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소설 <영웅시대>(민음사)를 읽다.
1. 몇 가지 쓸데 없는 이야기.
- 전에 <선택>을 읽고나서도 말한 바 있지만 내가 대학 1학년 때, 우리과 어느 선배가 내게 물었었다. 누구 책을 좋아하냐고. 그래서 그냥 무심코 "이문열..."이라고 말했던 내게 선배가 들려준 한 마디는 "이문열 그런 새끼는 죽여버려야 되는데..."라는 말이었고 그건 내게 '운동권'에 대한 하나의 나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돌이켜 보면 그 선배의 말이 왜 그리 과격했는지 어느정도 이해는 간다.
- 재작년 나의 큰 사건 중 하나는 바로 <태백산맥> 전 10권을 '뗀'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의 바로 첫 일성(一聲)이 "이젠 <영웅시대>를 읽어야 겠다."는 것이었고 보면 참 오랜 시간이 그 가운데 가로 놓인 셈이다. 재미있는 것은 <태백산맥>의 경우 '한길사'에서 '해냄'으로 넘어가면서 구판을 반 가격(권당 3천원)에 샀었는데, 이번에도 [나귀]의 좋은 가르침에 따라 교보문고 재고도서 판매대에서 역시 같은 값에 구입을 했다. 이런 즐거운 일이...
2. 이문열에 대하여
이문열. 그 이름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내게 있어서 그는, 적당히 대중적이면서도 적당히 문학적인, 하지만 결코 무시되지도 않고, 무시되어서도 않되는 그는 우리 시대의 '일그러진 영웅'이다. 그는 이 시대의 '大家'이다. 문학적인 성취뿐만 아니라 적어도 우리에게 주는 그의 영향이 그렇다는 말이다. 요즘 나오는 신출내기 평론가들이 하나같이 이문열에 대해 공격적으로 나오는 것을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건 일종의 "뛰어넘기" 기술이고 그만큼 상업적인 전술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는 이 시대가 원하는 보수주의, 자유민주주의에 깊은 애정을 보여오지 않았는가. 결국 그는 한국사회의 논쟁의 한 가운데 있는 것이다. 소위 '진보와 보수'(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논의를 무척 싫어하며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의 시대에 말이다.
3. <영웅시대>와 <태백산맥>
두 소설 모두 좌파 주인공이 나온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 시대 소위 지식인이나 생각있는 사람들은 결국 좌파를 지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태백산맥>의 김범우 조차도 결국 인민군이 되니 말이다.
하지만 <영웅시대>에는 영웅이 없다. 반면 <태백산맥>에는 정말 많은 영웅이 나온다. <영웅시대>에는 이런 저런 얼치기들이 등장하고 <태백산맥>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등장한다. 물론 지나치게 미화되기도 하지만, 결국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스펙트럼은 <태백산맥>의 완성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고 이에 비해 <영웅시대>는 소설적 성취가 너무 형편없이 떨어진다. 특히 뒤로 갈수록 주인공의 관념적인 갈등과 소위 '동영의 노트' 형식의 글은 그야말로 '역겨운' 사족일뿐이다. 이문열은 전혀 대가 답지않고, 사건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쓸데 없는 독백으로 읽는이들을 훈계한다. 이는 거의 중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의 훈화 수준, 또는 그 이하이다. 마치 최근의 <선택>에서 처럼 말이다.
한 사람의 행동은 얼마만큼 사회적이고 또한 얼마만큼 개인적인가. 이를 측량할 수 있는 기계가 없는 이상 수치를 댈 수도 없고, 이런 구분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도 의문이 들지만 역사의 왼편에서는 사회적 행동이, 그 반대편에서는 개인적 행동이 우세해 왔다. 인간은 환경에 지배된다는 것이 사회학의 분야라면 인간은 잠재된 무언가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은 심리학의 분야일 것이다. 하여튼 <영웅시대>의 관점은 극히 사회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너무 개인적인 얘기이기 때문에 당연히 큰 반발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이야기의 개연성 부족은 결정적인 흠을 갖고 마는데 결국 어설프기 그지 없는 결말은 필수적이다. 동영의 어머니의 성격이 갑작스럽게 바뀌고, 사투리를 쓰다가 말다가 하고, 안나타샤의 등장과 만남의 우연, 김철이 죽으며 남긴 어떤 여자의 처리 등등 흠잡을 데가 한두군데가 아니다. 결국은 이런 것들이 <영웅시대>를 관념적인 소설로, 이문열을 "죽여버려야 하는" 인물로 만들어 버린 것이 아닐까.
전쟁이란 역사는 이성이 통하지 않는 공간이다. 그 속을 빠져나와 이 땅을 살아가신 모든 우리 민족의 선배들에게 경의를 보낸다.
[덧붙임] <영웅시대>에 나오는 기독교는 인간 실존에 대한 고민을 담는데 너무 부족하다. 정인이 기독교인이 되는 과정은 개연성은 있지만 왠지 답답함을 준다. 그러나 사실 누가 믿음을 잴 수 있으랴...
