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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식품, 알칼리성식품은 없다!

바이오매니아 2009. 2. 24.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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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저녁에 후식으로 과일을 먹으려고 하는데 "사과는 밤에 먹으면 독"이니까 다른 과일을 먹어야 한다는 말을 하더군요. 그러다가 산성식품이 어쩌고 알칼리성식품이 어쩌고까지 이야기가 진전되었단 말이죠. 그래서 오늘은 사과와 산성식품/알칼리성식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1. 밤에 먹으면 독사과, 아침에 먹으면 금사과?

흔히들 “아침에 먹는 사과는 금사과, 밤에 먹는 사과는 독사과”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지나친 과장입니다. 왜 이런 말이 유행하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서양속담이라는 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압니다. 오히려 진짜 서양 속담은 “one apple a day keeps the doctor away” (하루 사과 한 알은 의사를 멀리하게 만든다)는 것이 있습니다. 

인터넷에 소개된 대표적인 사과에 대한 소개를 보면 “사과는 대표적인 알칼리성 식품으로 단백질과 지방이 적고, 비타민C와 칼슘 등 무기질이 풍부하다. 또 섬유질이 많아 소화를 돕고, 철분 흡수율도 높여 준다. 부사는 과즙이 많고 당도가 높으며, 단맛과 신맛이 조화를 이뤄 사과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힌다.”고 합니다. 좋은 효과 일색이죠.

2. 그래도 뭔가 밤에 사과를 먹지 말라는 주장의 근거가 있지 않나요? 

지금까지 인터넷이나 여러 매체에 나온 사과를 밤에 먹지 말아야 할 근거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섬유질이 많아서 장이 예민한 사람은 잠을 설치게 된다. 
2) 사과도 먹으면 살찐다. 
3) 사과산이 위의 산도를 높여서 유해하다. 

하지만 위의 세가지 근거는 밤에 먹는 사과가 독이라는 근거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3. 섬유질 식품을 밤에 먹으면 안좋은가요?

일반적으로 그렇지 않습니다. 보통 식이섬유를 수용성과 불용성으로 나누는데 사과에는 펙틴이라는 "수용성" 식이섬유가 들어있습니다. 이 수용성 식이섬유는 위액의 점도를 높여서 식품이 위에 머무는 시간을 늘려주므로 너무 늦은 밤에 먹으면 위에 약간의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펙틴은 사과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오렌지나 귤 같은 citrus들에는 더 많이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사과를 먹고 설사를 하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만 이런 것은 특별히 장이 안좋으신 분들이 아니라면, 걱정할 이유는 별로 없습니다. 만약 식이섬유 때문에 그렇다면 저녁에 먹는 과일의 대부분이 안좋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식이섬유가 몸에 좋다는 이유들, 예를 들면 혈중 콜레스테롤 감소, 변비예방, 장운동 촉진으로 대장암 예방 등등은 매우 다양합니다. 따라서 너무 늦은 밤시간만 아니라면 저녁 식후에 사과가 독이 될 이유는 없습니다. 

사과속의 식이섬유(섬유질)의 함량은 보통 100그램 사과에 약 2-3g, 껍질까지 포함하면 4-5g 정도 포함되어 있는데 특별하게 식이섬유가 많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따라서 저녁에는 사과 대신 다른 과일을 먹는 것은 별로 타당성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4. 사과도 먹으면 살찐다는 뉴스도 있었는데요?  

그건 맞는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열량이 있는 음식은 뭐든지 많이 먹으면 살찝니다. 저녁 식사를 과하게 하고 과일을 먹으면 무엇을 먹든지 살이 찔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과 국광 200g짜리 하나의 칼로리는 100kcal 정도이고 그 안에는 과당(fructose)가 약 12g, 설탕이 약  6g, 포도당이 약 3g 들어있습니다. 설탕도 분해되면 과당과 포도당이 되는데, 최근에는 혈당조절에 있어서 과당의 역할에 학자들이 주목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사과 속에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고 거의 모든 과일에 다 들어있는 것으로서 지나친 섭취만 아니라면 문제될 것이 없는 것입니다. 

