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을 나오면서부터 시간이 지날수록 별의 갯수가 많아지는 영화 ★★★★☆



단언컨대, 축복이다. 이런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이 말이다. 과문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죄와 구원과 부끄러움과 순수와 현실과 사회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영화감독을 나는 이창동 외에는 알지 못한다. 

흔히 이창동의 영화는 두 번 보기가 힘들다고 한다. 순수한 영혼의 지독한 파멸 과정을 그린 <초록물고기>와 <박하사탕>,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을 그린 <오아시스>, 죄와 고통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밀양>, 어느것 하나 다시 보려면 나름의 용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런데 이 영화 <시>는 다르다. 물론 이번 이야기 역시 가슴아픈 내용이 핵심을 이루고 있으나 아마 몇 번이고 다시 봐야 그 대사 하나 하나의 의미를 새롭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시를 이해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영화는 순수한 예술에 대한 이야기로 읽어도 명작이고 종교와 철학으로 읽어도 명작이고 지독한 정치의 알레고리로 읽어도 명작이고 어느 부박한 삶의 단순한 일상으로 읽어도 명작이다. 때가 때인지라 나는 오히려 지독한 정치의 알레고리의 해석이 더 와 닿았다. 멍하니 영화를 보다 마지막에 나오는 "아네스의 노래"가 나오는 순간,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어쩌면 이창동 감독은 정말 "그"를 기억하며 이 작품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이하 스포일러 주의!!!)

아네스의 노래 
                      이창동 (양미자)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 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물론 위의 시 "아네스의 노래"는 동네 같은 학교의 남학생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한 한 여학생(세레명 아네스)에게 보내는 미자의 시다. 미자는 그 이름 그대로 아름다운(美) 여자이고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여자다. 꽃과 같이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시 역시 아름다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할머니다. 때문에 미자는 그가 사는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 부조화는 그녀가 외출시 입고 다니는 꽃무늬 옷들로 나타난다. 

미자는 동네 문화원에서 시를 배우면서 일상적으로 스쳐지나가던 사물들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나무를 쳐다보고 사과를 쳐다보고 길에 떨어진 살구를 맛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에게 시상은 찾아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그녀는 외손자가 얽힌 아네스의 자살 사건에 삶이 얽히면서 아네스가 뛰어내린 다리, 아네스의 시신이 흘러내려간 강가, 성폭행당했다는 과학실, 그리고 아네스의 집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여행하고 나서야 시를 완성하게 된다. 즉 단순한 사물에 대한 관찰이 아니라 현실을 통찰하는 시각이 생긴 다음에야 시를 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미자가 현실을 통찰하는데 중요한 두가지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 첫번째는 미자가 찾아간 시 낭송회 장면이다. 거기에서 미자는 서울에서 쫓겨온 박형사라는 인물을 만나는데 그는 순수한 시를 음담패설로 모독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시를 사랑하는 낭송회원들은 박형사의 그런 모습을 모두 흐믓하게 바라만 보고 있다. 심지어 시 강좌의 선생인 김용탁이 칭찬하는 후배 시인 황명승은 "시 같은 건 죽어도 싸다"는 소리를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미자는 밖에 나가 혼자 울기 시작하는데 여기서 미자는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두번째는 미자가 아네스의 엄마를 만나러 가는 장면인데 미자는 정말 안어울리는 꽃무늬 옷을 입고, 길에 떨어진 살구를 음미하느라 정작 자기가 해야 하는 이야기를 잊어버리고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고 오게 된다. 아이를 잃은 엄마에게 아름다운 자연과 시에 대한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고 오다니... 미자는 자신의 좁은 시야를 반성하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은 결국 자기가 죽인 여중생의 사진을 밥상에서 보고도 그냥 외면하는 외손자를 경찰에 보내게 만든다. 그것이 미자가 손자를 구하는 방식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상을 구원하는 방식.

그리고나서야 미자는 시를 쓰게 된다. 그 시가 아네스에게 바치는 "아네스의 노래"다. 영화에선 미자의 나레이션이 나오다가 중간에 아네스의 목소리로 바뀌는데 미자는 아네스가 된 것일까? 결말에 대해서 왈가왈부가 많지만 영화는 열린 결말로 끝을 낸다. 맨 마지막 장면에서 첫장면처럼 강물에 미자의 시신이 떠내려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감독은 미자의 자살 쪽을 더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상, 고통을 외면하는 세상,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세상, 순수한 것만 찬미하는 세상(순수시인 김춘수와 서정주가 전두환에게 바치는 시를 읽어보라!)에 대한 지독한 성찰인 이 영화를 보며 바로 1년전에 아네스와 같이 세상을 떠난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위에 있는 극중 미자의 시 "아네스의 노래"는 소설가 출신의 이창동 감독이 직접 쓴 것이라고 하는데 자꾸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조시(弔詩)로 읽힌다. 어쩌면 정말 지독한 정치적 알레고리인 듯도 하다. 일설에는 이창동 감독이 노무현 대통령과의 연관성에는 "노코멘트"를 했다고 하는데 아마 시간이 지나고 나면 거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창동 감독이<시>를 구상한 것은 노대통령 서거 이전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아무도 시를 읽지 않는 이 시대에는 아무도 <시>를 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삶이 팍팍하다고 불평하고 인생의 허무함과 말초적인 감각만 득세하는 이 시대를 한탄하는 소리는 그래도 가끔 있지만 그에 대한 성찰은 부족한 이유는 바로 이런 영화를 아무도 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심야에 혼자 보러간 극장에서 내 옆에 앉은 사람은 시작 15분만에 코를 골기 시작했다. 물론 피곤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깐에서 상을 받으면 조금 더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 생각에, 그리고 이창동 감독이 노무현 사람이라고 일부러 영진위 시나리오 심사에서 빵점을 준 의혹을 받는 작품이 수상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끝으로 칸 영화제 수상식하는 날짜가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 기일이라는 점에서라도 깐에서의 수상을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아마 이런 우리나라의 상황을 칸의 심사위원이 안다면 무조건 수상을 할 테지만 결과는 기다려볼 수 밖에...

끝으로 이창동 감독이 문화부 장관으로 취임하면서 쓴 소통에 대한 글 한 편을 권한다. 잃어버린 지난 날은 이런 시대였다. 



(솔직히 깐에서 상을 받게 되면 수상 소감에 "나의 친구 노무현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는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겠다.)         
 

Posted by 바이오매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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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각얼음 2010.05.23 2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기랄, 어떤 장관과 이다지도 다를 수 있단 말인가!

    오밤중에 혼자 보러가기 뭣하면

    나랑 손잡고 가세. 그게 더 이상한가?

  2. Favicon of http://avila.tistory.com BlogIcon Avila 2010.05.24 13: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녀>를 보시면 칸 영화제의 신뢰도가 무너질 겁니다. 손 잡고 가셨다가 맘 상하고 돌아오십니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 보지 않기를 진심으로 권해드립니다.

    • Favicon of https://biotechnology.tistory.com BlogIcon 바이오매니아 2010.05.24 15: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임상수 감독 특유의 빈정거림(?)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볼겁니다. 대신 손은 안잡고 갑니다. 칸영화제는 대학생 때 데이빗 린치의 <광란의 사랑>을 보고나서 애시당초 기대를 끊었어요.^^ 지금 다시 보면 뭔가 달라 보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