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글을 쓸 기회가 적어졌습니다. 글을 쓰지 않으면 생각의 정리가 되지 않기에, 그냥 제 생각을 블로그 칼럼 형태로 써보기로 했습니다. 얼마나 자주 쓸지는 모르겠지만 꾸준히 제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특정한 매체에 기고하려고 쓴 글이 아님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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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란 누구인가

 

 

신종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현재까지 (믿을 순 없지만) 북한을 제외하고 내가 아는 모든 나라에 퍼졌다. 처음엔 동아시아 일부 국가 이야기인줄 알았던 나라들에서도 난리가 났다. 특히 잘 사는 나라들에서 그렇다. 전 세계 사람들이 어찌할 줄 모르고, 기회가 왔다는 듯이 그냥 평소에 욕하고 싶었던 사람을 욕하고 있다.

 

그래도 위기가 오면 사람들은 전문가를 찾는다. 그런데 누가 전문가일까? 의사? 바이러스학자? 보건학자? 진단검사개발자? 항바이러스제 개발자? 식약처 관계자? 방송의 코멘테이터? 의협 관계자? 재야의 숨은 고수?

 

얼마 전 한 방송국 의학전문기자의 글을 SNS에서 보았다. 그의 경험에 따르면 국내 최고 전문가라고 알려진 사람은 전문가가 아니었고, 답을 알고 있는 "실무형 진짜 전문가"는 만나기조차 힘들었다고 한다. 그 기자가 지목한 실무형 진짜 전문가는 코로나바이러스를 직접 연구하는 학자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환자의 주치의였다. 아마도 우리는 그 "실무형 진짜 전문가"의 의견을 더 중시해야 할 것 같다. 분명 동의한다.

 

그런데국내 최고 전문가는 전문가가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는 그냥 관련 학회 회장이나 무슨 거창한 자문회의 감투를 쓰고 있었던 사람일 수 있겠다. 대부분 그런 감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매우 정치적이고 공부할 시간에 여기저기 불려 다닌다는 것 정도는 누구나 다 안다. 아니면 여기 저기 말과 글을 많이 흘리고 다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실무형 진짜 전문가"는 정말 문제 해결의 구세주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 역시 우리는 안다. 오히려 직접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 일에 매몰되어 주변의 다른 일에 무지한 경우가 꽤 많이 있다. 그러니까 자기가 해온 일에 대해서는 최고이지만 옆에서 무슨 일이 생기고 앞으로 어떤 일이 전개될지는 모를 수 있다는 말이다. 때로는 직접 그 분야의 실험을 하는 사람보다 책상에서 남들이 뭐하나 구경만 하는 사람이 더 많이 알 때도 있다. 어려움은 여기서 생긴다.

 

재난 영화에서는 어딘가 숨어 있던 과학자가 홀연히 나타나 자기만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갖고 최선의 해답을 내주지만, 우리 삶은 영화가 아니다. 아니, 분명 우리 삶의 어떤 문제는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지만, 그 문제를 해결해주는 작가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고의 상황 판단으로 최선의 결정을 내려야 할 뿐이다. 그럼에도 미래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장담하면 대부분 사기꾼이나 허풍쟁이다.

 

여기엔 두 가지 중요한 과정이 놓여 있다. 첫째는 최고의 상황판단이고 두 번째는 최선의 결정이다. 최고의 상황 판단에는 아주 실무적인 전문가가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원인과 결과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필요한 데이터를 꺼내놓는 사람 말이다. 데이터 없이 지레 짐작으로 하는 이야기는 도움이 안된다. 여기엔 "실무형 진짜 전문가"가 딱이다.

 

하지만 최선의 결정까지 그의 몫일까? 나는 그건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최선의 결정이 언제나 완전무결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실무적인 전문가에게 모든 짐을 지울 것이 아니라, 그 결정을 책임질 행정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정치가 필요한 이유다. 정치적으로 결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책임지는 것이 정치라는 것이다.

 

그리고 최선의 결정에는 온갖 변수들을 고려할 훈수꾼도 때론 필요하다. 혹시 모를 파장이나 주변의 상황을 넓게 볼 수 있는 사람들 말이다. 한국 사회에 흔한 소위 자문위원회 같은 조직이다. 물론 아무말러들을 초대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정치판이나 기웃거리는 국내 최고 전문가도 아니고, 노쇠한 학계 원로들을 뜻하는 것도 아니며, 주제넘게 나서는 (어떤) 사회학자를 뜻하는 것도 아니다. 그 분야를 잘 이해하면서도 "실무형 진짜 전문가"가 놓칠 수 있는 부분들을 적극적으로 조언해줄 또 다른 전문가들이다.

 

학문적 뿌리가 깊지 않고 학문 다양성도 부족한 한국사회는 전문가들이 부족하다. 하지만 전문가가 없지는 않다. 그들을 쓸 줄 모르는 것이 더 문제다. 그래서 나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치도 전문가의 분야다. 최고의 상황판단을 위한 전문가와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한데 우린 전자만을 찾는데 너무 시간을 쓴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사진출처: 굿모닝 충청 http://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229656 )


 

Posted by 바이오매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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