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포탈 사이트 대문에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들어간 치약 11종에 대한 긴급 회수 뉴스가 걸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우린 이런 뉴스를 보면 자연반사적으로 분노하는 습관이 있는데 한 번 잘 따져보도록 하시죠.


사진 출처 : jTBC 뉴스(http://news.jtbc.joins.com/html/445/NB11320445.html) 캡처



1. 치약에서 검출된 가습기 살균제 성분은 무엇인가요?


치약에서 검출된 성분은 메칠클로로이소치아졸리논과 메칠이소치아졸리논 혼합물(CMIT/MIT) 입니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문제가 된 성분은 소위 구아디닌(guanidine) 계열의 화학물질인 PHMG(polyhexamethylene guanidine)와 PGH(Oligo(2-(2-ethoxy)ethoxyethyl guanidine chloride)입니다. 현재까지 PHMG와 PGH의 호흡독성은 거의 확실히 밝혀졌지만 CMIT/MIT의 유해성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안전하다고 하기 보다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정도로 하지요. (알러지에 대한 문제 제기가 늘어나 최근에는 유럽도 점점 사용량을 줄여가는 추세이고 심지어 퇴출되는 분위기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 문제제기는 알러지에 대한 것은 아니죠.)


2. CMIT/MIT를 치약에 넣어도 되는가요?


우리나라에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기사에 보시면 "미국에서는 치약의 보존제로 CMIT/MIT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유럽에서는 이 성분을 최대 15ppm까지 사용할 수 있게 규정돼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세계적으로 사용해도 되는 물질로 인정받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아마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없었다면 머지 않은 미래에 우리나라에서도 허가가 났을지도 모릅니다.


3. 그래도 국내에선 사용하면 안되는 것 아닌가요?


맞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치약 보존제로 벤조산나트륨, 파라옥시벤조산메틸, 파라옥시벤조산프로필만 사용할"수 있기 때문에 허가되지 않은 물질이 들어간 것은 잘못이고 그러니 회수하는 것이 맞습니다. 게다가 국정감사 시즌이니 더욱 긴급히 회수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치약제조회사가 이 물질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치약에 들어가는 계면활성제에 이 물질이 소량 함유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4. 치약 속에 얼마나 들어가 있었나요?


윗 기사에 보시면 "회수 대상 11개 제품에는 CMIT/MIT가 0.0022∼0.0044ppm 함유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유럽의 기준(15ppm)보다 약 수천 분의 1 수준으로 나온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식약처에서도 발표를 하면서 "치약 제품의 특성상 유해성은 없다"고 했답니다. 


5. 유해하지도 않은데 왜 긴급회수를 하나요?


그건 아마도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전국민의 관심사이고 그 성분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크기 때문에, 극히 미량이라도 법적인 허용대상이 아닌 물질이 들어 있는 제품을 골라내기 위해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혹시 모르니까 조심하자는 뜻이겠죠. 전 오히려 식약처가 발빠르게 대응한 것은 칭찬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추가: 이 문제제기를 처음 한 분은 정의당 이정미 의원인 듯하고 이에 대해 업체가 먼저 회수 결정을 했고 그 때서야 식약처가 이 사실을 인지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6. 치약에 보존제는 왜 넣나요?


원래 치약은 한 번 사면 오래 동안 계속 개봉한 채로 사용하기 때문에 균에 오염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보존제는 그걸 막기 위해서 넣는 것이죠. 사실 저 뉴스를 보면서 혼자 살짝 웃었는데, 우리나라에서 허용되고 있다는 "파라옥시벤조산메틸, 파라옥시벤조산프로필"의 이름이 뭔지 아십니까? 바로 파라벤입니다. 2년전 역시 국감 시즌에 발암물질 어쩌고 크게 논란이 되었던 바로 그 물질 말입니다. (그런데 왜 파라벤이라고 쓰지 않았을까요? ㅎㅎ) 벌써 다 까먹으셨죠? 그럼 옛 포스팅을 읽으시면서 복습해 보시죠.^^ 


[팩트체크] 커지는 '치약 공포증'…발암물질 논란, 진실은?