5. 그러면 사과가 산성이라서 위의 산도를 높인다는 것은요? 

(Lehninger Principles of Biochemistry, 4th ed)

사과에는 사과산 (malic acid)이 많이 들어있어서 산성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옆의 그림에서 보듯이 위산 (gastric juice)의 pH가 1.5이므로 사과산이 큰 영향을 준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사과산은 사과에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포도에도 많고 와인에도 상당량 들어있는 물질입니다. 또한 많은 과일에는 다 산성 물질이 들어있습니다. (유기산에 대한 예전 포스팅 참조) 게다가 맨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사과는 알칼리성식품이라고 합니다. 뭔가 이치에 안맞는 듯해 보이죠? 


6. 산성식품, 알칼리성식품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흔히들 이 식품은 산성이라서 나쁘고, 이 식품은 알칼리성이라서 좋고 이런 이야기를 참 많이 합니다. 인터넷이나 책에 보면 몸에 좋은 알칼리성식품이라고 해서 오이, 고구마, 매실, 식초 등 많은 식품들이 나옵니다. 식초가 알칼리성 식품이라니까 좀 의외죠?

7. 그런데 식초는 “초산”이라서 산성식품 아닌가요? 

맞습니다. 식초는 초산이 주성분입니다. 그리고 식초나 매실 모두 pH를 재보면 산성입니다. 하지만 알칼리성식품이라고들 합니다. 왜냐하면 산성식품은 산성을 띄는 식품, 알칼리성식품은 알칼리성을 띄는 식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8. 그럼 산성식품, 알칼리성식품의 정의가 뭔가요?

식품을 산성식품이니 알칼리성식품으로 분류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 스위스 바젤대학의 Gustav B. von Bunge라는 독일의 학자가 주창한 학설인데 이 분이 초기 영양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분이었지만 1920년에 돌아가신 아주 오래전 분입니다.

당시에 영양학자들의 생각에는 식품을 섭취하면 우리 몸에서 연소가 일어나는데 그 연소가 불에 태우는 것과 유사할 것이다, 라는 가정 하에 식품을 태우고 남은 재의 성분(회분 = 무기질)이 우리 몸에서 산으로 작용할 것인가, 염기로 작용할 것인가를 기준으로 나눈 분류입니다. 그래서 쉽게 설명해서 나트륨, 칼륨, 칼슘 등 양이온 성분이 많으면 알칼리성 식품, 인이나 염소 등 음이온 성분이 많으면 산성식품, 이렇게 나누게 된 것입니다.  

9. 그럼 산성 식품이 우리 혈액을 산성으로 만드나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체온을 보면 1도만 정상에서 올라가도 몸에 이상을 느끼듯이 우리 혈액도 중탄산 완충시스템을 통해 아주 엄밀하게 pH를 유지합니다. 보통 우리 몸 속의 동맥혈의 pH가 약 7.4인데 (폐에서는 약 7.6, 조직에서는 7.2)를 유지합니다. 여기서 약 0.05정도만 바뀌어도 산(독)증 (acidosis, pH 7.35이하), 알칼리(독)증 (pH 7.45이상)의 증상이 옵니다. 하지만 이는 신장이상이나 당뇨 (Metabolic acidosis), 호흡이상 (Respiratory acidosis) 등의 질병에 의한 것이지 정상적인 사람들에게서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폐나 조직의 pH는 조금 더  변동폭이 크지만 역시 엄밀하게 조절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현대 식품학에서는 산성식품, 알칼리성식품이라는 개념 자체를 폐기(?)해버린 상태(물론 아직도 인용하시는 분들이 계시지만)입니다. 

10. 그러면 사과를 밤에 먹어도 좋은가요?

일단 너무 늦은 밤에 무엇인가를 먹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녁에 과일로 후식을 드시려고 할 때 사과가 아닌 다른 과일을 굳이 찾을 이유는 없습니다. 특별히 장이 안좋아서 사과를 먹고 나서 불편하시지 않다면 사과도 좋은 후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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