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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먼 곳에 (2008, 이준익) ★★★☆

바이오매니아 2009. 6. 23.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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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나가면 개고생이다. ★★★☆

이젠 이런 공개 포스터 블로그에 게재하는 것도 저작권법 위반이라던데...


집나가면 개고생이다. 버젓한 부인 두고 (그것도 수애같은 부인!) 대학생 애인까지 거느린 찌질이 남자 박상길 (엄태웅)은 군대에서 사고를 치고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다. 경상도 양반가 3대 독자 며느리인 아내 순이(수애)는 남편에게 아내로 대접받지 못하고 시어머니에게 쫓겨나고 친정에서도 출가외인을 외치는 와중에 "정확하게 알기 어려운 이유로" 남편을 만나러 위문공연단의 일원으로 베트남으로 향한다. 상길은 상길대로 베트남에서 죽을 고생을 하고 순이는 순이대로 죽을 고생을 하는 우여곡절이 이 영화의 줄거리다. 

(아래에는 약간의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뭐 알고 봐도 상관없다고 생각되지만...)

이준익 감독의 "음악 3부작" 마지막 편인 이 영화는 앞의 두 편 <라디오 스타>나 <즐거운 인생>과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일단 가장 대중적인 판타지 영화감독 답게 <님은 먼 곳에>도 역시 판타지 스러운 부분이 많다는 것이 공통점. 사람들이 현실성 운운하면서 비판하는 부분들이 그것이다. 사실 이런 줄거리의 영화를 볼 때 제일 꺼려질 만한 부분들은 전부 생략되어 있다. 여자 혼자 전쟁터에 간다고 생각해보자. 수많은 수컷들의 껄덕댐과 그 와중의 개고생이 안봐도 비디오인데 이 영화에서는 한 장면도 없다. 오히려 그게 신선해 보일 정도로. 

게다가 본격적인 삶이 시작할 만한 곳에서 끝나 버리는 것도 공통점이다. <라디오 스타>에서 최곤과 매니저는 앞으로 잘 살지, <즐거운 인생>의 조개구이집 활화산은 장사가 잘 될지 궁금하던 차에 영화가 끝나버린 것처럼 순이가 상길을 만나 따귀 몇 대 때리고 나서 그 다음엔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온전히 관객의 몫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은 별로 유용해 보이지 않는다. 감독이 이준익이라니까! 

하지만 이 영화가 앞의 두 영화와 보여주는 큰 차이점은 대중을 설득시키려는 시도를 포기한 듯하다는 것이다. 앞의 두 영화는 다른 생각이 불가능한 영화다. 이전의 이준익 영화는 영화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당연히 즐거운, 판타스틱한 결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냥 따라오시면 감동과 재미를 드립니다, 라는 영화다. 물론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7천원을 지불할 대중의 눈높이에는 적확하게 맞추어져 있다. 

그리고 그 감정선을 따라 음악이 흐른다. <라디오 스타>나 <즐거운 인생>에서는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노래들이었슴에도 불구하고 그 음악이 주는 효과가 뛰어났다. 가사도 영화를 위해 잘 복무했다. 최곤(박중훈)의 "비와 당신"은 <라디오 스타>의 내용을 그대로 대변하고 "언젠간 터질꺼야", "즐거운 인생" 등의 곡들도 <즐거운 인생>의 스토리와 엄청 높은 싱크로율을 보인다. 그렇게 이야기에 빠져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나면 끝. 즐겁고 좋잖아! 

하지만 <님은 먼 곳에>는 다르다. 관객은 계속 생각해야 한다. 순이는 대체 왜 별로 사랑하지도 않는 남편을 만나러 가는 걸까? 상길은 대체 왜 우는 걸까? 순이는 남편을 사랑하는 걸까? 상길은 개고생하고 나서 반성하는 걸까? 무대에서 억지로(?) 웃는 장면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순이가 웃는 장면은 왜 베트콩과 있을 때인가? 등등 질문을 하자고 들면 꽤 여러가지 질문이 나오고 다양한 답이 나온다. 이전 이준익의 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것이고, 어쩌면 이제 그도 답을 내려하기 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선생"의 자리에 들어선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든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의 음악은 모두 관객들이 익숙한 내용의 곡이다. 하지만 그 가사들은 영화의 내용과 조금씩 엇갈린다. "님은 먼곳에"라는 제목부터, 과연 누가 님이라는 거야? 라는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물론 영화 마케팅하는 사람들은 님을 찾아 떠나는 열녀 아내의 이야기인 것처럼 fake를 쓴 듯 하지만 말이다. 내가 남자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상길의 성장영화로 봐야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 그렇다면 오히려 님은 순이를 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준익 감독은 남성성, 여성성 이야기를 하던데 그건 약간 오버인 것 같다. 아무튼 이준익의 영화 중에는 제일 좋았다. 

(글을 1주일 전에 대충 써놓고 짬짬이 고치다 보니 이건 뭐 글이 글같지 않아지는 현상이... 모르겠다, 그냥 올리자! T T)

거미 - 님은 먼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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