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되면 금속수저 괴담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어제 요거트와 금속 수저 2탄을 포스팅하고 났더니 트윗으로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꿀도 금속 수저로 먹으면 안되나요?"


그럼 꿀 먹을 때 쓰라고 파는 이것들은 다 뭐임??? (구글 이미지 검색)



대체 이건 무슨 소리일까 싶어서 찾아보니 역시 그런 소문이 돌고 있더군요. 그래서 그 이유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다음과 같은 몇가지 이유로 정리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꿀은 효소이므로 금속 수저에 닿으면 안된다?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뭐 더 이상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덧붙이자면 꿀은 당분이 85%내외 물이 15% 내외 나머지 성분은 눈꼽 만큼도 안됩니다.(물론 어떻게 채취하느냐에 따라 차이는 좀 있지요.) 아무튼 꿀이 효소라는 것은 예전에 설탕 절임을 효소액이라고 팔아먹던 이야기와 비슷한 겁니다. 효소액이 들어 있어도 극미량이고 그걸 먹는다고 몸에 좋을 것도 없습니다. 제발 효소라는 말 좀 아무데나 갖다 붙이지 마세요. (식물 설탕 절임을 효소액이라고 했던 해프닝은 여길 참조하세요.)  


2) 꿀을 금속 용기에 저장하면 꿀 속의 성분이 금속과 결합하여 화학 반응이 일어난다. 


이것도 대체 어디서 근거한 것인지 모르겠는데 논문 찾는 사이트에서 honey와 stainless로 검색하니 논문이 딱 두 개 나오더군요. 하지만 꿀과 금속이 결합한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 중의 한 논문은 저자 이름이 Honey ^^) 다시 말하지만 꿀의 성분은 당과 수분이 거의 대부분인데 이 성분들이 금속과 뭐 대단한 반응을 일으킬 일은 없습니다. (꿀 속의 성분은 예전 포스팅, "꿀은 얼마나 몸에 좋을까요?"를 참고하세요. 사실 꿀이나 설탕이나 액상과당이나 주성분은 비슷비슷합니다.ㅠㅠ)


그래서 구글에서 honey와 metal로 검색을 해본 결과 다음과 같은 사이트를 찾았습니다. 이른바 꿀에 대한 미신을 정리한 사이트입니다. 아래 그림 두번째 항목을 보면 꿀을 금속 숟가락으로 뜨지 말라고 하는 것은 미신이라고 나옵니다. 그리고 꿀을 뜨거운 물에 타서 마시지 말라고 하는 것도 미신이라고...ㅠㅠ



암튼 꿀을 금속 숟가락으로 먹지 말라는 것도 거의 근거가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소문은 어디서 왔을까요? 혹시 언제나 손으로 꿀을 퍼먹는 푸우가 퍼뜨린 것은 아닐까요??? ㅎㅎ

그림 출처: Disney.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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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이오매니아

이 글은 지난 2008년에 썼던 글 "요거트를 금속 수저로 먹지 마라?"의 후속편입니다. 아직도 요거트를 금속 수저로 먹으면 균이 다 죽는다는 이야기가 많이 퍼져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작년 SBS 모닝 와이드 (2014년 8월 29일 방송)에서 이에 대한 간단한 검증을 했더군요. 사실 저는 연구년 중이라 그 방송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했는데 우리 학생들이 잘못된 식품 정보에 대한 과제를 하면서 그 내용을 찾아 왔더군요. 그래서 여기에 간단히 소개하려고 합니다. (전체 분량이 3:30초 되는데 무료 다운로드 가능하니까 다 보실 분들은 위의 링크를 누르세요!)


먼저 유산균 제품 대조군과, 플라스틱 수저를 접촉시킨 것, 그리고 금속 수저를 접촉시킨 것의 균체수를 검증했는데 차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미경으로 관찰한 균체의 모양이나 개체수도 큰 차이가 없었구요. 




또한 제품 표면에 프린트된 숟가락도 금속이니까 걱정하지 마시라는 말도 덧붙였군요. 



