중이 낮다는 비판은 수긍 가는 면이 있습니다. 


<1987>에 대해서는 따로 긴 이야기를 쓰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만 감독의 속임수(?)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예고편에선 마치 하정우와 김윤석의 연기 대결을 그린 것처럼 해 놓고는 알고 보니 그들도 그저 그 시대의 한 명으로 그린 것이죠. 결국 이 영화는 주인공이 없는 영화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모두가 주인공인 영화죠. 그 한사람 한사람의 역할과 노력이 합력해서 선을 이룬 역사가 주는 감동이 있습니다. 물론 제 생각엔 이 영화 제목을 <1987상(上)>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1987하(下)>에는 양김의 분열과 지역감정의 광풍으로 노태우가 당선되는 역사가 있었으니까요. 

올해의 영화 1987올해의 아까비


<1987> 때문에 1년 내내 제일 인상적인 영화였던 <덩케르크>가 뒤로 밀렸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는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였습니다. 처음 봤을 땐 내용도 잘 모르고 이게 뭐지, 하다가 뒤통수를 세게 맞았고, 극장에서 두 번째 보니까 여러가지 숨은 장치들과 시간의 묘미들이 다 새롭게 보이더군요. 그리고 2017년 극장에서 가장 많이 울었던 작품은 최승호 감독(현 MBC 사장님!)의 <공범자들>이었습니다. 누군가는 그 동안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뭐했냐, 고 힐난하기도 하지만 저는 그 인고의 세월을 버텨준 사람들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2017년을 흔든 주제인 '여성과 페미니즘'을 흥겹게 그린 <히든 피겨스>와 아직 정식 상영을 하지 않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만 개봉한 <당신의 부탁>이 올해 Top 5 안에 들었습니다. 마지막까지 Top 5 안에 넣을까 말까 고민했던 영화는 <스파이더맨: 홈커밍>이었는데, 제가 마블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음에도 가장 유쾌하게 본 영화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부탁>이 더 낫지 않나 싶네요. 


반대로 올해 최악의 영화는 비행기 안에서 봤던 장이모우의 괴작 <그레이트 월:장성>이었습니다. 장이모우 감독에 맷 데이먼 주연이라길래 기대하고 봤다가 황당 그 자체였네요. 이게 중국 인민영화란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구요. 부산영화제에서 봤던 <산책하는 침략자>도 기분 나쁘고 뭐하자는 건지 잘 모르겠는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어떤 분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가장 좋았던 영화라고 하시던데, 아마 제가 영화보는 눈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재작년 <마녀배달부 키키>도 그랬는데 <미녀와 야수>도 굳이 실사판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나 싶었구요.


2017년엔 좋은 연기가 많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당신의 부탁>의 임수정씨였습니다. 청소년 자녀를 둔 엄마의 역할을 맡아 그 내면의 깊이를 잘 보여줬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2017년은 그렇게 눈에 띄는 신인들이 기억나지 않는 해입니다. 가장 인상적인 배우는 이상희씨로 <아이 캔 스피크>에서 족발집 주인으로, 그리고 <당신의 부탁>에서는 임수정씨의 친구로 매우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독립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분을 신인이라고 할 수는 없겠죠. 성유빈(아이 캔 스피크, 살아남은 아이)과 윤찬영 (당신의 부탁) 등이 그래도 가장 기억나는 신인이 아닐까 싶네요.  


2018년은 기억에 남는 영화가 좀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사회도 2017년처럼 다이내믹 하지 않고 마음이 평안할 수 있었으면 좋겠구요. 이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모든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의 가장 인상적인 연기 - 임수정


 


2017년 올해의 영화 : <1987>   


최우수감독상 - 장준환 (1987) 

여우주연상 - 임수정 (당신의 부탁) 

남우주연상 - 송강호 (택시운전사)

여우조연상 - 염혜란 (아이 캔 스피크) 

남우조연상 - 김해곤(아수라) 

아차상 - <덩케르크>, 설경구 (불한당), 나문희 (아이 캔 스피크), 

미술상 - 군함도 

음악상 - 아수라 OST  

실망상 - 군함도, 옥자 

올해의 발견 - 하마베 미나미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이상희 (아이 캔 스피크, 당신의 부탁) 

하마베 미나미 - BIFF에서



2017 Best 5 movies 


1. 1987

2. 덩케르크

3. 공범자들

4. 히든 피겨스 

5. 당신의 부탁 



2017 Worst 3 movies 


1. 더 그레이트 월:장성 

2. 산책하는 침략자

3. 미녀와 야수(실사판) 



아래는 2017년 동안 본 영화들(가나다순)과 제 나름대로의 별점입니다.


