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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머니 이야기

바이오매니아 2001. 11. 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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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그래도 이만큼 살아온 것은 순전히 어머니 덕이다. 맘 좋은 아버지는 내가 국민학교 5학년 시절 당신 동생에게 전재산(장난 아니게 큰 돈이었다)을 날리셨다. 그리고 또 나중에 형님에게도 상당한 액수의 돈을 빌려드렸는데 큰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것도 없는 돈이 되어 버렸다. 아무튼 이렇게 저렇게 날린 돈만 갖고 있었다면 좀 더 넉넉히 사실 수 있을 텐데...

그 와중에 우리 어머니는 악착같이 사는 길이 정말로 사는(생존하는)길이라는 것을 배우시고 이런 저런 일을 하시기 시작하셨다. 형제들은 의사에다 교수에다 다 잘나가는데 혼자만 약대에 진학했다가 등록도 포기하고, 6.25때 혼자되신 외할머니를 도와, 위로 형제 둘을 의대 공부시키고, 아래로 동생 둘을 대학 공부시킨 우리 어머니의 그 착한 맘씨 덕분에, 우리 아버지가 그 돈을 다 날리고 길바닥에 나앉게 될 무렵, 우리 가족은 이모, 외삼촌 덕분에 근근히 살아갈 수 있었다. 아파트 청소부터 참기름 배달, 카세트 테입 외판원, 출판사 외판원 등등, 결국엔 그런 노력으로 날렸던 집까지 찾았다.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우리 어머니 집안 청소를 해 본 역사가 없는 분이다(누가 오기 전에는). 집안일은 아버지가 대부분 하시는 거고, 어머니는 그저 손가락과 세치 혀로 조종을 하신다. 물론 밖에 나가서는 안 그러신다. 남의 집 김장김치는 다 해주고, 교회에서 일 있으면 죽어라 일하시고는 집에 들어와서는 여왕으로 군림하신다. 물론 절대 자식들이 고분고분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우리 형제가 좀 깨끗한 집에서 살아보자고 온갖 투쟁을 다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니가 해!" 물론 우리도 안했고 이제는 모두 포기하고 말았다. 아직도 우리 부부는 서울에 올라가기 전에 "청소 해 놨어요?"라고 질문하고 어머니는 "우리가 아무 문제없이 사는데 뭐가 문제냐?"라고 반문하신다.

이렇듯 집안일에는 별로 신경쓰시지 않는 어머니를 할머니께선 언제나 못마땅해 하셨지만 그래도 하시는 말씀은 "그래도 네 엄마는 재주가 있다"는 것이었다. 아마 그건 자식들 3형제가 모두 물고 물리며 돈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보신 할머니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나는 꽤 짠돌이다. 그게 내가 살아온 방식이었고 어머니가 살아온 방식이었다. 견물생심이므로 보지 않는 것이 최고다. 또 돌아다니지 않는 것이 그 다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일은 남과 비교하지 않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요즘엔 경제 사정이 좀 나아져 달라졌지만 나는 아직도 꼬박꼬박 가계부를 적고 있다(놀랍지?). 다행인 것은 이런 면에서 아내와 죽이 잘 맞는다는 것이다. 아내가 만일 이런 면에서 나와 맞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벌써부터 쉬고 계신 아버지 때문에 부모님의 수입은 제로다. 유일한 수입원이 월세 받는 것인데 그게 얼마냐, 월 20만원이다. 아무리 우리 동네가 서울의 유명한 달동네라도 27평짜리 가정주택 2층이 그 정도일 수는 없다. 우리 전에 살던 사람이 전세 5000만원에 살았던 집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사실은 오늘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하은이가 태어나고 우리가 대전으로 이사를 결심할 무렵, 집을 내어 놓는다고 호산나넷에다가 글을 올렸더니 이집트 선교사를 하다가 잠시 귀국한 분한테 연락이 왔다. 1년 동안 살집을 구하는데 가진 돈이 별로 없다고 했다. 한달에 70만원 후원을 받는데 월 20만원 정도면 집세를 낼 수 있다고 했다. 나머지 가진 돈은 여기 저기서 꿔 가지고 보증금조로 200만원인가 그랬다. 물론 우리 어머니는 보증금 1000만원에 월 30정도를 생각하고 계셨다. 그런데 그 분한테 연락이 온 시점이 바로 우리 하은이가 태어난 직후,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였다. 그 분들(사실은 나보다 어리다) 역시 하은이가 태어난 나흘 뒤에 첫 딸을 낳은 상태였는데 그 때까지도 집을 구하지 못한 상태였다. 산후조리할 곳도 없는 사정이 너무 딱해서 조심스럽게 어머니에게 말씀을 드렸더니 OK 사인이 났다(아버지가 옆에서 부추긴 것은 당연한 것이고).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하은이가 건강하게 태어난 것에 너무나 감사한 어머니가 덜컥 '그냥 와서 사시라고 해라' 라고 말씀하셨던 것은 분명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1년이 되어가고 그 때의 감동이 식은 며칠 전 어느날. 국내 체류기간이 더 늘어나서 1년 더 살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며칠 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두 가지 안을 가지고 2층에 올라 가셨다. 고민을 하신 이유를 말하자면 이렇다.

얼마전 어머니께서 대전에 혼자 내려오셨다. 그냥 하루 자고 가려고 오셨다고 하시더니, 가시는 날 아침 아내에게는 이야기하지 말라며 나만 조용히 보자고 하셨다. 그러시더니 지금 형편이 어려우니 집에 돈 좀 더 붙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아이고... 돈 많이(순전히 내 기준에) 번다는 아들넘이 부모님이 어찌 사시는 지 알지도 못하는 꼴이라니... 그러니 고민을 안하게 생기셨겠는가.

아무튼 2가지 안을 가지고 올라가셨는데 그 하나는 보증금을 조금 더 내는 것이오, 아니면 월세를 5만원만이라도 올려달라는 것이었단다. 그런데 아침 11시쯤 2층에 올라가보니... 그 부부가 커다란 상에 커다란 냄비를 하나 놓고 아침부터 라면을 끓여먹고 있더라나? 어머니는 아무말 않고 "1년 더 사세요"라고 말하고 내려오셨다고 한다. 그리고는 얼마전 교회 행사 때문에 산 여러 가지 반찬이며 김치며 여러 먹을 것을 다시 다 싸들고 가서 주고 내려오셨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내 대답. "그 사람들, 라면이 좋아서 먹고 있었는지도 모르잖아요."라고 했지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나만 웃은게 아니고 어머니도 아버지도 함께 신나게 웃었다. 이래서 때로는 인생이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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