그래서 결론은 숟가락 걱정 마시고 요거트 드세요!!!




방송 내용 중에 요거트 전문점에서 일하시는 분이 금속 숟가락으로 먹으면 균이 죽기 때문에 나무 숟가락이나 플라스틱 숟가락을 제공하고 권한다고 하던데 이제부터는 번거롭게 그러실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근거 없는 소문은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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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이오매니아

오늘도 모 사이트에서 우유에 대한 험담을 보았습니다. 뭐 이런 건 요즘 흔한 일입니다. 그게 정말 우유가 해로워서 그런 것이건, 기존의 믿음이나 상식에 대한 반감이건, 아니면 채식주의자들의 공격이건, 우유가 여러가지로 공격받는 모습을 흔히 봅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우유회사들은 재고가 늘어서 울상이라고도 하더군요. 


그런데 저 기사 중에 제 관심을 끈 대목은 이 부분이었습니다. 우유에 대해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상식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게 뭐냐는 질문에 “우유는 완전식품”이라는 믿음이라고 하더군요. 완전식품이라는 말, 사실 여기 저기서 많이 듣지만 정작 식품 관련 수업시간에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는 말입니다. 가끔 스쳐지나가듯 책이나 논문에 우유나 달걀 등이 완전식품이라는 구절이 씌어있는 경우가 있지만 실제로 그게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더군요. 그럼 대체 이 완전식품이라는 말은 어디서 누가 시작한 것일까요?  


경향신문 1966년 2월 9일 신문 내용



일단 저 인터뷰의 원문에 '완전식품'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기사 중 “우유는 완전식품”이라는 믿음입니다, 라고 번역된 부분의 원문은 "Milk is the only food that makes up an entire food group."의 의역입니다. 완전식품의 영어적 표현을 perfect food, super food, essential food 등으로 생각해볼 순 있겠지만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완전식품이라는 의미는 별로 없습니다. 완전식품이라는 개념이 서구에서 온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죠.(하지만 맨 밑의 추가 사항 참고해주세요!) 


후타키 켄조 박사 (사진 출처:일본 위키)

출처를 알 수 없는 상당히 많은 정보들은 일본에서 유래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일본 위키를 뒤져보니 힌트가 나오더군요. 일본 위키에 따르면 "완전식(完全食)"이란 말은 후타키 켄조(二木謙三)라는 일본의 의사가 1921년에 처음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 후타키 켄조는 1873년에 태어난 일본의 유명한 세균학자이자 의사인데 건강법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가 만들어낸 개념이 바로 "완전식"입니다. ("산성식품, 알칼리성식품"이라는 개념을 유럽에서 수입해서 퍼뜨린 원흉주역도 바로 이 후타키 겐조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제 블로그의 글 "산성식품, 알칼리성식품은 없다"를 참조하세요.)


그런데 이 후타키 켄조가 완전식품이라고 불렀던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완전식품과 약간 차이가 있는데 그는 "아직 살아있는 식품이자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소를 풍부하게 포함한 식품"을 완전식품으로 주장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살아 있는 식품은 뭔가를 빼지 않고 가공하지 않은 그 상태를 뜻하는 것으로 예를 들면 콩은 살아 있는 식품이지만 비지를 제외한 두부는 죽은 식품, 뭐 이런 개념이라고 보시면 되겠스비다. 아무튼 후타키 켄조는 완전식품의 대표로 "현미"를 꼽았다고 하네요. 


후타키 켄조 말고 "완전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사람이 한 명 더 있는데 그는 일본 영양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이키 타다스(佐伯矩)"입니다. 사이키 박사 역시 원래 의학자였는데 영양학이라는 학문을 의학에서 독립시켰고 일본 영양학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라고 합니다. 1886년생이니까 역시 매우 오래 전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죠. 아무튼 사이키 타다스 박사가 주장한 완전식품이란 하루치 필요한 열량을 가진 식사를 의미했습니다. 다른 말로는 표준식이라고도 했다는군요.