1987 ★★★★☆ 돌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 

걷기왕 ★★★ 독립영화의 한계, 심은경의 한계 

검사외전 ★★★ 쇼생크 탈출로 시작해 어퓨굿맨으로 끝나는데 비교가 안된다.

공각기동대:고스트 인 더 쉘 ★★★ 속편 나오기 쉽지 않을 듯

공범자들 ★★★★ 하염없이 눈물과 분노가 흐른다

공조 ★★★ 현빈의 멋짐으로 모든 걸 상쇄한다. 

군함도 ★★★ 하던 거 합시다!

그녀의 인생은 잘못이 없어 ★★★ 일본의 '그 사건' 트라우마는 아직도 계속된다 

나라타주 ★★☆ 사랑의 순수함과 찌질함을 골고루 보여준다. 

남한산성 ★★★☆ 소설을 소설처럼 영화화

너의 이름은. ★★★☆ 여러 장르의 이색적인 무스비(結び)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 제목은 낚시고 매우 얌전한, 달달한 청춘 로맨스 "이끼로" 영화

당신의 부탁 ★★★★ 낳은 엄마, 기른 엄마, 맡은 엄마, 미혼모, 입양한 엄마 등 엄마 퍼레이드

대립군 ★★★ 좋은 재료로 평범한 요리를 만들다

대장 김창수 ★★☆ 10부작 드라마를 두시간에 우겨 넣은 느낌

그레이트 월 (장성) ★ 이런 괴작을 봤나! 올해의 worst 예약!

더킹 ★★★ 너무 많은 것을 한 영화에 담았다 

덩케르크 ★★★★☆ 예술하나 싶다가 뒤통수를 때린다

데드풀 ★★★☆ 조금만 더 알아들었으면 별 반 개는 더 줬을 듯.

롤러코스터 ★★★ 한 방은 없지만 새롭고 엉뚱하다. 

몬스터파크 ★★☆ 좀비와 흡혈귀의 싸움을 인종과 사회문제로 엮은 낯선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 ★★☆ 굳이 실사로 만들 이유를 모르겠다.

미씽:사라진 여자 ★★★☆ 울지 말고 사죄하고 연대했으면 하는 아쉬움

불한당 ★★★☆ 트위터를 보고 영화를 평하지 말라!

산책하는 침략자 ★★ 전성기 이후의 곽재용 영화같다. 

살아남은 아이 ★★★ 자녀를 잃은 부모가 겪는 지옥도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 성실한 나라는 이상한 나라

스파이더맨: 홈커밍 ★★★★ 우울한 소년에서 발랄한 소년으로의 전환

스플릿 ★★★ 내기 볼링이라는 소재 빼고는 거의 모든 게 평범하다. 

신비한 동물사전 ★★★☆ 해리포터보다 이해는 쉽다.

싱글라이더 ★★★ 기러기 하지 마라, 워킹 홀리데이 가지 마라

아수라 ★★★☆ Satan Your Kingdom Must Come Down

아이캔스피크 ★★★☆ 잘 빠지진 않았지만 울림은 있다2

엘리시움 ★★★ SF에 신자유주의 미래에 대한 경고를 우겨 넣다

옥자 ★★★☆ 진보의 늪에 빠진 봉준호

위대한 소원 ★★★ 어디서 나타난 똘끼충만인가!

인턴 ★★★☆ 어떻게 늙을 것인가

자객 섭은낭 ★★☆ 풍경화를 보려고 영화를 보는 건 아니다.

조작된 도시 ★★☆ 게임과 영화는 다르지 않겠습니까?