7. CMIT/MIT는 정말 안전한가요?


솔직히 그걸 누가 장담하겠습니까마는 지금까지 많은 제품에서 사용해왔던 것이고 섭취나 피부 접촉으로 인한 독성은 다른 살균제들보다 적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였습니다. 심지어 유럽에선 친환경 세제에도 들어간다고 하더군요. 얼마전 화장품과 물티슈에서 이 성분들이 검출되어 회수된 뉴스가 난 적도 있는데 그 때도 적발된 59개 제품 중에 국내 제품은 18품목이었던 반면 수입 제품은 41품목으로 외국 제품이 더 많았습니다. 그만큼 외국에서 많이 쓰고 있다는 것이겠죠. 물론 그 사실이 절대적 안전성을 보장하진 못합니다만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근거는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PHMG도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물티슈에 사용했던 물질입니다. 그리고 저런 보존제를 넣지 않으면 기사에서 처럼 물티슈에서 엄청난 수의 세균 (40만 CFU/g)가 검출되기도 하는 것이죠. 그럼 넣는 것이 좋을까요, 빼는 것이 좋을까요? 



결국 물질의 안전성은 노출량과 노출 방식이 중요한데, 치약의 경우는 우리가 삼킬 수 있으니까 더 걱정이 되겠지만 호흡하는 것이 아니고 그 양도 매우 적기 때문에 그렇게 염려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조용히 교환하시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바이오매니아

트랙백 주소 :: http://biotechnology.tistory.com/trackback/1202 관련글 쓰기

세 권의 책이 동시에 집으로 날아 왔는데 이 책을 집어 든 이유는 제목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남자가 지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성소(?)가 싱크대 앞이기 때문이었죠(저는 정말로 설거지를 좋아합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설거지만 좋아합니다. 더 정확하게는 설거지 하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가뜩이나 여혐이니 '미소지니'니 하는 논란이 시끄러운 판국에 한국 기독교계에 가사와 육아에 관한 남성이 여성을 이해하자는 책이 나왔구나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저자의 이름을 보니 정신실 선생님. 최근 기독교 도서 분야에서 활약하시는 여성 작가시죠. 그러자 갑자기 책을 읽을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가뜩이나 남녀차별(?)이 만연한 기독교계인데 뭔가 그걸 정당화하는 내용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살짝 들었던 것이죠. 하지만 들어가는 글을 읽고 흥미가 생겼고 첫 장을 읽고 정신을 차렸고 두번째 장을 읽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새벽 2시 반까지 한 숨에 다 읽어 버렸네요. 

 

이 책 <나의 성소 싱크대 앞>은 보기 드문 에세이입니다. 사실 기독교 서적 중에서 에세이를 읽은 기억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첫 장에 이런 구절이 나오더군요. 

하늘의 삶을 살고 싶지만 내가 서 있는 곳은 언제나 일상이다. 정말 내가 진실로 신앙하고 있다면 그 신앙은 하늘이 아니라 일상에서 빛을 발할 것이다.... 거룩한 시간 안에 오롯이 머물러 있을 때가 아니라 늘 예상 밖의 일들이 벌어지는 일상의 한가운데 말이다.(p14)

이 부분을 읽다가 정신을 차렸습니다. 사실 수 많은 기독교 서적이 나오고 제자 훈련이 시행되지만 일상에서 빛을 발하는 경우를 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죠. 실은 요즘 제가 어떤 지역의 교회를 찾고 있는데 몇몇 교회를 다녀봐도 이런 부분을 강조하는 교회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능력, 기적, 위대함, 등등을 외치는 교회는 많고 이것들 모두 중요한 기독교의 주제이지만 이 시대에 맞는 주제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죠. 그렇게 외치는 분들은 과연 어떤 일상을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구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시골교회 목회자의 자녀로 자라 늦깎이 목사의 아내이자 두 자녀의 엄마가 된 한 자매(사모라는 말을 싫어하시는 것 같아서 ㅎㅎ)의 일상분투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상분투기가 그 동안 읽었던 유명한 저자들의 명저서나 강해설교집보다 저를 사로 잡았습니다. 닌텐도를 사주지 않고, TV를 없애고, 과외를 시키지 않는 등의 신앙적 결단 속에서 겪는 갈등과 고민들은 저의 고민이기도 했고 '레위인 콤플렉스'나 모태 바리새인은 저의 모습이기도 했으니까 말이죠. 