1920년대 초 처음 일본에서 주창된 완전식(完全食)과 그 이후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완전식품(完全食品)이 같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좀 더 찾아볼 필요가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완전식품이란 일본식 건강법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나 싶습니다. 


아마 제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은 제가 일본식 건강법이나 건강서적에 상당히 비판적이라는 것을 아실텐데요. 실은 이런 완전식품이라는 용어도 어찌보면 비판받을 소지가 꽤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어떤 하나의 식품이 완전할 까닭은 없으니까요. 아무리 영양적으로 고르다고 해도 찾아보면 뭔가 좀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밖에 없죠. 예를 들어 영양학적 밸런스를 따지자면 계란은 탄수화물 비율이 너무 적고 현미는 탄수화물 비율이 너무 높다고 볼 수 있죠.  


보통 완전식품이라고 하면 달걀과 우유가 가장 대표적이고 그 외에 현미나 고구마, 심지어 일본에서는 카레라이스도 완전식이라고 하나 봅니다. 하지만 다른 식품들보다 달걀과 우유가 완전식품이라고 잘 알려진 것은 그간 양계업계나 낙농업계의 마케팅의 영향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이렇듯 완전식품이라는 용어는 실제 영양적 측면보다 마케팅적 측면이 강화된 용어이고 때문에 어떤 식품을 완전식품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무조건 그 식품이 좋다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건 마치 산성식품, 알칼리성식품과 같은 옛날 영양학적 분류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죠. 하지만 그 반대로 완전식품이라는 용어가 100년 가까이 지난 일본식 조어이고 학문적인 의미가 없다고 해서 그 식품이 해롭다는 것도 아닙니다. 식품은 식품일 뿐이고, 적당히 먹어서 영양분을 주고 맛있으면 좋은 것이고, 과해서 영양분이 편향되면 해로울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해롭다는 것이 뭐 당장 큰 일이 나거나 부작용이 생기는 정도도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저는 우유가 아이들이 매일 마셔야 하는 대단한 식품이라는 것에도 별로 동의하지 않지만 최근 우유를 무슨 독극물처럼 묘사하고 온갖 성인병의 원인인 것처럼 떠드는 것에는 더욱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하긴 만만한 식품 하나 찍어서 나쁜 놈 만들어 돈 번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닙니다만 말이죠. 


추가사항: 마바리님의 제보에 의하면 E. Melanie Dupuis가 쓴 <Nature's Perfect Food: How Milk Became America's Drink>라는 책의 2장에 어떻게 미국에서 우유가 perfect food가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유래는 19세기 중반 부터라고 합니다. 즉 일본에서 완전식이라는 말이 나오기 전부터 우유를 완전식품이라고 불렀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완전식품이라는 용어는 일본인이 주창한 개념라기 보다는 여기저기서 비학문적으로 사용된 용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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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이오매니아

요즘 카바이드 막걸리는 괴담이라는 이야기가 자주 보입니다. 언론 기사도 나오고 아예 카바이드로 막걸리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저는 카바이드로 막걸리를 발효시키는 것은 불가능해도 카바이드와 밀가루, 알코올 등을 섞어서 막걸리처럼 보이도록 만들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냥 혼자 이것 저것 생각해 보았습니다.


1. 오일쇼크 시대에 소주를 띄우고 막걸리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괴담?


"정부는 1975년에 소주 업체를 지원하고 막걸리 업체를 ‘탄압’하기 시작해요. 소주는 도수를 기존 35도에서 25도로 낮추도록 합니다. ‘소주에 물을 타도록’ 해준 것이죠. 원가가 덜 드니 소주업체들은 마진을 더 챙기게 됐어요. 반대로 비위생적인 술도가를 적발하고 밀주업자를 잡아들이며 막걸리에 비위생적이고 불법이라는 이미지를 씌웁니다."