침묵 ★★★ 회장님의 참사랑이 종교적으로 승화한다 

캡틴 아메리카:시빌워 ★★★☆ 성실한 캡틴에서 떼거지 무비로!

컨택트 ★★★ 외계인보다 시간 묘사가 흥미롭지만 선택은 납득이 안된다.  

콘택트 ★★☆ 너희가 외계인을 믿느냐?

쿼바디스 ★★★☆ 한국 기독교에 대한 조종

탐정 홍길동:사라진 마을 ★★★ 꼬마애 덕분에 별 반개는 더 줌

택시운전사 ★★★☆ 잘 빠지진 않았지만 울림은 있다.

특별시민 ★★★ 얌전한데다 정치 혐오까지 살짝 엿보인다

파운더 ★★★☆ 미국 자본주의는 어떻게 망하는가!

판도라 ★★★ 조금만 덜 지르고 조금만 더 진중했으면

프리즌 ★★★ 뭔가 막 짬뽕인데 안타깝다.

하루 ★★★ 뭔가 말이 안되는데 결말은 의미가 있는 듯

히든피겨스 ★★★★ 그 때 그들이 있었다. 


과거의 연말 결산이 궁금하시면 여기! 


2016년에 본 영화들 그리고 나만의 시상식6

2015년에 본 영화들 그리고 나만의 시상식5

2014년에 본 영화들 그리고 나만의 시상식4

2013년에 본 영화들 그리고 나만의 시상식3

2012년에 본 영화들 그리고 나만의 시상식2

2011년에 본 영화들 그리고 나만의 시상식!



Posted by 바이오매니아

2017년이 갔습니다. 올해 연말은 광안리와 해운대의 바닷가에서 보냈네요. 

꼬막정식집 앞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엄청난 건물에 올라가 봤습니다. 버튼 찾다가 시간 다 갔다는...


엄청난 건물 31층에서 찍은 마린시티 야경


1월 1일 오후엔 미친척하고 경관이 좋은 호텔에 갔습니다.


1월 1일 새해 첫 날 슈퍼문이 떴네요.





광안리 백사장에 시가 흐릅니다


해가 뜹니다. 새해의 해는 아니고 1월 2일 ㅎㅎ







이제 2018년을 열심히 살아야죠.


2018년은 좀 더 느긋하고 여유롭고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사랑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두들 행복하세요! 

Posted by 바이오매니아

<솔직한 식품> 책 내고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아서 여름 방학까지 약간 외도(?)를 했습니다. 간간히 강연이나 방송 출연 같은 것을 좀 한 것이죠. 그 중에서 최근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 (그알싫)에 출연했습니다. 솔직히 방송 출연은 부담스러워 몇 번 거절한 경우도 있었는데 그알싫은 냉큼 오케이를 했습니다. 물론 유승균 PD와 부산에서 만나서 면접을 보고, 서울에서 한 번 더 만나서 최종 컨펌을 받는 등 시간이 걸렸지만 제 마음 속으로는 이미 오케이를 했죠. 그 이유는 제가 이 팟캐스트를 좋아하고(구독하는 3가지 팟캐스트 중 하나), 팟캐스트라는 매체에 큰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방송은 대부분 정해진 포맷이 있고 거기에 제 이야기를 맞추는 것이라면 팟캐스트는 좀 더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


첫 주제는 스테비오사이드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제가 주제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검색어 1위에 스테비아가 올라간 것을 봤거든요. 방송은 두 주에 걸쳐서 나갔는데 사실 한 주치로 준비했다가 이야기가 길어져서 2회 분량으로 나눴습니다. 제 주관적인 감상으로는 첫번째 주 것은 조금 덜 재미있고 두번째 주 이야기가 좀 더 나은 것 같은데 그게 방송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튼 과거 스테비오사이드 사건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 주시기 바라고 여기에선 몇가지 뒷이야기와 A/S를 해보려고 합니다. 



