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 포스팅을 한 게 벌써 3년이 지났네요. 그동안 막걸리 업계는 나름 여러가지 부침을 겪었죠. 많은 막걸리가 새로 만들어졌고 인기를 끌다가 이젠 좀 시들해졌다는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제가 원래 술을 잘 마시지 않지만 하는 일 때문에 막걸리는 한 번씩 마셔보곤 하는데요. 그 동안 찍었던 사진을 좀 방출하려고 합니다.
1. 무주 구천동 생쌀막걸리
작년 여름에 무주리조트에 놀러 갔다가 발견한 막걸리입니다. 생막걸리이고 국산쌀 40%, 수입쌀 40%, 그리고 밀가루 20%가 원료이고 감미료로 아세설팜칼륨 0.005% 첨가했습니다. 아세설팜칼륨은 아스파탐과 비슷한 감도의 감미료입니다. 알코올 농도는 6%이고 한 병에 900ml입니다. 다른 것보다 병의 색깔과 디자인이 깨끗하고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무주구천동 생쌀막걸리
2. 봉하쌀 생막걸리
작년 대선 끝나고 봉하마을에 갔다가 사가지고 온 소위 '봉하막걸리'입니다. 독특하게 병의 색깔이 어둡고 라벨에 봉하마을이 그려져 있습니다. 친환경 무농약 우렁이쌀 100%를 사용하고 올리고당과 아스파탐을 첨가합니다. 쌀은 경상도 봉하쌀이지만 양조는 전라남도 담양의 죽향도가에서 하는 것도 독특한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산 서면의 바보주막에 가면 마실 수 있습니다. 알코올 함량은 6%, 한 병에 750ml 입니다.
그 누군가가 생각나는 봉하쌀 생막걸리
3. 국순당 옛날막걸리 고(古)
요즘 제 주변에서 가장 핫한 막걸리가 바로 국순당 옛날막걸리 고(古)입니다. 부산에서 이 막걸리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마셔본 사람들 사이에서는 평판이 좋더군요. 라벨에서 보시는 것처럼 옛날 방식 그대로 본래 맛을 복원했다고 합니다. 전통누룩 3배, 감미료 무첨가, 국내산 쌀 100%라고 표시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색깔도 다른 막걸리에 비해 검은 편이고 국취도 많이 납니다. 하지만 달달한 사이다 막걸리보다는 주당들이 좋아할 맛이 아닌가 싶습니다. 알코올 함량은 약간 높은 7%, 한 병에 750ml 입니다. 가격도 약간 비싸구요.
저는 다른 것은 몰라도 국순당이 참 소중한 회사라는 생각을 하는데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막걸리에 영양성분 표기를 하는 회사는 아마 국순당 밖에 없을 겁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막걸리 업체들 가운데 제대로 연구소와 연구진을 가지고 있는 회사도 거의 국순당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품의 라인업도 다양하구요. 국순당이 막걸리 1위 업체가 아님에도 이런 노력을 한다는데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국순당 옛날막걸리 고(古)
4. 월향 유기농 현미막걸리
막걸리도 유명하지만 주점으로 더 유명한 월향의 현미 막걸리입니다. 홍대 앞에서 시작한 월향은 막걸리 주점으로 많이 알려졌고 와인바에 이어 최근엔 대학로에 연극 극장까지 열었더군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겠다'라는 미답지론(未踏地論)에 박수를 보냅니다.
월향의 유기농 현미 막걸리는 국산 유기농 현미 52%와 국산 가공쌀(?) 40%, 이소말토올리고당 8%로 막걸리를 빚고 아스파탐과 아세설팜으로 단맛을 보강하고 젖산과 구연산도 첨가됩니다. 현미가 들어가서 그런지 구수한 맛이 좋고 색깔도 살짝 노리끼리한 색을 띄고 있습니다. 특히 병의 색깔과 디자인이 깔끔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알코올 함량은 일반적인 6%, 한 병에 750ml 입니다.
