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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플루와 나로호로 생각해보는 과학 인프라

바이오매니아 2009. 9. 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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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가장 화제가 된 주제는 신종 플루와 한국최초의 우주발사체 나로호 발사에 관한 뉴스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신종 플루에 대해서는 지나친 공포감이, 나로호에 대해서는 성공과 실패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오늘은 그 이면의 이야기를 한 번 해보려고 합니다.

1. 우리나라 고등학교 야구팀의 개수는 몇 개일까?

우리나라 고등학교 야구팀은 60개가 채 안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과거에는 지역 예선전이 없는 봉황대기 야구대회에 출전하는 학교 수가 고교야구팀 숫자였는데 30년 전에도 56개 팀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올해는 52개팀이 참가를 했더군요. 

그런데 일본의 고교야구팀은 2008년 기준4,163개라고 합니다.(2009년 고교야구연맹등록고교는 4,132팀, 역대 최다는 2005년 4,253팀) 그러니까 우리나라 고등학교 야구팀 숫자는 일본 고교야구팀 숫자의 끝의 두자리보다 적다는 것이죠. 그래서 작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팀이 일본을 꺾고 우승을 했을 때 이승엽 선수가 "고교 팀이 60개인 나라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건 기적"이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보통 스포츠에서 이렇게 저변이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선수들이 불굴의 노력으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을 보면 참 대견스럽고 자랑스럽지만 사실 그것을 그냥 좋아만 해가지고는 더 나은 발전을 이루기 어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소위 시스템과 인프라를 제대로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죠.

2. 인프라란 무엇인가?

인프라란 infrastructure의 준말로서 원래는 경제 활동의 기반을 형성하는 기초적인 시설인 기간시설을 뜻하며 도로나 하천, 항만, 공항 등과 같이 경제 활동에 밀접한 사회 자본을 뜻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 뜻이 많이 넓어져서 다양한 "기반"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남들과 비교해서 초고속 성장을 한 우리나라는 남들이 역사로 체득한 소중한 자산들을 배울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회적인 문제들에 맞닥뜨리면 외국 또는 선진국 사회의 시스템을 우리나라에 이식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의 시스템이 좋은가, 그 시스템을 법과 제도로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해서 많이 고민을 해왔었지요. 

하지만 이제 시스템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가면서 들어나는 것은 인프라의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인프라는 시스템을 받쳐주는 기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와 일본의 고등학교 야구 인프라를 무시하고 일본과 같은 경기 시스템(1년에 두 번 하는 고시엔대회)만을 도입한다면 그 제도가 제대로 돌아가기 힘들 것입니다. 

3. 인프라가 중요한 것은 알지만 인프라 구축이 안되는 이유는? 

인프라가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인프라에 투자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일단 인프라는 장기적 안목이 필요하다는 점, 상당한 재정적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눈에 보이는 가시적 성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러다보니 정치하시는 분들이나 의사 결정권을 갖고 계신 분들이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바이오나 위성개발과 같은 분야는 특히 그런 분야인데 “바이오는 돈만 잡아먹고 나오는 것은 없다”느니 “신약은 자동차나 반도체 많이 팔아서 사다먹으면 된다.”는 소리까지 나온다고 합니다. 물론 바이오하는 사람들이 멋진 청사진만 그려놓고 실제로 그 결과를 내놓지 못한 경우도 있지만 이번 신종플루 사태를 겪으면서 과연 그런 생각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 신중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번 신종플루 사태에서 그나마 매우 다행스런 일은 우리나라가 세계 12번째 백신생산국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백신생산국이 되기까지는 10년이 넘는 “기다림”이 필요했는데 지난 2006년에야 정부에서 162억원 투자를 해서 총 800억원을 들여 백신 생산 공장을 올해 3월에 완공을 했다고 합니다. 만일 그 투자마저 늦어져서 백신 생산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면 가뜩이나 지나치게 신종 플루에 공포스러워하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위성개발과 같은 분야도 마찬가지인데 이번 나로호 발사에 들어간 제작비 및 투자비용이 5천억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혹자들은 국민혈세로 5천억짜리 불꽃놀이를 했다고 비꼬기도 하더군요. 과거 외국에서도 우주탐사와 같이 실생활과는 무관해 보이는 거대규모 과학예산에 대한 논란이 있곤 해왔지만 최근에는 각종 위성장비를 이용해서, 군사, 방송, 온라인지도, 네비게이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실생활에 도움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이런 분야들의 중요성이 뒤늦게 인식되고 있는 편입니다. 하지만 우리와 경제 수준이 비슷한 다른 나라들에 비해 투자가 부족했고 인프라를 갖추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고 (여기에는 국방과 관련된 문제도 있지만) 출발이 늦었기에 넘어서야 하는 벽이 더 높은 것이 사실인 것입니다. 이제 달착륙 (1969년 7월 20일) 40주년에야 첫 우주발사체를 쏘아 올리게 된 것이죠. 