238c. 식품공학 덕질기:소주와 스테비오사이드(2/1) 팟빵, 유투브, itunes 


239c. 식품공학 덕질기:소주와 스테비오사이드(2/2) 팟빵, 유투브, itunes  



일단 제가 말을 제멋대로 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소위 하이퍼링크형 말버릇(문장을 끝내지 않고 다른 문장으로 건너뛰는 말버릇)과 최순실형 말버릇(이런, 저런, 그런, 그렇게 이렇게, 저렇게의 과용)이 있더군요. 딴지 김어준 총수가 자주 하는 말로 유시민 작가 같은 분들은 강연 녹음을 풀면 주술 구조가 딱딱 맞는다고 하죠. 저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데서 듣는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게다가 몇몇 문장은 완전 잘못 이야기해 버렸습니다. 예를 들어 단맛을 어떻게 재느냐 이야기하다가 "만약에 기계로 재지 않았으면, 184.5배 이렇게 나오지 않았겠습니까?"라고 말했는데 "기계로 쟀으면"이 옳은 표현이었죠.ㅠㅠ


그리고 결정적으로 진행자들과의 호흡이 부족했습니다. 중간 중간 들어오는 재미있는 멘트(이게 없으면 방송이 재미가 없죠)에 제대로 주고 받는 반응을 못하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스토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멘트가 나올 때 다른 생각을 좀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멘트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있구요. 솔직히 1부 앞의 미드 하우스 이야기는 무슨 뜻인지 제가 잘 이해를 못했습니다. 


끝으로 탈리도마이드나 가습기 살균제의 문제를 끝에서 이야기한다고 해놓고 하지 않았습니다. 살짝 했는데 편집된 것도 같은데 뭐 대단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일단 저런 사건은 매우 비극적이지만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사건이고 식품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탈리도마이드는 약과 관련된 사건으로 저 사건을 계기로 약품의 안전성은 훨씬 더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는 이야기가 좀 복잡한데 가장 큰 헛점은 호흡독성을 무시했던 것이었죠. 하지만 거의 모든 식품은 일단 구강섭취라는 동일한 방식으로 체내로 들어오고 소량 사용하는 첨가물이 아닌 대부분의 식재료는 인류가 먹어오던 것들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습니다. 스테비오사이드도 파라과이 사람들이 먹어오던 재료였구요. 


그리고 방송 내용에서 몇가지 부정확하거나 오해의 소지를 바로 잡자면, 국회의원들이 국감에서 문제제기 하는 것이 무조건 다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점, 그리고 후발 소주 업계가 다 스테비오사이드를 반대하는 마케팅을 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대부분의 주류업계는 스테비오사이드의 안전성을 옹호했다는 점, 마지막으로 인사이더 월드라는 매체가 두번째 한 반론이 소주에서 스테비오사이드 배당체가 잘라진다는 것은 아니고 스테비오사이드가 해롭다고 다시 주장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오해가 없으셨으면 합니다. 


사실 인공감미료는 꼭 10년 전 제가 신라대 공개강의할 때 했던 내용으로 첫번째 슬라이드가 바로 아래 그림이었습니다. 아무튼 제게는 다른 방송보다 훨씬 재미있는 경험이었는데 들으신 분들은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이상으로 방송 후기를 마칩니다.


10년 전 공개강의 첫 슬라이드 (당시엔 스테비아는 없었는데 후에 추가)


