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실패의 요람이 되어야 한다!” 대학생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인 안철수 카이스트 교수의 말이다. 성공신화의 요람으로 알려진 실리콘밸리도 알고 보면 실패의 요람이고 실패도 하나의 자산이라는 주장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진부한 격언을 모르는 사람이 없음에도 그의 주장이 화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 우리 사회에서 실패를 딛고 일어서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과학기술계를 돌아보자. 올해 초에 한국연구재단은 조금 특별한 사업을 시작했다. 이른바 ‘모험연구지원사업’이라는 것인데 창의적이고 도전적 아이디어를 가진 혁신적이고 참신한 연구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의 특징은 당초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실패하더라도, 이를 용인하는 ‘성실실패 용인제도’를 운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정확한 통계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연구과제의 성공률이 80%를 넘는다고 한다. 이는 많은 연구자들이 무척 안전한 연구만 하거나, 아니면 선행연구를 충분히 한 과제가 주로 선정된다는 뜻일 것이다. 혹자는 연구결과의 부정이나 온정적 평가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원인이 무엇이든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도전적인 연구, 황당해 보이기까지 하는 혁신적인 연구를 수행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고 어려웠다. 모험연구지원사업을 주변의 여러 연구자들이 반기는 까닭이다.
교육과 과학 분야에서 창의성이 필요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데 창의성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신진 인력들에 대한 지원과 그들의 도전정신에 대한 적절한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최근 여러 대학에서 신임교수들에게 다양한 지원을 하는 제도가 나오고 있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연구장비 하나 구입하기에도 부족한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 면에서 신진연구자를 위한 연구장비 지원도 시행된다니, 정말 반갑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 사업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특히 모험연구는 성실 실패와 불성실 실패를 나누는 기준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우리 사회에서 연구자의 연구비 사용에 대한 신뢰는 그다지 높지 않다. 이 때문에 우리는 연구과제 수행보다 신청, 심사, 현장실사, 보고서 작성, 평가 등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트러스트’에서 역설한 대로, 신뢰가 없어서 비용이 많이드는 구조를 만들어 온 것이다. 다행히 여러가지 변화가 시작됐지만 획기적으로 바꾸어야 할 때가 왔다. 부정을 행한 자에게는 엄한 벌을 주되, 실패를 두려워 말고 좀 더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풍토가 만들어져야 한다.
얼마 전 나로호 2차 발사가 실패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밤을 세워가며 노력했을까를 생각하면 나로호가 추락하는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괴롭다. 하지만 이러한 실패를 통해서 우리는 계속 새로운 것을 배울 것이며 차근차근 경험을 쌓아갈 것이다. 문제는 당장 안 된다고 접어버리는 것이다.
경쟁 사회에서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두가 실패만 하기도 어렵다. 언제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실패 속에 한두 번의 성공이 큰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 모험과 도전정신이 없으면 실패를 딛고 일어서기 힘들다. 이제 세계 중상위권에서 상위권으로 발돋움하려는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은 실패의 요람에서 성공의 신화를 키우는 것이다. 과학기술도 실패의 요람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