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부산 MBC FM모닝쇼 "이한승의 Health and Taste" 코너의 마지막 방송을 마쳤습니다. 정확하게 2년하고 1주일, 101번째 방송이었습니다. 시작할 때도 아무 준비없이 시작했었는데 끝까지 큰 사고 없이 마친 것이 다행입니다. 첫해는 "이한승의 굿모닝 사이언스"라는 제목으로 주로 과학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었고 두번째 해는 "이한승의 Health and Taste"라는 코너에서 식품과 관련된 상식과 과학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음악 FM에서 아침에 과학 이야기를 한다는 데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처음엔 원고 준비하느라 며칠씩 걸려서 매주 열 장에 가까운 원고를 써대곤 했습니다. 덕분에 논문도 많이 읽었고 이해가 안되는 것들을 머리에 집어 넣느라 고생도 많이 했죠. 그런데 그걸 재미있게 들었을 분들이 과연 계실지 궁금해지더군요. 그래도 다행이 부산 MBC FM모닝쇼라는 프로그램이 아침부터 책소개도 하고 영화소개도 하는 프로그램이라 슬쩍 끼어들어갈 수 있었죠.
두번째 해엔 주제를 좀 소프트하게 식품에 관련된 내용들로만 한정했는데 사실 전 해에 비해선 많이 편했습니다. 다만 식품과 관련된 정보라고 유통되는 것들 중에 정말 그런지 아닌지 출처가 불분명한 것들이 많아서 그런 것들 확인하는데 약간 애를 먹기도 했죠. 특히 식품 성분같은 것은 우리나라의 자료와 외국 자료의 성분 함량이 다른 경우가 많고 논문도 서로 다른 것이 많아서 난감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슬슬 즐기면서 했던 것 같습니다.
너무 바쁜 생활 때문에 몇주전 방송을 그만두어야겠다고 이야기하고 나서 프로그램이 없어지는 바람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잘렸습니다만 이쯤에서 그만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쉬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 밑천도 다 떨어져가고 있는데다 제일 중요한 것은 제가 "이런 것 먹으면 좋습니다" 내지는 "이런 것 먹으면 안좋습니다." 이런 소리를 못하는 사람이라 이저저도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은근히 불편하더군요. 예능에 나와서 다큐하는 느낌?
아무튼 마지막 방송. 그동안 하고 싶지만 못했던 이야기를 좀 하려고 했는데 이런 딱딱한 이야기는 풀어나가기가 쉽지는 않더군요. 하지만 재미없더라도 제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들을 정리해서 마지막 방송을 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방송이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내용이 딱딱해서 그랬는지 자꾸 버벅거리고 논리를 건너뛰어 급하게 끝맺음을 해버렸습니다. 흑! (마지막이라 화일을 올리려고 했는데 마음에 안드는 부분이 여럿이네요.ㅠㅠ)
모닝쇼를 통해서 여러 가지 음식과 과학적인 내용을 소개한 지 벌써 2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동안 이야기 했던 내용 가운데 우리가 식품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하는 상식들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1. 정제된 식품은 안좋다?
보통 백미, 밀가루, 설탕이나 소금을 안좋다고 하면서 정제된 식품이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실제로 정제된 식품 자체가 우리 몸에 안좋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적절한 양이고 정제된 식품을 먹다보면 고르게 먹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 뿐이죠. 실제로 정제된 식품을 먹지 않기 위해 흑설탕이나 천일염을 먹자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지만 다른 식품을 고르게 먹고 지나치게 많이 먹지만 않는다면 백설탕이나 정제염이 큰 문제를 일으키진 않습니다. 정제식품을 대체한다는 제품들을 오히려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건강하게 먹는 첫 번째 원칙은 고르게 먹는 것입니다. 고르게 먹어야 하는 이유는 다양한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기 위함인데요. 우리 몸은 영양소가 남는 것보다 부족한 것에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영양이 과잉되면 큰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지만 결핍 시에는 다양한 결핍증으로 나타나죠.
2. 천연 식품이 좋다?
흔히 가공식품은 나쁘고 천연식품이 좋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만 반드시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양한 식중독은 천연독이나 자연식품이 부패하여 일어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인공, 합성이라고 하면 좋지 않다는 인식은 때로 마케팅의 한 방편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정확한 정보도 없이 단지 합성첨가물이라고 문제를 제기해서 그걸 훨씬 더 비싼 천연첨가물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는데 식품의 원가만 올라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차피 같은 물질이 들어있는데도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천연이건 합성이건 그 정확한 함량과 성분이며 그 물질의 안전성입니다. 천연이건 합성이건 모두 화학물질이고 그 화학물질이 안전하면 천연이건 합성이건 안전한 것입니다.
3. 의식동원(醫食同原), 의약과 음식의 근원이 같다
식품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제일 유명한 말은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의식동원(醫食同原), 즉 의약과 음식의 근원이 같다는 말입니다. 의식동원이란 고대 중국에서부터 유래되는 말인데 질병의 근원에 음식이 있다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음식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입니다.
하지만 최근엔 그 중요성이 조금 지나치게 강조되어 일부에선 음식으로 병을 치료하려는 시도까지 있습니다. 음식이 장기적으로 건강에 영향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질병을 음식으로 치료하려고 하는 것은 조금 지나칩니다. 의학과 식품은 다릅니다.
