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모 사이트에서 우유에 대한 험담을 보았습니다. 뭐 이런 건 요즘 흔한 일입니다. 그게 정말 우유가 해로워서 그런 것이건, 기존의 믿음이나 상식에 대한 반감이건, 아니면 채식주의자들의 공격이건, 우유가 여러가지로 공격받는 모습을 흔히 봅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우유회사들은 재고가 늘어서 울상이라고도 하더군요.
그런데 저 기사 중에 제 관심을 끈 대목은 이 부분이었습니다. 우유에 대해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상식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게 뭐냐는 질문에 “우유는 완전식품”이라는 믿음이라고 하더군요. 완전식품이라는 말, 사실 여기 저기서 많이 듣지만 정작 식품 관련 수업시간에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는 말입니다. 가끔 스쳐지나가듯 책이나 논문에 우유나 달걀 등이 완전식품이라는 구절이 씌어있는 경우가 있지만 실제로 그게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더군요. 그럼 대체 이 완전식품이라는 말은 어디서 누가 시작한 것일까요?
경향신문 1966년 2월 9일 신문 내용
일단 저 인터뷰의 원문에 '완전식품'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기사 중 “우유는 완전식품”이라는 믿음입니다, 라고 번역된 부분의 원문은 "Milk is the only food that makes up an entire food group."의 의역입니다. 완전식품의 영어적 표현을 perfect food, super food, essential food 등으로 생각해볼 순 있겠지만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완전식품이라는 의미는 별로 없습니다. 완전식품이라는 개념이 서구에서 온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죠.(하지만 맨 밑의 추가 사항 참고해주세요!)
후타키 켄조 박사 (사진 출처:일본 위키)
출처를 알 수 없는 상당히 많은 정보들은 일본에서 유래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일본 위키를 뒤져보니 힌트가 나오더군요. 일본 위키에 따르면 "완전식(完全食)"이란 말은 후타키 켄조(二木謙三)라는 일본의 의사가 1921년에 처음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 후타키 켄조는 1873년에 태어난 일본의 유명한 세균학자이자 의사인데 건강법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가 만들어낸 개념이 바로 "완전식"입니다. ("산성식품, 알칼리성식품"이라는 개념을 유럽에서 수입해서 퍼뜨린 원흉주역도 바로 이 후타키 겐조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제 블로그의 글 "산성식품, 알칼리성식품은 없다"를 참조하세요.)
그런데 이 후타키 켄조가 완전식품이라고 불렀던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완전식품과 약간 차이가 있는데 그는 "아직 살아있는 식품이자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소를 풍부하게 포함한 식품"을 완전식품으로 주장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살아 있는 식품은 뭔가를 빼지 않고 가공하지 않은 그 상태를 뜻하는 것으로 예를 들면 콩은 살아 있는 식품이지만 비지를 제외한 두부는 죽은 식품, 뭐 이런 개념이라고 보시면 되겠스비다. 아무튼 후타키 켄조는 완전식품의 대표로 "현미"를 꼽았다고 하네요.
후타키 켄조 말고 "완전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사람이 한 명 더 있는데 그는 일본 영양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이키 타다스(佐伯矩)"입니다. 사이키 박사 역시 원래 의학자였는데 영양학이라는 학문을 의학에서 독립시켰고 일본 영양학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라고 합니다. 1886년생이니까 역시 매우 오래 전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죠. 아무튼 사이키 타다스 박사가 주장한 완전식품이란 하루치 필요한 열량을 가진 식사를 의미했습니다. 다른 말로는 표준식이라고도 했다는군요.
1920년대 초 처음 일본에서 주창된 완전식(完全食)과 그 이후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완전식품(完全食品)이 같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좀 더 찾아볼 필요가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완전식품이란 일본식 건강법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나 싶습니다.
아마 제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은 제가 일본식 건강법이나 건강서적에 상당히 비판적이라는 것을 아실텐데요. 실은 이런 완전식품이라는 용어도 어찌보면 비판받을 소지가 꽤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어떤 하나의 식품이 완전할 까닭은 없으니까요. 아무리 영양적으로 고르다고 해도 찾아보면 뭔가 좀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밖에 없죠. 예를 들어 영양학적 밸런스를 따지자면 계란은 탄수화물 비율이 너무 적고 현미는 탄수화물 비율이 너무 높다고 볼 수 있죠.
보통 완전식품이라고 하면 달걀과 우유가 가장 대표적이고 그 외에 현미나 고구마, 심지어 일본에서는 카레라이스도 완전식이라고 하나 봅니다. 하지만 다른 식품들보다 달걀과 우유가 완전식품이라고 잘 알려진 것은 그간 양계업계나 낙농업계의 마케팅의 영향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이렇듯 완전식품이라는 용어는 실제 영양적 측면보다 마케팅적 측면이 강화된 용어이고 때문에 어떤 식품을 완전식품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무조건 그 식품이 좋다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건 마치 산성식품, 알칼리성식품과 같은 옛날 영양학적 분류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죠. 하지만 그 반대로 완전식품이라는 용어가 100년 가까이 지난 일본식 조어이고 학문적인 의미가 없다고 해서 그 식품이 해롭다는 것도 아닙니다. 식품은 식품일 뿐이고, 적당히 먹어서 영양분을 주고 맛있으면 좋은 것이고, 과해서 영양분이 편향되면 해로울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해롭다는 것이 뭐 당장 큰 일이 나거나 부작용이 생기는 정도도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저는 우유가 아이들이 매일 마셔야 하는 대단한 식품이라는 것에도 별로 동의하지 않지만 최근 우유를 무슨 독극물처럼 묘사하고 온갖 성인병의 원인인 것처럼 떠드는 것에는 더욱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하긴 만만한 식품 하나 찍어서 나쁜 놈 만들어 돈 번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닙니다만 말이죠.
추가사항: 마바리님의 제보에 의하면 E. Melanie Dupuis가 쓴 <Nature's Perfect Food: How Milk Became America's Drink>라는 책의 2장에 어떻게 미국에서 우유가 perfect food가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유래는 19세기 중반 부터라고 합니다. 즉 일본에서 완전식이라는 말이 나오기 전부터 우유를 완전식품이라고 불렀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완전식품이라는 용어는 일본인이 주창한 개념라기 보다는 여기저기서 비학문적으로 사용된 용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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