[덧붙여서] 1편에서 홈쇼핑 이야기 하다가 보통 남편들이 홈쇼핑 채널을 지운다는 표현 때문에 기분 나빠 하신 분들이 계시던데 제 경우는 아내가 시켜서 지우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TV 홈쇼핑에서 뭔가를 구입한 적이 딱 한 번 있고(스톤코팅 프라잉팬 5종 세트), 제 아내는 단 한 번도 없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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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기 저기서 용혈성요독증후군(HUS, Hemolytic Uremic Syndrome), 소위 '햄버거병'에 대한 뉴스와 관련 의견들이 들려옵니다. 먼저 어린 아이가 아프다는 것 자체가 너무 안타깝고 원인이 잘 밝혀지길 바랍니다. 하지만 이런 식중독 사건의 원인을 밝히는 길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 관심을 많이 받는 기사가 하나 있습니다. "HUS가 햄버거병이 아닌 까닭"이라는 기사입니다. 이 기사를 보고 여러 식품 또는 의학 관계자들이 이번 사건이 햄버거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SNS에서 하고 있기도 합니다. 저는 시간을 갖고 면밀히 조사해보지 않고는 그 원인을 모른다는 입장이지만 이 기사에서 이야기한 2011년 독일의 HUS 사례는 이번 국내 사건과 다른 케이스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즉 독일의 사례를 보면 HUS가 꼭 햄버거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은 맞지만 그렇다고 이번 국내 사건이 햄버거 때문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성급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련한 몇가지만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1. HUS를 햄버거병이라고 부르는 것은 타당한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저는 이 병을 '햄버거병'이라고 부르는 것, 그리고 햄버거를 먹네 마네 하는 논쟁이 불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햄버거병'보다 훨씬 더 많은 사상자가 많이 나는 비브리오 패혈증을 어패류병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주로 닭고기 먹고 걸리는 캠필로박터 식중독을 닭고기병이라고 부르지도 않고 미국에선 시금치로 인한 식중독도 흔한데 시금치 병이라고 부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왜 오염된 햄버거 패티를 먹고 생겼던 병은 햄버거 병이라고 부르는 것일까요? 아마도 햄버거는 정크 푸드, 라고 낙인이 찍혀 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낙인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사실 HUS는 꼭 덜 익은 햄버거 패티 때문에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HUS는 장출혈성 세균에 오염된 식품 어느 것이나 먹고 발생할 수 있는 질병입니다.


2. HUS는 O157 대장균 때문에 생기는가?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장출혈성세균 중에 장출혈성 대장균(EHEC) O157:H7이 제일 유명하긴 하지만 EHEC가 O157:H7만 있는 것이 아니고 매우 다양한 종류가 존재합니다. 윗 기사에서 언급한 독일의 대규모 식중독은 EHEC O104:H4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꼭 대장균이 아니라 Shigella dysenteriae와 같은 다른 세균에 의한 HUS도 있습니다. 즉 HUS라고 다 O157 식중독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참고로 2011년 독일의 사례는 이전에 발생한 식중독과는 여러가지 면에서 양상이 다릅니다. Improving Food Safety Through a One Health Approach: Workshop Summary을 참고해서 살펴보면 감염자들의 나이가 많습니다. 보통 장출혈성대장균 감염과 HUS는 어린 아이들에게 주로 발생하는데 독일 사건은 90% 이상이 어른들에게서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과거 독일의 케이스는 이번 사건과는 다른 원인일 가능성도 높다고 생각합니다.  



2011년 독일 사례


3. 햄버거를 먹고 두시간 만에 설사를 했으니 햄버거 때문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윗 기사에서 제일 걸렸던 것은 "HUS의 원인균인 O-157에 감염되면 3∼8일의 잠복기가 지나야 증상이 나타난다."는 구절이었습니다. 물론 일반적으로 식중독은 먹자마자 바로 문제가 일어나진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꼭 며칠씩 잠복기가 필요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번 사건이 O157 식중독인지도 불명확하구요.


사실 이번 사건의 최초 보도는 KBS에서 했던 "햄버거 먹고 신장장애 2급…맥도날드 “책임 없다”"는 기사같은데 그 보도를 보면 대충 시간대별 사건 전개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보도는 6월 20일자23일 수정된 것 두 개가 있고 지금은 정확한 사건 전개 시간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아마 초기 보도때 아이가 아픈 경과와 증상에 있어서 정확하지 않았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제 기억과 기사를 통해 추정해보면 작년 9월 25일 늦은 점심으로 햄버거를 먹었고 두시간 쯤 지나서부터 배가 아프다고 했고 다음 날(26일) 아침에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았고 또 하루 지나서(27일) 변에 피가 섞여 나왔고 28일 새벽 대학병원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즉 두시간 만에 혈변이 나왔다거나 설사를 했다는 이야기는 명확하지 않고 그걸 갖고 햄버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오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런 사건은 시간대별 경과가 매우 중요한데, 사실 그걸 정확하게 기록하고 보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마 햄버거를 섭취한 시간과 의료 기록이 있을테니 그건 명확하겠지만 사실 언제부터 아팠다는 부모님의 진술은 기억에 의존하기 때문에 오락가락 할 수도 있겠죠. 그래서 이런 것을 기사화할 때는 그 부분을 명확하게 해주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4. 300명이 먹었는데 한 아이만 아플 수는 없다?