1차 오일쇼크는 1973년 10월에 시작되었는데 카바이드 막걸리는 1960년대 초반부터 언론에 다뤄졌고 60년대 후반부터 언론에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카바이드 막걸리가 단순히 오일쇼크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긴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1962.07.09 동아일보 1면 횡설수설 중


게다가 박정희 군사정부가 막걸리에 백미사용을 규제한 것이 1963년부터이고 1966년 8월부터는 전면금지를 시켰는데 그 이후부터 밀가루를 이용한 막걸리가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면서 카바이드가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962.08.27 경향신문 3면 카바이드 탁주를 마시면 주정이 거칠어집니다.^^


2. 카바이드로 발효를 빠르게? 발효를 한 것처럼 보이게? 


저보고 카바이드 막걸리를 만들어보라고 한다면 찐밀가루 + 알코올 + 카바이드 + 향료나 기타 등등을 섞으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막걸리의 지게미는 밀가루로, 거품은 카바이드로, 술냄새는 알코올로 내는 것이죠. 이렇게 만들면 맛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모양은 비슷하게 나올 것 같습니다. 그걸 진짜 막걸리랑 섞으면 더 비슷할 수도 있겠죠. 발효시킬 필요가 없으니까 시간도 단축될 것이구요. 그러니까 카바이드로 발효를 시킬 수는 없지만 카바이드로 비슷한 모조품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다른 측면에서 카바이드를 넣으면 온도가 높아지는데 그게 발효를 촉진시킬 수도 있을 것 같구요. 


1972.11.11 매일경제 7면



3. 누룩 대신 카바이드? 


윗 기사를 보시면 "막걸리 주원료인 쌀과 누룩 대신에 밀가루와 화학약품(호프, 키니내, 테라마이싱)을 혼합하고 발효를 빠르게 하기 위해 카바이드를 섞었다"라고 나오는데 발효를 빠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발효를 한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가 맞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데 왜 말라리아약인 키니네와 항생제 테라마이신을 넣었을까 했더니 이런 기사도 있군요. 


1976.03.06 경향신문 누룩은 균을 키우는 것인데 항생제를???


이 내용을 잘 읽어보면 누룩은 원래 미생물이 왕창 살아 있어야 하는 것인데 항생제를 넣어서 미생물을 죽이고 대신 카바이드를 넣었다는 겁니다. 아마도 발효가 일어났는지 확인하는 방법이 이산화탄소 거품이 일어나느냐의 여부일 것이므로 카바이드를 넣어 거품이 나게 만든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이 가능하죠. 게다가 그렇게 만들면 "시지 않고 싱싱한 맛이 난다"고 하네요. 효모와 함께 자라는 유산균이나 잡균들에 의한 발효가 일어나지 않을테니 당연한 결과일 수 있겠죠. 


 

4. 사실 진짜 위험한 것은 카바이드보다 중금속 불순물


사실 사람들이 카바이드(탄화칼슘)가 유해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카바이드는 먹는 것보다 폭발의 위험이 있어서 주의해야 합니다. 또한 값싸게 판매하는 카바이드는 순수한 탄화칼슘이 아니라 여러가지 유해 중금속이 불순물로 포함되어 있어서 실제로 카바이드를 사용하면 카바이드 자체보다 중금속 오염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5. 막걸리 숙취는 카바이드 때문인가?


여러번 이야기했지만 숙취는 술을 많이 마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떤 술을 마시든 숙취는 있습니다. 게다가 막걸리는 발효하기가 쉽지 않은 술인데다 균을 제거하지 않는 술이라 함부로 아무 곳에서나 만들다보니 발효가 잘못되거나 보관이 잘못되어서 숙취가 심한 경우가 더 많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급한 알코올과 카바이드와 다른 물질을 섞어 술을 만들었다면 다른 술에 비해 숙취가 더 심했을 수 있겠죠. 하지만 이건 대부분 옛이야기이고 요즘엔 막걸리가 특별히 숙취를 많이 일으킨다는 이야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제 개인적인 생각엔


1) 오일쇼크 때 막걸리를 죽이기 위한 소문이라고 보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다.

2) 카바이드를 막걸리에 사용한 것은 사실일 것이다.

3) 카바이드로 발효를 촉진할 수는 없지만 발효가 일어난 것처럼 속였을 수는 있다.