닌텐도를 사 주는 것보다 안 사 주는 일이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학원을 보내는 것보다 안 보내는 일이 훨씬 더 강인한 마음의 힘을 필요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p45)


우리 아이만큼은 성적으로 줄 세우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다짐하건만 일말의 초조함조차 없는 건 아니다. 대한민국 교육이 진보하기 위해서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이 '옆집 엄마'라고. (p118)


대한민국 아줌마들이 모이면 대화 주제의 알파와 오메가는 '애들 공부' 이야기다. 아니면 '애들 공부해서 대학가는 얘기' 또는 '애들 재능을 발견해서 공부해서 대학 가는 얘기'다. 아줌마들이 모이는 곳에 '아줌마'가 주체가 되는 얘기는 없다. 그런 이유로 나는 아이들 학교 엄마들을 사귀지 않는다. (p154)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을 남다르게 사는, 요즘 쓰는 말로 래디컬한 그리스도인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겉으로는 세상과 다르게 사는 그리스도인처럼 보여도 오히려 그 속에 적나라한 갈등이 있고 고민이 들어 있으니까요. 


게다가 이 책에는 단순한 개인의 일상과 연관된 구조적인 문제, 교회와 사회에 대한 신앙적인 고민들도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사실 기독교인의 일상 나눔은 비정치적이어야 하고 논쟁거리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데 이 책에는 그걸 적절히 일상과 함께 드러내고 있죠.

죄악이 관영하고 타락했다는 세상에서조차 용납되지 않는 일들이 교회 안의 목사님께 일어났다 하면 다 이해되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은혜를 가장한 비상식'은 이제 교회 안의 상식이다. (p133)


일상에서 가장 겸손하게 머리를 조아리시던 젊은 목사님이 강대상에만 올라가면 꾸중하고 윽박지르는 무서운 어르신이 되기도 한다.(p81)


하지만 사실 제가 이 책에 빠졌던 이유는 바로 2장에 나오는 시아버지 에피소드(아버님의 소주잔)였습니다. 돌아가신 저희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으니까요. 저희 아버지랑 비슷한 점도 많았구요. '여성보다 더 섬세하고 살뜰하게 아이들을 보살피시는 아버지' 말이죠. 사실 그 아버님 버전의 <나의 성소 싱크대 앞>이 나오면 어떨까요?


아무튼 교리와 경건생활 또는 제자훈련에 관한 책이 기독교 서적의 전부라고 생각해서 기독교 서적에 손이 잘 안가시는 분이 계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다음엔 정말 남자가 쓴 <나의 성소 싱크대 앞>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이거야 말로 요즘 시대에 꼭 필요한 제자훈련이자 신앙인의 모습아니겠습니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바이오매니아

트랙백 주소 :: http://biotechnology.tistory.com/trackback/1201 관련글 쓰기

영화 곡성(哭聲)을 봤습니다. 영화를 보고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게 만드는 영화가 정말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0가지 관점으로 200가지 평이 나올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개봉하고 스토리를 피하기 위해서 SNS마저 조심해서 했는데 아무 정보 없이 보길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내용을 알고 한 번 더 보면 아마 숨은 퍼즐 찾기하는 재미가 있겠지요. 칸 영화제 경쟁부문 갔으면 상받을 확률 99% 였을 듯한데, 아쉽네요. 


(이하는 스포일러 만땅일테니 영화를 보신 분이나 안보실 분만 읽어주세요.^^)


"곡성"은 다양한 측면에서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처음에 이 영화를 볼 때는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미스테리 형사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무당이 나오고 굿을 하면서 엑소시스트 같은 호러물인가 싶었고, 좀 더 지나자 죽었다 살아난 좀비들이 등장하길래 어라, 좀비영화네? 생각했는데 영화가 마칠 때는 아, 이건 종교 영화였구나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홍진 감독의 인터뷰를 봐도 종교 영화에 큰 의미를 둔 것 같습니다. 물론 앞서 말한대로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장르대로 보겠지요. 사실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어떤 장르의 영화로 보느냐에 따라서도 많이 엇갈릴 듯합니다.


물론 종교 영화라는 것은 특정 종교의 프로파간다를 위해 만들어졌거나 특정 종교 교리에 대한 문제 제기 목적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뜻이 아닙니다. 제가 곡성이 종교 영화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믿음(신앙)의 본질을 탐구하는 영화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본질이 "교리에 대한 믿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믿음은 "불확실한 것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 영화는, 비록 엄청 다양한 비유와 상징이 어지러히 널려 있지만, 본질적으로 바로 그 불확실에 대한 믿음과 의심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메인 카피도 그렇죠. "절대 현혹되지 마라." 

