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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도난마 한국경제> (장하준 정승일의 격정대화)

바이오매니아 2009. 4. 1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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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정승일의 격정대화" <쾌도난마 한국경제> (부.키)를 읽다.

예전에 책 읽던 버릇 중에 이런 버릇이 있었다. 한 1년 동안 경제학 관련 책만 읽고, 다음 1년은 역사 관련된 책만 읽고, 그러던 시절. 물론 다른 책을 전혀 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집중적으로 한 주제에 대해 읽는 재미가 좋았다. 물론 대부분은 교양수준의 책이었지만 말이다. 

그 때 경제학 관련 서적들을 쭈욱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 특히 경제학자의 역사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정체가 모호하다"라는 것이었다. 아마 유시민의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과 토드 부크홀츠의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연속으로 읽고난 다음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부자편은 우파, 빈민편은 좌파, 자본주의 우파, 사회주의 좌파라는 식의 명쾌한 구분이 모호해지고 목사라는 멜더스는 기독교적인지 아닌지, 당시 기독교계에서나 유명하던 헨리 죠지는 빨갱이가 아닌지, 케인즈는 우파인지 좌파인지, 마구 헷갈려서 노트에다가 가운데 줄을 긋고 좌와 우를 나누어 경제학자들을 포지셔닝시켜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오늘 읽은 바로 이 책 <쾌도난마 한국경제>는 바로 그 헷갈림의 정점에 있을 것 같다.

이게 바로 그 옛 흔적. 참, 혼자서 이러고 놀았다니...



모호하다. 먼저는 박정희의 근대화와 재벌을 인정하면서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장하준/정승일이 모호하다. 나의 이분법적 세계관으로는 정체가 뭔지 모르겠다. 반시장주의자 박정희를 추종하면서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는 보수세력도 모호하다. 게다가 장하준/정승일에게 혼나면서도 신자유주의 반대에는 뜻을 같이하는 진보세력도 모호하다. 대략 정치는 포지셔닝이라고 했건만 이건 다리를 어느 쪽으로 뻗어야할지 모르는 판국이다. 모호하면서 도발적이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결코 모호하지 않다. 혹자들은 인터뷰, 대담, 신문기고 따위 모아서 책내는 것에 대해 혹평이나 악평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 책은 내가 본 대담을 정리한 책 중에 가장 쉽고 명확하고 내용이 짜임새가 있다. 물론 내가 경제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사람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문외한이 보기에 이 정도의 책이라면 정말 잘 쓴 (내용에 동감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책이라고 할 만하다. 강추다. 특히 최근의 경제 위기나 경제상식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더욱 더.

지난 번에 읽었던 불온서적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이어 두 번째 대하는 그의 생각은 점점 더 흥미롭다. 이제 책꽂이에 꽂히기만 기다린지 한 달이 넘는 <사다리 걷어차기>를 읽을 차례다. 그러고 보니 장하준의 책을 거꾸로 읽고 있다. <박하사탕>인가? (진실을 말하자면 최근에 알라딘에서 장하준의 책들을 무려 50% 할인해서 판매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다 찾아보진 않았지만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경제학자라는 칭찬(그제 부산 MBC 창사 50주년 뉴스데스크)과는 별도로 장하준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은 것으로 알고 있다. 무엇보다 장하준을 보호무역론자로 보는 시각이 만만치 않은 것 같은데,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그렇게 오해될 소지가 있는 부분이 있으나 이 책은 그렇게 읽히진 않는다. 오히려 국가주의자 정도? 그렇다면 자신들이 구박한 민족경제론 박현채의 뮤턴트인가? 원래 진보주의자들은 아나키스트적인 성격이 강한데 장하준이 눈에 거슬릴 것도 같다. 

다만 한가지 이 책을 읽으며 힌트라면 힌트를 얻은 것이 있다면 어쩌면 이런 방식으로 진보와 보수가 화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아마 양쪽에서는 "무슨 얼어죽을 화해!" 라고 소리를 칠지 모르겠지만 수백만을 죽이고 다치게한 전쟁도 잊고 화해하는 판국에 못할 것은 또 무엇인지. 아니 섣부르게 화해라고 하지 말고 그냥 서로 한 발자국 다가서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보려는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기대라고나 할까. 하지만 사민주의적 좌파와 기민주의적 우파의 출현을 기대하기엔 아직도 지난 상처가 너무 크다.

아무튼 쉽고 재미있는 책. 책의 내용에 동의하든 않든 한 번은 읽어볼 만한 책이었다. 강추!!!

PS. 이 책을 통해 알게된 또 다른 한가지는, 장하준이 칭찬한대로, 서말의 구슬을 보배로 꿴 이종태 기자의 사회자로서의 능력이다. 그 능력, 정말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무릎팍도사와 박중훈쑈가 비교될 수 없듯 사회자의 능력이라는 것, 맥락을 인지하고,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적절한 방향으로 인도하는 능력은 아주 고난이도의 기술이자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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