4) 카바이드로 막걸리 모조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예전 기사를 찾아보니 놀랍지 않습니까? 요즘 중국에선 계란도 가짜로 만든다는데 그들이야말로 화학의 대가! 우리도 예전엔 참 나쁜 짓 많이하며 살았죠. 불량식품도 많았구요. 뭐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다들 잊어버렸는지 몰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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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이오매니아

정말 오랜 만에 온 가족이 극장으로 출동했습니다. 부산 MBC (비)공식 영화평론가 미나쌤의 추천을 받고 <위플래쉬>를 보기 위해서 말입니다. 얼마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남우주연상이 맞을 것 같은데 왜 조연???)을 받은 J. K. 시몬즈가 열연한 바로 그 영화입니다.J. K. 시몬즈가 누구냐구요? 바로 이 블로그 우측 상단에 있는 사진의 주인공이 바로 J. K. 시몬즈입니다. 


영화 <위플래쉬>의 포스터


이 영화는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바가 있고 선댄스 영화제에서도 상을 수상한 영화입니다. 앗, 선댄스? 그럼 재미없는 저예산 독립영화 아닌가, 하는 생각은 버리셔도 좋습니다. 선댄스에서 심사의원 대상과 관객상을 동시에 받았다고 하니까요. 원래 관객상은 좀 대중적인 경우가 많죠. 거기다가 아카데미상까지 3개(남우조연상, 편집상, 음향상)를 받았다니 두루두루 상을 섭렵했더군요.


(여기까지는 스포일러 방지를 위한 서론이었고 이후부터는 영화 보신 분들만 보세요)


이 영화는 한 선생님과 제자의 이야기입니다. 얼핏 보면 괴팍하지만 뛰어난 스승이 숨은 재능을 가진 제자의 재능을 알아보고 최고의 연주자로 만든다고 볼 수 있습니다. 뭐 이런 영화 많죠. <굿 윌 헌팅>이나 <파파로티> 같은 영화들 말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조금 다릅니다. 시각을 달리 하면 미치광이 선생이 또 다른 미치광이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위플래쉬>는 이 두가지 해석 중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원래 인생에 정답 찾기가 어렵듯 진실은 이 중간 어딘가에 있겠죠.


뉴욕의 세계적 음악학교인 쉐이퍼 음악학교(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학교랍니다!)의 신입생 앤드류는 밤에 혼자 드럼 연습을 하다가 악명 높은 플레처 교수를 만납니다. 플레처 교수는 앤드류를 눈여겨 보고 '더블 타임 스윙'을 쳐보라고 하죠. 잔뜩 긴장한 앤드류는 실수를 반복하다가 빠른 속도로 더블 타임 스윙을 연주하게 되는데 그 순간 플레처 교수는 사라져 버립니다. 


그리고 마이너 밴드의 보조 연주자에 불과했던 앤드류는 어느 날 플레처 교수에 의해 그 학교 최고 스투디오 밴드의 보조 드러머로 픽업됩니다. 그리고 연습 중 쉬는 시간에 플레처 교수가 복도에서 앤드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유명한 재즈 연주자 찰리 파커가 어떻게 '버드'(찰리 파커의 별명)가 되었는줄 아나? 그건 드러머 조 존스가 그에게 심벌즈를 던져서 모가지가 날아갈 뻔 했기 때문이야"라고 말입니다. 엉터리 연주를 한 찰리 파커는 심벌즈가 날아온 치욕적인 경험 후에 미친 듯이 연습에 몰두해서 훗날 최고의 재즈 연주자가 되었다는 뜻이죠. 그리고 바로 이어진 밴드의 연습 시간, 플래쳐는 서툰 연주를 한 앤드류의 뺨을 때리고 그에게 의자를 집어 던집니다. 


찰리 파커를 다룬 영화 <버드> (감독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여자 친구도 없이 아버지와 극장에 가는 앤드류는 친구도 없는 일종의 '너드'입니다. 하지만 플레처의 스튜디오 밴드에 뽑히고 나서는 자신감을 얻고 극장에서 팝콘 파는 아가씨에게 데이트 신청을 해서 여친을 만드는데도 성공합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플레처에게 엄청난 모욕을 당한 후, 앤드류는 이를 악물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자기가 성공하는데 여친이 방해가 될 거라며 절교까지 선언합니다. 