"곡성(哭聲)" - 절대 현혹되지 마라

믿음 또는 의심 1. 과학적 해석 또는 그 이상의 어떤 것


한 시골 동네(곡성)에 끔찍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뭔가 피부병(성병?) 증상을 보이던 사람들이 미쳐버려서 사람을 죽입니다. 그 이유는 독버섯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귀신이나 영적인 세계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사건은 이것 뿐입니다. 피부병에 걸려서 버섯을 먹은 것인지 그 반대인지는 모르지만 해법은 피부병을 고치거나 버섯을 못먹게 하는 것일 것입니다. 실제로 환각 증상을 일으키는 버섯들이 있으니 뭐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겠죠. 영화 속의 의사, 한의사, 심지어 신부님도 이 정도의 (지극히 타당한) 해법을 제시합니다. 객관적으로 문제를 볼 수 있는 타자들, 또는 영성 또는 종교성을 잃어가는 현대인에게 이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이런 단순한 의미일 것입니다. 이런 해석만 믿는다면 마지막에 효진이가 온 가족을 죽이는 것은 일광이 굿을 해서나, 악마인 외지인이 저주를 해서, 또는 천사와 같은 무명의 힘이 딸려서가 아니라 제대로 의학적 치료를 받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주인공의 딸이 그 병(?)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원래 경찰인 종구는 사건을 가장 객관적으로 봐야 하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사건의 초기엔 그냥 남일처럼 여깁니다. 그래서 새벽에 전화가 와도 아침밥까지 다 먹고 가는 것이었겠죠. 하지만 자기 딸이 그 병에 걸렸다면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긴 힘들어집니다. 이제 주인공은 그 아픔의 이유와 의미를 찾게 됩니다. 그리고 과학이나 의학으로 설명되는 표면적인 의미 이상의 것을 갈구하게 되죠. 도대체 왜 나와 우리 가족에게 이런 고통이 주어지는 것인지 알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에게 쉽게 답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사건'은 명확해도 대부분의 '의미'는 불확실한 것이 이 세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게 되죠. 


믿음 또는 의심 2. 외지인과 소문


의심스런 사람이 있습니다. 외지인이고 그가 나타난 다음부터 이 마을에 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소문도 좋지 않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몰라도 목격담도 있으니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 까닭이 없다고 믿을만 합니다. 그 사람의 집에 가보니 여러 수상한 사진과 물건들이 잔뜩 있습니다. 아무래도 나쁜놈 같습니다. 


원래 인간은 타자를 의심하기 좋아합니다. 게다가 그는 일본인. 그러니까 더욱 의심하기 좋습니다. 그리고 일단 의심이 마음 속에 들어오면 예전엔 평범하게 보이던 것조차 의심스럽게 보입니다. 원래 우리는 보고 싶은 것을 보는 법이니까요. 사실 이런 의심은 자연적인 것이고 영화의 맨 처음에 부활하신 예수를 의심하는 도마에 대한 성경 구절을 통해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로 주어집니다.


그런데 감독은 모두가 의심하는 순간에 갑자기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 버립니다. 일광(황정민)과 외지인이 굿 하는 장면을 동시에 보여주는데 이게 죽은 사람을 살리려는 또는 그 영혼을 구하려는 의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거죠. 이렇게 외지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의심만 하도록 만드는 존재입니다. 사실 맨 마지막에 부제와의 동굴속 대화 장면이 없다면 외지인은 좋은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믿음 또는 의심 3.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가


반대로 나를 도와주러 온 사람이 있습니다. 일광(황정민)이라는 용한 무당입니다. 그는 집에 들어오자 마자 항아리 속의 죽은 까마귀를 발견하는 신통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돈은 좀 많이 줘야 하지만 아픈 딸을 위해 굿판을 벌여준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버섯 잘못 먹어 그런 것 같지는 않고 귀신이 들린 것 같으니 그 용한 무당을 믿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상한 여자(무명)도 있습니다. 외지인이 나쁜 짓 하는 것을 봤다는 유일한 목격자인데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이상한 여자입니다. 어찌보면 그냥 동네의 정신나간 바보 같기도 합니다. 선인지 악인지 판단이 서질 않습니다.