이것도 역시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 패티 하나만 보관이 잘못되어 있었든지 혹시 하나가 혼자 떨어져 나와 있었는데 그냥 같이 조리를 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햄버거 때문이 아닐 가능성도 있고,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전부 가정입니다. 제가 그걸 조사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조사하시는 분들이 더 명확하게 잘 하시겠죠. 다만 불명확한 언론 기사 내용만을 갖고 회사 잘못이다, 아니다 라고 논쟁(?)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매번 하는 이야기지만 정말 위험한 음식은 햄버거나 어패류가 아니라 위생적으로 생산, 유통, 보관, 조리하지 않은 모든 식품입니다. 



사실 식중독과 관련해서 저는 아픈 추억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포닥 때 저희 연구실 아이들 8명 정도와 함께 학교 앞에서 점심식사를 했는데, 단체 식중독에 걸렸습니다. 깨진 달걀로 만든 계란말이를 먹고 8명 중 7명이 병원 신세를 졌었죠. 그 때도 배가 아픈 시간들이 다 달랐습니다. 가장 빠른 친구는 서너 시간 뒤부터, 가장 늦은 친구는 다음 날 새벽에, 심지어 병원에 가지 않은 학생도 1명 있었죠. 그래서 그 친구만 그 다음 날 아침의 랩미팅에 참석하고 나머지는 전부 병원에 있었다는...ㅠㅠ 그렇지만 사실 성인들의 경우 대부분의 식중독은 그냥 하루 이틀 설사하고 낫기 때문에 그 원인 식품과 원인균이 뭔지를 명확하게 밝히기가 어렵습니다. 저희는 다행히 단골 식당 아저씨가 순순히 자백을 하셔서 원인을 알았지만요. 


아무튼 이번 사건의 원인이 잘 밝혀지고 아이도 건강을 되찾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쉽지는 않을 듯합니다만 그래도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줄 요약


1. 사건의 보도는 정확해야 한다. (초기 보도는 언제나 오류의 가능성이 있지만)

2. 보도 내용만 갖고 책임 소재를 따지긴 어렵다.

3. HUS를 햄버거병이라고 부르는 것은 엉뚱한 논쟁만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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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멋진 푸드라이터 정재훈 선생님의 두번째 책 <정재훈의 식탐(食探)>을 읽었습니다. 정선생님의 첫번째 책 <생각하는 식탁>이 참 좋았기에 두번째 책도 나오자 마자 바로 사서 읽었습니다. 식탁에 이어 식탐, 뭔가 라임이 맞는 제목 같습니다.^^ 실제로 정기적으로 식탐 모임도 갖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저도 <솔직한 식품> 나온 다음에 한 번 꼽사리 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찍고 보니 좌 <식품에 대한 합리적인 생각법>, 우 <솔직한 식품> ㅎㅎ


제목이 식탐(食貪)이 아니라 식탐(食探)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24가지 음식에 대한 탐구서입니다. 그 탐구는 역사, 맛, 조리, 과학 등등 전분야에 걸쳐 있습니다. 음식에 얼마나 풍부한 이야기가 들어 있는지 알려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죠. 사실 음식의 한 부분에 대한 책은 많아도 이렇게 한 음식에 대해 여러 방면의 이야기를 늘어 놓는 책은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자는 약사로서의 이력답게 해박한 주변 지식과 뛰어난 논문 해독력을 보여주시는데, 여러 음식 관련 연구에 대하여 일반인들이 알아듣기 쉽게 친절하고도 재미있게 설명해 줍니다. 