재즈 페스티벌에 출전하는 날, 수석 드러머 태너의 악보를 맡은 앤드류는 악보를 의자에 놓아두고 자판기에서 음료를 꺼내는데 그 잠깐 사이에 태너의 드럼 악보가 없어집니다. 결국 악보를 다 외우지 못한 태너 대신 악보를 다 외워버린 앤드류가 긴급 투입되고 그 이후 앤드류는 수석 드러머 자리를 꿰어 찹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플래처 교수는 예전 앤드류가 있었던 마이너 밴드의 수석 드러머였던 라이언을 새로 영입하더니 라이언이 수석 드러머가 되고 앤드류는 다시 보조 드러머가 될 처지에 놓입니다. 이후 이 세사람의 '글자 그대로' 피나는 경쟁이 시작되고 결국 앤드류는 다시 수석의 자리에 오릅니다. 


하지만 또 다른 재즈 페스티벌이 있는 날, 앤드류가 타고 가던 버스 타이어가 터지고 우여곡절끝에 렌터카를 빌려 타고 뒤늦게 도착한 앤드류는 두고 온 드럼 스틱을 가지러 렌터카 사무실에 급하게 다녀 오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사고 후에도 이를 악물고 경연에 참가하지만 결국 연주를 마치지 못하죠. 이전에 플레처 교수는 연습실에 CD를 한 장 가져와서 틀며 자신이 키워서 성공한 제자 션 케이시가 버스 사고로 죽었다며 눈물을 보인 적이 있는데, 병원에서 앤드류는 션 케이시가 교통 사고가 아니라 자살한 것이며 플레처 교수를 만나서 불안과 우울증세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고 플레쳐 교수의 제자 학대에 대해 증언을 하게 됩니다.


얼마 후 드럼을 그만 둔 앤드류와 제자 학대 혐으로 학교에서 쫓겨난 플레처는 시내의 한 바에서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플레처는 앤드류에게 다시 찰리 파커와 심벌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자신은 학생들이 한계를 뛰어 넘어 찰리 파커와 같은 최고가 되기를 바랬다고 말합니다. 최고가 될 놈들은 모욕받고 그만 두라고 해도 그만두지 않는다구요. 그리고 그 방법은 잘못되지 않았다고 믿지만 아직까지 찰리 파커를 만들지는 못했다고도 고백하죠. 그리고 이렇게 말하죠. 


There are no two words in the English language more harmful than "good job"

'굿 잡(잘 했어)'보다 더 해로운 말은 없어!!!


이 광기어린 선생의 교육 방침을 알게된 앤드류는 플레처가 이끄는 밴드의 드러머로 다시 들어가 재즈 페스티벌 오프닝 공연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플레처가 "네 녀셕 때문에 내가 학교에서 쫓겨난 것을 모를 줄 아냐?"고 화를 냅니다. 첫 곡으로 연주할 신곡의 악보를 혼자만 받지 못한 것을 알게된 앤드류는 실수에 실수를 거듭하고 챙피함을 이기지 못하고 무대를 떠나... ...려고 하다가 갑자기 다시 돌아와 혼자 연주를 시작합니다. 처음엔 모두들 놀라고 어색했으나 그의 연주는 신들린 듯했고 결국 플레처는 그의 연주에 맞춰 지휘를 하고 이상 야릇한 표정으로 마지막 사인을 주면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사실 저는 영화를 보고 이렇게 영화 줄거리를 길게 요약해 본 적이 없는데 오늘 이렇게 장황하게 쓴 이유는, '과연 여러분은 이 줄거리를 보고(또는 영화를 보고) 플레처가 훌륭한 선생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묻고 싶기 때문입니다. 플레처는 위악으로 제자의 한계를 극복하게 만든 훌륭한 스승일까요? 얼핏 그렇게 보입니다. 그는 첫 만남에서 앤드류의 재능 또는 열정을 알아보았고 '더블 타임 스윙' 힌트를 알려줍니다. 수석 드러머 태너의 악보가 없어진 것도 악보도 못 외우는 태너 대신 앤드류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 플레처의 의도였을지 모릅니다. 앤드류가 자만하려고 할 때는 언제나 그를 박살내고 갖은 모욕을 주기도 합니다만 결국 마지막까지 끌고 가는 제자는 앤드류입니다. 친구 하나 없이 음악 밖에 모르는 너드 앤드류는 그 모든 시험을 뚫고 조 존스의 심벌즈 덕분에 피나는 연습을 해서 유명해진 '버드' 찰리 파커와 같은 연주자가 될 듯이 보입니다.