주인공 종구는 이 세사람 중 가장 의심스런 외지인을 죽입니다. 물론 관객의 눈에는 무명이 외지인을 죽여서 종구의 차에 던져버린 것 같습니다. 아무튼 종구와 그 친구들은 외지인을 죽여서 던져버렸지만 딸의 병세는 호전되는 듯 하다가 다시 이상해집니다. 딸 효진이가 온 가족을 살해하고 있을 것 같은 순간, 일광은 가족을 살리려면 빨리 집으로 가라고 하는데 무명이 나타나 닭이 세 번 울기 전에 가면 너도 죽는다고 합니다. 종구는 누구를 믿어야 할까요?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일까요?


물론 전지적 시점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누가 선이고 악인지 영화의 결말을 통해 다 알게 됩니다. 일광은 외지인과 한 패인 악이고 무명은 선입니다. 하지만 그 절체절명의 순간 속에 있는 종구는 그걸 알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종구는 누구를 믿어야 할까요? 나를 도와주러 온 일광일까요, 아니면 불쑥 불쑥 나타나서 힌트만 주고 사라지는 무명일까요? 내 딸이 병에 걸린 것이 그냥 우연(미끼를 물어 분 것)이라는 일광일까요, 이유가 분명하다(종구가 의심을 했고 사람을 죽였기 때문)는 무명일까요? 그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믿고 선택해야 할까요? 저는 이 질문이 가장 중요한 질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그 답을 알지 못하고 그래서 때로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나중에야 그 의미를 알게되죠. 즉 감독은 절대 현혹되지 말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내가 현혹되고 있는 건지 조차도 잘 모르고 산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를 불경한 종교 영화라고 한다면 바로 이 지점에서 네가 믿고 있는 것도 어쩌면 허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반대로 신성한(?) 종교 영화라고 한다면 때로는 침묵하는 것처럼 보여도 삶의 문제의 의미를 알려주고 우리 주변에서 바른 선택을 하도록 계속 돕는 선한 존재(신)가 있고 때때로 잘못 판단하더라도 그 선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역설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겠죠. 물론 리차드 도킨스 같은 사람들은 The mushroom delusion 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ㅎㅎ  


아무튼 제게 영화 "곡성"은, 때로는 확신 과잉처럼 보이는 이 시대에 인간의 인식과 그 한계,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이 선택하는 믿음과 의심에 대해 생각해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물론 좀비물이나 호러물은 무서워서 잘 보지 않기 때문에 엄청 좋아하긴 힘든 영화지만, 이렇게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었다는 측면에서 볼 가치가 충분히 있는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 


[뱀발들]


1. 김환희양의 연기는 아동 학대 연기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엄청납니다. 여우조연상으로 천우희씨와 다툴지도... 그런데 이 영화를 봤을까요? (김환희양의 부모님과 본인이 독실한 기독교인이라 매 촬영마다 기도하면서 했다고 합니다. 전체 줄거리도 모르고 장면 장면을 어머님께 설명받고 찍었다고...^^)

2. 일본의 신화까지 뒤져가며 숨겨 놓은 미끼를 찾는 해석이 여기저기 판을 치는데 사실 나홍진 감독은 별 의미 없이 던져 놓은 것들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미놀타 카메라를 쓴다며 일본 어쩌구 하는데 정작 감독이 사용하고 싶었던 카메라는 독일제 라이카였다는데 비싸서 미놀타를 썼다고.ㅎㅎ 

3. 황정민은 1시간이 지나야 등장하고 천우희는 몇 씬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포스 작렬! 영화엔 없어도 천우희는 계속 외지인과 싸우고 일광과 싸우고 있었던 것일 겁니다.ㅎㅎ

4. 영화가 어둡고 피칠갑에 피부병 분장이 많아서 누가 누군지 잘 보이지 않습니다. 

5. 15세 관람가를 받아낸 능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뭐 좀비영화라고 본다면 15세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만...게다가 400만이 넘게 보다니...ㅎㅎ

6.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후로 이렇게 자연이 아름답게 기억나는 영화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달마는...>은 자연만 기억난다는 것이 흠. 