월향의 현미막걸리
5. 전주 서신동 옛촌막걸리
우리나라 지자체들 중에서 막걸리를 띄우려고 노력하는 곳이 여럿이지만 가장 잘 나간다는 곳이 전주입니다. 미생물학회 때문에 전주에 간 김에 대표적인 막걸리 파는 곳을 소개해 달라고 해서 소개받아 간 곳이 서신동의 옛촌 막걸리였습니다. 막걸리를 주전자에 담아 주셔서 통을 찍지는 못했기에 성분이나 다른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역시 푸짐한 인심으로 여러가지 맛난 안주와 함께 마실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인 듯 합니다. 다만 안주가 화려해서 상대적으로 막걸리의 맛에는 관심이 덜 가더군요. ^^
전주의 옛촌막걸리
6. 경주법주 쌀막걸리
제사주로 유명한 경주법주(금복주)에서 새롭게 내놓은 막걸리가 경주법주 쌀막걸리입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20% 도정한 쌀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백미가 보통 10-11분도(8-9% 도정한 쌀)니까 두 배 정도 깎은 쌀을 쓰는 셈이죠. 물론 일본 청주에서는 40-50% 깎은 쌀을 주조미로 씁니다만 국내 막걸리 중에 이정도 깎은 쌀을 쓰는 곳은 별로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전통누룩도 사용했다는군요.(이제 전통누룩만 썼다는 것인지 전통누룩을 입국과 함께 사용했다는 것인지는 불분명해 보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첨가물로 포도당과 스테비오사이드(스테비올 배당체)를 사용한다는 것인데요. 술에 아스파탐과 같은 합성첨가물을 넣을 경우는 표기를 해야 하는데 스테비오사이드는 천연물이라서 꼭 표기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소주 회사들은 첨가물 표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스테비오사이드를 사용한다죠. 그런데 막걸리에 스테비오사이드를 사용하는 경우는 처음 본 듯합니다. 원래 스테비오사이드는 발효가 일어나면 배당체가 바뀌어서 맛이 바뀐다고 하는데 경주법주 쌀막걸리는 살균막걸리이기 때문에 사용해도 맛의 변화는 없는 모양입니다. 알코올 함량은 역시 6%, 한 병에 750ml 입니다.
경주법주 쌀막걸리
7. 제주 한라봉 막걸리
얼마 전 제주도의 학회 웍샵에 갔다가 식당에서 맛본 막걸리입니다. 한라봉 원액과 감귤 원액이 각각 5% 첨가되어 있어서 과일 칵테일 같은 맛이 납니다. 달착지근하고 가벼운 막걸리를 좋아하신다면 마음에 드실 것 같습니다. 색깔도 한라봉이 들어있어서 그런지 살짝 오렌지색입니다. 국내산 쌀만 사용하고 아스파탐으로 단 맛을 내며 알코올 함량은 6%, 한 병에 750ml 입니다. 참, 역시 살균막걸리입니다.
제주도 한라봉 막걸리
8. 부산 청춘주가 탁주애(愛)
부산 남천동의 청춘주가에서 만드는 탁주애(愛)는 몇가지 독특한 점이 있는데 일단 알코올 도수가 15%입니다. 다른 탁주보다 훨씬 높죠. 때문에 가격도 거의 8-10배 정도 비쌉니다. 감미료를 넣지 않고 찹쌀 : 멥쌀 = 2 : 1로 섞어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발효한다고 합니다. 소위 프리미엄급 탁주라고 할 수 있죠. 병도 유리병이고 양도 500ml로 적습니다.
아래 그림을 보시면 맨 오른쪽의 것은 병입한 지 사나흘 지난 것이고, 가운데 것은 몇개월 숙성시킨 것이고 맨오른쪽의 것은 모주입니다. 모주는 알코올 농도가 17% 정도 된다고 하더군요. 탁주애는 발효가 잘 되어서인지 과일향이 향긋하고 모주는 껄죽하면서도 깨끗한 맛입니다. 특히 색깔이 참 곱더군요.
부산 청춘주가의 탁주애(愛)
이상이 제가 최근까지 경험한 막걸리들이고 카메라가 없어서 사진을 찍지 못한 것들이 몇 개 있는데 제주도 우도땅콩민속주(막걸리인데 또 다른 곳에서 이미 땅콩막걸리가 나와서 민속주라고 표기하는 모양이더군요)와 우리쌀 제주막걸리입니다. 땅콩막걸리는 꽤 비싼데(병당 4500원) 의외로 일본사람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에게 혹평을 받더군요. 안타까워라...
아무튼 우리나라에 제조면허를 가진 막걸리 양조장이 700여군데, 그 중에서 실제로 생산 판매하는 곳은 100여군데라고 하는데 언제쯤 다 맛을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최근에 막걸리 거품이 꺼져가고 있다는 것은 공통된 의견이더군요. 이에 대해서는 월향 이여영 사장님의 의견 "막걸리 진가 거품 꺼진 후 드러난다"는 의견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는 듯합니다. 이제 인위적인 거품은 좀 걷어내고 실제적인 발전을 도모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