1. 몇 가지 쓸데 없는 이야기.
- 전에 <선택>을 읽고나서도 말한 바 있지만 내가 대학 1학년 때, 우리과 어느 선배가 내게 물었었다. 누구 책을 좋아하냐고. 그래서 그냥 무심코 "이문열..."이라고 말했던 내게 선배가 들려준 한 마디는 "이문열 그런 새끼는 죽여버려야 되는데..."라는 말이었고 그건 내게 '운동권'에 대한 하나의 나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돌이켜 보면 그 선배의 말이 왜 그리 과격했는지 어느정도 이해는 간다.
- 재작년 나의 큰 사건 중 하나는 바로 <태백산맥> 전 10권을 '뗀'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의 바로 첫 일성(一聲)이 "이젠 <영웅시대>를 읽어야 겠다."는 것이었고 보면 참 오랜 시간이 그 가운데 가로 놓인 셈이다. 재미있는 것은 <태백산맥>의 경우 '한길사'에서 '해냄'으로 넘어가면서 구판을 반 가격(권당 3천원)에 샀었는데, 이번에도 [나귀]의 좋은 가르침에 따라 교보문고 재고도서 판매대에서 역시 같은 값에 구입을 했다. 이런 즐거운 일이...
2. 이문열에 대하여
이문열. 그 이름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내게 있어서 그는, 적당히 대중적이면서도 적당히 문학적인, 하지만 결코 무시되지도 않고, 무시되어서도 않되는 그는 우리 시대의 '일그러진 영웅'이다. 그는 이 시대의 '大家'이다. 문학적인 성취뿐만 아니라 적어도 우리에게 주는 그의 영향이 그렇다는 말이다. 요즘 나오는 신출내기 평론가들이 하나같이 이문열에 대해 공격적으로 나오는 것을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건 일종의 "뛰어넘기" 기술이고 그만큼 상업적인 전술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는 이 시대가 원하는 보수주의, 자유민주주의에 깊은 애정을 보여오지 않았는가. 결국 그는 한국사회의 논쟁의 한 가운데 있는 것이다. 소위 '진보와 보수'(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논의를 무척 싫어하며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의 시대에 말이다.
3. <영웅시대>와 <태백산맥>
두 소설 모두 좌파 주인공이 나온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 시대 소위 지식인이나 생각있는 사람들은 결국 좌파를 지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태백산맥>의 김범우 조차도 결국 인민군이 되니 말이다.
하지만 <영웅시대>에는 영웅이 없다. 반면 <태백산맥>에는 정말 많은 영웅이 나온다. <영웅시대>에는 이런 저런 얼치기들이 등장하고 <태백산맥>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등장한다. 물론 지나치게 미화되기도 하지만, 결국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스펙트럼은 <태백산맥>의 완성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고 이에 비해 <영웅시대>는 소설적 성취가 너무 형편없이 떨어진다. 특히 뒤로 갈수록 주인공의 관념적인 갈등과 소위 '동영의 노트' 형식의 글은 그야말로 '역겨운' 사족일뿐이다. 이문열은 전혀 대가 답지않고, 사건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쓸데 없는 독백으로 읽는이들을 훈계한다. 이는 거의 중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의 훈화 수준, 또는 그 이하이다. 마치 최근의 <선택>에서 처럼 말이다.
한 사람의 행동은 얼마만큼 사회적이고 또한 얼마만큼 개인적인가. 이를 측량할 수 있는 기계가 없는 이상 수치를 댈 수도 없고, 이런 구분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도 의문이 들지만 역사의 왼편에서는 사회적 행동이, 그 반대편에서는 개인적 행동이 우세해 왔다. 인간은 환경에 지배된다는 것이 사회학의 분야라면 인간은 잠재된 무언가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은 심리학의 분야일 것이다. 하여튼 <영웅시대>의 관점은 극히 사회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너무 개인적인 얘기이기 때문에 당연히 큰 반발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이야기의 개연성 부족은 결정적인 흠을 갖고 마는데 결국 어설프기 그지 없는 결말은 필수적이다. 동영의 어머니의 성격이 갑작스럽게 바뀌고, 사투리를 쓰다가 말다가 하고, 안나타샤의 등장과 만남의 우연, 김철이 죽으며 남긴 어떤 여자의 처리 등등 흠잡을 데가 한두군데가 아니다. 결국은 이런 것들이 <영웅시대>를 관념적인 소설로, 이문열을 "죽여버려야 하는" 인물로 만들어 버린 것이 아닐까.
전쟁이란 역사는 이성이 통하지 않는 공간이다. 그 속을 빠져나와 이 땅을 살아가신 모든 우리 민족의 선배들에게 경의를 보낸다.
[덧붙임] <영웅시대>에 나오는 기독교는 인간 실존에 대한 고민을 담는데 너무 부족하다. 정인이 기독교인이 되는 과정은 개연성은 있지만 왠지 답답함을 준다. 그러나 사실 누가 믿음을 잴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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