7. 까딱하면 잘못 보고 잘못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영화입니다. 감독이 낚시질 했다고 많이들 그러는데 제가 보기엔 나홍진 감독이 헷갈리게 만들어 놓았지만 의도하는 바는 분명하게 표현했다는 생각입니다.  

8. 이 영화를 보고 계속 생각난 것은, 의외로 세월호 사건이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바이오매니아

트랙백 주소 :: http://biotechnology.tistory.com/trackback/1200 관련글 쓰기


연세대 식품공학과(현 생명공학과) 故 오두환 교수님 (1950-1997) 


지금까지 제게 좋은 선생님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그런 분들이 계시지 않았으면 지금의 제가 있지 않겠죠. 하지만 졸업 후에 스승님들을 찾아뵙거나 연락을 드리거나 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여러가지 집안 사정으로 학교 생활이 행복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다시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냥 고등학교 때까지의 시간을 되돌아보는 것 자체가 싫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와서는, 스승이라고 부를 분들이 다 이 세상에 계시지 않아서 찾아뵐 수가 없습니다. 


제 인생에 가장 기억나는 스승님은 오두환 교수님이십니다. 신장이식 수술을 마치고 퇴원하시기로 한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죠. 당시 박사과정 5학기 올라갈 때였는데 그 때 받은 느낌은 '고아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몇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께 죄송하지만, 아버지의 죽음보다도 제겐 더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단언컨대 교수님이 그렇게 갑자기 가시지 않았으면 제 인생도 많이 바뀌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졸업도 그렇게 서둘러 하진 않았을 것 같고, 그렇다면 일본에 가지도 못했을 것 같고, 그랬으면 제 인생은 지금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교수님은 우리 학과 1기 선배님이셨고 그래서 그런지 학과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 강하셨습니다. 그래서 학과를 위해서 일을 하시느라 자기 몸을 잘 돌보지 못하셨고, 2년이나 매주 토요일 병원에서 투석을 받으셨는데 그것도 모두 학교와 학과의 일을 하시느라 미루셨던 것이었습니다. 신장이식 수술도 실은 우리 학과의 연구소 3년차 평가를 마치고서야 받으셨을 정도였습니다. 그 3년차 평가 때 저희 대학원생들도 거의 1주일 내내 학교에서 밤을 새워 작업을 하곤 했는데, '조금만 더 참자!'며 저희를 다독거리시던 생각이 납니다. 지금도 자신의 공동체를 위한 희생이 체득된 분이셨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교수님을 처음 뵌 것은 2학년 1학기 생화학 수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때 생화학에 재미를 붙여서 지금까지 생화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1년 뒤에 교수님 실험방에 들어가서 배운 것들을 아직도 써먹으며 살고 있으니 청년 이후 제 인생의 대부분을 교수님께 빚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교수님 강의가 엄청 화려하거니 재미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 제게 "이선생, 왜 난 강의를 재미있게 못할까?"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는데, 교수님 강의는 곁가지 하나 없이 똑 바로 가는 열차와 같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소에 말수가 많지 않으신데다가 아무래도 교수님은 어려운 분이기 때문에 둘이 있으면 어색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언젠가 저 혼자 학교에서 밤을 새웠는데 새벽기도를 마치시고 일찍 출근하신 교수님께서 "아침이나 먹지." 라고 하시고는 둘이 어색하게 설렁탕인가 우거지 해장국인가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둘이서 한 열마디나 했을라나요? 이상하게 저한테는 석사 때부터 가끔 "이 선생"이라고 부르셔서 그 호칭이 참 어색했던 생각도 납니다. 


오두환 교수님은 학문적인 것 뿐만 아니라 신앙적으로도 참 좋은 선배님이셨습니다. 당시 영락교회 청년부장으로 섬기고 계셨고 알게 모르게 학생들의 신앙활동에 관심이 많으셨죠. 연세기독학생연합이 만들어지고 제가 초대 회장으로 섬길 때 예상치 않게 첫 개강예배에 오셔서 살짝 당황했던 기억도 납니다. 돌아가신 후에 교수님 유고집을 만들 때 둘째를 낳고 겪으셨던 어려움을 통해 신앙을 새롭게 얻으셨다는 간증문을 보고 울었던 생각도 나네요. 


