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렸습니다. 최악의 대통령이면서 최고의 전직대통령으로 불렸던 그였지만, 저에게 지미 카터 하면 생각나는 단어들은 땅콩, 주일학교, 조깅, 김일성이죠. 도덕적인 사람은 현실 정치를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만들었던 사람이기도 하구요. 왜 저 단어들이 생각났는지 잠깐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1. 땅콩
지미 카터(Jimmy Carter)는 조지아주 플레인스(Plains)라는 작은 마을에서 땅콩 농장주를 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참고로 플레인스는 2020년 통계로 전체 인구가 573명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마을이죠. 그러니 소위 워싱턴 정가의 사람들에게 카터는 아웃사이더로 보였을 겁니다. 때문에 그의 출신이 놀림감이 될 수도 있었지만, 카터는 오히려 겸손함과 소박함의 상징으로 그걸 더 내세웠습니다.
그의 지지자들은 “Peanut Brigade”라는 이름의 자원봉사대를 결성해 전국적으로 카터를 알리는 데 도움을 주었고, 선거 캠페인에서도 땅콩의 이미지를 활용했으며 기념품으로 땅콩 머그컵(Peanut Mug)을 만들었습니다. 대통령 재임 중,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은 때로는 “Peanut One”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시골 출신 대통령이라는 점을 오히려 소박한 이미지로 바꾸어냈습니다.
2. 주일학교
지미 카터의 삶에서 신앙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축이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미국 남침례교단 소속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이어왔고, 대선 후보시절 유세 중간에 고향 교회인 마라나타 침례교회(Maranatha Baptist Church)에 돌아가 주일학교 선생을 한 것으로 유명했으며, 대통령 재임 중에도 틈나는 대로 워싱턴 DC의 제일침례교회(First Baptist Church)와 고향교회 주일학교 선생으로서의 역할을 놓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물론 퇴임후에는 다시 고향 교회에 돌아가 50여 년간 주일학교를 가르치며 지역 사회에 봉사했습니다. (참고로 아이들 대상이 아니라 성인 대상 성경공부 교사였다고 합니다.)
요즘에는 기독교인들을 특별히 도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카터는 도덕적 이상주의라고 할만큼 정직함과 도덕성을 강조했습니다.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 직후여서 더 그런 측면이 있었겠지만 그의 켐페인 구호 중 하나가 "I will never lie to you"였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이런 신선함과 진실함으로 그는 대선에서 이겼지만, 그게 그의 발목을 잡기도 했습니다.
그의 도덕적 기준과 신앙 중심의 리더십은 때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는데 특히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 시켜야 하는 외교 정책에서 인권 외교를 중시하는 태도는 동맹국들, 특히 우리 나라를 비롯한 독재 정권과의 관계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고, "도덕적 설교를 한다"는 비판을 받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애틀란타의 카터 기념관에는 그가 읽었던 것으로 보이는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가 전시되어 있는데, 아마도 카터가 직면한 딜레마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과거 많은 기독교인들이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생각하며 이 책을 읽었을텐데, 니버는 이 책에서 개인은 도덕적일 수 있지만, 사회는 집단적 이해관계와 권력의 논리로 인해 비도덕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고, 정치 지도자는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를 결합한 실천적 접근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카터는 개인적으로는 도덕적이고 신앙에 충실한 사람이었지만, 이런 가치가 현실 정치의 복잡성과 자주 충돌했으며 그래서 재임시에는 인기가 낮은 대통령으로 단임에 그치고 말았죠. 전부터 저는 카터의 모습을 보면서 "도덕적인 사람이 현실 정치를 잘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3. 조깅
제가 지미 카터에 대해 처음 기억한 장면은 1979년 한국 방문 당시, 그는 미군들과 함께 조깅을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군사독재 시절이었는데, 저는 대통령이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일반 사병들과 친근하게 어울리고, 건강하고 활동적이며 보통 사람 같은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깅이라는 단어도 처음 알게 되었구요. 물론 어디선가 읽은 이야기로는 인권 문제로 박정희 대통령과 갈등이 깊었기 때문에, 일부러 미군 부대를 숙소로 정하고 저런 모습을 연출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만 말이죠.
4. 김일성
퇴임 후, 지미 카터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직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활발한 활동을 했고 평화의 사절로서 세계 곳곳의 갈등 해결에 힘쓴 것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1994년 북한을 방문해 당시 김일성과 직접 만나 한반도 핵 위기를 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요. 당시 미국과 북한 간의 긴장은 군사적 충돌 직전까지 치달았지만, 카터의 중재로 합의가 이루어지며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을 모면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인기 없는 대통령이었지만, 오히려 퇴임 후 그의 이러한 활동은 단순히 전직 대통령의 역할을 넘어, 세계 평화를 위한 헌신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결국 2002년 노벨 평화상 수상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죠. 물론 대북특사로만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은 아니고, 일생의 공로를 인정받은 것입니다. 카터는 재직 중에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의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이끌어 내기도 했습니다.
위의 네가지 키워드로 본 지미 카터는 신앙인으로서의 겸손함, 도덕성, 소박함, 피스메이커로서의 삶을 잘 보여주지만 이러한 훌륭함이 얼마나 현실에서는 취약한가를 보여주는 것도 같아서, 복잡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삶은 참 어려운 것이겠죠.
카터 대통령의 평안한 안식을 빕니다.
(추신)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지미 카터는 그래미상도 받았습니다. 그것도 총 세 번이나요. 물론 음악은 아니고 "Best Spoken Word Album" 부문입니다. 이 부문은 주로 오디오북, 연설, 시 낭독 등의 녹음 작품에 수여되는데, 2006년 미국 사회의 도덕적 가치와 정치적 양극화를 주제로 한 오디오북 "Our Endangered Values: America's Moral Crisis"으로 2007년 첫 수상을 했으며, 그 이후에 2016년 (A Full Life: Reflections at Ninety) 과 2019년(Faith: A Journey for All)에도 수상을 했습니다. (그래미상의 이 부문은 1959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지미 카터 이외에는 빌 클린턴이 1회, 버락 오바마가 2회 그래미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미셸 오바마도 1회 수상을 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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