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제 블로그에 유입이 늘었습니다. 검색어는 "치약 발암물질." 그래서 이전 파라벤 관련 글 때문에 그런가보다 했지요. 그런데 검색어에는 파라벤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검색을 해봤더니 이번엔 또 다른 물질에 대한 논란이 보도되었더군요.
[단독] 어린이 치약에 발암의심 물질..헹구니 괜찮다?
붉은 색깔을 내기 위해 타르 계열 색소인 적색 2호가 사용된 제품들입니다. 적색 2호는 미국 FDA가 발암 의심물질로 간주해 지난 1970년대부터 식품과 치약, 화장품 등에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물질입니다.
[임종한/인하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 적색 2호는 사람에게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고요. 동물실험 결과 불임과 기형아 발생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사용이 금지된 제품입니다.]
위에서 보신 대로 오늘 논란이 된 물질은 적색 2호라는 색소입니다. 그럼 이 색소에 대해 알아보죠.
1. 적색 2호가 뭔가요?
적색2호(Food Red No.2)는 "아마란스(Amaranth)라고도 불리고 E123이라고도 불리는 색소 물질입니다. 아마란스라고 불리는 이유는 뭘까요? 일단 아래 동영상을 보시죠.
위 동영상을 보시면 "신이 내린 곡물"이라는 아마란스 색을 보실 수 있으시죠? 바로 오늘의 문제적 물질, 적색 2호의 색깔이 바로 이 아마란스 꽃의 색과 비슷하다고 이름을 아마란스라고 지은 것입니다. 하지만 색깔만 비슷하지 같은 물질은 아닙니다. 참고로 식물 아마란스(Amaranthus sp.)의 적색소는 betacyanine 계의 amaranthine입니다.
식물 아마란스의 적색소 amaranthine (좌)과 적색 2호(우)
2. 적색 2호는 타르 색소라고 하던데요???
적색 2호는 일명 타르 색소의 일종인데 타르 색소란 콜타르(coal tar)에서 추출한 벤젠, 톨루엔, 나프탈렌 등을 재료로 하여 만들어지는 색소들을 뜻합니다. 그런데 "타르" 하면 대부분 아스팔트 원료나 접착제 등을 생각하기 때문에 몸에 나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타르 색소는 매우 다양한 물질의 총칭이고 전세계적으로 10여 종의 "식용타르색소"들이 사용되고 있습니다(우리나라는 9종). 더 궁금하신 분은 식약처에서 제공하는 자료를 클릭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래 한글 파일입니다.)
국내에서 사용 가능한 식용 타르 색소들 (출처: 식약처 링크 자료)
3. 하지만 적색 2호는 미국에서 식품에 사용 금지된 물질이라던데요???
네, 맞습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노르웨이, 러시아, 오스트리아에서도 금지된 물질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영국 등 EU 국가 그리고 일본과 한국에선 화장품이나 치약은 물론 식품에도 허용하고 있습니다. 지난 번 파라벤의 경우엔 EU에서 일부 파라벤을 금지했지만 미국에선 사용가능했는데 이번엔 그 반대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IARC에 등재된 발암물질 또는 발암가능물질의 목록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사를 잘 보시면 발암물질이 아니라 발암 의심 물질이라고 되어 있죠.
4. 그런데 왜 나라마다 이렇게 규제가 다른 겁니까?
이게 제가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인데, 여기에는 국가간 문화적 차이, 복잡한 행정 절차, 회사간 이해 관계, 과학적 수준, 심지어 그 나라 소비자 운동 등의 다양하고 복합적 요인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물질을 처음 개발한 나라는 그 물질을 규제하는데 소극적이 되고, 처음 그 독성 가능성을 발견한 나라는 좀 더 적극적일 수 있겠죠. 또한 오랜 기간 역사적으로 별 문제 없이 먹어왔던 나라들은 소극적이고 아닌 나라들은 적극적일 수도 있고, 소비자 운동 단체에서 문제 제기를 하는 나라는 좀 더 규제에 적극적이고 자국내에서 별 이야기가 없으면 소극적이 되는 겁니다. 심지어 경쟁사가 독성 연구를 열심히(?) 해서 문제 제기를 한다는 소문도 있죠.
아무튼 어떤 물질을 상당 기간 사용해 왔는데 어느 날 논문 하나 나왔다고 바로 사용을 금지할 수는 없는 일이니, 소량을 사용했는데 심각한 독성이 나온 경우(사실 이런 경우는 심사 과정에서 허가가 나오지 않겠죠)와 같은 아주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면 시간을 두고 판단을 내릴 수 밖에 없고 결국엔 충분한 과학적 결과가 모였을 때 대부분은 그 나라 과학자들의 위원회를 구성해서 사용 여부를 결정하게 되죠. 그러다 보면 위원회에 모인 과학자들이 느끼는 민감도에 따라서도 심의 결과가 달라 질 수 있습니다.(EU 위원회의 2010년 연구 결과 참조)
게다가 솔직히 이런 식으로 선제적인 규제를 하는 나라들은 유럽, 미국, 일본 등의 과학 선진국들이고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이 세 곳에서 어떤 결정을 하느냐 눈치를 잘 보고 있다가 그걸 따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보통 세 곳에서 모두 규제하면 당연히 우리도 규제하겠지만 한 곳만 규제한다면 뭐 좀 더 두고 보자, 이렇게 되는 식입니다. 그러니 파라벤이든 적색 2호든 당장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국내에서 선제적인 사용규제를 하게 될 가능성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뉴스가 터져서 국민적 관심사가 되면 좀 달라질 수도 있죠.
5. 그래서 안전하다는 겁니까, 아니라는 겁니까?
그걸 누가 확실히 알겠습니까? 말 장난 하냐구요? 그렇지 않습니다. 나중에 미국이 의견을 바꿀 수도 있고 유럽이 의견을 바꿀 수도 있겠죠. 하지만 미국이 1976년부터 규제를 해왔음에도 40년 가까이 유럽,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사용해 왔고 아직까지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보아 크게 패닉을 일으킬 만한 물질은 아니라고 미루어 짐작할 뿐입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도 2008년부터 어린이 기호식품에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제를 해왔다고 하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치약은 대부분 뱉기 때문에 식품에 비해 섭취량도 적구요.
물론 제 생각엔 치약이든 식품이든 색깔 같은 것 넣지 않고 그냥 무색소로 해도 상관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와 같은 좋은 예도 있지 않습니까?(하지만 색소는 뺐지만 향료는 들어갔다는 것이 함정.ㅋㅋ) 소비자들이 색깔 예쁜 것 보다는 그냥 소박한(?) 것을 구매하면 회사에서 괜히 돈들여서 색소를 넣으려고도 하지 않겠죠. 하지만 식품이든 화장품이든 예쁜 것을 찾는 것이 또한 사람이죠.^^
식품의 색깔은 맛나보이게도 하고 구별하게도 만듭니다.(FOODTECHNOLOGY, 2005, V59(5):3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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