이 책은 <올리브> 매거진에 2년간 연재했던 글을 모은 것입니다. 그래서 정재훈 선생님의 글을 즐겨 찾아 읽으시는 분들에겐 살짝 새로움이 적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저도 절반 이상은 봤던 글이더군요. 하지만 그걸 4가지 묶음(재료, 음료, 가공식품, 간식)으로 묶어서 한꺼번에 읽으니까 뭔가 정리가 잘 되는 느낌입니다. 아울러 웹페이지를 스크롤해서 읽는 것과는 다른, 책이 주는 맛이 있구요. 


요즘 식품에 관련된 좋은 국내 저자들이 많이 나오고 있죠. 제가 여러번, 심지어 신문 칼럼에서도 추천했던 최낙언 선생님이 논쟁적으로 글을 쓰시는 '푸드파이터'(원뜻은 이 뜻이 아닙니다만)라고 한다면, 정재훈 선생님은 맛깔나는 '푸드라이터'가 아니신가 싶습니다. 이 책에서도 그 맛이 느껴지는 듯해서, 라면을 읽으면 라면이 먹고 싶어 지고, 어묵을 읽다 보면 어묵이 먹고 싶어집니다. 


아래는 책을 읽다가 기억할 만한 좋은 구절들의 일부를 모아 놓은 것입니다.


- 프랑스 보르도 대학교의 와인학 전공 학부생 54명 모두가 화이트 와인에 붉은 색소를 물들여서 만든 가짜 레드 와인에 속아 넘어간 실험 결과 (13쪽)

- 글루텐에 민감하다고 주장한 참가자들이 실제로 글루텐 때문에 불편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기대치에 좌우된 결과 (40쪽)

- 유펜의 심리학자 폴 로진은 어떤 음식을 먹으면 그 음식의 속성이 먹는 사람에게 전달된다는 믿음이 나타남을 보여줌 (52쪽)

- 원추리는 콜히친이 들어 있어서 이 성분을 제거하지 않고 먹다가는 구토, 복통, 설사로 고통을 겪을 수 있음(68쪽)

- 우리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다른 무엇인가의 생명을 희생시켰다는 의미인 것이다. 우리 모두는 지구상의 다른 존재들에게 생명을 빚지고 있다.(103쪽)

- 현대의 과학자들은 알칼리 처리가 영양 면에서도 유익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135쪽)

- 20세기 중반에는 섬유질을 제거한 밀가루로 만든 시리얼이 주류가 되기도 했다. (152쪽)

- 신야 히로미는 "우유는 원래 송아지를 위한 것"이라고 했는데 같은 논리로 보면 꿀도 벌을 위한 음식이다.(180쪽)

- 음식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반드시 작품을 파괴해야 한다. (211쪽)



그리고 책을 읽다가 조금 어색하거나 잘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몇 군데 있었는데, 


45쪽의 '유중수형'과 '수중유형'은 유중수적형, 수중유적형이라고 바꾸면 어떨까 싶네요. 적어도 식품분야에서는 대부분 그렇게 쓰는데 다른 분야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47쪽에는 '관련된다.'라는 말 다음에 뜬금없는 따옴표(")가 하나 들어 있습니다. 아마 앞의 것이 빠진 듯합니다.

75쪽에는 100억마리가 전부 살아서 장까지 가도 몸에 있는 100조 마리와 "100만 대 1"의 싸움을 펼쳐야 한다고 되어 있는데, 100억대 100조면 1만 대 1 아닌가 싶네요.ㅎㅎ

    

아무튼 음식과 식품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라고 추천드리고 싶고 아울러 자매품 <생각하는 식탁>도 같이 읽어보시면 더 좋을 듯합니다. 더운데 밖에 나가서 고생하지 마시고 책 한 권 읽으시죠! 


[덧붙여] 읽다가 깜놀했는데 제 이름이 살짝 등장합니다. 전에 올리브매거진 연재 글을 읽고 블로그에 코멘트를 달았던 것인데 그 의견에 대해 꼼꼼하게 각주를 달아 놓으셨고 꼭 필요한 것이 아님에도 본문에 "정제" 올리브유라고 수정을 하셨더군요. 꼭 제 이름이 언급되어서가 아니라 저는 이런 꼼꼼함이 좋습니다.  





Posted by 바이오매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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