지금 생각해보니 교수님께서 돌아가신 나이가 지금 제 나이입니다. 참, 너무 일찍 가신 것이죠. 그렇지만 그 나이에 교내외의 각종 일과 한국산업미생물학회(현 한국미생물생명공학회) 총무간사까지 하셨으니 참 불꽃처럼 살다가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운 것은 교수님께서 그렇게 가시고 제 박사학위 논문의 균주 이름을 교수님 성함을 따서 두화니엘라(Doohwaniella)로 지었는데 허겁지겁 졸업하자마자 외국으로 나가는 바람에 균주 동정 논문화가 늦어졌고 이후에 다른 유사한 미생물의 이름이 등록되는 바람에 그 이름을 그대로 쓰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과학계에 오두환 교수님의 이름을 하나 정도 남기고 싶었는데 말이죠. 어쩌면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과학계는 몰라도 인터넷에 교수님을 추모하는 페이지가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죠.


이제 저는 스승의 날에 스승님들을 찾아뵙기 보다는 찾아오는 학생들이나 졸업생들을 주로 만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매일 새벽기도 끝나고 바로 출근하신 그 부지런함, 심지어 자기 몸 돌보는데도 소홀하셨던 그 책임감, 언제나 학과의 발전을 생각하셨던 희생정신, 깨끗하고 꼿꼿하면서도 속으로 제자들을 생각해주신 깊은 정을 생각하면 지금의 제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제 논문 감사의 글 마지막이 "열심히 살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라는, 교수님께 드리는 제 약속이었는데 과연 그렇게 살아왔는지 반성이 되기도 합니다. 이 스승의 날에 앞으로 교수님의 제자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도록 다시 한 번 다짐을 해 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바이오매니아

트랙백 주소 :: http://biotechnology.tistory.com/trackback/1199 관련글 쓰기

최근에 페이스북에서 아래와 같은 포스팅을 봤습니다. "우리가 먹는 연어의 대부분인 양식 연어. 자연산과 달리 회색빛이라 사료에 주홍빛 색소를 첨가하는데 국내에선 이를 표기하지 않습니다."라는 글과 사진에 공유가 1,589개, 좋아요가 10,000명 가까이 되더군요. 그리고 수 없이 달려있는 감사의 댓글...그런데 그건 사실일까요? 제가 보기에 이 이야기는 절반쯤은 맞고 절반쯤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간만에 그 이야기를 해보죠.

 



1. 야생 연어의 색깔은 붉은 색인가?


일단 연어의 색깔은 뭘 먹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즉 연어의 색깔은 연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먹이를 먹어서 그게 쌓이는 것이라는 거죠. 사실 오메가-3 지방산이 많은 등푸른 생선도 자기가 오메가-3 지방산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메가-3 지방산이 많은 플랑크톤이나 미세조류 등을 먹고 축적하는 것이죠. 결국 야생이라도 어떤 것을 먹고 자라느냐에 따라 색깔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야생 연어가 주로 먹는 것은 새우나 크릴같은 갑각류들인데 그 껍질에는 붉은색 색소인 아스타잔틴(Astaxanthin)과 칸타크산틴(Canthaxanthin) 같은 것들이 주 성분이죠. 결국 어떤 것을 더 먹느냐에 따라 색깔은 조금씩 차이가 날 수 있는 겁니다. 실제로 인터넷에 뒤져보면 연어도 종류에 따라 색깔이 많이 다릅니다. 아래의 그래프를 보셔도 좋구요.


2. 양식 연어의 색깔은 회색인가?


양식 연어도 사료로 이런 갑각류들을 많이 먹인다면 색깔이 야생과 같을 겁니다. 하지만 사료 비용 절감은 이익과 직결되므로 보통 작은 생선으로 만든 사료, 옥수수 글루텐, 깃털분쇄물(단백질), 콩, 닭 기름, GM효모 등을 먹인다고 합니다. 아마 이 중에서 색깔을 줄 수 있는 것은 GM 효모 정도일텐데 그걸로는 야생 연어의 색깔을 따라갈 수는 없겠죠. 그래서 사용하는 것이 아스타잔틴 사료입니다. 그러니까 양식 연어의 색깔을 좀 좋게 하기 위해 사료에 넣는 물질은 야생 연어의 그 물질인 것이죠.