하지만 그 반대의 시선으로 보면 이야기가 좀 달라집니다. 플래처는 조금 실력있는 또라이입니다. 그는 최고가 되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끊임없이 학생들을 모욕하고 학대합니다. 마치 강하게 키우기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냥 그 자신이 또라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교육 방식이 옳다고 하지만 실은 아직까지 찰리 파커와 같은 제자는 키워낸 적이 없습니다. 오로지 실력있는 놈들의 경쟁으로 최고를 만들어낼 뿐입니다. 그 경쟁 속에 제자들은 다 나가 떨어지고 상처받고 심지어 죽습니다. 그렇다면 앤드류는? 사실 앤드류는 플레처와 같은 똘끼가 있는 사람입니다. 최고가 되는데 방해가 될 거라며 애인을 차버리고, 3부 리그에서 운동하는 사촌 형제들을 무시합니다. 맨 마지막 장면에서 앤드류와 플레처의 표정은 그 둘이 같은 종류의 또라이임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 사회에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은 바로 그런 또라이들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아마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보고 노력 없이는 열매가 없다고 이야기할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경쟁 사회가 만들어내는 황폐함을 이야기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게 이 영화가 좀 더 특별했던 이유는 이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학생의 한계'가 저의 큰 고민이기 때문입니다. 학생을 가르칠 때 그들의 한계를 알려주고 가장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 한계를 뛰어 넘도록 채찍질(Whiplash)해야 할까요? 조금 단순화 해서 성취가 중요합니까, 아니면 행복(자기 만족)이 중요합니까? 아마 이런 고민하시는 선생님들이 꽤 많으실 것으로 압니다.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만나는 제자 누구나 붙잡고 '넌 대학원 와야 할 놈'이라며 대학원 오도록 설득해서 죽도록 고생시키고 교수 제자를 수십명 만든 노교수와, 공부는 자기가 알아서 하는 거라며 실험을 하든 말든 제자들을 내버려 둬서(다른 말로 자유를 줘서) 교수가 된 제자가 한 명도 없는 노교수. 그 둘 중에 누가 더 훌륭한 교육자였을까요? 정말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각설하고, 좋은 영화는 끊임없이 질문을 만드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계속 이어지는 질문은 이런 겁니다. 과연 성공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 일생을 바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앤드류는 성공한 것일까요? 플래처와 같은 위악은 필요할까요? 소수의 성취를 위해 많은 이들의 희생은 상관없는 것일까요? 그 답은 잘 모르겠지만 계속 이런 질문을 만들어낸다는 의미에서 <위플래쉬>는 제게 무척이나 좋은 영화였습니다. 모든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함께 보고 토론해볼 만한 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마지막 장면의 <카라반>을 감상하시죠.^^


[덧붙임 1] 한가지 아쉬운 것은 음악영화, 그것도 비트가 센 드럼 영화인데도 음향이 뛰어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뭐 예산이 부족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말이죠. 하지만 드럼 연주 장면에선 대부분 사람들이 긴장하고 손을 꼭 쥐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덧붙임 2] 이 영화를 보고나서 제일 먼저 생각난 영화는 <블랙 스완>이었습니다. 내용은 많이 다른데 그냥 느낌이 그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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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이오매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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