4. 실패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뀔 필요가 있다. 

나로호의 경우 발사는 성공했다고 위로하기도 하고 “절반의 성공”이라고도 하지만 사실은 거의 실패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제대로 된 평가일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실패는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그 문제에 대해서는 얼마전 본 무릎팍 도사-안철수 편에서 안철수씨의 말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많은 분들이 젊은 세대가 예전보다 안전 지향적이라 문제는 그런 도전정신 강한 학생들을 안전지향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사회가 몰아붙이고 있는 것" 

"실리콘밸리는 성공의 요람이 아니라 실패의 요람이며 100개의 기업 중에서 1개가 성공한다. 하지만 실패한 기업에게도 도덕적 문제가 없고 최선을 다했다고 하면 다시 기회를 준다"

"실패한 사람에게도 기회를 주는 쪽이 결국 젊은 20대들이 보다 도전적인 정신을 갖게 만들 것"


제 전공과 같이 실험을 하는 분야의 경우에도 실패의 경험은 소중합니다. 실험 결과는 원하는 방향과 다르게 나오는 경우가 태반인데 그 때 실험을 잘하는 학생은 무엇이 잘못된 부분인지를 잘 가려내서 같은 실수나 오류를 반복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원하는 데이터 나올 때까지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진부한 경구같지만 분명 성공은 실패가 낳는 옥동자라고 생각합니다. 

5. 나로호 발사, 성공이냐 실패냐보다 중요한 것

이번 나로호 발사에 대한 기사를 찾다보니 재미있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번 발사체 개발에 참여한 업체들에 대한 것입니다. 나로호 개발과 발사운영 총괄은 항공우주연구원이 담당했지만 삼성 테크윈이 터보펌프, 대한항공이 발사체 조립, 시험, 트렌스포터 제작, 한국화이바가 탄소복합재 구조체 제작, 한화가 고체연료 로켓(킥모터, 추진기관 제작), 비츠로테크라는 회사가 2단기체 엔진, 두원중공업이 2단 기체구조 보호덮개(페어링), 두산인프라코어가 관성항법유도시스템 제작, 현대중공업이 발사대건설 등등에 관여하는 등 약 160개 업체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우주발사체 개발과 제작에 처음 참여한 국내 기업들은 시행착오만큼이나 상당한 기술력과 노하우를 축적하게 되었고 오는 2018년 100% 국내 기술로 제작될 한국형 우주발사체 2호(KSLV-Ⅱ) 개발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것을 통해서 우리나라에도 관련 분야가 넓어지고 기술이 발달하고 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성공이냐 실패냐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6. 선택과 집중도 좋지만 나라는 기업이 아니다. 

물론 한정된 재원을 가지고 모든 분야에 다 투자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잘 압니다. 따라서 우선순위를 잘 정하고 적당한 때에 필요한 자원을 투입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국가는 기업이 아닙니다. 대학도 경영, 국가도 경영, 심지어 교회나 사찰도 경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세상이긴 하지만 국가의 운영이 기업처럼 “선택과 집중”이라는 효율성으로만 움직여서는 안될 것입니다. 당장 가시적인 성과가 없을 지라도 좀 더 길게 보고, 후대에 필요한 기반을 잘 닦아 두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지금 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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