몇 년 전에 어느 방송국에서 만든 환경호르몬에 관한 프로그램을 보면 생리통이 지나치게 심한 여성들 20명을 대상으로 플라스틱 그릇을 버리고 음식을 조절하고 운동을 시켜서 통증이 감소한 여성이 30% 정도 생겼다는 방송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방송이 나간 후에 많은 집에서 플라스틱 그릇을 버리고 유리 그릇을 구입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는데요. 실제로 그 방송에서 생리통이 심한 여성의 대부분은 자궁내막증이 있는 환자들이었습니다. 따라서 플라스틱 그릇을 버리기 전에 정확한 진단을 받았어야 하는 것이죠. 실제로 자궁내막증은 원인이 아직도 불명확하고 환경호르몬은 확실하지도 않고 그냥 추정되는 원인의 하나에 불과할 뿐이었는데 말입니다.
실제로 위암 같은 경우는 조기 발견하면 완치율이 95%가 넘는다고 하는데 완치가 안되는 나머지 5%는 치료를 거부하거나 주변에서 몸에 좋다고 하는 소문을 따라서 이상한 것들을 섭취해서 오히려 병을 악화시키는 분들이라는 것입니다. 의학적으로 더 이상 손을 쓰기 어려울 때에 그런 대체 요법들을 찾으시는 것은 몰라도 일단 질병에는 의학의 도움을 받으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식품은 그 다음임을 잊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4. 요즘엔 안전하게 먹을 것이 없다?
식품안전을 걱정하시는 분들 사이에는 요즘에 안전하게 먹을 것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가끔보게 됩니다. 하지만 과거와 비교해보면 그런 걱정들이 조금 지나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과일이나 채소 속의 농약에 대한 우려를 예로 들면 과거보다 농약의 검출 방법은 엄청나게 발전했고 기준은 점점 까다로워졌지만 기준치 이상의 농약 검출은 점점 줄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농민들도 과도한 농약 사용으로 자신들이 재배한 농산물을 팔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주의를 하고 있는 실정이구요.
물론 아직도 비위생적인 방식으로 식품을 제조하는 곳들이 있고 불법적인 행위들이 근절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사실 돈에 눈이 멀어 자행되는 불법은 어느 사회에나 있는 것이고 과거보다는 좋아지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도 식품업체들에게 위해 요소 중점 관리 기준(HACCP) 등을 법제화하여 식품안전이 단순한 최종 제품 뿐만이 아니라 만드는 과정에도 신경을 쓰도록 하고 있으므로 지나친 불신을 하기 보다는 합리적인 소비와 비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5. 건강하게 먹는 법
제가 방송에 나와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하다보니 건강을 위해서 뭘 먹는 것이 중요하냐고 묻는 분들이 가끔 계신데요. 제가 그런 분들에게 드리는 답은 사실 매우 간단한 것입니다. “조금 적게 먹고 조금 더 움직이세요.” 사실 건강을 위한 식생활은 각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이야기하기 힘들지만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조금 적게 먹고 조금 더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언제나 기본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골고루 먹는 것도 중요하고 건강을 위한 기본 중의 기본인 금연, 절주, 운동도 중요합니다. 밝혀진 1급 발암물질만 십여종이 있는 담배를 피우면서 몸에 좋은 음식을 찾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아울러 무엇을 먹느냐 보다는 어떻게 먹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몸에 좋다는 것도 나쁘다고 하는 것도 적정량을 초과하거나 모자라게 먹으면 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식품이 몇가지 좋은 점이 있고 몇가지는 안좋은 점이 있기 때문이죠.
6. 육신의 양식도 중요하지만 영혼의 양식도 신경 쓰세요.
특별히 방송을 마무리하면서 끝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몸의 영양분 뿐만 아니라 영혼의 양식도 신경을 쓰시라는 것입니다. 얼마 전 보고된 흥미로운 연구결과는 과음을 하는 사람들이 전혀 금주를 하는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음주는 확실한 1급 발암인자이지만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들보다는 인생에서 좋은 사람들과 교제를 하는 사람들이 더 오래 산다는 뜻이기도 하죠.
설탕과 아이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에 대한 연구 중에도 재미있는 결과가 있는데 부모가 아이가 실제로 설탕을 먹지 않았는데도 설탕을 먹었다고 생각하면 과잉행동을 보인다고 평가해서 아이의 행동의 차이는 오히려 부모의 마음에 달렸다는 결과도 있습니다.
때문에 지나친 식품안전성에 대한 우려는 건강염려증을 불러오기도 하고 심리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최근엔 우리가 먹거리를 대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많이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월드비전의 긴급구호팀장인 한비야씨가 긴급구호현장에서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릴 때 먹인 음식은 최근 지탄받고 있는 밀가루, 설탕, 소금, 콩가루로 만든 영양죽이었다고 하죠.
모든 분들이 감사하는 마음과 즐거운 마음으로 기본적인 원칙들을 지키면서 맛과 건강을 다 붙잡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제 다 끝낸 지금, 시원함 51%와 아쉬움 49%가 교차합니다. 사실 개편 내용을 미리 스포일하면 안된다고 해서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하고 음악으로 양희은씨의 "한계령"을 틀었는데,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 이 뜻을 이해한 분이 계셨을까 모르겠네요.^^
주제넘게 방송에 나와 받았던 사랑이 있다면 그건 제 몫이 아니었음을 깨달았고 소중한 만남들에 감사하고 좋은 경험에 감사하고 적절한 때에 그만 둔 것도 감사하다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처음 방송 시작할 때 바램, 좀 더 정확한 정보가 조금이라도 전해졌다면 지난 2년이 보람있었을 것 같네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반성할 것 투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