야생연어와 양식연어(*표)의 아스타잔틴 함량 (Mar. Drugs 2014, 12, 128-152)



3. 아스타잔틴은 어떤 물질인가? 


아스타진틴이나 칸타크산틴 같은 물질들은 모두 카로티노이드 계열이라고 하는데 수박의 라이코펜, 당근의 베타-카로틴, 눈에 좋다는 루테인 등이 전부 이쪽 계열 색소들입니다. 소위 항산화물질로서 다 나름 좋은 점이 있다는 소리를 듣는 물질들이죠. 아래의 그림에서 보시듯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비슷합니다. 



카로티노이드 생합성 경로 (Appl Environ Microbiol. 2007 Mar; 73(6): 1721–1728.)


이 아스타잔틴은 그 동안 많은 관심을 받아오던 물질인데 천연기능성 색소와 바로 이 연어 등의 사료첨가물로 사용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다만 카로티노이드가 지용성물질이라 쉽게 섞이지 않고 분리도 쉽지 않아서 값싸게 생산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 것으로 압니다. 


4. 양식 연어의 색깔을 어떻게 내나요?


앞서 말한 대로 양식 연어의 색깔을 붉게 만들기 위해서 고기에 착색을 하거나 색소를 첨가하는 것이 아니라 사료로 먹이는 것입니다. 이 때 먹이는 것이 바로 자연연어의 그 색소인 아스타잔틴입니다. 그러니까 자연 연어의 색깔은 새우나 크릴 등을 먹어서 그 속의 아스타잔틴이 축적되어 생기는 것이고 양식연어의 색깔은 사료 속에 아스타잔틴을 넣어서 먹이는 것이죠. 그 아스타잔틴은 새우 등을 파쇄한 사료에서 얻기도 하고 합성하기도 한답니다. 또 다른 한가지 방법은 아스타잔틴을 엄청 많이 생산하는 효모인 파피아 로도자이마(Phaffia rhodozyma) 등을 먹이는 것입니다. 실제 사료에서 천연을 많이 쓰는지 합성을 많이 쓰는지 정확안 비중은 모르겠습니다만 천연이든 합성이든 결국은 같은 물질이죠. 이런 방식은 정말 부도덕한 것일까요, 아니면 자연의 이치를 인간들이 잘 이용한 것일까요? 이 판단은 각자의 신념에 맞겨야죠


5. 아스타잔틴을 이용한 화장품이 대박을? 


제 일본인 트친께서 알려주셨는데 일본의 후지필름에서 아스타잔틴이 들어간 화장품을 만들어서 대박을 쳤다고 하더군요. 찾아보니 아마 이 링크에 있는 아스타리프트(ASTALIFT)라는 것인가 봅니다. 첫해에만 10억엔을 팔았다는데, "아스타리프트 전 제품에 함유된 아스타잔틴은 게, 가재 등의 갑각류나 해조류에서 추출" 된다고 되어 있네요. 



6. 양식 연어를 겁내야 할까요?


사실 연어는 세계 최초로 GM 연어가 허가되어 곧 식탁에 오를 전망입니다. 그런 판국에 항산화 성분이라 몸에 좋다는, 기능성이 있다는 아스타잔틴 사료를 넣어서 색깔을 자연산이랑 비슷하게 만든다면 그걸 겁낼 필요가 있을까요? 이런 자연산과 양식의 차이 중에 연어의 경우와 반대인 것은 복어독이죠. 자연산은 독이 있지만 양식은 독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역시 어떤 미생물이 독을 만드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결국 필요에 따라 자연산과 비슷하게도, 다르게도 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최근에 이와 관련되어 뉴스페퍼민트에 흥미로운 기사가 났는데 이 링크를 눌러보시면 이와 관련된 약간의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그나마 건조하게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 쓴 기사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임] 사실 제가 일본에서 연구한 것이 미생물을 이용한 카로티노이드 생합성 유전자였답니다. 사실 이거 공공연한 비밀인데 아스타잔틴을 싸게 만들 수 있으면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합니다. 색소를 갖고 있는 동물에게서 추출하거나 미생물을 이용해서 합성하거나... 저한테도 그런 거 연구하자는 분들이 계신데 쉽지 않아요. 그래도 한 번 해보실 분은 연구비 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바이오매니아

트랙백 주소 :: http://biotechnology.tistory.com/trackback/1198 관련글 쓰기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