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 10. 1
한 달여에 걸쳐 <論語>(고려원, 홍승직 역해)를 다 읽다.
워낙 요즘 東洋的인것이 人氣이기에- 물론 나는 恒常 身土不二를 부르짖지만- <論語>를 집어들었다. 하지만 예전의 漢字 實力이 바닥나버려서 힘들게 읽었다. 그렇지만 나름대로의 보람과 재미는 있었다.
내게 많이 다가온 점은 孔子의 태도였다. 孔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찾아 떠돌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理想을 펼칠 수 있는 主君을 만나길 기다렸다. 요즘엔 사람들이 워낙 소박해져서-솔직한 내생각엔 약아빠져서- 이름을 드날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게 부딪히며 사는 것이 골치 아프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연히 꿈도 없다. 최근엔 그리스도인 만나는 것만큼 힘빠지는 일도 드물다는 生角이 들기까지 했다. 그런데 나는 儒敎라는 것은 隱遁과 哲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孔子는 숨지 않았고 자신의 큰 뜻을 펼치려-실천하려-고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詰難까지 들어가며.그 점이내게 도전이 되었다. 조금 옆길로 새는 느낌이 들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흔히들 政治를 嫌惡하면 자신이 깨끗하다는 着角을 자주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政治를 이렇게 만든 것은 國民의 責任이 무척 크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現代 政治란 "廣告"와 같은 메카니즘-바꿔 말하면 '쑈'같다는 말이다-을 갖고 있어서 內容보다는 이미지 勝負를 많이 하는데 國民들이 그 함정에 빠져서는 안된다고 나는 生角한다. 지난 4.11 총선에서 나는 民主黨을 열렬히 支持했다. 특히 서경석 목사님, 장기표씨 등등 市民運動의 主役들과 젊고 改革적인 性向의 사람들을 말이다. 그러나 地域 緣故가 없는 民主黨은 결코 그 세계에서 발을 붙일 수 없었다. 그래서 新韓國黨이나 國民會議에서 出馬했으면 당당히 붙었을 좋은 候補들이 모조리 落榜을 했고 혹자들은 깨끗한 사람들이 나와서 더러운 물만 먹고 간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出馬는 옳았다. 적어도 그 世界를 變化시키고자 뛰어들지도 않는다면 그 물이 는 것을 더이상 어떻게 보고만 있으라는 말인가.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한 이유는 孔子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生角이 들어서이다(하지만 한편으론 孔子도 우리나라에선 出馬를 안했을 것 같다). 反逆을 正當化시키는 君主에게서는 과감히 떠났던 그가 아닌가.
弟子를 가르치는 그의 모습도 印象的이다. 같은 內容을 弟子의 性格에 맞게 다르게 가르치는 그의 모습은 참교육의 모습을 연상케만든다. 특히 안회에 대한 그의 사랑은 참 애절하다.
箴言의 말씀을 읽는 듯한 잔잔한 깨달음이 있다. 하지만 결코 생명에 다다를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 안타깝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덧붙임] 한자의 사용은 그냥 재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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